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난,묘청의 난에 대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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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묘청의 난,묘청의 난에 대한 관점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묘청의 난에 대한 관정
1)고려사/고려사절요
2)신채호
2. 관점의 차이가 나타난 이유
3. 고려사, 고려사절요의용
1)고려사
2)고려사절요
4. 직접 서술한 묘청의 난

본문내용

(급평주판관금순부) : 평주 판관 김순부(金淳夫)가
詔入城(재조입성) : 조서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니,
西賊(서적) : 적도들이
遂斬妙淸柳及子浩等三人首(수참묘청류참급참자호등삼인수) : 드디어 묘청과 유감(柳) 및 감의 아들 호(浩) 등 3명의 머리를 베어
使分司大府卿尹瞻(사분사대부경윤첨) : 분사대부경(分司大府卿) 윤첨(尹瞻),
少監趙昌言(소감조창언) : 소감 조창언(趙昌言),
大將軍郭應素(대장군곽응소) : 대장군 곽응소(郭應素),
郞將徐挺等(랑장서정등) : 낭장 서정(徐挺) 등을 시켜
偕淳夫請罪于朝(해순부청죄우조) : 순부와 함께 조정에 가서 죄를 청하게 하고,
又投書中軍曰(우투서중군왈) : 또 글을 중군에 보내기를,
欲以羊酒獻(욕이양주호헌) : “양(羊)과 술로 군사를 위로해 드리고자 하니
請日時(청극일시) : 기일을 청합니다.\"
趙匡等(조광등) : 조광 등은
聞瞻等被囚(문첨등피수) : 윤첨 등이 옥에 갇혔다는 것을 듣고
謂必不免(위필불면) : 반드시 면치 못할 것이라 짐작하고
復叛(부반) : 다시 반역하였다.
西賊(서적) : 서경의 적이
自宣耀門(자선요문) : 선요문(宣耀門)으로부터
至多景樓(지다경루) : 다경루(多景樓)까지
緣江築城一千七百三十間(연강축성일천칠백삼십간) : 강을 따라 1천 7백 30칸(間)의 성을 쌓았다.
인종 14년
賊徒(적도) : 적의 무리가
以我土山未就(이아토산미취) : 우리의 토산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不設備(불설비) : 방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諸軍突至(제군돌지) : 여러 군대가 돌연히 진격하니,
惶懼無所措(황구무소조) : 황급하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趙匡(조광) : 조광이
罔知所措(망지소조) : 어찌할 바를 몰라
闔家自焚死(합가자분사) : 온 가족이 스스로 불을 질러 타 죽다.
4. 직접 서술한 묘청의 난
묘청이 스스로 술법을 할 줄 안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선동하여 서경으로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정지상 등이 이미 개경은 그 기운이 쇠하였으므로 만일 서경으로 천도한다면 서경출신인 자신들이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개경출신의 귀족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다른 신료들에게 묘청은 성인이고 그가 주장하는 대로 서경으로 천도하자는 상소를 보여주고 서명을 받아내지만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세력은 서경으로 천도하게 되면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임을 알고 서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소를 하여 불교는 기본적으로 기복신앙이기 때문에 기복신앙을 믿으라 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들은 간신이며, 불충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서경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상소에 서명한 신하들이 많았기에 인종은 서경세력들의 손을 들어준다.
그러나 인종은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제정하자는 묘청의 간언은 듣지 않는다.
묘청과 정지상이 논리보다는 술법으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았기에 상서롭지 못한 사건은 그들의 주장에 치명적이었다. 궁궐의 터를 정하기 전, 인종이 서경으로 행차하였을 때, 중흥사의 탑에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천도를 하는 것이며, 서경이 매우 길한 지역임을 주장하는 서경세력들에게는 비극적인 시작이었으나, 묘청은 특유의 언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때, 개경세력에서는 계속해서 상소를 올려 불교세력의 타락을 비판하며 민중을 현혹하는 불교와 그 무리들을 처벌하라 주장하나 실효성은 없었다.
궁궐터를 닦을 때에도 묘청은 의식을 직접 집행하며 자신의 신묘함과 서경의 상서로움을 왕과 고려에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인종이 행차할 때마다 강한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쳐 인종이 고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자 묘청은 자신의 언변으로도 마땅한 변명을 할 수 없게 되고, 인종의 신임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마침내 그들은 속이 빈 떡에 기름을 채워 넣어 강에 흘려보내서 강에 기름이 떠다녀 마치 오색구름이 퍼지는 것과 같게 하였으나, 기름장수의 증언에 따라 강을 조사하니 떡이 나왔으므로 이는 술법과 상서로움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묘청에게 큰 타격이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묘청은 인종의 신음을 점차 잃어가게 된다.
한편 밖으로는 송과 요나라를 압도하는 세력인 금나라가 점차 강성해지며 고려를 부모의 나라에서 형제의 나라로 하자고 요구하는 등 점차 고려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김부식과 같은 개경세력은 강성해지는 금나라에 맞서지 말 것을 간언하며, 논리적 정당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서경에 도읍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음에도 계속 금나라가 강성해지며 고려를 압박한다는 것은 서경으로 천도하면 길할 것이라는 서경세력의 근거를 뒤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묘청 뿐 아니라 다른 서경세력들의 입지도 약화시켰다. 따라서 서경파는 상서로운 기운이 서경에 나타났다며 금나라를 정벌할 것을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힘을 얻게 된 개경파는 계속되는 상소를 통해 묘청을 죽이라 주청하게 되고, 위기의식을 느낀 묘청은 마지막으로 인종에게 칭제건원을 주청하는 상소를 보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묘청은 반란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되며, 같은 동료이자 서경천도의 중심인물인 정지상과의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개경세력의 압박에 묘청이 매우 조급하게 일을 진행하였음을 볼 수 있다. 조급히 일을 처리한 결과 정지상은 개경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반란을 반대했던 윤원이는 오히려 토벌군에 편성된다.
한때, 개경으로 쳐들어온다는 유언비어가 돌 정도로 서경에 있는 반란군의 위세가 큰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주변지역이나 개경내부에서의 동조가 없었기 때문에, 서경은 역으로 포위되는 상황에 처한다.
이에 윤첨이 묘청 등 3인의 머리를 잘라 항복했으나 옥에 갇히게 되고, 윤첨이 옥에 갇히는 것을 본 조광은 서경의 문을 굳게 닫고 투항하지 않는다. 고려정부군은 해군까지 동원하여 서경을 포위한 후 토산을 쌓아 점령을 하고, 조광은 불을 질러 자살을 함으로써 난은 종료된다.
묘청의 난의 결과 김부식을 위시한 개경세력은 반란을 진압한 공을 인정받고 더 큰 권세와 부를 누리게 되었으며, 서경세력이 몰락함에 따라 거리상 너무 먼 동경과 세력이 크지 않은 남경의 세력만이 남았으므로 개경세력을 견제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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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9.04
  • 저작시기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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