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답사지로 적석총을 선정한 이유
(2) 적석총에 대한 사전 공부
(3) 석촌동 적석총으로 가는 길
(4) 눈으로 직접 본 적석총 (사진포함)
(2) 적석총에 대한 사전 공부
(3) 석촌동 적석총으로 가는 길
(4) 눈으로 직접 본 적석총 (사진포함)
본문내용
것 같다는 판단이 맞다는 생각을 한 것이 잔디로 덮힌 다른 무덤들과는 다르게 윗부분에 돌이 많았고, 또 상상해 봤을 때 저 위에 3단 정도는 더 있어야 피라미드 모형이 되며 백제 최고의 왕인 근초고왕의 무덤으로서 그 모습이 멋있을 것 같았다.
바로 옆으로 조금만 걸어가니까 4호문 옆에 4호분(사진④)이 있었다. 미리 조사할 땐 몰랐던 부분인데 1호분, 2호분, 4호분, 5호분 옆에는 각각 1호문, 2호문, 4호문, 5호문이 있었다. 4호분은 3호분과는 다르게 가로, 세로 길이도 훨씬 작았고 맨 밑단과 가운데 단 그리고 맨 윗 단의 각각의 높이가 다 달랐다. 사전 공부 중 사진들을 보면서는 이런 부분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직접 가서 양 옆에 두고 비교해 보니까 두 무덤의 차이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무덤 사이에 이런 차이가 왜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3호분은 전형적인 고구려 식 돌무지무덤이고, 4호분은 기존의 백제 식 분구묘를 다듬어서 돌무지무덤으로 만든 무덤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4호 고분 바로 옆에는 2호 고분(사진⑤)이 있었다. 2호분은 4호분과 그 전체적인 크기가 큰 차이 없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점은 2호분은 3호분보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그와 비슷하게 1단, 2단, 3단의 각각의 높이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진⑥은 2호분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인데 자세히 보면 비슷한 크기의 돌들이 각을 지고 큰 틀을 이루고 있고, 사이사이 구멍이 생기는 부분은 또 작은 크기의 돌로 보충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다가가서 무덤을 보고 약 2000년 전 옛 사람들의 정성과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2호분을 보고 걸어가던 중 바로 옆에 안내팻말이 세워져 있고 그 안으로 짧은 돌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사진⑦에서 보듯이 ‘제2호 토광묘’ 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사전 조사에서 미처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조사하면서 단지 무덤에만 집착하고, 이런 모형 토광묘를 만들어 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토광묘란 지하에 수직으로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매장하거나 목관을 사용하는 형식의 무덤이다. 청동기 말기부터 철기시대까지 사용하였다. 청동기, 철기, 화분형 토기 등이 껴묻거리로 나오고, 철기시대 때 옹관묘와 더불어 토광묘의 형태가 많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고 한다. 2호 토광묘에는 전날 온 비로 인해 물이 꽉 차있어서 그 밑을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조금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나무 벤치와 돌 의자들이 놓여져 있고 적석총 관리사무소와 공중화장실이 나온다. 그러다가 조금 특이한 적석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도 사전조사 과정 중 내가 빠트린 부분이었다. 사진⑧에서 보듯이 ‘내원외방형 적석총’이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안은 원형이고 바깥부분은 방형인 형태의 무덤 원형은 알 수 없는 그런 적석총이 나온다. 이게 만약 원형 그대로 보존 되었다면 지금까지 본 다른 무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바로 내원외방형 적석총 옆에는 사전 공부할 때 궁금했던 것 중 하나인 북분과 남분이 연결된 쌍분, 1호 고분(사진⑨)이 있었다. 1호분도 미리 조사한 것과 같이 주민들이 농사짓는 땅으로 이용한 후 그 상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백제 식 돌무지무덤과 고구려 식 돌무지무덤이 바로 붙어있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길이가 다른 2,4호분과는 다르게 좀 길었다.
그리고 사진⑩의 무덤은 5호분으로서 다른 무덤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사가 완전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부를 했지만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무덤의 크기는 현대의 무덤들과는 다르게 많이 커서 마지 작은 언덕을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서 반대 길로 걸어가다 보면 3호 토광묘(사진⑪)가 나오게 된다. 3호 토광묘에는 물이 차있지 않아서 그 모양과 크기를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냥 위에서 눈으로 봤을 때는 저기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 길이가 230cm라니 정말 놀라웠다.
