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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공식적인 기공식은 그의 부친이 시작한 이 공사가 이제 람세스 자신의 기념물, 자신의 업적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람세스는 두 기둥 사이의 끈으로 손을 뻗치며 신천 건축의 공식적인 사열을 시작했다. 이어서 곡괭이를 들어 땅을 판 후 첫 번째 진흙 벽돌을 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에게 신전을 봉헌하는 의식을 거행했죠. 여러 기록에서 볼수 있듯이 공사에 아주 관심이 많았던 것 같고, 설계에도 관여한 바가 많았는데 역사적 자료까지 조사할 정도였어요. 신전 설계와 디자인에 정확성을 기하려고 말이죠. 케이트 윅스는 직접 그 기록들을 조사하며 당시 수백명에 이르는 석공들이 21미터에 달하는 기둥을 건축한 공법을 파악하고자 노력해왔다. 람세스의 석공들은 기둥을 세우는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표면에 정교한 이집트 상형문자까지 새겨넣었다. 이 벽화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비계 사용 여부가 잘 나타나 있죠. 이 그림은 18대 왕조의 고분 벽화입니다. 보시다시피 인부들이 나무를 연결해 비계를 만든 후 실물보다 큰 왕의 조각상을 다듬고, 제작하고 있습니다. 기둥 디자인은 한뼘, 한뼘 공을 들여 수작업으로 완공했다. 인부 한명은 돌의 표면을 다듬고 있고 반대쪽에선 정을 이용해 세심하게 눈을 조각하고 있죠. 원시적인 도구가 고작이였던 당시 상황에서 람세스의 야망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였다.
람세스 치하는 철기시대 이전이라 석공들은 무른 구리도구들로 제작해야만 했다. 데니스 스탁스는 고대 건축가들의 공법을 파악하는데는 석공들이 사용하던 그 도구로 당시 작업 방식을 재현해 보는게 최선이라 믿고 있다. 작업 방식은 돌 표면에 도안의 윤곽을 그린 후 중앙을 정으로 파내며 마무리 했죠. 데니스의 조사에 따르면 비록 고대 이집트의 정교한 문명을 자랑했지만 일부 복잡한 작업에서는 이런 수석도구와 같은 석기시대 장비를 사용했다. 이 도구는 워낙 단단하고 날카롭기 때문에 구리 정보다 도안의 윤곽을 다듬는데 휠씬 더 용이합니다. 모든 기둥과 벽의 조각 방식도 이와 동일하다. 그리고 이집트 상형문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매세지까지 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다주식 홀이 그림과 비문이 복잡하게 얽힌 곳이라 생각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속에도 체계가 있습니다. 그림 속의 신은 항상 신전 내부에서 밖을 쳐다보고 있으며 왕은 신을 영접하기 위해 밖에서 신전 내부로 접근하는 형태를 띠죠. 이 신전의 벽엔 당시 람세스와 이집트 민족 그리고 신들의 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이는 곧 람세스의 권능이 신성한 힘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기둥이 있는 신전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마음 속으로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성스러운 신의 보금자리 같은 느낌이 들죠. 이제 수십년간에 걸친 조사와 최신 컴퓨터 영상기법을 바탕으로 처음 지어졌을 당시 이곳의 본 모습을 복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과거 풍상의 지친 이 돌위엔 생생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오늘날 이집트 신전은 대부분 단조로운 형태를 띠지만 고대에는 화려한 색깔로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람세스의 건축가들이 사용했던 천연 안료는 오늘날에도 룩소르의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데 과거와 마찬가지로 식물성 기름에 천연 아교를 혼합한 형태다. 고대 이집트에선 오늘날보다 색상의 종류가 휠씬 적었고 기본적으로 6가지 색상만을 사용했습니다. 적색과 노란색 및 녹색 청색을 비롯해 흰색과 검은색이 전부였죠. 가장 값비싼 안료는 청색과 녹색이었습니다.
