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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먹어야 하는데도 그것이 쉽지 않은 나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양로원 원장은 그런 것을 모를까? 그 나잇대의 노인들의 돌봄을 맡고 있는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식사 시간을 배려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지 않을까? 만약 그 노인이 식사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고 해도 식사 시간에 늦었다고 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이유를 찾아보려고 해도 안되는 말이다. 그리고 양로원에 있는 나이 많은 노인들이 어떤 소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해서 TV 시청시간까지 제한을 하는 것일까?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외출을 하기도 힘든 나이에 TV조차 시청제한을 받아야 한다니!! 노인 알란이 그 양로원 원장에게 똥은 마음대로 쌀 시간은 있겠지!! 라고 말하는 것에서 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얼마나 숨막히는 제한이었으면 그런 말이 나올 정도일까 싶다. 처음부터 줄곧 유쾌한 내용으로 전개하던 이 책에서 마지막 부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낙천적이고 유쾌한 사람 알란이 양로원에서 맞이하는 100세를 언제 내가 이 세상을 떠나나 하며 잠이 들곤 하는 장면은 참으로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 나이가 많아서 만이 아니라 사람이 죽음을 원하게 되는 순간은 그 사람이 너무나 힘든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느끼는 힘든 느낌도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느끼는 소외감이나 절망도 정말 힘겨운 것이니 말이다. 단지 양로원의 책임자인 원장이 이 노인의 자유를 이런 방법으로 제한한 것이 뭐 그리 말거리가 되는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닌 이런 양로원 원장 같은 사람이 알란 같은 힘 없는 노인 같은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억압하려고 죄인들을 가두는 감옥 같은 생활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정말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소설의 시작은 양로원에서 이 100세 노인 알란의 생일 축하 파티를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양로원 원장도 나왔던 것 같다. 제목처럼 100세 노인 알란은 창문을 통해 나온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행동 같았는데 그리고 괴짜 같기만 하던 알란을 통해 삶에 대해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 있다. 그 100세 생일을 준비하던 축하 파티는 어찌보면 알란을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양로원 원장은 알란이 100세가 되어 파티를 준비하라고 지시는 했겠지만 그래서 굉장히 큰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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