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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장 서 론
제 1절 연구의 목적
제 2절 연구의 방법
제 2장 이론적 고찰
제 1절 이 제헌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제 2절 이 제헌의 역사인식
제 3장 사상과 문학관 연구
제 1절 문학작품에 나타난 사상
1. 유학사상
2. 불교관
제 2절 이 제헌의 문학관
1. 이제현의 시세계(詩世界)
2. 사상방식
제 3절 역옹패설과 필기문학의 비교
1. 고려 후기의 사상적(思想的) 배경(背景)
2. 문학관
제 4절 역옹패설 연구
1. 역옹패설의 체계
2. 『전집』1(야승)의 내용과 성격
3. 『전집』2(逸話)의 내용과 성격
4. 『전집』2(笑話)의 내용과 성격
5. 『후집』(詩話와 文談)의 내용과 성격
제 5절 필기문학과의 비교
1. 필기문학
2. 「역옹패설」과 이후의 필기문학과의 비교
제 4장 요약 및 결론
참고문헌
제 1절 연구의 목적
제 2절 연구의 방법
제 2장 이론적 고찰
제 1절 이 제헌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제 2절 이 제헌의 역사인식
제 3장 사상과 문학관 연구
제 1절 문학작품에 나타난 사상
1. 유학사상
2. 불교관
제 2절 이 제헌의 문학관
1. 이제현의 시세계(詩世界)
2. 사상방식
제 3절 역옹패설과 필기문학의 비교
1. 고려 후기의 사상적(思想的) 배경(背景)
2. 문학관
제 4절 역옹패설 연구
1. 역옹패설의 체계
2. 『전집』1(야승)의 내용과 성격
3. 『전집』2(逸話)의 내용과 성격
4. 『전집』2(笑話)의 내용과 성격
5. 『후집』(詩話와 文談)의 내용과 성격
제 5절 필기문학과의 비교
1. 필기문학
2. 「역옹패설」과 이후의 필기문학과의 비교
제 4장 요약 및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펴는 것이 아니라 백성 측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익재는 유교의 중용사상을 중시하고 誠敬과 道에 바탕을 두었으며 忠과 孝의 정신으로 왕도정치의 이상실현에 한평생을 바쳤고,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난국을 타개해 나갔다. 그리고 불교에 대해서도 불교의 慈悲와 喜捨를 유교의 仁과 義에 비유하면서 불자들을 배척하지 않고 그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감으로써 국가 사회에 이바지 하기를 바랐다.
익재의 작품은 益齋亂藁를 비롯해 동문선, 시선집 등에 전하고 있는데, 양적으로는 많지 않으나 시 문장 할 것 없이 모두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중 소악부는 양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獨自的이라 할 수 있고, 문장은 고문의 典範으로 인정되어 고문창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익재의 문학관은 언외의론, 명실론, 재도론 등에 바탕을 두고, 언외의론의 태도는 글을 쓸 때 말 속에 깊은 뜻을 함축시킴으로 은근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중적이지만 실상이 없는 문학을 배격하고 깊이가 있는 문학을 높이 평가하였는데, 이러한 생각은 사실성과도 관련해 문장을 지을 때는 꾸미기 위한 방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實質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名實論을 주장했다. 또 시문을 지을 때 도덕의 바탕위에서 제작되어야 한다는 재도론에 입각해 화술하였음은 그의 글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익재 이전의 문풍은 과거제도로 말미암아 사장학이 크게 성행하였는데, 익재는 과거의 폐단과 무신집권으로 인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고문창도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곧 성현의 경전을 배워 經明行修하는 선비가 됨으로써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하고 그에 바탕한 古文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익재의 고문창도는 자신이 고문을 써서 스스로 실천한 동시에 과거제도의 개혁을 통해서도 이루어 갔다.
