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칼빈의 개혁주의 사회복지 실천
2, 부르스 프랑세스에 대한 평가와 한국 교회의 사회복지 사업
3. 영국의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
4.칼빈, 영국 성공회, 요한 웨슬리 그리고 영국의 사회복지
Ⅲ. 맺는말
-지역 교회의 사회사업 실천 과 교회 성장
Ⅱ. 본론
1, 칼빈의 개혁주의 사회복지 실천
2, 부르스 프랑세스에 대한 평가와 한국 교회의 사회복지 사업
3. 영국의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
4.칼빈, 영국 성공회, 요한 웨슬리 그리고 영국의 사회복지
Ⅲ. 맺는말
-지역 교회의 사회사업 실천 과 교회 성장
본문내용
적 유익을 위하여 행해지는 왜곡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자선적 행위가 빈민들의 긴급한 필요 정도에만 괌심을 두고 그들이 가난을 탓하며 자신들의 신앙적 헌신에서 비롯된 조금의 자선에 대하여 만족할 뿐, 가난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에는 판단이 미치지 못했다,
이와 같이 왜곡된 신앙이 실천 경향은 영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저급하게 판단하고 경시하는 사회적 현상만을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칼빈등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시도된 강력한 신앙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세 이래 사회 전반에 고착화된 왜곡된 빈민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종교개혁가들이 빈민관과 실천이 영국 성공회의 일부와 이후 요한 웨슬fp등에 의해 설립된 개신교단들의 구제와 사회복지 실천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칼빈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면 참된 인간성이 무엇인지, 나 자신이 생애가 어떻게 살도록 방향을 지워져야 하는지 알수 있다고 믿었다. 칼빈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각 개개인은 자신의 이웃을 존귀한 존재로 여겨야 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될때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거듭난 생을 살아야 하는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칼빈은 신약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이상적인 인간 질서가 교회에 적용되는 것 처럼,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적용을 통하여 사회에서 규모 있게 생활함으로써 이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인간됨에 대한 참된 통찰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빈에 따르면 이웃 사랑에 대한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진 이기적인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이기적인 자기 사랑 때문에 이웃의 근심을 돌아보기 어렵게 된다.
인간이 이와 같은 본질적인 자기 연약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칼빈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이기적인 자기 사랑은 다만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도 그리스도인이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예수님과 함께 다시 죽고 다시 부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령의 인도하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의 옛 본성을 죽이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자기 부인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이해해야, 고통의 연약한 중에 있는 동료들을 유효하게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다. 칼빈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본받아 우리 자신을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랑의 네 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열거 하였다.
-기회가 주어질 때는 언제든지 형제를 진실로 애정을 가지고 사랑한다.
-주님깨서 사랑을 실천 하도록 기회를 주셨다고 믿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느낀다,
-할 수 있는 한 목마르거나 굶주리거나 혹은 다른 형제의 필요를 충족히 채운다.
-사랑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하고 주님이 가지신 마음을 본받아 주님과 같은 감정을 가져야 고통을 받는 자들이 우리 자신들인 것 처럼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의 자취들이 나의 마음 속에 가득차야 다른 사람들이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참되고 실제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나아가 칼빈은 이웃 사랑에 대한 명령은 특별히 인간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들에 실제도 적용되어야 하며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부의 분배를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자발적인 부의 분배란 하나님의 복으로 물질을 축적한 사람들이 이웃의 필요를 보고 자발적으로 그들을 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동료를 목격하면서 육신의 부족을 채울 수 있는 물질적인 어떤 것도 그들에게 행하지 않고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칼빈은 참된 이웃 사랑의 기초는 거듭남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고 성령의 인도하김으로 감화를 받아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극복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철저한 자기 희생을 q받아 살려고 부단히 애쓰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희생의 열매는 자신의 삶속에서 실제로 이웃의 경제적, 육신적, 물질 적 필요를 채우는 행위들에 의해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16세시 유럽은 급박한 정치, 종교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으므로 당시에 이미 존재했던 로마 가톨릭의 사회복지적 형태의 구제 기관들도 새로운 변화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빈민들의 구제를 담당했던 기존의 병원은 종교개혁의 물결 아래서 과거 구 가톨릭 중심의 시의회나 평의회의 방만하고 부도덕 경영에서 벗어나 개혁 성도들이 새로운 개혁주의 신학이 인도를 받게 되었다. 갱신을 경험했던 유럽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칼빈이 개혁이 도시 제네바가 돋보인다, 제네바는 사실 칼빈이 도착하기 이전인 1538년부터 1년 동안에만 제네바 시립병원에서 일반 진료자들을 제외하고 10.657명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온 이방인들, 가난한 사람들, 과부들, 고아들, 병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운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당시 인구의 약 12,000명이 작은 도시 제네바는 개혁주의의 중심도시로서 도시 전체 인구와 맞 먹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너무 많은 난민들이 제네바로 유입되자 제네바 시와 제네바 내의 병원들은 가난한 난민들이 도시를 떠나기를 바라게 되었다,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들을 도왔던 중요한 경제적 지원을 주로 난민 자신들이 내는 기부에 의존했기 때문에 과도한 난민이 유입은 개혁 의회로 하여금 경제적인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급박한 생활에서 1545년 한 부자 난민의 지지를 받아 칼빈은 난민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난민 구호 기관 부르스 프랑세스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부르스 프랑세스는 여타 복지 기관과 다르게 갑작스런 재난을 당해 제네바로 피난온 난민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병들고, 늙거나 장애를 당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사람들을
