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베어스(Doosan Bears) 구단 측정평가 {구단의 역사와 레전드 선수, 구단의 현재 상태, 통산기록 & 장,단점, 구단의 발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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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두산베어스(Doosan Bears) 구단 측정평가 {구단의 역사와 레전드 선수, 구단의 현재 상태, 통산기록 & 장,단점, 구단의 발전 방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구단 소개
 1. 구단 소개 ………․……………………………………… 2
 2. 구단의 역사 …………………………………………… 3
 3. 레전드 선수 …………………………………………… 8

Ⅱ. 구단의 현재 상태
 1. 현재 상태 …․…………………………․……………………12
 2. 통산기록 & 장,단점 ……………․………………………13

Ⅲ. 구단의 발전 방향
 1. 과거와 현재의 라인업과 기록 …․……………………14
 2. 이번시즌 영입가능 선수들 ․………………………… 23

본문내용

을 발휘했다. 이것은 후기리그 우승팀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도 잘 나타났다. 에이스 박철순이 허리부상으로 정상적인 등판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맞이한 1차전에서 무명의 잠수함 투수 강철원이 9이닝 3실점 하는 호투를 펼쳤고 선우대영도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삼성의 삼두마차 권영호-황규봉-이선희를 상대로 숨 막히는 연장 15회 무승부를 펼친 것. 전력 열세 속에 뜻밖의 무승부를 기록한 OB 선수단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2차전 패배 후 3차전부터 4연승을 거두며 프로야구 원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OB가 전문가 예상을 비웃으며 원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창단 멤버로 우승에 일조한 김광수 두산 감독대행은 “두산그룹의 모토처럼 인화 단결한 결과”라고 밝혔다. “구단에서 항상 강조한 게 인화 단결과 허슬 이었다. 그라운드에선 항상 온 힘을 다하라고 강조했다. 선수 각자가 자기역할을 다할 때 생기는 것이 팀의 융합이다. 매 타석 홈런만 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렇게 안 된다. 결국, 진루타를 치며 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선수라면 누구나 자기가 다 해결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 욕구를 참고 상황마다 자기 역할을 다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본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진적인 메리트시스템 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의 운영 방식에 정통한 박용민 단장은 잘한 선수에게 혜택을 주는 메리트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승리나 연승, 그날의 투타 성적에 따른 수당을 지급했다. 그때 007 가방에 항상 5백만 원 정도를 현금으로 들고 다녔는데, 경기가 끝나면 바로 100~150만 원 정도를 나눠줬다. 이걸 뒤늦게 다른 구단들도 알고 따라 했지만 그때는 이미 분위기를 뒤엎기에는 늦었다.” 구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두산이 다음해에 전기리그에서 최하위로 몰락한데 이어 후기리그도 부진을 면치 못해 종합순위5위에 그쳤다, 그 이유중에 하나가 ‘두산 전력의 반’ 이라고 할 수 있는 박철순이 허리부상으로 전력 이탈하며 마운드가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역시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단한명의 에이스 투수로 팀전체가 바뀔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두산은 1983년에 처음으로 2군을 창설하고 경기도 이천에 잔디 구장과 실내연습장을 만들어서 유망주를 체계적으로 육성, 관리 할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최근 두산구단을 두고 마르지 않는 선수 공급의 화수분이라고 하는 말도 오랜 투자가 만들어낸 결실이다.
※ 1대 김영덕 감독 시절 종합 순위
※ 2대 김성근 감독 시절 종합 순위
※ 3대 이광환 감독 시절 종합 순위
※ 4대 이재우 감독 시절 종합 순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베어스가 원년우승 이후 1994년까지 한국시리즈를 다시 밟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많은 요인이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우수한 신인 선수를 영입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MBC청룡과의 연고지분쟁으로 우선선수 지명이 늦은 탓도 있지만 베어스구단에서 선수들의 데이터만 믿고 선수들을 뽑아왔다. 스카우트팀을 활용하여 정확한 스카우트를 해야 했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결과였다. 이렇게 전력보강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팀 상황에 맞지 않은 감독 선임도 성적 하락을 부채질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2) 두 번째 우승
믿음의 야구 김인식 감독
일반적으로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에 감독의 능력으로 좌우되는 승수는 10승이 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경기는 선수가 한다’는 시각이 강하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주니치 감독은 “경기를 하는 것은 선수이지만 감독은 게임을 장악한다”고 지적했다. 감독의 역량에 따라 팀 성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잘 나타난 것이 1995년 OB다. 감독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전년도 7위였던 팀이 시즌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시즌 시작전 모든 구단과 전문가들의 시선은 베어스는 하위권으로 점쳐졌다. 전시즌 7위라는 성적 뿐 아니라 선수단 이탈 사건으로 팀워크는 모래알처럼 흩어졌고 눈에띄는 선수 보강도 없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니 OB의 기세는 달랐다. 시즌초반 선두를 다퉜고 시즌 종반인 9월 10일에 1위 LG를 역전해 선두에 올랐다. 그리고는 결국에 반경기 차로 시즌1위에 올랐다. 그리고 13년 만에 밟은 한국시리즈에서는 롯데를 시리즈 7차전 까지 가는 혈전 끝에 4승 3패로 물리치며 V2를 달성했다.
(3) 세 번째 우승
미라클 두산!!
두산은 V2달성후 다음해인 1996년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지만 1997년 5위를 시작으로 해서 매년 한계단씩 상승했다.
그리고 2000년엔 우즈, 김동주, 심정수 (일명 우동수)트리오와 안경현, 진필중 등의 슈퍼스타들과 함께 현대와의 7차전까지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다음해 2001년 두산은 믿기지 않은 우승 드라마를 쓰며 ‘미라클 두산’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2000년 우동수 트리오를 이끈 심정수가 현대로 이적을하고 심재학 선수를 영입하며 타선이 약해졌지만 두산은 클린업의 우동학 트리오와 6-7-8 타순을 이끌던 ‘안성기 트리오’ (안경현, 홍성흔, 홍원기)를 앞세워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한국시리즈 왕좌에 올랐다. 최저승률을 이록하여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두산이 우승할수 있었던 계기는 철옹성 같은 불펜의 힘이 절대적 이었다. 마무리 투수 진필중을 비롯해 이혜천, 차명주, 박명환, 장성진 등이 막간 불펜을 구축했다. 이 해 거둔 65승 중 절반에 가까운 29승이 구원승 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두산은 전통 강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2003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두산이 김경문 감독을 선임했고, 김경문 감독은 두산 특유의 뚝심과 유망주발굴에 힘써 강팀으로 만들었다. 외부에서 비싼 선수를 사오지 않고서도 내부에서 선수들을 육성하고 경쟁을 강화했다. 이 과정을 통해 김현수, 이종욱, 손시헌, 고영민, 양의지, 이성열, 오재원 등 유망주들이 성장했고 김동주, 최준석, 김선우, 임재철, 정재훈 등 중견 선수들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기량향상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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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6.11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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