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재일 한국인작가 이양지
2. 『유희』에서 한국어가 갖는 의미
3. 『유희』에서 나타난 한글과 가타카나 표기의 분석
4. 소수 문학의 개념
5. 『유희』에서 나타난 소수문학의 특징 - 언어의 탈영토화를 중심으로
2. 『유희』에서 한국어가 갖는 의미
3. 『유희』에서 나타난 한글과 가타카나 표기의 분석
4. 소수 문학의 개념
5. 『유희』에서 나타난 소수문학의 특징 - 언어의 탈영토화를 중심으로
본문내용
에게는 우선적 명분으로 하루빨리 한국인이 되어야 하며, 내 몸에 배어 있는 일본적인 모든 면을 청산하면서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습니다. 실은 그렇게 되어야만 유학하러 온 애초의 목적과 동기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로, 지상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문 내지 의무감은 현실과 실체에 있어서의 저 자신의 모습에 의해 배반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모어, 즉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듣고 배운 언어라는 것은 마치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며 존재를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이지만 모국에 와서, 특히 모국어의 바다와 같은 국문과에 들어가서 실감한 것입니다.
이양지가 『돌의 소리』에서 밝힌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의 사고가 『유희』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자신의 모습을 유희 투영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희가 작품 속에서 S대학교 국어국문이 전공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희에게는 하루빨리 한국인으로서의 자아, 민족의식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어(모국어)를 통해 자아 찾기는 실패하는 대신, 일본어(모어)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작품속에서 유희는 ‘아’와 ‘あ’사이의 말의 지팡이를 잡지 못하고 문화적으로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상징계로의 진입의 실패는 심한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부정의 세계에 바지지 않기 위한 상호인간적인 융합에 대한 욕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며 인류와 집단과 가족과 사회를 결합하게 하는 힘이다. 이 욕구가 실패하면 정신 착란, 혹은 자기 파괴가 발생한다.
유희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가의 자기 부정은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인간적으로 융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희가 한국어와 일본어를 구별하는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한글을 창재한 세종대왕은 존경한다면서도, 한글의 가로쓰기에 의문을 갖고, 일본어의 세로쓰기와 구분하는 점, 그리고 자가가 『유희』속에서 한국어의 표기 등을 하고 있는 것은 유희가 한국으로의 동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상호인간적 융합(유희-한국)은 실패하여 분리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되어 있다는 체험은 불안을 일으킨다. 그것은 모든 불안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무력하다는 것, 인간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이 단절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리는 격렬한 불안의 원천인 것이다. 여기에 바로 유희가 한국어에 대해 일으키는 거부반응 - 한국어를 거의 일상생활에 사용하지 않고, 일본어책만 읽는다, 한국어가 최루탄 같이 숨이 막힌다, 많은 인파가 있는 버스 안에서 들리는 한국어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 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희와 같은 재일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은 ‘회복’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다시 새롭게 無에서 ‘획득’해야할 문제인데, 유희는 한국어로 자신의 민족의식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일본어로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언어,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모국어 또한 모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자신의 존재 즉, 실존의 문제와 직결하는 심각한 과제이다.
특히 언어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존재 모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다시말해서 감수성 전체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감수성 전체를 지배하고 구속하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유희와 같이 한국의 생활 습관과 한국어에 적응하지 못할 때나, 감정이 거슬릴 때 유희는 한국어를 부정하는 자폐증세까지 보이다가 결국 자신의 위선적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는 것이다.
3. 『유희』에서 나타난 한글과 가타카나 표기의 분석
p.9
바위
- 유희는 한국어는 싫어도 이 바위는 좋다고 했다.
조용한 동네이고, 저 바위산을 매일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썩 마음에 들었어요. 동네가 조용할 뿐만 아니라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간신히 만난 것 같아서 그 점도 좋아요
->유희는 자아를 찾기위해 한국에 유학하러 왔음에도 한국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외부인으로, 한국에서도 외부인으로 남음을 자처하고 있다. 조용한 동네, 조용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찾아다니며 자기 자신이 한국적인 것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나 바위산을 맘에 들어 하면서도 바위산을 정작 오르지 않는 유희의 모습은,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다가서지 않으려는 모순된 모습을 바위산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p.10
누구세요?
저에요.
->유희는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저에요라고 한국어로 표기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누구라는 대답에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표기함으로 전체적인 일본어 표기의 소설속에서 자신은 한국어로 저에요라고 대답하면서 한국인으로의 자아를 인정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p.11
イイニオイ
->유희는 집에 들어오면서 하는 한국요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부분은 카타가나로 표기되어 있는데. 유희는 좋은 냄새라고 하지 않고 일본어로 말함으로써 아직은 일본인적인 자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p.14
아주머니, 안녕히 계세요.
