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도쿄도지사를 제대로 알자
1. 石原愼太郞(이시하라 신타로)도지사의 출현
2. 특정후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도지사선거
3. 도지사의 권한과 한계
4. 청도행님(靑島幸男)(아오시마 유키오)와 ■생활도시도쿄■
5. 령목준일(鈴木俊一)(스즈키 준이치)와 ■마이타운 도쿄■
6. 미농부량길(美濃部亮吉)(미노베)와 ■시빌 미니멈■
7. 동룡태랑(東龍太郞)(히가시 류타로)와 도쿄 올림픽
8. 안정성일랑(安井誠一朗)(야스이 세이치로)와 전후부흥
1. 石原愼太郞(이시하라 신타로)도지사의 출현
2. 특정후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도지사선거
3. 도지사의 권한과 한계
4. 청도행님(靑島幸男)(아오시마 유키오)와 ■생활도시도쿄■
5. 령목준일(鈴木俊一)(스즈키 준이치)와 ■마이타운 도쿄■
6. 미농부량길(美濃部亮吉)(미노베)와 ■시빌 미니멈■
7. 동룡태랑(東龍太郞)(히가시 류타로)와 도쿄 올림픽
8. 안정성일랑(安井誠一朗)(야스이 세이치로)와 전후부흥
본문내용
99년의 이시하라(石原)의 당선은 무당파라고 하는 것 이외에 두명의 발군의 지명도와 강한 개성이 플러스로 작용했다고도 할 수 있다.
가끔 도지사선거에서는 어떤 후보자에게 강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이것은 도쿄와 같은 대도시에 있어서는 유동표가 많기 때문이며, 그들의 행동이 때로는 선거의 전문가가 예상한 것을 뛰어 넘는 커다란 물결의 표를 가져온다.
3. 도지사의 권한과 그 한계
도지사는 도민에 의한 직접선거에서 선택되어, 도청을 ■총괄하고 대표하며■ ■동경도의 얼굴■이기도 하다. 지사의 권한으로서는 예산안을 작성하여 집행하는 권한, 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하는 권한, 지방세등을 과세징수하는 권한이외에 부지사나 출납장의 특별직이나 행정위원회위원의 임면권(任免權) 및 지휘감독권등 행재정에 필요한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 외국 원수등의 귀빈도 빈번하게 만나며, SP의 경호도 따라붙는 권력자이다.
동경도의 일반회계의 예산규모는 약 6조엔(2000년도)이며, 지사부국의 직원 약 3만 4천명, 여기에 공영기업, 행정위원회등의 직원에 경찰, 소방, 학교교직원을 포함하면, 약 17만 9천명의 직원을 포함하는 조직의 장이 된다. 이러한 규모는 29만여명의 우정사업직원(郵政事業職員) 우체국 사업직원을 말한다.
을 포함한 총무성 30만명에 다음가는 규모이며, 거대관청인 문부과학성의 14만명, 후생노동성의 10만명, 국토교통성의 6만 8천명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내각총리대신이 국회의원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는 간접적인 선출인것에 비해, 지사는 직접공선이기 때문에 민의를 보다 반영하기 쉽다. 게다가 나라의 행정권은 합의제의 내각에 속하여, 수상이 내각의 ■동년배 중 수석■이라 하더라도 주무대신이 아닐 때가 있기 때문에 그 권력은 여당내의 정치밸런스에 의존함에 비하여, 행정위원회의 소관영역을 제하면 지사는 독임제(獨任制)의 기관으로서 명실상부하게 수석행정관이다.
의회와의 관계에서는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수상은 국회내의 다수파의 대표임에 대해(일원적 대표제), 지사는 의회에는 반드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고 한정하지 않기 때문에(2원적 대표제), 의회란 시시비비의 교섭이 된다. 이처럼 미국의 대통령제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사가 지방의 대통령이라고 불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도지사는 미국대통령에 비해 행정권에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은 보좌관이나 각료, 국장등 약 3천명을 정치적으로 자유임용이 가능하여 동경도와 같은 직원규모인 뉴욕시에서도 시장이 보조임원이나 보좌관, 국장등 100명이 넘는 인원을 정치임용하고 측근으로서 수장의 정책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 한편, 도지사는 특별비서, 부지사등 4-5명 정도에 대한 인사재량권밖에 없는데다 전통적으로 부지사는 주로 내부임용을 하기 때문에 고독한 권력자이기도 하다.
또한 뉴욕시장은 시경찰의 지휘관이고 치안판사로서 광범위한 경찰권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이나 주지사에 이르러서는 군의 최고사령관이 된다. 그러나 도지사는 경시총감(警視摠監)뿐만이 아니라 경시정(警視正) 이상의 인사권마저도 없으며 예산편성권을 포함하여 경찰권을 장악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고, 자위대에 대해서도 치안출동 요청권이 부여되어 있을 뿐이다.
