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 요
Ⅱ. 서 론
1. 충주의 역사
2. 충주의 전설
1) 가금면에서 온 아들바위 - 주덕면
2) 마당 참나무가 준 벌 - 충주시 연수동
3) 정저리 들 - 충주시 칠금동
4) 형제 바위 - 충주시 용두동
5) 이시미 바위 - 충주시 단월동
6) 상어배미 흰죽배미 - 충주시 호암동
7) 쉰 벙거지 굴 - 충주시 목벌동
8) 청계산 청룡사 - 소태면
9) 자객이 마을 동제 - 소태면
10) 도깨비 가마를 탄 허적 - 소태면
11) 풍류바위와 옥녀 - 엄정면
12) 왕이 쉬어갔던 왕박산 - 산척면
13) 치마벼루와 며느리 소 - 동량면
14) 애달픈 정생원골 - 동량면
15) 중국에서 가져온 지팡이 - 금가면
16) 원한의 중종골 - 금가면
17) 신통력으로 쌓은 김생제방 - 금가면
18) 평강 채씨네 거북돌 - 가금면
19) 목계 솔밭 - 가금면
20) 지네와 독사의 싸움 - 앙성면
21) 부처 바위 - 앙성면
22) 상여 바위 - 신니면
23) 팔봉의 귓돌 바위 - 이류면
3. 충주 방언의 특징
1) 음운
① 자음체계
② 모음체계
2) 문법
3) 어휘
Ⅲ. 결 론
■ 참고문헌
◆ 충주 방언 정리 자료 - 로마자 표기
Ⅱ. 서 론
1. 충주의 역사
2. 충주의 전설
1) 가금면에서 온 아들바위 - 주덕면
2) 마당 참나무가 준 벌 - 충주시 연수동
3) 정저리 들 - 충주시 칠금동
4) 형제 바위 - 충주시 용두동
5) 이시미 바위 - 충주시 단월동
6) 상어배미 흰죽배미 - 충주시 호암동
7) 쉰 벙거지 굴 - 충주시 목벌동
8) 청계산 청룡사 - 소태면
9) 자객이 마을 동제 - 소태면
10) 도깨비 가마를 탄 허적 - 소태면
11) 풍류바위와 옥녀 - 엄정면
12) 왕이 쉬어갔던 왕박산 - 산척면
13) 치마벼루와 며느리 소 - 동량면
14) 애달픈 정생원골 - 동량면
15) 중국에서 가져온 지팡이 - 금가면
16) 원한의 중종골 - 금가면
17) 신통력으로 쌓은 김생제방 - 금가면
18) 평강 채씨네 거북돌 - 가금면
19) 목계 솔밭 - 가금면
20) 지네와 독사의 싸움 - 앙성면
21) 부처 바위 - 앙성면
22) 상여 바위 - 신니면
23) 팔봉의 귓돌 바위 - 이류면
3. 충주 방언의 특징
1) 음운
① 자음체계
② 모음체계
2) 문법
3) 어휘
Ⅲ. 결 론
■ 참고문헌
◆ 충주 방언 정리 자료 - 로마자 표기
본문내용
라도 제발 아버지 본을 받아 착하게 살아 다오.”하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은 상주의 소행으로 봐서는 상종할 사람이 못 되기는 하나 망인의 생전을 생각하고 동민들이 모두 모여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상여를 메고 수리산 꼭대기에 올랐을 때 어디선가 초라한 노승이 나타나더니 상여에 대하여 염불을 하며 극락세계로 가 달라고 인도한 다음 상주를 향해서 “상주님은 지금부터라도 선친의 뜻을 따라 마음씨를 고쳐야 합니다.”하고 충고를 하였다.
