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공산주의 이론
(1) 마르크스주의
① 변증법적 유물론의 성립
② 역사적 유물론
③ 역사발전 5단계
④ 소외
(2)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정치 이론
① 계급 투쟁론
② 국가와 혁명
③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
④ 공산당 이론
(3) 마르크스의 경제사상
① 노동가치설
② 잉여가치론과 자본의 축적론
2. 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
(1) 사회주의 운동사
① 사회주의 운동의 출발
② 제 1 인터내셔널
③ 제 2 인터내셔널
(2) 소련 공산주의
(3) 중국 공산주의
(4) 북한 공산주의
(1) 마르크스주의
① 변증법적 유물론의 성립
② 역사적 유물론
③ 역사발전 5단계
④ 소외
(2)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정치 이론
① 계급 투쟁론
② 국가와 혁명
③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
④ 공산당 이론
(3) 마르크스의 경제사상
① 노동가치설
② 잉여가치론과 자본의 축적론
2. 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
(1) 사회주의 운동사
① 사회주의 운동의 출발
② 제 1 인터내셔널
③ 제 2 인터내셔널
(2) 소련 공산주의
(3) 중국 공산주의
(4) 북한 공산주의
본문내용
21년 결성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결성되자마자 당시 중국이 당면한 반군벌의 과제를 손문의 국민당과 연합해서 싸울 방침을 굳히고 1924년 제 1차 국공합작에 들어갔다. 국민당 정권은 북벌을 개시하여 도처에서 군벌들이 군대를 격파했지만, 내부에서는 국공대립이 점점 격화되고 있었다. 1927년 북벌 도중에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장개석이 일으킨 반공쿠데타에 의해 합작은 깨지고 중국 공산당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시기가 시작되었고, 모택동 등이 인솔하는 공산당 잔존 세력은 홍군을 조직하여 양자강 남부지역에서 토지개혁을 행하고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50차에 걸친 국민당군의 포위토벌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모택동이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1935년 공산당은 국민당 타도의 방침을 전환하여 내전중지, 일치항일을 호소함으로써 제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 부패하고 무능했던 국민당과 달리 공산당은 항일전쟁 과정에서 전국 각지에 영향권을 확대해가고 지역정부를 구성해나갔다. 모택동과 장개석은 정치협상을 하고 연합정부를 시도했으나, 결렬되고 내전에 돌입했다. 1947년 중국 공산당이 반격을 하여 결정적 승리를 얻어냈고, 장개석과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북경에서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려 중앙인민정부위원을 선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 수립되었다.
건국과 동시에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국민경제 부흥에 전력을 기울였다. 중국 내에서 계급모순이 기본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본 공산당은 1956년부터 문학, 예술, 과학의 자유를 인정하는 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공산당 비판하는 언론 공격이 고조되자, 반우파 투쟁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사회주의 건설 급속화의 방침이 재확립되었고, 대중운동에 의한 생산 건설을 꾀하는 ‘대약진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좌절되었고, 모택동은 사회주의 단계에서 보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단계로 이행할 때까지 모든 전전에서 혁명이 끝까지 전개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이 이론의 의거하여 1965년 문화영역의 투쟁을 출발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단행하였다. 과격한 학생,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을 조직하여 반혁명, 반대세력을 축출해 나갔다.
(4) 북한 공산주의
북한의 공산정권은 소련군의 점령과 더불어 1948년에 수립되었다. 북한은 동구권 국가들과 더불어 제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세력팽창정책의 결과로 이룩된 이른바 ‘화물열차 정권’이었다. 북한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스탈린주의의 혁명수출 모델을 적용한 ‘소비에트화 단계’ 과정을 거친, 아시아의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흔히 소비에트화는 3단계를 거쳐 진행되는데, ‘순수 연립 정부형태’의 단계에서 공산당 및 이데올로기, 정강정책을 달리하는 몇 개 정당들이 연합해서 단기적 공동 목표를 추구한다. 2단계는 ‘위장된 연립정부형태’를 구성하는 단계로, 겉보기에는 연립정부 형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산당이 실권을 장악하는 형태이다. ‘1당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공산당이 전권을 장악하게 된다. 북한도 이러한 3단계를 거쳐서 김일성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창건된 북한 정권은 북한주민들 스스로가 자생적 혁명을 통해 선택한 정권이 아니었고, 단지 소련의 점령지역 공산화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소련이나 중국, 유고와는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 정권은 점령군의 대행기관 역할 밖에 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토착 공산주의자들의 참여조차 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공산주의 혁명의 정통성을 결여하게 되었다.