이와 같이 왜곡된 신앙이 실천 경향은 영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저급하게 판단하고 경시하는 사회적 현상만을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칼빈등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시도된 강력한 신앙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세 이래 사회 전반에 고착화된 왜곡된 빈민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종교개혁가들이 빈민관과 실천이 영국 성공회의 일부와 이후 요한 웨슬fp등에 의해 설립된 개신교단들의 구제와 사회복지 실천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칼빈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면 참된 인간성이 무엇인지, 나 자신이 생애가 어떻게 살도록 방향을 지워져야 하는지 알수 있다고 믿었다. 칼빈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각 개개인은 자신의 이웃을 존귀한 존재로 여겨야 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될때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거듭난 생을 살아야 하는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칼빈은 신약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이상적인 인간 질서가 교회에 적용되는 것 처럼,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적용을 통하여 사회에서 규모 있게 생활함으로써 이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인간됨에 대한 참된 통찰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빈에 따르면 이웃 사랑에 대한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진 이기적인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이기적인 자기 사랑 때문에 이웃의 근심을 돌아보기 어렵게 된다.
인간이 이와 같은 본질적인 자기 연약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칼빈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이기적인 자기 사랑은 다만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도 그리스도인이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예수님과 함께 다시 죽고 다시 부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령의 인도하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의 옛 본성을 죽이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자기 부인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이해해야, 고통의 연약한 중에 있는 동료들을 유효하게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다. 칼빈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본받아 우리 자신을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랑의 네 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열거 하였다.
-기회가 주어질 때는 언제든지 형제를 진실로 애정을 가지고 사랑한다.
-주님깨서 사랑을 실천 하도록 기회를 주셨다고 믿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느낀다,
-할 수 있는 한 목마르거나 굶주리거나 혹은 다른 형제의 필요를 충족히 채운다.
-사랑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하고 주님이 가지신 마음을 본받아 주님과 같은 감정을 가져야 고통을 받는 자들이 우리 자신들인 것 처럼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의 자취들이 나의 마음 속에 가득차야 다른 사람들이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참되고 실제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나아가 칼빈은 이웃 사랑에 대한 명령은 특별히 인간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들에 실제도 적용되어야 하며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부의 분배를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자발적인 부의 분배란 하나님의 복으로 물질을 축적한 사람들이 이웃의 필요를 보고 자발적으로 그들을 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동료를 목격하면서 육신의 부족을 채울 수 있는 물질적인 어떤 것도 그들에게 행하지 않고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칼빈은 참된 이웃 사랑의 기초는 거듭남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고 성령의 인도하김으로 감화를 받아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극복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철저한 자기 희생을 q받아 살려고 부단히 애쓰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희생의 열매는 자신의 삶속에서 실제로 이웃의 경제적, 육신적, 물질 적 필요를 채우는 행위들에 의해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16세시 유럽은 급박한 정치, 종교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으므로 당시에 이미 존재했던 로마 가톨릭의 사회복지적 형태의 구제 기관들도 새로운 변화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빈민들의 구제를 담당했던 기존의 병원은 종교개혁의 물결 아래서 과거 구 가톨릭 중심의 시의회나 평의회의 방만하고 부도덕 경영에서 벗어나 개혁 성도들이 새로운 개혁주의 신학이 인도를 받게 되었다. 갱신을 경험했던 유럽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칼빈이 개혁이 도시 제네바가 돋보인다, 제네바는 사실 칼빈이 도착하기 이전인 1538년부터 1년 동안에만 제네바 시립병원에서 일반 진료자들을 제외하고 10.657명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온 이방인들, 가난한 사람들, 과부들, 고아들, 병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운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당시 인구의 약 12,000명이 작은 도시 제네바는 개혁주의의 중심도시로서 도시 전체 인구와 맞 먹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너무 많은 난민들이 제네바로 유입되자 제네바 시와 제네바 내의 병원들은 가난한 난민들이 도시를 떠나기를 바라게 되었다,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들을 도왔던 중요한 경제적 지원을 주로 난민 자신들이 내는 기부에 의존했기 때문에 과도한 난민이 유입은 개혁 의회로 하여금 경제적인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급박한 생활에서 1545년 한 부자 난민의 지지를 받아 칼빈은 난민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난민 구호 기관 부르스 프랑세스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부르스 프랑세스는 여타 복지 기관과 다르게 갑작스런 재난을 당해 제네바로 피난온 난민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병들고, 늙거나 장애를 당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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