4. 靑島幸男(아오시마 유키오)와 ■생활도시도쿄■
1995년의 도지사선은 자민당등 5당으로부터 추천받은 이시하라(石原信雄)는 불과 123만표밖에 얻지 못해, 본인도 예기치 못했던 아오시마(靑島幸男)가 46만표의 큰 차이로 당선되었다.
아오시마(靑島)는 ■밥상을 뒤집을■작정으로 지사에 취임하였지만, 큰 적자라고 걱정되어 왔던 개최직전의 세계도시박람회를 중지하는 것과, 경영위기에 빠져있는 두개의 신용금고에 도(都)의 자금보진을 중지한다고 하는 두가지 공약밖에 없었다.
임해개발의 재조정에 대해서 아오시마(靑島)지사의 주선으로 설치된 임해개발간담회는 전대미문의 양론병기(兩論倂記)라고 하는,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형태로 결착되었다. 또한 도시박람회의 개최에 대해서 아오시마(靑島)지사는 머뭇거린 끝에 중지를 결정했다. 이때 스즈키(鈴木)전지사는 ■사린을 뿌린 심경■이라고 격노하였다.
당선의 공약이기도 하고, 메스컴과 여론의 뒷받침이 따른 당시의 풍조였다고 하여도 그때까지 소비해야 했던 자금은 재와 먼지로 변했고, 관계되었던 단체/업자에게는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경제파급효과는 크게 마이너스로 흔들리게 되었고, 버블경제붕괴후의 경제부상의 싹을 자름과 동시에 도쿄임해지역의 개발을 크게 후퇴시킨 한 요인이 되었다.
관료의 구조에 정통한 스즈키(鈴木)전지사와는 달리, 취임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아오시마(靑島)지사는 관료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상식인으로 변질했다.
아오시마(靑島)지사에게 있어서의 정책입안은 ■생활도시 도쿄 구상■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그때까지의 하코모노(箱モノ)주의, 대규모프로젝트 붐의 안티테제(Antithese) 특정의 긍정적 주의에 대립해서 정립된 특정의 부정적 주의를 말한다.
이기도 한, ■생활도시■간담회의 운영은 일반공개방식도 포함하여 극히 투명한 과정하에서 행하였다. 버블에 같이 춤춘 도쿄의 소위말하는 후유증으로부터 회복으로의 출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라의 행정개혁에 호응하도록 도청내의 부국을 일곱 개의 국으로 집약하는 안과 환상형 사회의 구축등이 지사의 두 번째 임기에 있어 주요시책으로서 준비되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아오시마(靑島)지사가 두 번째 도지사선에 출마선언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1999년 2월 1일, 아무도 생각지 않은 불출마선언을 하였다. 지사의 진가를 묻는 두 번째 선거, 재선되기에는 가장 유리한 2번째를 감히 포기한 것이다. 게다가 후임지사에게는 무관심한 것이 일반적인데, 지사선거종반에 민주당의 하토야마(鳩山邦男)후보의 지지를 성명한다.
무당파라고 하는 부동표에 의해 지사가 된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번만으로 포기하고, 게다가 특정 당파 후보자를 지원한다고 하는 미주(迷走)를 보이고 아오시마(靑島)는 도정(都政)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그때까지 지사는, 재정파탄의 비난을 받고 그만 두었다는 사실을 천재적인 감으로 읽는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5. 鈴木俊一(스즈키
가끔 도지사선거에서는 어떤 후보자에게 강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이것은 도쿄와 같은 대도시에 있어서는 유동표가 많기 때문이며, 그들의 행동이 때로는 선거의 전문가가 예상한 것을 뛰어 넘는 커다란 물결의 표를 가져온다.
3. 도지사의 권한과 그 한계
도지사는 도민에 의한 직접선거에서 선택되어, 도청을 ■총괄하고 대표하며■ ■동경도의 얼굴■이기도 하다. 지사의 권한으로서는 예산안을 작성하여 집행하는 권한, 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하는 권한, 지방세등을 과세징수하는 권한이외에 부지사나 출납장의 특별직이나 행정위원회위원의 임면권(任免權) 및 지휘감독권등 행재정에 필요한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 외국 원수등의 귀빈도 빈번하게 만나며, SP의 경호도 따라붙는 권력자이다.
동경도의 일반회계의 예산규모는 약 6조엔(2000년도)이며, 지사부국의 직원 약 3만 4천명, 여기에 공영기업, 행정위원회등의 직원에 경찰, 소방, 학교교직원을 포함하면, 약 17만 9천명의 직원을 포함하는 조직의 장이 된다. 이러한 규모는 29만여명의 우정사업직원(郵政事業職員) 우체국 사업직원을 말한다.
을 포함한 총무성 30만명에 다음가는 규모이며, 거대관청인 문부과학성의 14만명, 후생노동성의 10만명, 국토교통성의 6만 8천명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내각총리대신이 국회의원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는 간접적인 선출인것에 비해, 지사는 직접공선이기 때문에 민의를 보다 반영하기 쉽다. 게다가 나라의 행정권은 합의제의 내각에 속하여, 수상이 내각의 ■동년배 중 수석■이라 하더라도 주무대신이 아닐 때가 있기 때문에 그 권력은 여당내의 정치밸런스에 의존함에 비하여, 행정위원회의 소관영역을 제하면 지사는 독임제(獨任制)의 기관으로서 명실상부하게 수석행정관이다.
