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서론
1.데카르트의 삶과 저작들
2.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이상
3.데카르트의 의심
4.이성의 근본적 확실성
5.토미즘의 유산
6.데카르트를 넘어서
7.맺음말
*참고문헌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서론
1.데카르트의 삶과 저작들
2.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이상
3.데카르트의 의심
4.이성의 근본적 확실성
5.토미즘의 유산
6.데카르트를 넘어서
7.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명한 이해와 동일한 것인가? Ibid , p54
철학과 신학이라는 학문을 보았을 때, 그 진리라는 것은 확고부동하며, 고정된 정의나 명제들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명제 보다는 전체를 주목해야 한다. 철학과 신학에서는 수학에서와 같은 그런 명석함과 판명함이 확보되지 않는다. 명석하고 판명한 진리는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노력을 의미한다.
(4)수학은 일관된 학문인가?
현대에 와서는 수학 자체의 진리도 그 명석하고 판명함이 흔들릴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집합론의 발전으로 인해 무한개념과 연관되는 몇몇 진술들이 수학적으로 판명될 수도 있고, 거부될 수도 있음이 보여졌다. Ibid , p58
즉 수학자체에서, 순수하게 수학적 방법들을 사용했지만, 명석하지 않고 판명하지 않은 사실이 생겨난 것이다.
수학자체에서도 진리의 개념이 문제시 됨으로 인해, 수학적 명석함과 판명한 진리를 방법으로 한 진리의 추구도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수학적 진리도 절대시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5)(이성과 신앙을 이층 구조로 본)옥상옥? 토마스와 그의 귀결
12세기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입, 대학의 설립, 수도원의 학문활동을 통해 이제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신앙에 대해 이성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권위에 의한 신앙을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여 지기 힘든 것이였다. 중세 후기 이후 이성과 신앙, 자연과 은총, 철학과 신학, 속권과 교권 사이의 균형이 유지 되었다.
이런 균형은 그러나 필연 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자연적’ 상부구조에 대한 이성의 자율성의 대두를 가져왔다. 이제 이성과 신앙은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분리되고, 서로 통일되지 못하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중요치 않고, 적어도 철학의 영역에서는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Ibid , p65
이러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관계에서, 아래의 질문이 제기 된다.
이성의 자율성으로 인해, 이제 인간은 스스로 진리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고, 자기 의식의 확고한 토대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성에 대해 과연 신앙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이 제기 된다. 성서의 하나님 뿐 아니라, 철학자들의 신이 없어도 이제 인간은 스스로 걸을 수 있는데, 굳이 신을 요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7.맺음말
데카르트는 cogito를 기초로 하여 철학을 전개해 나간다. 신존재 증명에 있어서도 cogito를 통해 신존재를 증명한다. 그에게 있어서 신이란 존재는 어떤 의미였을까?
데카르트는 “성찰”의 서문격인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과 영혼에 관한 문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을 통해 논증되어야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영혼은 신체와 더불어 소멸되지 않는 다는 것, 신은 현존한다는 것을 우리 신자들은 신앙에 의해 충분히 믿을 수 있지만, 비신자들은 이 두 가지 것이 먼저 자연적 근거에 의해 증명되지 않으면 그 어떤 종교나 도덕상의 덕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글은 당시 갈릴레오가 단죄받는 것에 겁을 먹은 데카르트가, 스스로 면죄부를 받기 위해 한 것이라는 의심이 있다. 그렇지만 데카르트의 삶을 보았을 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한평생 크리스챤으로 살았으며, 그의 절친한 친구가 “예수의 오라토리오회”의 창시자인 베률르였다는 것을 보아도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이러한 철학을 통해 논증된 신은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cogito를 통해 증명된 신은 완전한 신이며, 실존하는 신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신은 단지, cogito를 명석판명하게 해주는 신일 뿐이다. 유한한 인간의 사고가 악마로부터 유래하지 않는다는 의미 밖에는 시사하는 것이 없다. 그 신은 사랑할줄도 모르며, 화를 낼줄도 모르며 더군다나 심판을 할 수도 없는 신이다.
