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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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서평하나하고
감상문 4개입니다.

*한글97

본문내용

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살보조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으로 간주한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절절할 수 있었던 것이 유태인 대학살이라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그런 일이 도통 가능하지 않다. 이제 죽음은 TV로 생중계되는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가 되어 있다. 과거엔 풍문으로 전해지던 학살이 이제는 상세하고 신속하게 위성을 통해 중계된다.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감동할 사람은 없다. (p.66)
화자의 이런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글을 읽는 내내 자살이라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일상적인 사건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화자는 자신의 일을 끝내고 나서 그 일을 소설로 각색하는 일을 하는데 그 소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작품 속의 줄거리이다. C와 K는 형제이다. 형 C는 그녀를 유디트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동생 K는 그녀를 세연이라는 실명으로 부른다. 형 C에게 그녀는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 1>을 연상시키는 존재로 실존적인 인물이라기 보다는 이미지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반면 동생 K에게 그녀는 세연이라는 실존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그녀의 사라짐, 다섯 달 뒤에 접하게 된 그녀의 자살 소식에 마음 아파하는 인물은 동생 K이다.
유디트이면서 세연이라는 그녀는 늘상 추파춥스를 물고 다닌다. 섹스를 할 때마저도. 작가는 이 추파춥스라는 오브제를 이야기 속에서 반복시킴으로써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자 의도했던 것 같다. 유디트이면서 세연인 여자에게 추파춥스는 답답한 세상을 벗어난 그 어떤 새로움이나 자유를 뜻했던 것 같다. 그녀는 늘 입에 물고 다니던 추파춥스를 '나'와 자살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는 입에 물지 않았다.
그때 유디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그녀는 보여 주고 있었다. 생기. 그녀는 나와 만난 후 처음으로 얼굴에 생기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신이 나는 거 있죠. 내게 인생이란 제멋대로인 그런 거였어요. 언제나 내 뜻과는 상관없는 곳에 내가 있곤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미묘하게 들뜬 유디트를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입에 추파춥스를 물고 있지 않았다. (pp.75∼76)
그러나 추파춥스를 늘 입에 물고 다니는 그녀와 구체적인 그녀를 사랑했던 K가 그녀의 행방을 모른 채 소주를 마시면서 추파춥스를 먹는 장면 등은 작가의 의도와 잘 융합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추파춥스만이 떠 다니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작가는 그림의 이미지를 소설 속에 훌륭하게 융화시키고 있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 클림트의 <유디트 1>, 이 세 작품을 유효한 부분에서 적절하게 설명하고 작중인물들과 제대로 조화시키는 솜씨를 보여준다. 특히 화자인 '나'의 의뢰인으로 등장하는 유디트라는 별명의 세연이라는 여인과 행위예술을 하는 미미라는 여자는 둘 다 <유디트 1>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작품은 작가 김영하의 첫 장편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의 첫 작품은 자전적일 수밖에 없다는 통념을 그는 보란 듯이 깨버리고 일반적인 상상력을 뛰어넘어 자살보조업자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그는 우리 속에 있는 자살이나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공통된 욕망 속에서 독특한 소재를 끌어냈다. 소설 속에서, 개별 문단으로는 뛰어나지만 작품 전체와는 별로 유기적 관련이 없는 부분들이 눈에 띄어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작가의 초기작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너그럽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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