그러자 상주는 네가 무엇인데 여럿이 있는 데서 사람을 모독하느냐며 가지고 있던 상장으로 중을 마구 때리니 견디다 못한 노승은 자리를 피하면서 “이런 놈은 후세를 위하여 천추의 교훈거리를 만들어 주어야겠소.” 하더니 하늘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무슨 주문을 외워대고 있었다. 때 마침 상여부근에 보라 빛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상여와 그 앞에 서있던 상주가 그대로 바윗돌로 굳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지금까지도 불노장수와 축액초복을 비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23) 팔봉의 귓돌 바위 - 이류면
이류면 팔봉마을에서 수주 쪽으로 약500m쯤 올라가면 한강 유역에서 물에 잠긴 바위로서는 제일 크다는 바위가 있는데 귓돌바위라고 부르며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조선 중엽 충주에 사는 사대부집 마님이 모든 것을 갖추어 부러움 없이 살고 있었지만 슬하에 자손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하루는 시주를 청하러 온 노승을 보고 시주는 후하게 올릴 터이니 자손을 둘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노승은 지성만 있으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며 명산대천을 찾아 백일기도를 올리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며 팔봉을 찾아 가 보도록 권유하였다. 마님은 백일간의 채비를 차리고 팔봉을 찾아가 그 날부터 제단을 모으고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팔봉 심산유곡에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무아의 경지에서 지성을 다할 뿐이었다. 드디어 백일이 되던 날 산신령이 나타났다. 마님은 놀라 고개를 숙이고 큰절을 하였다. 산신령은 말하기를 “이 길로 저 강가에 가면 물에 잠긴 큰 바위가 있을 것인즉 내가 주는 이 밤 한 톨을 가지고 가서 마음속에 귀동자든 선녀든 빌면서 바위 덕 위에 던져보시오. 바위 위에 멎으면 소원이 성취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백일기도를 새로 시작해야 됩니다.”하고 사라졌다.
마님은 지성은 다했지만 밤톨을 강 속에 있는 돌 위에 올려놓기란 어려운 일이라 마음을 설레며 강가로 향했다. 과연 바위가 있었다. 마님은 마음속으로 귀동자를 그리며 바위 덕을 향하여 던지니 신기하게도 밤톨은 던져진 자리에 멎어 있었다.
마님은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며 큰 절을 한 다음 다시 충주로 돌아왔는데 그 후 귀동자를 낳게 되어 가문을 계승하게 되었다 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자손 못 둔 사람들이 찾아와 지성을 올리고 밤 대신 돌을 던지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귓돌바위란 뜻은 귀동바위란 말에서 와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3. 충주 방언의 특징
흔히 충주 말의 특징을 말하라고 하면 흔히 충주가 위치한 충청도식의 ‘느리고 길게 빼는 것’과 존칭의 종결어미 ‘-유’, 그리고 대답할 때의 감탄사 ‘야’ 정도 일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맞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충주의 말이 다른 지역의 말과 특징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현재로서는 충주 방언만의 특징이나 성격을 기술하는 것은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인접 방언과 공통점이 많아 그들 방언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지역 방언에 대하여 전반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이 절에서는 지금까지 충주 방언 연구에서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충주 방언의 음운론적 성격, 충주 방언의 문법적인 성격, 충주 방언의 어휘적인 성격 등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음운
충주 방언에 대한 초창기의 연구는 小倉進平과 河野六郞에 의해 이루어졌고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일환이어서 충주 방언만을 다룬 것이 아니었으며, 주제도 주로 국어사와 관련된 것들로 음성학 내지 음운론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충주 방언을 포괄하는 충청도 방언을 인정하려는 시도가 보이나 충주 방언을 독자적으로 인정하고 이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방언 특징을 서술한 업적은 최근의 일이다. 이와 같이 충주 방언에 대한 관심이 다른 방언에 대해서 보다 적었던 이유는 이 방언이 서울권에 가까워 별다른 방언적 특징을 찾기가 어려우리라는 선입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① 자음체계
충주 방언은 다른 여타 중부 방언과 마찬가지로 어두와 어중의 위치에서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ㄸ, ㅃ, ㅆ, ㅉ/ 등 19개의 자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자음 가운데 /ㄹ/이나 /ㅇ/이 어두에 오기 어렵다든가 /ㄸ, ㅃ, ㅉ/등의 자음이 음절말 위치와 어말 위치에 쓰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분포상의 제약도 다른 중부방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잠정적으로 중부 방언에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방언을 포함시키고, 남부방언권에 경상도, 전라도 방언을 포함시킨다.
