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차 례 ✥
서 론 p3
본 론 p3
제1편 로마 가톨릭 교회의 한국 선교
제1장 가톨릭 선교 이전 기독교와의 접촉 가능성
1. 경교(景敎)의 동양 선교 p3
2. 경교의 한국 선교 가능성 p5
3. 고려시대 기독교와의 접촉 가능성 p5
제2장 선교 이전의 가톨릭 교회와의 접촉
1. 임진왜란과 천주교회 p7
2. 조선에 첫발을 디딘 가톨릭 성직자-세스페데스 p7
3. 중국에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천주교 접촉 p8
4. 유학자들의 서학(西學) 접촉 p8
제3장 한국 천주교회의 창시(創始)
1. 이승훈(李承薰)의 영세 p10
2. 초기 천주교의 태동과 가(假) 성직시대 p11
3.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p11
4. 초기 천주교회의 배교자(背敎者)들 p12
결 론 p12
부 록
가락국기와 가야 유물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신앙 p13
경교가 한반도에 알려진 시기에 관한 많은 주장들 p16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번역문 및 기타 왕래서신 p17
알렉산더 12세와 기타 서신들 p23
경교의 신앙개조 p25
정토교는 경교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p26
참 고 문 헌 p27
서 론 p3
본 론 p3
제1편 로마 가톨릭 교회의 한국 선교
제1장 가톨릭 선교 이전 기독교와의 접촉 가능성
1. 경교(景敎)의 동양 선교 p3
2. 경교의 한국 선교 가능성 p5
3. 고려시대 기독교와의 접촉 가능성 p5
제2장 선교 이전의 가톨릭 교회와의 접촉
1. 임진왜란과 천주교회 p7
2. 조선에 첫발을 디딘 가톨릭 성직자-세스페데스 p7
3. 중국에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천주교 접촉 p8
4. 유학자들의 서학(西學) 접촉 p8
제3장 한국 천주교회의 창시(創始)
1. 이승훈(李承薰)의 영세 p10
2. 초기 천주교의 태동과 가(假) 성직시대 p11
3.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p11
4. 초기 천주교회의 배교자(背敎者)들 p12
결 론 p12
부 록
가락국기와 가야 유물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신앙 p13
경교가 한반도에 알려진 시기에 관한 많은 주장들 p16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번역문 및 기타 왕래서신 p17
알렉산더 12세와 기타 서신들 p23
경교의 신앙개조 p25
정토교는 경교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p26
참 고 문 헌 p27
본문내용
다. 그리고 임당고분의 타가 압독국 이었을 것이라는 추종하여 고분 발굴이 이루어 졌는데. ‘압독’이란 한자어의 의미처럼 압독국은 동양의 바티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던 것처럼, 발굴된 유물 역시 기독교 색채외에 다른 종교의 색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가락국기와 가야 유물에서 나타난 초대교회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19세기 말 한국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가 전파되자마자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 그 배경에는 바로 가락구과 같은 기독교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최진호, 한국기독교 문화유적, 서울, 예루살렘, 1997, 308-317
경교가 한반도에 알려진 시기에 관한 많은 주장들
김광수는 그의 <동방 기독교사>에서 경교의 모조비에 관하여 언급하며, 이조(李朝)의 헌종(憲宗)때의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의 한 구절에 경교를 알고 있음이 표현되고 있다.
1917년 골든 여사가 금강산의장안사에서 ‘경교 모조비’를 발견하였고, 경주 석굴암의 무인상, 십일서 관음상 등의 옷 무늬와 신발과 유리 장식 들이 페르시아의 것으로 보고서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1956년에는 불국사에서 석제 십자가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을 발견하였다.
오윤태는 먼저 불교가 경교의 영향을 받아 변질 되었다고 주장한다. 해탈에 관심을 두는 소승불교(小乘佛敎)인데, 석가 몰후 400녀에 교세가 점점 약화되어 갈 즈음, 인도의 북장에서 도마의 전도 이후 기독교가 왕성해졌으므로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중생의 구원을 가르치는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조의 전기를 예수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로서 아미타불(阿彌陀佛), 미륵불(彌勒佛), 대일여래(大日如來)는 예수라는 것이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예수와 성모마리아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오윤태는 특히 일본에 투영된 한국 불교에서 기독교적인 영향을 본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백제의 성명왕(聖明王) 30년, 즉 일본이 흠명황(欽明皇) 13년 (520/30년경?)이었다고 한다. 554년 담혜, 594년 혜자, 610년 담징 등이 포교 활동을 펼쳤는데 그 이야기가 기독교의 형태와 비슷하다.
- 기독교와 성덕태자 관련이야기의 유사한 이야기-
1. 금석이야기라는 태자의 탄생이야기가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의 탄생과 유사하다.
2. 613년 유고 천황조에는 태자가 거지를 도와주었는데 결국에는 죽어 장사를 치뤘다, 하지만 사흘 뒤에 시체는 없어지고 그 옷만 남았다고 하여 예수의 부활과 유사하다.
