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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외아들로 자란 저는 뭐든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렸을 적부터 했고, 주위 어른들로부터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습니다.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남들보다 솔선수범 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리더쉽으로 친구들을 이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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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일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바다가 나올 때 까지 무작정 달리다가 길을 잃어 경찰아저씨 덕분에 집에 무사히 돌아온 적도 있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겠다고, 라디오를 분해해 망가뜨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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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한국어를 써야 하냐고 따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조국은 부모님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한마디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아무리 재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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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일찍이 제게 사람들 속에서의 사회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부모님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지만 잘못하거나 성실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에는 호된 꾸중으로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또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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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또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셨던 어머니께서는 항상 사랑과 정성으로 저희를 보살펴 주시며, 이타적인 인간으로 자라나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제게 있어 부모님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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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가서도 항상 웃음이 많은 저의 모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어렸을 적 농장에서 일하고 용돈을 받는 습관으로 인해 전 대학을 다닐 때도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고, 등록금도 모두 제 힘으로 해결했습니다. 이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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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이 무료해질 때면 간호사 언니들은 친구가 되어 주었고, 맛있는 사탕도 주었습니다. 몇 마디 말 동무 해준 것 뿐이고, 몇 개의 사탕을 준 것이 전부지만, 그 시절 저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기에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때의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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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하는데 첫째로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고 둘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철없는 어린 아이였지만 가슴속 깊이 뭔가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아버님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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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해주며 저의 무거운 짐을 덜어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처럼 저의 인생에서 가족들은 제 삶을 이끌어 준 나침반과도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집은 어린시절부터 조금은 개방적인 분위기였습니다. 회사에 다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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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한 매사에 성실하셨던 아버지께서 항상 성실함을 강조하셨기에 저는 어렸을 적 늦잠 한번 잔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함이 몸에 베었고,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또 남들에 비해 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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