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말러의 생애
1. 개 관
2. 출생과 성장
3. 음악과 커리어
4. 말러의 여자와 가족
5. 음악가의 죽음
▣ 대 표 곡
1. 교 향 곡
2. 가 곡
▣ 연 보
▣ 말러 그 천재성에 대한 고찰
1. 완숙미를 완성한 5번 교향곡
2. 말러 5번 교향곡에 흐르는 철학적 향기
▣ 말러 시대의 문화사(시대적배경)
1. 마이애를링 사건
2. 자유주의의 종언
3. 화려함의 이면
4. 분리주의 운동
5. 대학 변화로 인한 소동
6. 빈의 황혼
▣ 교향곡의 감상
1. 전체적인 구조의 개관
2. 1부 - 암흑
3. 2부 - 전환
4. 3부 - 광명
5. 곡의 전체적인 감상
1. 개 관
2. 출생과 성장
3. 음악과 커리어
4. 말러의 여자와 가족
5. 음악가의 죽음
▣ 대 표 곡
1. 교 향 곡
2. 가 곡
▣ 연 보
▣ 말러 그 천재성에 대한 고찰
1. 완숙미를 완성한 5번 교향곡
2. 말러 5번 교향곡에 흐르는 철학적 향기
▣ 말러 시대의 문화사(시대적배경)
1. 마이애를링 사건
2. 자유주의의 종언
3. 화려함의 이면
4. 분리주의 운동
5. 대학 변화로 인한 소동
6. 빈의 황혼
▣ 교향곡의 감상
1. 전체적인 구조의 개관
2. 1부 - 암흑
3. 2부 - 전환
4. 3부 - 광명
5. 곡의 전체적인 감상
본문내용
. 이후 딸의 죽음과 지병 등으로 힘들어하던 말러는 높은 보수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와 계약하고, 1907년 눈물의 고별 공연을 끝으로 빈을 떠난다. 1909-1911년 뉴욕 필하모닉을 맡게 된 말러는 그 시기에 <대지의 노래>와 <교향곡9번>을 작곡하고, 1911년 2월 21일 뉴욕에서의 마지막 지휘를 끝으로 미완성의 <교향곡10번>을 남기고 음악 인생을 마무리 한다.
4. 말러의 여자와 가족
빈 사교계의 인기인으로 당대 가장 유명한 독신남이었던 말러는 여러 여성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나탈리 바우어-레흐너와 알마 마리아 쉰들러 두 명의 여자이다. 1890년 말러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나탈리를 만나 가까워진다. 키가 크고 매력적이었던 그녀는 집중력과 호기심이 강했고 매우 헌신적이었다. 그녀는 대중과 평론가의 혹평에도 말러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했으며 그와 가깝게 지내는 동안 그에 대한 온갖 정보를 기록했다. 그녀의 기록은 매우 세밀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말러의 진정한 면모를 후세에 전해주는 귀중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말러는 1901년 빈의 어느 파티에서 23살의 알마를 만나게 되고 이내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어 1902년 결혼식을 올린다. 알마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말러는 두딸 마리아 안나와 유스티나를 낳는데 불행히도 그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첫째 마리아는 1907년 성홍열에 걸려 죽게 된다. 너무도 아끼던 딸의 죽음에 말러는 씻을 수 없는 심한 충격에 빠지고 자신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어 전과 달리 불행하고 환자로서 조심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5. 음악가의 죽음
1911년 2월 21일 뉴욕에서 지휘를 끝으로 건강이 악화된 말러는 심장병 발작이 심각해지자 의사의 권유로 4월에 유럽으로 돌아가게 된다. 파리에서 요양하던 말러는 길어야 몇 주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들의 말에 자신이 사랑한 빈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가게 되고, 빈에 도착한지 얼마 안 돼 51세 생일을 몇 주 앞둔 1911년 5월 18일 숨을 거둔다. 유언에 의해 장례식에서 추도문은 읽지 않았으며 음악도 연주되지 않았고 도시 전체의 슬픔 속에 말러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딸 마리아의 묘지 옆에 묻혔다.
▣ 대표곡
1. 교향곡
(1) 교향곡 거인 제1번 D장조(Symphony No.1 in D major Titan)
부다페스트의 왕립 가극장 지휘자로 활동하던 1888년에 완성된 이 곡은 독일 낭만파 시대의 작가 장 파울 ‘거인’이라는 시의 제목을 따서 만든 것이다. 전4악장을 2악장씩 묶어서 1부와 2부로 나누고 있으며, 제1부에서는 ‘젊은이, 미덕, 결실, 고뇌 등의 나날로부터’, 제2부에는 ‘인간적인 희극’ 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악기 편성은 대규모적이며 아름답고 힘이 있는 곡이다.