의회와의 관계에서는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수상은 국회내의 다수파의 대표임에 대해(일원적 대표제), 지사는 의회에는 반드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고 한정하지 않기 때문에(2원적 대표제), 의회란 시시비비의 교섭이 된다. 이처럼 미국의 대통령제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사가 지방의 대통령이라고 불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도지사는 미국대통령에 비해 행정권에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은 보좌관이나 각료, 국장등 약 3천명을 정치적으로 자유임용이 가능하여 동경도와 같은 직원규모인 뉴욕시에서도 시장이 보조임원이나 보좌관, 국장등 100명이 넘는 인원을 정치임용하고 측근으로서 수장의 정책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 한편, 도지사는 특별비서, 부지사등 4-5명 정도에 대한 인사재량권밖에 없는데다 전통적으로 부지사는 주로 내부임용을 하기 때문에 고독한 권력자이기도 하다.
또한 뉴욕시장은 시경찰의 지휘관이고 치안판사로서 광범위한 경찰권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이나 주지사에 이르러서는 군의 최고사령관이 된다. 그러나 도지사는 경시총감(警視摠監)뿐만이 아니라 경시정(警視正) 이상의 인사권마저도 없으며 예산편성권을 포함하여 경찰권을 장악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고, 자위대에 대해서도 치안출동 요청권이 부여되어 있을 뿐이다.
4. 靑島幸男(아오시마 유키오)와 ■생활도시도쿄■
1995년의 도지사선은 자민당등 5당으로부터 추천받은 이시하라(石原信雄)는 불과 123만표밖에 얻지 못해, 본인도 예기치 못했던 아오시마(靑島幸男)가 46만표의 큰 차이로 당선되었다.
아오시마(靑島)는 ■밥상을 뒤집을■작정으로 지사에 취임하였지만, 큰 적자라고 걱정되어 왔던 개최직전의 세계도시박람회를 중지하는 것과, 경영위기에 빠져있는 두개의 신용금고에 도(都)의 자금보진을 중지한다고 하는 두가지 공약밖에 없었다.
임해개발의 재조정에 대해서 아오시마(靑島)지사의 주선으로 설치된 임해개발간담회는 전대미문의 양론병기(兩論倂記)라고 하는,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형태로 결착되었다. 또한 도시박람회의 개최에 대해서 아오시마(靑島)지사는 머뭇거린 끝에 중지를 결정했다. 이때 스즈키(鈴木)전지사는 ■사린을 뿌린 심경■이라고 격노하였다.
당선의 공약이기도 하고, 메스컴과 여론의 뒷받침이 따른 당시의 풍조였다고 하여도 그때까지 소비해야 했던 자금은 재와 먼지로 변했고, 관계되었던 단체/업자에게는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경제파급효과는 크게 마이너스로 흔들리게 되었고, 버블경제붕괴후의 경제부상의 싹을 자름과 동시에 도쿄임해지역의 개발을 크게 후퇴시킨 한 요인이 되었다.
관료의 구조에 정통한 스즈키(鈴木)전지사와는 달리, 취임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아오시마(靑島)지사는 관료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상식인으로 변질했다.
아오시마(靑島)지사에게 있어서의 정책입안은 ■생활도시 도쿄 구상■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그때까지의 하코모노(箱モノ)주의, 대규모프로젝트 붐의 안티테제(Antithese) 특정의 긍정적 주의에 대립해서 정립된 특정의 부정적 주의를 말한다.
이기도 한, ■생활도시■간담회의 운영은 일반공개방식도 포함하여 극히 투명한 과정하에서 행하였다. 버블에 같이 춤춘 도쿄의 소위말하는 후유증으로부터 회복으로의 출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라의 행정개혁에 호응하도록 도청내의 부국을 일곱 개의 국으로 집약하는 안과 환상형 사회의 구축등이 지사의 두 번째 임기에 있어 주요시책으로서 준비되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아오시마(靑島)지사가 두 번째 도지사선에 출마선언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1999년 2월 1일, 아무도 생각지 않은 불출마선언을 하였다. 지사의 진가를 묻는 두 번째 선거, 재선되기에는 가장 유리한 2번째를 감히 포기한 것이다. 게다가 후임지사에게는 무관심한 것이 일반적인데, 지사선거종반에 민주당의 하토야마(鳩山邦男)후보의 지지를 성명한다.
무당파라고 하는 부동표에 의해 지사가 된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번만으로 포기하고, 게다가 특정 당파 후보자를 지원한다고 하는 미주(迷走)를 보이고 아오시마(靑島)는 도정(都政)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그때까지 지사는, 재정파탄의 비난을 받고 그만 두었다는 사실을 천재적인 감으로 읽는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5. 鈴木俊一(스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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