3. 631년 혜자가 고구려에 돌아와 “나는 명년, 이 날에 정토에 가서 태자를 만나겠다.”라고 했는데 본래 정토는 불교에 없는 개념으로 기독교에서 온 것이다.
4. 법륭사에 있는 벽화에 그려진 천인 천사의 상에서 경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5. 성덕태자를 기념하는 팔각형몽전에 안치되어 있던 것으로 1200여년간 다섯 자의 긴 포목에 싸인 채 공개 되지 않았던 작은 불상의 명치 17년에 경국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구세관음이라고 새겨져 이었다. 김영재,「한국 교회사」(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2003)
Ⅲ-1) 그 외의 여러 주장
김양선 교수는 신라 때에 들어왔다고 주장 하였는데 이에 사학가 이병도박사는 십자가형은 기독교만의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장신구 등에 금, 쇠로 된 십자가형을 사용하는 예가 있음을 들어 크게 반박하였다.
또 민경배 교수는 몽고 시대에 접촉이 있었으리라고 한다. 루부르크가 1253년 콘스탄티를 떠나 몽고의 서울 카라코름에 왔고, 몽고가 일본에 침략할 때 고려에 막대한 군비와 선박을 건조하게 했는데 루부르크는 그때에 압록강까지 와서 보고 들은 것들을 교황청에 보낸 편지에 카울레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나 루부르크가 한국의 이름을 간접적으로 세계에 소개 했다는 것으로 기독교교와의 접촉이 이루어 졌다고는 볼 수 없다. 이영헌, 「한국기독교사」(서울; 컨콜디아사,1982)
최근에 와서 경상북도 영풍군 평은명 왕유동에 있는 분처 바위와 순홍면 읍내리에 있는 벽화고분, 안동군 북후면 신전리 학가산에서 발견된 비석 등에기초하여 서기 31년~84년 사이에 기독교기 이미 한반도에 전래 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 더 많은 연구와 고증이 필요하며 놀라운 사실은 왕유동에서 발견된 석상에는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어 성 도마상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 단정 짓긴 어렵다. 이상규. 「한국교회의 역사적 흐름」(서울;총회출판사,1998)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번역문 및 기타 왕래서신
대진경교유행중국비(代景敎流行中國碑)
아! 영원불변의 진리시며 시작도 없이 영원하시며 전능하사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인간에게 신령한 성품을 주신 지존자 대 주재자는 오묘하신 삼위일체 여호와이시다. 저는 十자로 사방의 방위를 정하시고 보원의 영역을 일으켜서 상대적 두 기(氣)를 교류케 하시었다.
혼돈에서 하늘과 땅을 분간하시고 해와 달을 운행하여 밤과 낮을 정하시고 말씀으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다. 특히 인간에게는 양심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성품을 주시고 만물을 주관하게 하시니 처음 인간은 순진 소박하여 정욕이 없었으나 사탄의 유혹을 받아 마음이 교함하여 저도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다는 망상을 가지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다.
이 결과 365종의 인간들은 각자 마음대로 종교의 문을 열어 혹자는 자연으로, 혹자는 기도와 제사로, 혹자는 위선과 간사한 지혜로 신앙의 종주를 삼으려는 노력으로 바빠졌다. 인간은 아무 소득 없이 욕심에 사로잡혀 혼미의 숲속에서 방향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이고 있었다. 이에 삼위일체 메시아 께서 그 영광을 감추시고 도성인신하여 대진에 탄생하시니 별의 징조를 본 바사의 박사들이 별의 인도함을 따라가서 예물을 바쳤다. 저는 구약 24선지의 예언을 성취하시고 위대한 나라를 다스리시며 삼위일체의 오묘한 종교를 창설하였다. 저는 선량한 신앙인에게 천국 8복에 관한 법도를 가르치시고 단련시켜서 참된 인격을 이루게 하시고 믿음, 소망, 사랑으로 영생의 문을 열어서 사망을 멸하고 암흑을 폐하고 광명을 비추시니
이와 같이 가락국기와 가야 유물에서 나타난 초대교회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19세기 말 한국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가 전파되자마자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 그 배경에는 바로 가락구과 같은 기독교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최진호, 한국기독교 문화유적, 서울, 예루살렘, 1997, 308-317
경교가 한반도에 알려진 시기에 관한 많은 주장들
김광수는 그의 <동방 기독교사>에서 경교의 모조비에 관하여 언급하며, 이조(李朝)의 헌종(憲宗)때의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의 한 구절에 경교를 알고 있음이 표현되고 있다.
1917년 골든 여사가 금강산의장안사에서 ‘경교 모조비’를 발견하였고, 경주 석굴암의 무인상, 십일서 관음상 등의 옷 무늬와 신발과 유리 장식 들이 페르시아의 것으로 보고서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1956년에는 불국사에서 석제 십자가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을 발견하였다.