(2) 교향곡 부활 제2번 c단조(Symphony No.2 in c minor Auferstehung)
1894년의 작품으로 그가 존경했던 한스 폰뷜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하며, 영원 불멸의 우주와 인간의 허무, 그리고 부활에 대한 동경이 그려지고 있다.
(3) 교향곡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옛 중국 시인들의 한시(漢詩) 6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1909년에 완성하여 그가 죽은지 6개월이 지난 1911년 11월에 초연되었다.
2. 가 곡
(1)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23세에 썼던 관현악 반주의 가곡집으로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버린 여인 때문에 방황하는 젊은이의 고뇌를 담고 있다.
(2) 죽은 자식을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
독일의 시인 뤼케르트의 시를 바탕으로 해서 1904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그의 슬픔이 노래된 것으로 전5곡으로 되어 있다.
▣ 연 보
1860 (0세) 7월 7일, 구스타프 말러, 보헤미아의 칼리쉬트에서 태어남.
1875 (15세) 빈 음악원에 입학.
1876 (16세) 빈 음악원에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으로 1등상을 받음.
1878 (18세) <피아노5중주곡>에 의해 작곡상을 수상. 빈 음악원 졸업. 브루크너<교향곡 제3번>의 4손용 피아노 편곡을 출판.
1880 (20세) <탄식의 노래>(초고) 완성.
1881 (21세) <탄식의 노래>베토벤상에 탈락. 라이바흐 가극장에서 지휘.
1883 (23세) 모러비아의 올뮈츠, 빈에서 오페라 지휘. 카셀 왕립가극장 음악감독으로 취임.
1885 (25세)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완성. 프라하에서 오페라 지휘.
1886 (26세) 라이프치히에서 니키쉬의 조수가 됨.
1887 (27세) R.슈트라우스, 민요집<소년의 마술 뿔피리>를 알게 됨.
1888 (28세) <교향곡 제1번>(초고)완성. 베버의 미완성 오페라 <3명의 핀토들>을 보완 완성, 초연. 부다페스트 왕립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1889 (29세) <교향곡 제1번>, <교향시>로서 부다페스트에서 초연. 2월에 아버지, 10월에 어머니가 사망.
1891 (31세) 부다페스트 왕립가극장의 음악감독을 사임. 함부르크 시립가극장 수석지휘자로 취임.
1892 (32세) 가곡집(젊은 날의 노래)출판. 런던으로 음악 여행.
1894 (34세) <교향곡 제2번>완성.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를 현악합주용으로 편곡. 브루노 발터와 알게 됨.
1895 (35세) <교향곡 제2번>베를린에서 초연.
1896 (36세) <교향곡 제3번>완성.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초연.
1897 (37세) 함부르크 시립가극장 수석지휘자 사임. 빈 궁정가 극장 예술감독으로 취임. 모스크바로 음악여행.
1898 (38세) 빈 필의 지휘자로 취임.
1899 (39세) <소년의 마술 뿔피리>이 무렵에 완성. <탄식의 노래>완성.
1900 (40세) <교향곡 제4번>완성. 빈 필을 지휘하여 파리에서 연주회.
1901 (41세) <탄식의 노래>(개정판)을 빈에서, <교향곡 제4번>을 뮌헨에서 초연. 빈 필의 지휘자를 사임.
1902 (42세) <교향곡 제5번><
4. 말러의 여자와 가족
빈 사교계의 인기인으로 당대 가장 유명한 독신남이었던 말러는 여러 여성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나탈리 바우어-레흐너와 알마 마리아 쉰들러 두 명의 여자이다. 1890년 말러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나탈리를 만나 가까워진다. 키가 크고 매력적이었던 그녀는 집중력과 호기심이 강했고 매우 헌신적이었다. 그녀는 대중과 평론가의 혹평에도 말러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했으며 그와 가깝게 지내는 동안 그에 대한 온갖 정보를 기록했다. 그녀의 기록은 매우 세밀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말러의 진정한 면모를 후세에 전해주는 귀중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말러는 1901년 빈의 어느 파티에서 23살의 알마를 만나게 되고 이내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어 1902년 결혼식을 올린다. 알마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말러는 두딸 마리아 안나와 유스티나를 낳는데 불행히도 그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첫째 마리아는 1907년 성홍열에 걸려 죽게 된다. 너무도 아끼던 딸의 죽음에 말러는 씻을 수 없는 심한 충격에 빠지고 자신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어 전과 달리 불행하고 환자로서 조심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5. 음악가의 죽음
1911년 2월 21일 뉴욕에서 지휘를 끝으로 건강이 악화된 말러는 심장병 발작이 심각해지자 의사의 권유로 4월에 유럽으로 돌아가게 된다. 파리에서 요양하던 말러는 길어야 몇 주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들의 말에 자신이 사랑한 빈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가게 되고, 빈에 도착한지 얼마 안 돼 51세 생일을 몇 주 앞둔 1911년 5월 18일 숨을 거둔다. 유언에 의해 장례식에서 추도문은 읽지 않았으며 음악도 연주되지 않았고 도시 전체의 슬픔 속에 말러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딸 마리아의 묘지 옆에 묻혔다.