->라고 하면서 유희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면서 한국을 떠나게 된다. 그녀가 유독 정을 붙이고 살던 하숙집을 떠나면서 그녀는 어쩌면 영원히 한국과도 멀어 질 지 도 모른다. 사요나라라고 인사하며 떠나는 유희는 자신의 자아를 한국에 두고 일본으로 떠나며 자신의 자아와는 떨어져 일본에서의 이방인의 길을 택하게 된다.
p.18
아주머니랑 언니가 필요하면 언제나 써
->이 부분에서 아주머니와 언니는 한국어로 표기되어 있다. 유희는 한국어 표기를 통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두었던 말을 표기하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 아주머니와 언니는 유희가 한국인으로 자아를 찾아감에 그리고 한국에 대해 애착을 갖게 함에 고민하게 함에 도움을 주고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이다.
p.20
이나라 이나라 사람
분해서 몸이 떨렸다.
어
참으로 모어, 즉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듣고 배운 언어라는 것은 마치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며 존재를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이지만 모국에 와서, 특히 모국어의 바다와 같은 국문과에 들어가서 실감한 것입니다.
이양지가 『돌의 소리』에서 밝힌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의 사고가 『유희』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자신의 모습을 유희 투영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희가 작품 속에서 S대학교 국어국문이 전공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희에게는 하루빨리 한국인으로서의 자아, 민족의식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어(모국어)를 통해 자아 찾기는 실패하는 대신, 일본어(모어)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작품속에서 유희는 ‘아’와 ‘あ’사이의 말의 지팡이를 잡지 못하고 문화적으로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상징계로의 진입의 실패는 심한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부정의 세계에 바지지 않기 위한 상호인간적인 융합에 대한 욕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며 인류와 집단과 가족과 사회를 결합하게 하는 힘이다. 이 욕구가 실패하면 정신 착란, 혹은 자기 파괴가 발생한다.
유희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가의 자기 부정은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인간적으로 융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희가 한국어와 일본어를 구별하는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한글을 창재한 세종대왕은 존경한다면서도, 한글의 가로쓰기에 의문을 갖고, 일본어의 세로쓰기와 구분하는 점, 그리고 자가가 『유희』속에서 한국어의 표기 등을 하고 있는 것은 유희가 한국으로의 동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상호인간적 융합(유희-한국)은 실패하여 분리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되어 있다는 체험은 불안을 일으킨다. 그것은 모든 불안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무력하다는 것, 인간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이 단절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리는 격렬한 불안의 원천인 것이다. 여기에 바로 유희가 한국어에 대해 일으키는 거부반응 - 한국어를 거의 일상생활에 사용하지 않고, 일본어책만 읽는다, 한국어가 최루탄 같이 숨이 막힌다, 많은 인파가 있는 버스 안에서 들리는 한국어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 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희와 같은 재일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은 ‘회복’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다시 새롭게 無에서 ‘획득’해야할 문제인데, 유희는 한국어로 자신의 민족의식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일본어로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언어,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모국어 또한 모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자신의 존재 즉, 실존의 문제와 직결하는 심각한 과제이다.
특히 언어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존재 모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다시말해서 감수성 전체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감수성 전체를 지배하고 구속하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유희와 같이 한국의 생활 습관과 한국어에 적응하지 못할 때나, 감정이 거슬릴 때 유희는 한국어를 부정하는 자폐증세까지 보이다가 결국 자신의 위선적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는 것이다.
3. 『유희』에서 나타난 한글과 가타카나 표기의 분석
p.9
바위
- 유희는 한국어는 싫어도 이 바위는 좋다고 했다.
조용한 동네이고, 저 바위산을 매일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썩 마음에 들었어요. 동네가 조용할 뿐만 아니라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간신히 만난 것 같아서 그 점도 좋아요
->유희는 자아를 찾기위해 한국에 유학하러 왔음에도 한국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외부인으로, 한국에서도 외부인으로 남음을 자처하고 있다. 조용한 동네, 조용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찾아다니며 자기 자신이 한국적인 것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나 바위산을 맘에 들어 하면서도 바위산을 정작 오르지 않는 유희의 모습은,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다가서지 않으려는 모순된 모습을 바위산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p.10
누구세요?
저에요.
->유희는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저에요라고 한국어로 표기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누구라는 대답에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표기함으로 전체적인 일본어 표기의 소설속에서 자신은 한국어로 저에요라고 대답하면서 한국인으로의 자아를 인정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p.11
イイニオイ
->유희는 집에 들어오면서 하는 한국요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부분은 카타가나로 표기되어 있는데. 유희는 좋은 냄새라고 하지 않고 일본어로 말함으로써 아직은 일본인적인 자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p.14
아주머니, 안녕히 계세요.
->라고 하면서 유희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면서 한국을 떠나게 된다. 그녀가 유독 정을 붙이고 살던 하숙집을 떠나면서 그녀는 어쩌면 영원히 한국과도 멀어 질 지 도 모른다. 사요나라라고 인사하며 떠나는 유희는 자신의 자아를 한국에 두고 일본으로 떠나며 자신의 자아와는 떨어져 일본에서의 이방인의 길을 택하게 된다.
p.18
아주머니랑 언니가 필요하면 언제나 써
->이 부분에서 아주머니와 언니는 한국어로 표기되어 있다. 유희는 한국어 표기를 통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두었던 말을 표기하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 아주머니와 언니는 유희가 한국인으로 자아를 찾아감에 그리고 한국에 대해 애착을 갖게 함에 고민하게 함에 도움을 주고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이다.
p.20
이나라 이나라 사람
분해서 몸이 떨렸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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