오윤태는 먼저 불교가 경교의 영향을 받아 변질 되었다고 주장한다. 해탈에 관심을 두는 소승불교(小乘佛敎)인데, 석가 몰후 400녀에 교세가 점점 약화되어 갈 즈음, 인도의 북장에서 도마의 전도 이후 기독교가 왕성해졌으므로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중생의 구원을 가르치는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조의 전기를 예수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로서 아미타불(阿彌陀佛), 미륵불(彌勒佛), 대일여래(大日如來)는 예수라는 것이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예수와 성모마리아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오윤태는 특히 일본에 투영된 한국 불교에서 기독교적인 영향을 본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백제의 성명왕(聖明王) 30년, 즉 일본이 흠명황(欽明皇) 13년 (520/30년경?)이었다고 한다. 554년 담혜, 594년 혜자, 610년 담징 등이 포교 활동을 펼쳤는데 그 이야기가 기독교의 형태와 비슷하다.
- 기독교와 성덕태자 관련이야기의 유사한 이야기-
1. 금석이야기라는 태자의 탄생이야기가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의 탄생과 유사하다.
2. 613년 유고 천황조에는 태자가 거지를 도와주었는데 결국에는 죽어 장사를 치뤘다, 하지만 사흘 뒤에 시체는 없어지고 그 옷만 남았다고 하여 예수의 부활과 유사하다.
3. 631년 혜자가 고구려에 돌아와 “나는 명년, 이 날에 정토에 가서 태자를 만나겠다.”라고 했는데 본래 정토는 불교에 없는 개념으로 기독교에서 온 것이다.
4. 법륭사에 있는 벽화에 그려진 천인 천사의 상에서 경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5. 성덕태자를 기념하는 팔각형몽전에 안치되어 있던 것으로 1200여년간 다섯 자의 긴 포목에 싸인 채 공개 되지 않았던 작은 불상의 명치 17년에 경국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구세관음이라고 새겨져 이었다. 김영재,「한국 교회사」(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2003)
Ⅲ-1) 그 외의 여러 주장
김양선 교수는 신라 때에 들어왔다고 주장 하였는데 이에 사학가 이병도박사는 십자가형은 기독교만의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장신구 등에 금, 쇠로 된 십자가형을 사용하는 예가 있음을 들어 크게 반박하였다.
또 민경배 교수는 몽고 시대에 접촉이 있었으리라고 한다. 루부르크가 1253년 콘스탄티를 떠나 몽고의 서울 카라코름에 왔고, 몽고가 일본에 침략할 때 고려에 막대한 군비와 선박을 건조하게 했는데 루부르크는 그때에 압록강까지 와서 보고 들은 것들을 교황청에 보낸 편지에 카울레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나 루부르크가 한국의 이름을 간접적으로 세계에 소개 했다는 것으로 기독교교와의 접촉이 이루어 졌다고는 볼 수 없다. 이영헌, 「한국기독교사」(서울; 컨콜디아사,1982)
최근에 와서 경상북도 영풍군 평은명 왕유동에 있는 분처 바위와 순홍면 읍내리에 있는 벽화고분, 안동군 북후면 신전리 학가산에서 발견된 비석 등에기초하여 서기 31년~84년 사이에 기독교기 이미 한반도에 전래 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 더 많은 연구와 고증이 필요하며 놀라운 사실은 왕유동에서 발견된 석상에는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어 성 도마상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 단정 짓긴 어렵다. 이상규. 「한국교회의 역사적 흐름」(서울;총회출판사,1998)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번역문 및 기타 왕래서신
대진경교유행중국비(代景敎流行中國碑)
아! 영원불변의 진리시며 시작도 없이 영원하시며 전능하사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인간에게 신령한 성품을 주신 지존자 대 주재자는 오묘하신 삼위일체 여호와이시다. 저는 十자로 사방의 방위를 정하시고 보원의 영역을 일으켜서 상대적 두 기(氣)를 교류케 하시었다.
혼돈에서 하늘과 땅을 분간하시고 해와 달을 운행하여 밤과 낮을 정하시고 말씀으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다. 특히 인간에게는 양심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성품을 주시고 만물을 주관하게 하시니 처음 인간은 순진 소박하여 정욕이 없었으나 사탄의 유혹을 받아 마음이 교함하여 저도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다는 망상을 가지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다.
이 결과 365종의 인간들은 각자 마음대로 종교의 문을 열어 혹자는 자연으로, 혹자는 기도와 제사로, 혹자는 위선과 간사한 지혜로 신앙의 종주를 삼으려는 노력으로 바빠졌다. 인간은 아무 소득 없이 욕심에 사로잡혀 혼미의 숲속에서 방향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이고 있었다. 이에 삼위일체 메시아 께서 그 영광을 감추시고 도성인신하여 대진에 탄생하시니 별의 징조를 본 바사의 박사들이 별의 인도함을 따라가서 예물을 바쳤다. 저는 구약 24선지의 예언을 성취하시고 위대한 나라를 다스리시며 삼위일체의 오묘한 종교를 창설하였다. 저는 선량한 신앙인에게 천국 8복에 관한 법도를 가르치시고 단련시켜서 참된 인격을 이루게 하시고 믿음, 소망, 사랑으로 영생의 문을 열어서 사망을 멸하고 암흑을 폐하고 광명을 비추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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