자음 동화는 선행 형태소의 끝 자음과 후행 형태소의 첫 자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충주 방언도 다른 방언의 그것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자음동화 현상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현상이며 국어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인 비음화는 선행 형태소의 끝 자음인 장애자음이 후행 형태소의 첫 자음인 비자음에 의해 비자음으로 동화되는 역해동화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비음화는 노년층과 젊은 층 사이에 얼마간의 차이가 있다.
(1) ㄱ. 죽만 → 중만, 갓만→ 간만, 삽만 → 삼만
젖만 → 전만, 꽃만 → 꼰만, 밑만 → 민만
부엌만 → 부엉만, 앞만 → 암만
ㄴ. 죽는다 → 중는다, 닫는다 → 단는다, 웃는다 → 운는다
잡는다 → 잠는다, 꽂는다 → 꼰는다, 찾는다 → 찬는다
엎는다 → 엄는다, 쌓는다 → 싼는다, 깎는다 → 깡는다
(2) ㄱ. 읽는다 → 잉는다, 긁는다 → 끙는다, 얽는다 → 엉는다
밟는다 → 밤는다,
마을 사람들은 상주의 소행으로 봐서는 상종할 사람이 못 되기는 하나 망인의 생전을 생각하고 동민들이 모두 모여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상여를 메고 수리산 꼭대기에 올랐을 때 어디선가 초라한 노승이 나타나더니 상여에 대하여 염불을 하며 극락세계로 가 달라고 인도한 다음 상주를 향해서 “상주님은 지금부터라도 선친의 뜻을 따라 마음씨를 고쳐야 합니다.”하고 충고를 하였다.
그러자 상주는 네가 무엇인데 여럿이 있는 데서 사람을 모독하느냐며 가지고 있던 상장으로 중을 마구 때리니 견디다 못한 노승은 자리를 피하면서 “이런 놈은 후세를 위하여 천추의 교훈거리를 만들어 주어야겠소.” 하더니 하늘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무슨 주문을 외워대고 있었다. 때 마침 상여부근에 보라 빛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상여와 그 앞에 서있던 상주가 그대로 바윗돌로 굳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지금까지도 불노장수와 축액초복을 비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23) 팔봉의 귓돌 바위 - 이류면
이류면 팔봉마을에서 수주 쪽으로 약500m쯤 올라가면 한강 유역에서 물에 잠긴 바위로서는 제일 크다는 바위가 있는데 귓돌바위라고 부르며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조선 중엽 충주에 사는 사대부집 마님이 모든 것을 갖추어 부러움 없이 살고 있었지만 슬하에 자손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하루는 시주를 청하러 온 노승을 보고 시주는 후하게 올릴 터이니 자손을 둘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노승은 지성만 있으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며 명산대천을 찾아 백일기도를 올리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며 팔봉을 찾아 가 보도록 권유하였다. 마님은 백일간의 채비를 차리고 팔봉을 찾아가 그 날부터 제단을 모으고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팔봉 심산유곡에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무아의 경지에서 지성을 다할 뿐이었다. 드디어 백일이 되던 날 산신령이 나타났다. 마님은 놀라 고개를 숙이고 큰절을 하였다. 산신령은 말하기를 “이 길로 저 강가에 가면 물에 잠긴 큰 바위가 있을 것인즉 내가 주는 이 밤 한 톨을 가지고 가서 마음속에 귀동자든 선녀든 빌면서 바위 덕 위에 던져보시오. 바위 위에 멎으면 소원이 성취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백일기도를 새로 시작해야 됩니다.”하고 사라졌다.