김일성이 지속적인 숙청과정과 우상화를 통해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족벌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권력의 토대가 정통성을 결여하였기 때문이었다. 소련이나 중국에서는 오랜 혁명투쟁과정을 거친 전통을 통해 성립되었지만, 북한은 타율적으로, 그나마 있었던 토착 공산주의자를 배제한 채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통성의 근거로 끌어다 놓은 것이 날조된 혁명전통이었고, 개인숭배를 위해 전기, 어록 등이 날조되었고, 김일성의 행적을 기리는 많은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한편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 50년에 가까운 장기집권을 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다. 스탈린주의로 인해 공산권이 일시적으로 다원화되고 이로 인해 중소 이념분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1960년 중반부터 북한은 주체사상을 형성하게 되었고, 독자적인 노순을 추구하였다. 한국 전쟁이후, 북한 내부에서 전쟁 실패의 문제가 쟁점화 되는데, 이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주노선’을 표방하고, 주체사상은 유일사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고, 김일성 체제의 공고화와 개인숭배를 위해 제기된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인민들이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동원을 통하여 경제 개발을 위해 주체사상이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북한사회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는데, 그것은 먼저, 1인 독재체제를 합리화시키고 정통성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사회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조성시켰다. 체제통합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이러한 일체감을 바탕으로 혁명과 건설을 위한 전체주의적 대중동원 기능도 담당하였고, 이를 통해 생산성 제고를 꾀하였다. 또한 북한이 대외적으로 독자노선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국제사회 속에서 선전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세습적 권력승계를 정당화하는 역할도 하여, 김정일로의 권력 이행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였다. 또한 대남혁명과 통일노선을 합리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내남혁명노선을 정당화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원래 노동자계급이 주체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에는 당이 주체이다. 하지만 1인 지배체제하의 북한에서는 당과 인민은 유일한 지도자인 수령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주체는 수령 한 사람일 뿐이고, 주민은 주체성에 종속된 비주체적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은 주체사상의 자기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결성되자마자 당시 중국이 당면한 반군벌의 과제를 손문의 국민당과 연합해서 싸울 방침을 굳히고 1924년 제 1차 국공합작에 들어갔다. 국민당 정권은 북벌을 개시하여 도처에서 군벌들이 군대를 격파했지만, 내부에서는 국공대립이 점점 격화되고 있었다. 1927년 북벌 도중에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장개석이 일으킨 반공쿠데타에 의해 합작은 깨지고 중국 공산당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시기가 시작되었고, 모택동 등이 인솔하는 공산당 잔존 세력은 홍군을 조직하여 양자강 남부지역에서 토지개혁을 행하고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50차에 걸친 국민당군의 포위토벌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모택동이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1935년 공산당은 국민당 타도의 방침을 전환하여 내전중지, 일치항일을 호소함으로써 제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 부패하고 무능했던 국민당과 달리 공산당은 항일전쟁 과정에서 전국 각지에 영향권을 확대해가고 지역정부를 구성해나갔다. 모택동과 장개석은 정치협상을 하고 연합정부를 시도했으나, 결렬되고 내전에 돌입했다. 1947년 중국 공산당이 반격을 하여 결정적 승리를 얻어냈고, 장개석과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북경에서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려 중앙인민정부위원을 선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 수립되었다.