집에 와서 토광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공부해 보았다. → 오른쪽 사진은 석촌동 3호분 동쪽 대형 토광묘 노출전경으로 옴무덤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사진① →
사진② ↓
사진③ ↑
사진④ →
사진⑤ ↓ 사진⑥ ↓
사진⑦ ↓
사진⑧ ↓
사진⑨ ↓
사진⑩ ↓
사진⑪ ↓
출처
-네이버 캐스트(임아영)
-송파구청 문화관광(culture.songpa.go.kr)
-고고학사전, 2001.12, 국립문화재연구소
바로 옆으로 조금만 걸어가니까 4호문 옆에 4호분(사진④)이 있었다. 미리 조사할 땐 몰랐던 부분인데 1호분, 2호분, 4호분, 5호분 옆에는 각각 1호문, 2호문, 4호문, 5호문이 있었다. 4호분은 3호분과는 다르게 가로, 세로 길이도 훨씬 작았고 맨 밑단과 가운데 단 그리고 맨 윗 단의 각각의 높이가 다 달랐다. 사전 공부 중 사진들을 보면서는 이런 부분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직접 가서 양 옆에 두고 비교해 보니까 두 무덤의 차이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무덤 사이에 이런 차이가 왜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3호분은 전형적인 고구려 식 돌무지무덤이고, 4호분은 기존의 백제 식 분구묘를 다듬어서 돌무지무덤으로 만든 무덤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4호 고분 바로 옆에는 2호 고분(사진⑤)이 있었다. 2호분은 4호분과 그 전체적인 크기가 큰 차이 없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점은 2호분은 3호분보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그와 비슷하게 1단, 2단, 3단의 각각의 높이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진⑥은 2호분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인데 자세히 보면 비슷한 크기의 돌들이 각을 지고 큰 틀을 이루고 있고, 사이사이 구멍이 생기는 부분은 또 작은 크기의 돌로 보충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다가가서 무덤을 보고 약 2000년 전 옛 사람들의 정성과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2호분을 보고 걸어가던 중 바로 옆에 안내팻말이 세워져 있고 그 안으로 짧은 돌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사진⑦에서 보듯이 ‘제2호 토광묘’ 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사전 조사에서 미처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조사하면서 단지 무덤에만 집착하고, 이런 모형 토광묘를 만들어 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토광묘란 지하에 수직으로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매장하거나 목관을 사용하는 형식의 무덤이다. 청동기 말기부터 철기시대까지 사용하였다. 청동기, 철기, 화분형 토기 등이 껴묻거리로 나오고, 철기시대 때 옹관묘와 더불어 토광묘의 형태가 많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고 한다. 2호 토광묘에는 전날 온 비로 인해 물이 꽉 차있어서 그 밑을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조금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나무 벤치와 돌 의자들이 놓여져 있고 적석총 관리사무소와 공중화장실이 나온다. 그러다가 조금 특이한 적석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도 사전조사 과정 중 내가 빠트린 부분이었다. 사진⑧에서 보듯이 ‘내원외방형 적석총’이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안은 원형이고 바깥부분은 방형인 형태의 무덤 원형은 알 수 없는 그런 적석총이 나온다. 이게 만약 원형 그대로 보존 되었다면 지금까지 본 다른 무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바로 내원외방형 적석총 옆에는 사전 공부할 때 궁금했던 것 중 하나인 북분과 남분이 연결된 쌍분, 1호 고분(사진⑨)이 있었다. 1호분도 미리 조사한 것과 같이 주민들이 농사짓는 땅으로 이용한 후 그 상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백제 식 돌무지무덤과 고구려 식 돌무지무덤이 바로 붙어있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길이가 다른 2,4호분과는 다르게 좀 길었다.
그리고 사진⑩의 무덤은 5호분으로서 다른 무덤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사가 완전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부를 했지만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무덤의 크기는 현대의 무덤들과는 다르게 많이 커서 마지 작은 언덕을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서 반대 길로 걸어가다 보면 3호 토광묘(사진⑪)가 나오게 된다. 3호 토광묘에는 물이 차있지 않아서 그 모양과 크기를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냥 위에서 눈으로 봤을 때는 저기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 길이가 230cm라니 정말 놀라웠다.
집에 와서 토광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공부해 보았다. → 오른쪽 사진은 석촌동 3호분 동쪽 대형 토광묘 노출전경으로 옴무덤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사진① →
사진② ↓
사진③ ↑
사진④ →
사진⑤ ↓ 사진⑥ ↓
사진⑦ ↓
사진⑧ ↓
사진⑨ ↓
사진⑩ ↓
사진⑪ ↓
출처
-네이버 캐스트(임아영)
-송파구청 문화관광(culture.songpa.go.kr)
-고고학사전, 2001.12,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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