익재는 多難했던 그의 생애를 통하여 현실문제의 극복에 적극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며, 일대 문장가로서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함 으로써 後代에 이르기까지 文名을 떨친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이상으로 「역옹패설」의 필기문학의 특성을 중심으로 하여 역옹패설의 체계, 전집과 후집의 성격과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전집』1의 내용은 단순한 일화들의 잡다한 모음이라기 보다는 전체적 내용이 왕조의 권위와 정통성 회복, 국가 경영에 관한 일반원칙의 준수를 통한 국가기강의 확립이라는 일관성 있는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전집』2는 전반부(笑話 이전까지)에서 사대부들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난 일화들을 통해 편안하고 흥미있는 읽을 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고려사회의 화합과 안정에 필요한 여러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때 흥미거리, 특히 순수한 웃음거리(笑話)에 치중한 일화들은 『전집』2의 후반부에 별도로 모아 놓았다. 또한 후집의 대부분은 시화와 몇 편의 文談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인로의 「보한집」이 비평문학의 효시로서 그 가치가 있다면 「역옹패설」은 「보한집」이후의 침체된 우리의 문단을 부흥시키고 후대에 들어와 본격적이고 풍성한 시화류의 저서를 낳게한 교량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人情風物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데서 문학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옹패설」의 필기문학의 특성을 중심으로 하여 역옹패설의 체계, 전집과 후집의 성격과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전집』1의 내용은 단순한 일화들의 잡다한 모음이라기 보다는 전체적 내용이 왕조의 권위와 정통성 회복, 국가 경영에 관한 일반원칙의 준수를 통한 국가기강의 확립이라는 일관성 있는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전집』2는 전반부(笑話 이전까지)에서 사대부들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난 일화들을 통해 편안하고 흥미있는 읽을 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고려사회의 화합과 안정에 필요한 여러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때 흥미거리, 특히 순수한 웃음거리(笑話)에 치중한 일화들은 『전집』2의 후반부에 별도로 모아 놓았다. 또한 후집의 대부분은 시화와 몇 편의 文談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인로의 「보한집」이 비평문학의 효시로서 그 가치가 있다면 「역옹패설」은 「보한집」이후의 침체된 우리의 문단을 부흥시키고 후대에 들어와 본격적이고 풍성한 시화류의 저서를 낳게한 교량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人情風物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데서 문학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제현의 이상은 당면 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하여 고려 전기 사회로의 정통성 회복에 있었지만, 그의 현실 인식과 대외 인식에는 상호모순 되는 점이 있었다. 이는 곧 그를 모순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실천성을 갖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지식인이라 비판하게 한 이유가 되었으며, 또한 그의 현실 인식의 토대였던 성리학적 이론은 고려 자체 내의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면보다는 사대를 합리화하며 자주를 체념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참고문헌
김철준, 1967, 「익제 이제현의 사학」 『동방학지』8.
이익주, 2000, 「시대의 과제를 인식한 자와 시대의 변화를 읽은 자 - 이승휴와 이제현」
신안식, 1999, 「자주와 사대 사이 : 원 간섭기의 역사의식」『한국인의 역사의식』, 청년사.
역옹패설. 이제현. 민족문화추진회 역. 솔출판사. 1997
역옹패설. 李齊賢. 이상보 역. 범우사 1995.
정구복, 1981, 「이제현의 역사인식」 『진단학보』51.
한영우, 1994,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상』上, 창작과 비평사.
탁봉심, 1988, 「이제현의 역사관」『이화사학연구』1718합.
韓國思想大全集, 4,5 良友堂. 1991.
(국역)익재집, 1-2. 李齊賢 著. 민족문화추진회. 1979.
益齋 李齊賢의 史學思想 연구. 李鎔熙. 韓國敎員大 大學院. 1997.
益齋 李齊賢의 문학사상연구. 金恩敬. 誠信女大 大學院. 1994.
李濟賢의 문학사상 연구. 韓相圭. 慶熙大 敎育大學院. 1994.
李齊賢 文學 연구. 詩와 古文을 중심으로. 金乾坤.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學大學院. 1994 .
益齋시의 서정적 연구. 張錫禮. 水原大 大學院. 1993.
익재는 유교의 중용사상을 중시하고 誠敬과 道에 바탕을 두었으며 忠과 孝의 정신으로 왕도정치의 이상실현에 한평생을 바쳤고,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난국을 타개해 나갔다. 그리고 불교에 대해서도 불교의 慈悲와 喜捨를 유교의 仁과 義에 비유하면서 불자들을 배척하지 않고 그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감으로써 국가 사회에 이바지 하기를 바랐다.
익재의 작품은 益齋亂藁를 비롯해 동문선, 시선집 등에 전하고 있는데, 양적으로는 많지 않으나 시 문장 할 것 없이 모두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중 소악부는 양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獨自的이라 할 수 있고, 문장은 고문의 典範으로 인정되어 고문창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익재의 문학관은 언외의론, 명실론, 재도론 등에 바탕을 두고, 언외의론의 태도는 글을 쓸 때 말 속에 깊은 뜻을 함축시킴으로 은근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중적이지만 실상이 없는 문학을 배격하고 깊이가 있는 문학을 높이 평가하였는데, 이러한 생각은 사실성과도 관련해 문장을 지을 때는 꾸미기 위한 방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實質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名實論을 주장했다. 또 시문을 지을 때 도덕의 바탕위에서 제작되어야 한다는 재도론에 입각해 화술하였음은 그의 글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익재 이전의 문풍은 과거제도로 말미암아 사장학이 크게 성행하였는데, 익재는 과거의 폐단과 무신집권으로 인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고문창도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곧 성현의 경전을 배워 經明行修하는 선비가 됨으로써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하고 그에 바탕한 古文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익재의 고문창도는 자신이 고문을 써서 스스로 실천한 동시에 과거제도의 개혁을 통해서도 이루어 갔다.