데카르트가 증명한 신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고문헌
Hans Kung, EXISTIERT GOTT?, 성염 역, “신은 존재하는가”, 분도출판사,
Johannes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강성위역, “서양철학사”, 이문출판사
강영안, “철학이야기”, IVP
강영계, “철학이야기”, 서광사
데카르트, “방법서설”
데카르트, “성찰”
논문
홍진석,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의 특징, 광주카톨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신학이라는 학문을 보았을 때, 그 진리라는 것은 확고부동하며, 고정된 정의나 명제들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명제 보다는 전체를 주목해야 한다. 철학과 신학에서는 수학에서와 같은 그런 명석함과 판명함이 확보되지 않는다. 명석하고 판명한 진리는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노력을 의미한다.
(4)수학은 일관된 학문인가?
현대에 와서는 수학 자체의 진리도 그 명석하고 판명함이 흔들릴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집합론의 발전으로 인해 무한개념과 연관되는 몇몇 진술들이 수학적으로 판명될 수도 있고, 거부될 수도 있음이 보여졌다. Ibid , p58
즉 수학자체에서, 순수하게 수학적 방법들을 사용했지만, 명석하지 않고 판명하지 않은 사실이 생겨난 것이다.
수학자체에서도 진리의 개념이 문제시 됨으로 인해, 수학적 명석함과 판명한 진리를 방법으로 한 진리의 추구도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수학적 진리도 절대시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5)(이성과 신앙을 이층 구조로 본)옥상옥? 토마스와 그의 귀결
12세기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입, 대학의 설립, 수도원의 학문활동을 통해 이제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신앙에 대해 이성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권위에 의한 신앙을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여 지기 힘든 것이였다. 중세 후기 이후 이성과 신앙, 자연과 은총, 철학과 신학, 속권과 교권 사이의 균형이 유지 되었다.
이런 균형은 그러나 필연 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자연적’ 상부구조에 대한 이성의 자율성의 대두를 가져왔다. 이제 이성과 신앙은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분리되고, 서로 통일되지 못하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중요치 않고, 적어도 철학의 영역에서는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Ibid , p65
이러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관계에서, 아래의 질문이 제기 된다.
이성의 자율성으로 인해, 이제 인간은 스스로 진리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고, 자기 의식의 확고한 토대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성에 대해 과연 신앙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이 제기 된다. 성서의 하나님 뿐 아니라, 철학자들의 신이 없어도 이제 인간은 스스로 걸을 수 있는데, 굳이 신을 요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7.맺음말
데카르트는 cogito를 기초로 하여 철학을 전개해 나간다. 신존재 증명에 있어서도 cogito를 통해 신존재를 증명한다. 그에게 있어서 신이란 존재는 어떤 의미였을까?
데카르트는 “성찰”의 서문격인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과 영혼에 관한 문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을 통해 논증되어야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영혼은 신체와 더불어 소멸되지 않는 다는 것, 신은 현존한다는 것을 우리 신자들은 신앙에 의해 충분히 믿을 수 있지만, 비신자들은 이 두 가지 것이 먼저 자연적 근거에 의해 증명되지 않으면 그 어떤 종교나 도덕상의 덕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글은 당시 갈릴레오가 단죄받는 것에 겁을 먹은 데카르트가, 스스로 면죄부를 받기 위해 한 것이라는 의심이 있다. 그렇지만 데카르트의 삶을 보았을 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한평생 크리스챤으로 살았으며, 그의 절친한 친구가 “예수의 오라토리오회”의 창시자인 베률르였다는 것을 보아도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이러한 철학을 통해 논증된 신은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cogito를 통해 증명된 신은 완전한 신이며, 실존하는 신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신은 단지, cogito를 명석판명하게 해주는 신일 뿐이다. 유한한 인간의 사고가 악마로부터 유래하지 않는다는 의미 밖에는 시사하는 것이 없다. 그 신은 사랑할줄도 모르며, 화를 낼줄도 모르며 더군다나 심판을 할 수도 없는 신이다.
데카르트가 증명한 신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고문헌
Hans Kung, EXISTIERT GOTT?, 성염 역, “신은 존재하는가”, 분도출판사,
Johannes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강성위역, “서양철학사”, 이문출판사
강영안, “철학이야기”, IVP
강영계, “철학이야기”, 서광사
데카르트, “방법서설”
데카르트, “성찰”
논문
홍진석,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의 특징, 광주카톨릭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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