강화 고려궁지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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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화 고려궁지 기행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려다 길이 청병에 막혀 남한산성으로 길을 돌렸다는 말에 의외로 남한산성이 아닌 강화도가 생각났다.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유적이 망라되어 있을 정도로 유적지가 많아 대형 박물관이라 생각되는 섬이다. 또한 이곳은 외세에 침략에 대항하여 싸웠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시대 원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에서 항전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후금의 침략을 피해 인조가 머물렀고, 고종 때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벌어진 격전지이기도 하다. 이로 인한 침략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강화도는 그 어느 지역보다 유적지 보존도 잘 되어 있고, 볼 것들이 많아 유적지 답사엔 최적의 장소로 생각되었다.
이런 이유들과 강화를 오랫동안 가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인천에서는 강화로 들어가는 버스 노선 중 집과 가까운 노선을 타고 한시간 반가량을 달려 강화터미널에 도착했다. 먼저 가보기로 한 곳은 고려궁지였다. 고려궁지를 가기 위해선 터미널에 내려서 강화군청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강화초등학교 들어가는 길에 표지판으로 쓰여져 있다. 이곳에서 언덕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면 고려궁지가 나온다. 가는 길에는 용흥궁과 성공회 강화성당이 보인다.
고려궁지는 고종19년(1232)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최우의 주장에 따라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지은 고려궁궐의 터이다. 이곳은 원종 11년(1270)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개성으로 환도할 당시 몽고와의 약속에 따라 이곳에 있던 궁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당시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이후에 조선시대에 행궁을 지었고 외규장각을 설치하였으나 병자호란 당시에 강화도가 함락되어 궁궐이 파괴되었다. 외규장각 역시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의 약탈과 방화로 사라졌다가 2003년 복원이 완료되어 건물의 형태만 갖추고 있다. 현재는 강화유수부로 쓰일 당시의 건물들만이 당시 이곳이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궁지 안내도
안내도 앞에서
고려궁지에 남아있는 건물들은 강화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동종, 그리고 복원된 외규장각이 있다.
강화유수부 동헌은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다. 강화 유수부는 1627년(인조 5)에 인조가 강화로 피신했다가 돌아온 뒤 설치한 것으로 종2품 관청으로 삼았다. 1638년(인조 16) 유수 김신국이 수리하였고, 1769년(영조 45)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이라 하였다. 명위헌이라는 현판은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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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5.27
  • 저작시기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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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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