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가 마가의 기독론적 의도 안에서 주도적이지는 않지만, 복음서 저자의 신학적 전망 안에서 바디메오의 개인적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사실상 복음서 저자는 10:46-52에서 ‘다윗의 자손’칭호와 길 모티브를 결합하여 자신의 신학적 담론을 보여주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만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에 접근하여 고난의 필연성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그 길을 성취한 유일한 인물이다. 곧 바디메오는 개인적 중요성보다는 길에 동참하는 인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은유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주제어
기독론, 다윗의 자손, 예수, 바디메오
Ⅰ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마가복음에 사용된 ‘다윗의 자손’ 칭호에 관련된 연구이다. 신약연구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에 관련된 다양한 질문들이 있지만, 논문은 오직 마가복음에 나타난 ‘다윗의 자손’ 칭호와 그 기능에만 집중할 것이다. 폐린(N. Perrin)은 마가복음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의 기능에 대한 확고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Norman Perrin, \"The Christology of Mark: A Study in Methodology(1971, 1974), \" the interpretation of Mark, Issues is religion and Theolog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95-108.
이는 마가복음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는 바디매오 이야기 (막 10:46-52)에서 직접적으로 두 번 사용 되었으며, ‘다윗의 자손’ 칭호의 개념으로서 나타나는 곳도 두 번(막 11:1-11; 12:35-37)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빈도수는 ‘다윗의자손’ 칭호의 해석의 어려움을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아들 혹은 인자 칭호와 ‘다윗의 자손’ 칭호를 비교했을 때, ‘다윗의 자손’ 칭호는 특별히 마가복음에서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마가복음에서‘다윗의 자손’은 오직 바디매오 이야기에서만 볼 수 있기에 특수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 ‘다윗의 자손’ 칭호는 신약성서에서 11회 사용되고 있는데, 모두가 공관복음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예외적으로 요한계시록 22:16에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로 나타나고 있다 . 그러나 대체적으로 신약학자들은 다윗의 뿌리, 다윗의 씨와 ‘다윗의 자손’ 을 동일한 칭호로 이해하고 있다, 표면상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그러한 칭호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막 10:47: 마22:30(눅 8: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 은 관련된 본문들을 확인함으로서 ‘다윗의 자손’ 칭호의 기능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특별히 ‘다윗의 자손’ 칭호에 관련된 마가의 기독론적 그리고 제자도적 의도를 확인 하면서 마가복음에서 인물 바디매오의 역할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마가는 10:46-52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와 길 모티프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학적 담론을 보여 주고 있다.
Ⅱ ‘다윗의 자손’ 칭호의 역사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기본적으로 의미하는데, 야훼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특별한 책무와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내포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민족주의적 내지 유대적 특성 속에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제사장도 그의 책무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았다(출 28:41); 이스라엘 왕이 되기 위해 다윗도 야훼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이다(삼상 9:16; 24;6) 선지자 역시 책무에 따라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 19:16; 24:6) 심지어 이방나라의 왕도 그의 책무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았다(사 45:1). 이런 다양한 특성들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 메시아인데, 정치적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과 같은 칭호를 포함한다. 유대교 안에서 야훼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왕에 대한 유비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나단의 신탁에 근거하여 볼 때,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된다. 그런 점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는 유대적 이상 곧 다윗 나라의 회복을 가져오는 메시아 칭호는 유대적 이상 곧 다윗 나라의 회복을 가져오는 메시아 칭호의 한 범주에 속한다.
구약성서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나타나지 않지만,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며, 다윗의 나라를 정치적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개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사 11:1; 렘 23:5; 33:15-17; 호 3:5; 암 9;11). 포로기 동안에 메시아는 미래적 왕인 ‘다윗의 자손’으로 묘사되는 특성을 부여 받았다. 이러한 개념은 에스겔에서도 나타난다. 헬라화 된 팔레스타인에서 이 개념은 더욱 활성화된다. 특별히 유대인들의 왕적 메시아사상은 주전 2세기에 마카비 전쟁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팽배했던 사상이다. 메시아사상은 당시 유대인들의 불안정한 시국과 위기감 속에서 발전했다.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이방인 억압자들로부터의 구원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신적으로 약속되고, 기름부음 받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구원사역을 기대했다. 그들은 이 때 완전히 지상적이고 정치적인 존재의 구원사역을 기대했다. 포로기에 파생한 개념인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메시아는 이 시기의 정치적 개념을 메시아 기대사상의 중심에 놓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이방인 지배자로로부터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다윗 나라를 재건할 왕으로서 불의한 이스라엘을 일소하고, 그 땅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일 것이다. (시 2; 72; 렘 23:5-8; 30:8-9; 겔 37:21-23; 슥 3:8-10; 6:12-15;학 2:21-22).
스가랴 9장에서 표현된 평강의 왕도 전적으로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할 인물이다.
특별히 솔로몬의 시편 17장은 ‘다윗의 자손’인 미래의 왕을 그리스도로 칭한다. 솔로몬의 시편은 기원전 1세기에 기록되었다. 솔로몬의 시편은 제2성전시기 유대교의 메시야에 대한 가장 분명한 기록들 중의 하나를 담고 있다.