이런 청색으로 치장된 무덤이 상상되시나요? 실제로 이런 종류의 안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곧 최상급의 자재를 쓸 만큼 부자라는 뜻이죠. 신전 벽의 안료가 대부분 희미해진 게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3천년 전에는 부담스러울 만큼 화려하게 치장된 곳이었으니까요. 당시 이 다주식 홀의 건축과 장식에 수많은 시간과 자금이 투입되었지만 이집트의 특권계층이나 사제가 아니면 발을 들여 놓지도 못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신전의 외부까지만 출입이 가능했죠. 축제 때는 특별히 첫 번째 안마당까지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신전은 공개적인 참배 장소가 아니라 신의 개인적인 보금자리였으며 백성을 대표하는 파라오만이 신전에서 제물을 봉헌할 수 있었다. 이로써 파라오는 모든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과시했다. 베일에 쌓인 다주식 홀 내부는 웅장한 외벽 뒤에 숨겨져 있었다. 또한 신전의 벽 자체도 람세스의 위대함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이 구역 신전벽을 세우는데 사용된 7천톤의 돌은 특수한 한 종류로만 국한
람세스 치하는 철기시대 이전이라 석공들은 무른 구리도구들로 제작해야만 했다. 데니스 스탁스는 고대 건축가들의 공법을 파악하는데는 석공들이 사용하던 그 도구로 당시 작업 방식을 재현해 보는게 최선이라 믿고 있다. 작업 방식은 돌 표면에 도안의 윤곽을 그린 후 중앙을 정으로 파내며 마무리 했죠. 데니스의 조사에 따르면 비록 고대 이집트의 정교한 문명을 자랑했지만 일부 복잡한 작업에서는 이런 수석도구와 같은 석기시대 장비를 사용했다. 이 도구는 워낙 단단하고 날카롭기 때문에 구리 정보다 도안의 윤곽을 다듬는데 휠씬 더 용이합니다. 모든 기둥과 벽의 조각 방식도 이와 동일하다. 그리고 이집트 상형문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매세지까지 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다주식 홀이 그림과 비문이 복잡하게 얽힌 곳이라 생각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속에도 체계가 있습니다. 그림 속의 신은 항상 신전 내부에서 밖을 쳐다보고 있으며 왕은 신을 영접하기 위해 밖에서 신전 내부로 접근하는 형태를 띠죠. 이 신전의 벽엔 당시 람세스와 이집트 민족 그리고 신들의 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이는 곧 람세스의 권능이 신성한 힘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기둥이 있는 신전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마음 속으로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성스러운 신의 보금자리 같은 느낌이 들죠. 이제 수십년간에 걸친 조사와 최신 컴퓨터 영상기법을 바탕으로 처음 지어졌을 당시 이곳의 본 모습을 복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과거 풍상의 지친 이 돌위엔 생생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오늘날 이집트 신전은 대부분 단조로운 형태를 띠지만 고대에는 화려한 색깔로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람세스의 건축가들이 사용했던 천연 안료는 오늘날에도 룩소르의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데 과거와 마찬가지로 식물성 기름에 천연 아교를 혼합한 형태다. 고대 이집트에선 오늘날보다 색상의 종류가 휠씬 적었고 기본적으로 6가지 색상만을 사용했습니다. 적색과 노란색 및 녹색 청색을 비롯해 흰색과 검은색이 전부였죠. 가장 값비싼 안료는 청색과 녹색이었습니다.
이런 청색으로 치장된 무덤이 상상되시나요? 실제로 이런 종류의 안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곧 최상급의 자재를 쓸 만큼 부자라는 뜻이죠. 신전 벽의 안료가 대부분 희미해진 게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3천년 전에는 부담스러울 만큼 화려하게 치장된 곳이었으니까요. 당시 이 다주식 홀의 건축과 장식에 수많은 시간과 자금이 투입되었지만 이집트의 특권계층이나 사제가 아니면 발을 들여 놓지도 못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신전의 외부까지만 출입이 가능했죠. 축제 때는 특별히 첫 번째 안마당까지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신전은 공개적인 참배 장소가 아니라 신의 개인적인 보금자리였으며 백성을 대표하는 파라오만이 신전에서 제물을 봉헌할 수 있었다. 이로써 파라오는 모든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과시했다. 베일에 쌓인 다주식 홀 내부는 웅장한 외벽 뒤에 숨겨져 있었다. 또한 신전의 벽 자체도 람세스의 위대함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이 구역 신전벽을 세우는데 사용된 7천톤의 돌은 특수한 한 종류로만 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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