익재는 多難했던 그의 생애를 통하여 현실문제의 극복에 적극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며, 일대 문장가로서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함 으로써 後代에 이르기까지 文名을 떨친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이상으로 「역옹패설」의 필기문학의 특성을 중심으로 하여 역옹패설의 체계, 전집과 후집의 성격과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전집』1의 내용은 단순한 일화들의 잡다한 모음이라기 보다는 전체적 내용이 왕조의 권위와 정통성 회복, 국가 경영에 관한 일반원칙의 준수를 통한 국가기강의 확립이라는 일관성 있는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전집』2는 전반부(笑話 이전까지)에서 사대부들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난 일화들을 통해 편안하고 흥미있는 읽을 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고려사회의 화합과 안정에 필요한 여러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때 흥미거리, 특히 순수한 웃음거리(笑話)에 치중한 일화들은 『전집』2의 후반부에 별도로 모아 놓았다. 또한 후집의 대부분은 시화와 몇 편의 文談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인로의 「보한집」이 비평문학의 효시로서 그 가치가 있다면 「역옹패설」은 「보한집」이후의 침체된 우리의 문단을 부흥시키고 후대에 들어와 본격적이고 풍성한 시화류의 저서를 낳게한 교량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人情風物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데서 문학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옹패설」의 필기문학의 특성을 중심으로 하여 역옹패설의 체계, 전집과 후집의 성격과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전집』1의 내용은 단순한 일화들의 잡다한 모음이라기 보다는 전체적 내용이 왕조의 권위와 정통성 회복, 국가 경영에 관한 일반원칙의 준수를 통한 국가기강의 확립이라는 일관성 있는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전집』2는 전반부(笑話 이전까지)에서 사대부들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난 일화들을 통해 편안하고 흥미있는 읽을 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고려사회의 화합과 안정에 필요한 여러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때 흥미거리, 특히 순수한 웃음거리(笑話)에 치중한 일화들은 『전집』2의 후반부에 별도로 모아 놓았다. 또한 후집의 대부분은 시화와 몇 편의 文談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인로의 「보한집」이 비평문학의 효시로서 그 가치가 있다면 「역옹패설」은 「보한집」이후의 침체된 우리의 문단을 부흥시키고 후대에 들어와 본격적이고 풍성한 시화류의 저서를 낳게한 교량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人情風物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데서 문학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제현의 이상은 당면 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하여 고려 전기 사회로의 정통성 회복에 있었지만, 그의 현실 인식과 대외 인식에는 상호모순 되는 점이 있었다. 이는 곧 그를 모순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실천성을 갖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지식인이라 비판하게 한 이유가 되었으며, 또한 그의 현실 인식의 토대였던 성리학적 이론은 고려 자체 내의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면보다는 사대를 합리화하며 자주를 체념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참고문헌
김철준, 1967, 「익제 이제현의 사학」 『동방학지』8.
이익주, 2000, 「시대의 과제를 인식한 자와 시대의 변화를 읽은 자 - 이승휴와 이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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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옹패설. 이제현. 민족문화추진회 역. 솔출판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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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복, 1981, 「이제현의 역사인식」 『진단학보』51.
한영우, 1994,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상』上, 창작과 비평사.
탁봉심, 1988, 「이제현의 역사관」『이화사학연구』1718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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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익재집, 1-2. 李齊賢 著. 민족문화추진회. 1979.
益齋 李齊賢의 史學思想 연구. 李鎔熙. 韓國敎員大 大學院. 1997.
益齋 李齊賢의 문학사상연구. 金恩敬. 誠信女大 大學院. 1994.
李濟賢의 문학사상 연구. 韓相圭. 慶熙大 敎育大學院. 1994.
李齊賢 文學 연구. 詩와 古文을 중심으로. 金乾坤.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學大學院. 1994 .
益齋시의 서정적 연구. 張錫禮. 水原大 大學院.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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