솔로몬의 시편 17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고 있다. ‘다윗의 자손’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방 민족을 내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가 마가의 기독론적 의도 안에서 주도적이지는 않지만, 복음서 저자의 신학적 전망 안에서 바디메오의 개인적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사실상 복음서 저자는 10:46-52에서 ‘다윗의 자손’칭호와 길 모티브를 결합하여 자신의 신학적 담론을 보여주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만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에 접근하여 고난의 필연성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그 길을 성취한 유일한 인물이다. 곧 바디메오는 개인적 중요성보다는 길에 동참하는 인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은유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주제어
기독론, 다윗의 자손, 예수, 바디메오
Ⅰ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마가복음에 사용된 ‘다윗의 자손’ 칭호에 관련된 연구이다. 신약연구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에 관련된 다양한 질문들이 있지만, 논문은 오직 마가복음에 나타난 ‘다윗의 자손’ 칭호와 그 기능에만 집중할 것이다. 폐린(N. Perrin)은 마가복음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의 기능에 대한 확고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Norman Perrin, \"The Christology of Mark: A Study in Methodology(1971, 1974), \" the interpretation of Mark, Issues is religion and Theolog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95-108.
이는 마가복음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는 바디매오 이야기 (막 10:46-52)에서 직접적으로 두 번 사용 되었으며, ‘다윗의 자손’ 칭호의 개념으로서 나타나는 곳도 두 번(막 11:1-11; 12:35-37)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빈도수는 ‘다윗의자손’ 칭호의 해석의 어려움을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아들 혹은 인자 칭호와 ‘다윗의 자손’ 칭호를 비교했을 때, ‘다윗의 자손’ 칭호는 특별히 마가복음에서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마가복음에서‘다윗의 자손’은 오직 바디매오 이야기에서만 볼 수 있기에 특수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 ‘다윗의 자손’ 칭호는 신약성서에서 11회 사용되고 있는데, 모두가 공관복음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예외적으로 요한계시록 22:16에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로 나타나고 있다 . 그러나 대체적으로 신약학자들은 다윗의 뿌리, 다윗의 씨와 ‘다윗의 자손’ 을 동일한 칭호로 이해하고 있다, 표면상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그러한 칭호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막 10:47: 마22:30(눅 8: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 은 관련된 본문들을 확인함으로서 ‘다윗의 자손’ 칭호의 기능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특별히 ‘다윗의 자손’ 칭호에 관련된 마가의 기독론적 그리고 제자도적 의도를 확인 하면서 마가복음에서 인물 바디매오의 역할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마가는 10:46-52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와 길 모티프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학적 담론을 보여 주고 있다.
Ⅱ ‘다윗의 자손’ 칭호의 역사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기본적으로 의미하는데, 야훼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특별한 책무와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내포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민족주의적 내지 유대적 특성 속에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제사장도 그의 책무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았다(출 28:41); 이스라엘 왕이 되기 위해 다윗도 야훼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이다(삼상 9:16; 24;6) 선지자 역시 책무에 따라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 19:16; 24:6) 심지어 이방나라의 왕도 그의 책무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았다(사 45:1). 이런 다양한 특성들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 메시아인데, 정치적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과 같은 칭호를 포함한다. 유대교 안에서 야훼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왕에 대한 유비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나단의 신탁에 근거하여 볼 때,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된다. 그런 점에서 ‘다윗의 자손’ 칭호는 유대적 이상 곧 다윗 나라의 회복을 가져오는 메시아 칭호는 유대적 이상 곧 다윗 나라의 회복을 가져오는 메시아 칭호의 한 범주에 속한다.
구약성서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나타나지 않지만,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며, 다윗의 나라를 정치적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개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사 11:1; 렘 23:5; 33:15-17; 호 3:5; 암 9;11). 포로기 동안에 메시아는 미래적 왕인 ‘다윗의 자손’으로 묘사되는 특성을 부여 받았다. 이러한 개념은 에스겔에서도 나타난다. 헬라화 된 팔레스타인에서 이 개념은 더욱 활성화된다. 특별히 유대인들의 왕적 메시아사상은 주전 2세기에 마카비 전쟁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팽배했던 사상이다. 메시아사상은 당시 유대인들의 불안정한 시국과 위기감 속에서 발전했다.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이방인 억압자들로부터의 구원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신적으로 약속되고, 기름부음 받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구원사역을 기대했다. 그들은 이 때 완전히 지상적이고 정치적인 존재의 구원사역을 기대했다. 포로기에 파생한 개념인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메시아는 이 시기의 정치적 개념을 메시아 기대사상의 중심에 놓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이방인 지배자로로부터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다윗 나라를 재건할 왕으로서 불의한 이스라엘을 일소하고, 그 땅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일 것이다. (시 2; 72; 렘 23:5-8; 30:8-9; 겔 37:21-23; 슥 3:8-10; 6:12-15;학 2:21-22).
스가랴 9장에서 표현된 평강의 왕도 전적으로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할 인물이다.
특별히 솔로몬의 시편 17장은 ‘다윗의 자손’인 미래의 왕을 그리스도로 칭한다. 솔로몬의 시편은 기원전 1세기에 기록되었다. 솔로몬의 시편은 제2성전시기 유대교의 메시야에 대한 가장 분명한 기록들 중의 하나를 담고 있다.
솔로몬의 시편 17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고 있다. ‘다윗의 자손’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방 민족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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