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 -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 독후감 -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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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평]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 -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 독후감 -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 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고 우리는 빈 병실이 나길 기다렸다. 병원 측은 우리를 완전히 잊어버린 걸까? 병원이 정말 싫었다. 그 냄새도 , 그 소리도,,,,고통과 병, 두려웅, 죽어간다는 것, 그리고 죽음,,,오전은 오후가 되었고,,,오후는 저녁이 되었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영원히 여기에 있어야 할지도?
22시간이 지난 밤 10시에 가까스로 빈 병실이 났다. 나는 아버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아내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아내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불안해했다. 부모님이 떨어져 잠을 잔 적은 2차 대전 때와 둘 중 누군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입원했을 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이튼날 아침, 아버지의 정신이 그정도로 취약한지 나는 미처 몰랐다. 적어도 이렇게 심각한 혼란의 모습은 없었다. 그 아파트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머물 수도 없었다. 내 아이들이 코네티컷 집에 있었으니까. 나는 아버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 집으로, 나와 함께.
<제7장 선다우닝> 어머니는 급성게실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어머니를 2주 동안 병원에 입원시켰다. 항생제를 투여했고 통증 때문에 모르핀을 처방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내가 잠시 그렸던 플로런스 나이팅게일 같은 이미지, 노령의 부모님을 행복하게 모시는 헌진적이고 참을성 있으며 상냥하고 부모를 잘 보살피는 자식의 이미지는 한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철저히 파괴되었다. 아버지를 서서히 갉아먹던 노인성 치매는 나늘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아버지는 어느새 진짜 수다쟁이, 비합리적 추론의 종결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쉴 새 없는 재잘거림도 나를 거슬렸지만 나를 고문한 것은 통장을 향한 아버지의 집착이었다. (여기서 통장이란 부모님이 이제껏 발급받은 모든 통장들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아침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통장과 관련된 질문 한 두개, 그러고는 다른 주제로 옮겨 가곤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부모님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 이 통장은 부모님에게 수많은 믹서기를 선물해 준 그 계좌들의 통장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은행이 발행한 통장도 많았다.
하지만 해가 질 무렵이면 아버지는 점점 더 광적이 되었다. 양로원에서는 그런 현상을 ‘선다우닝(sundowning)’이라 부른다. 아파트에 침입하여 통장을 훔칠 거라고 아버지가 확신하는 이웃이 있었다. 또한 약한 독일어 억양 때문에 아버지는 그 사람이 숨어 있는 나치라고 판단했다. 아버지가 의심한 이웃은 하필 부모님을 위해 때때로 식료품을 가져다주고 걱정해주던 사람이었다.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무쇠 프라이팬을 내려쳐 말문을 닫게 하는 대신 나는 표지판을 만들었다. 『통장얘기 안 하기』통장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는 표지판을 들곤 했다. 곧바로 멈추지 않으면, 나는 전 세계 공통의 몸짓을 했다. “지금 내 입 지퍼로 잠금”
아버지가 애지중지해서 결코 떼놓지 않던 13번 채널 가방(어머니는 그 가방이 아버지의 ‘애착담요’라고 했다) 이런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모든 일이 중단되었다. 가까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내가 설명을 하면 아버지가 기억해내기는 했다. 그러나 서너 시간이 지나면 아빠와 나는 원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나의 설명이나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구구절절한 설득은 잊히기 마련이었다.
<제8장 한 시대의 종말> 어머니의 퇴원 전날, 나는 아버지를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숨어 있는 나이이자 통장도둑(이란 혐의를 받는) 이웃이 내가 어머니를 데리고 올 때까지 아버지와 같이 있겠다고 자원했다. 어버지를 집에 혼자 두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고 다행히 아버지는 그 이웃에 대한 공포를 잊은 듯했다. 나는 병원에 가서 퇴원과 관련된 온갖 일을 다 처리한 후 환자이송용 소형 밴을 불러 아파트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일을 척척 처리하는 나 자신이 대단히 자랑스러웠다. 한심해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어머니의 퇴원과 연관해 무지막지하게 많은 서류를 처리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부모님을 돌본다는 것은, 내가 손댈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저장해야 함을 뜻했다.
어머니의 퇴원 후 거의 1년 동안 부모님은 아파트에서 머물렀다. 낙상이 몇 번 더 있었으나 심각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체력을 약간 회복했지만 아파트를 나설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소개소를 통해 파트타임 도우미를 고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옷을 입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일으킬 수 없었고, 어머니는 병원에 보내질까 두려운 마음에 응급구조를 요청할 수가 없었다. 이웃을 찾기 위해 방을 나선 아버지는 무슨 연유에선지 건물 안에서 길을 잃었다. 누군가가 아버지를 발견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고 어머니를 바닥에서 일으켜줬다.
<제9장 이사> 브루클린의 다소 후미진 구역에 위치한 시설에 어머니의 친구가 살았다. 셋이서 그곳을 방문해 보자고 어머니가 결정했다. 우리는 그 곳이 ‘그저 어떤지 보기’위해 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설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한 눈에도 우울해 보였다. 찢어진 카펫과 더럽고 벗겨진 벽지, 그리고 늙고 늙은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뇌쇠한, 절뚝거리는, 처량한, 늙은 노인들, 그렇다. 나는 부모님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 무렵 먼 친척이 전화를 해서 아이디어를 냈다. 너희 부모님이 미주리 주를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 하고.. 그의 의도는 좋았지만, 그는 실로 아무것도 몰랐다. 초고령 노인에게는 복도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까지 걷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고된 여정이다. 그 사람은 어떻게 이런 걸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신체 상태는 최고점(25세쯤?)에 이르면 점진적으로 하락한다. 90세가 되면 상황은 훨씬 빠른 속도록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120살까지 살 방법을 찾고 싶다는 이들을 보면 묻고 싶다. “이보세요, 정신이 나갔어요?” 일주일이 안 되어 나는 코네티컷 집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시설을 찾아냈다. 바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모님이 생각을 바꾸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여야 했다. 그곳은 근사하며 깨끗했고, 또 구역질나게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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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4.18
  • 저작시기2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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