▣ 대표곡
1. 교향곡
(1) 교향곡 거인 제1번 D장조(Symphony No.1 in D major Titan)
부다페스트의 왕립 가극장 지휘자로 활동하던 1888년에 완성된 이 곡은 독일 낭만파 시대의 작가 장 파울 ‘거인’이라는 시의 제목을 따서 만든 것이다. 전4악장을 2악장씩 묶어서 1부와 2부로 나누고 있으며, 제1부에서는 ‘젊은이, 미덕, 결실, 고뇌 등의 나날로부터’, 제2부에는 ‘인간적인 희극’ 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악기 편성은 대규모적이며 아름답고 힘이 있는 곡이다.
(2) 교향곡 부활 제2번 c단조(Symphony No.2 in c minor Auferstehung)
1894년의 작품으로 그가 존경했던 한스 폰뷜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하며, 영원 불멸의 우주와 인간의 허무, 그리고 부활에 대한 동경이 그려지고 있다.
(3) 교향곡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옛 중국 시인들의 한시(漢詩) 6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1909년에 완성하여 그가 죽은지 6개월이 지난 1911년 11월에 초연되었다.
2. 가 곡
(1)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23세에 썼던 관현악 반주의 가곡집으로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버린 여인 때문에 방황하는 젊은이의 고뇌를 담고 있다.
(2) 죽은 자식을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
독일의 시인 뤼케르트의 시를 바탕으로 해서 1904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그의 슬픔이 노래된 것으로 전5곡으로 되어 있다.
▣ 연 보
1860 (0세) 7월 7일, 구스타프 말러, 보헤미아의 칼리쉬트에서 태어남.
1875 (15세) 빈 음악원에 입학.
1876 (16세) 빈 음악원에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으로 1등상을 받음.
1878 (18세) <피아노5중주곡>에 의해 작곡상을 수상. 빈 음악원 졸업. 브루크너<교향곡 제3번>의 4손용 피아노 편곡을 출판.
1880 (20세) <탄식의 노래>(초고) 완성.
1881 (21세) <탄식의 노래>베토벤상에 탈락. 라이바흐 가극장에서 지휘.
1883 (23세) 모러비아의 올뮈츠, 빈에서 오페라 지휘. 카셀 왕립가극장 음악감독으로 취임.
1885 (25세)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완성. 프라하에서 오페라 지휘.
1886 (26세) 라이프치히에서 니키쉬의 조수가 됨.
1887 (27세) R.슈트라우스, 민요집<소년의 마술 뿔피리>를 알게 됨.
1888 (28세) <교향곡 제1번>(초고)완성. 베버의 미완성 오페라 <3명의 핀토들>을 보완 완성, 초연. 부다페스트 왕립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1889 (29세) <교향곡 제1번>, <교향시>로서 부다페스트에서 초연. 2월에 아버지, 10월에 어머니가 사망.
1891 (31세) 부다페스트 왕립가극장의 음악감독을 사임. 함부르크 시립가극장 수석지휘자로 취임.
1892 (32세) 가곡집(젊은 날의 노래)출판. 런던으로 음악 여행.
1894 (34세) <교향곡 제2번>완성.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를 현악합주용으로 편곡. 브루노 발터와 알게 됨.
1895 (35세) <교향곡 제2번>베를린에서 초연.
1896 (36세) <교향곡 제3번>완성.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초연.
1897 (37세) 함부르크 시립가극장 수석지휘자 사임. 빈 궁정가 극장 예술감독으로 취임. 모스크바로 음악여행.
1898 (38세) 빈 필의 지휘자로 취임.
1899 (39세) <소년의 마술 뿔피리>이 무렵에 완성. <탄식의 노래>완성.
1900 (40세) <교향곡 제4번>완성. 빈 필을 지휘하여 파리에서 연주회.
1901 (41세) <탄식의 노래>(개정판)을 빈에서, <교향곡 제4번>을 뮌헨에서 초연. 빈 필의 지휘자를 사임.
1902 (42세) <교향곡 제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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