건국과 동시에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국민경제 부흥에 전력을 기울였다. 중국 내에서 계급모순이 기본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본 공산당은 1956년부터 문학, 예술, 과학의 자유를 인정하는 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공산당 비판하는 언론 공격이 고조되자, 반우파 투쟁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사회주의 건설 급속화의 방침이 재확립되었고, 대중운동에 의한 생산 건설을 꾀하는 ‘대약진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좌절되었고, 모택동은 사회주의 단계에서 보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단계로 이행할 때까지 모든 전전에서 혁명이 끝까지 전개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이 이론의 의거하여 1965년 문화영역의 투쟁을 출발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단행하였다. 과격한 학생,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을 조직하여 반혁명, 반대세력을 축출해 나갔다.
(4) 북한 공산주의
북한의 공산정권은 소련군의 점령과 더불어 1948년에 수립되었다. 북한은 동구권 국가들과 더불어 제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세력팽창정책의 결과로 이룩된 이른바 ‘화물열차 정권’이었다. 북한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스탈린주의의 혁명수출 모델을 적용한 ‘소비에트화 단계’ 과정을 거친, 아시아의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흔히 소비에트화는 3단계를 거쳐 진행되는데, ‘순수 연립 정부형태’의 단계에서 공산당 및 이데올로기, 정강정책을 달리하는 몇 개 정당들이 연합해서 단기적 공동 목표를 추구한다. 2단계는 ‘위장된 연립정부형태’를 구성하는 단계로, 겉보기에는 연립정부 형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산당이 실권을 장악하는 형태이다. ‘1당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공산당이 전권을 장악하게 된다. 북한도 이러한 3단계를 거쳐서 김일성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창건된 북한 정권은 북한주민들 스스로가 자생적 혁명을 통해 선택한 정권이 아니었고, 단지 소련의 점령지역 공산화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소련이나 중국, 유고와는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 정권은 점령군의 대행기관 역할 밖에 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토착 공산주의자들의 참여조차 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공산주의 혁명의 정통성을 결여하게 되었다.
김일성이 지속적인 숙청과정과 우상화를 통해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족벌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권력의 토대가 정통성을 결여하였기 때문이었다. 소련이나 중국에서는 오랜 혁명투쟁과정을 거친 전통을 통해 성립되었지만, 북한은 타율적으로, 그나마 있었던 토착 공산주의자를 배제한 채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통성의 근거로 끌어다 놓은 것이 날조된 혁명전통이었고, 개인숭배를 위해 전기, 어록 등이 날조되었고, 김일성의 행적을 기리는 많은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한편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 50년에 가까운 장기집권을 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다. 스탈린주의로 인해 공산권이 일시적으로 다원화되고 이로 인해 중소 이념분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1960년 중반부터 북한은 주체사상을 형성하게 되었고, 독자적인 노순을 추구하였다. 한국 전쟁이후, 북한 내부에서 전쟁 실패의 문제가 쟁점화 되는데, 이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주노선’을 표방하고, 주체사상은 유일사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고, 김일성 체제의 공고화와 개인숭배를 위해 제기된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인민들이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동원을 통하여 경제 개발을 위해 주체사상이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북한사회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는데, 그것은 먼저, 1인 독재체제를 합리화시키고 정통성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사회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조성시켰다. 체제통합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이러한 일체감을 바탕으로 혁명과 건설을 위한 전체주의적 대중동원 기능도 담당하였고, 이를 통해 생산성 제고를 꾀하였다. 또한 북한이 대외적으로 독자노선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국제사회 속에서 선전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세습적 권력승계를 정당화하는 역할도 하여, 김정일로의 권력 이행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였다. 또한 대남혁명과 통일노선을 합리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내남혁명노선을 정당화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원래 노동자계급이 주체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에는 당이 주체이다. 하지만 1인 지배체제하의 북한에서는 당과 인민은 유일한 지도자인 수령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주체는 수령 한 사람일 뿐이고, 주민은 주체성에 종속된 비주체적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은 주체사상의 자기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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