마님은 지성은 다했지만 밤톨을 강 속에 있는 돌 위에 올려놓기란 어려운 일이라 마음을 설레며 강가로 향했다. 과연 바위가 있었다. 마님은 마음속으로 귀동자를 그리며 바위 덕을 향하여 던지니 신기하게도 밤톨은 던져진 자리에 멎어 있었다.
마님은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며 큰 절을 한 다음 다시 충주로 돌아왔는데 그 후 귀동자를 낳게 되어 가문을 계승하게 되었다 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자손 못 둔 사람들이 찾아와 지성을 올리고 밤 대신 돌을 던지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귓돌바위란 뜻은 귀동바위란 말에서 와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3. 충주 방언의 특징
흔히 충주 말의 특징을 말하라고 하면 흔히 충주가 위치한 충청도식의 ‘느리고 길게 빼는 것’과 존칭의 종결어미 ‘-유’, 그리고 대답할 때의 감탄사 ‘야’ 정도 일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맞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충주의 말이 다른 지역의 말과 특징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현재로서는 충주 방언만의 특징이나 성격을 기술하는 것은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인접 방언과 공통점이 많아 그들 방언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지역 방언에 대하여 전반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이 절에서는 지금까지 충주 방언 연구에서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충주 방언의 음운론적 성격, 충주 방언의 문법적인 성격, 충주 방언의 어휘적인 성격 등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음운
충주 방언에 대한 초창기의 연구는 小倉進平과 河野六郞에 의해 이루어졌고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일환이어서 충주 방언만을 다룬 것이 아니었으며, 주제도 주로 국어사와 관련된 것들로 음성학 내지 음운론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충주 방언을 포괄하는 충청도 방언을 인정하려는 시도가 보이나 충주 방언을 독자적으로 인정하고 이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방언 특징을 서술한 업적은 최근의 일이다. 이와 같이 충주 방언에 대한 관심이 다른 방언에 대해서 보다 적었던 이유는 이 방언이 서울권에 가까워 별다른 방언적 특징을 찾기가 어려우리라는 선입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① 자음체계
충주 방언은 다른 여타 중부 방언과 마찬가지로 어두와 어중의 위치에서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ㄸ, ㅃ, ㅆ, ㅉ/ 등 19개의 자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자음 가운데 /ㄹ/이나 /ㅇ/이 어두에 오기 어렵다든가 /ㄸ, ㅃ, ㅉ/등의 자음이 음절말 위치와 어말 위치에 쓰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분포상의 제약도 다른 중부방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잠정적으로 중부 방언에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방언을 포함시키고, 남부방언권에 경상도, 전라도 방언을 포함시킨다.
자음 동화는 선행 형태소의 끝 자음과 후행 형태소의 첫 자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충주 방언도 다른 방언의 그것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자음동화 현상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현상이며 국어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인 비음화는 선행 형태소의 끝 자음인 장애자음이 후행 형태소의 첫 자음인 비자음에 의해 비자음으로 동화되는 역해동화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비음화는 노년층과 젊은 층 사이에 얼마간의 차이가 있다.
(1) ㄱ. 죽만 → 중만, 갓만→ 간만, 삽만 → 삼만
젖만 → 전만, 꽃만 → 꼰만, 밑만 → 민만
부엌만 → 부엉만, 앞만 → 암만
ㄴ. 죽는다 → 중는다, 닫는다 → 단는다, 웃는다 → 운는다
잡는다 → 잠는다, 꽂는다 → 꼰는다, 찾는다 → 찬는다
엎는다 → 엄는다, 쌓는다 → 싼는다, 깎는다 → 깡는다
(2) ㄱ. 읽는다 → 잉는다, 긁는다 → 끙는다, 얽는다 → 엉는다
밟는다 → 밤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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