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했다.
양지는 신기하고 괴이하여 남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많았다. 한편으론 여러 가지 기예(技藝)를 통달하고 있어 신묘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또 붓으로 그림을 잘 그려 영묘사(靈廟寺)의 장륙삼존(丈六三尊), 천왕상(天王像)과 전탑(殿塔의) 기와와 천왕사(天王寺탑)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主佛三尊), 좌우금강신(左右金剛神) 등이 모두 그가 만들고 그린 것이다.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懸板)을 썼으며, 또 일직히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부처 3천 개를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셔두고 지극 정성으로 공경했다. 그가 영묘사의 장륙상(丈六像)을 만들 때 선(禪)의 경지에 푹 빠져 잡념이 제거된 상태에서 주무르고 문질러 만듦으로 온 성안의 남자와 여자들이 다투어 진흙을 날랐다. 그때 남녀들이 읊은 풍요는 이렇다. (…)
지금도 시골 사람들이 방아를 찧을 때나 일할 때에 모두 이 노래를 부르니 대개 이때 시작된 것이다. 일연(장백일 역해), 『삼국유사』, 하서출판사, 2002. pp. 366~367.
2. 자신의 감상 관점에 따른 주제
- 인생의 인과적 윤회를 지성스런 공덕을 닦아서 바꾸자.
3. 「풍요(風謠)」의 기존의 연구
1) 재창작성
「풍요」의 작가가 양지라는 점에 거의 이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헌영 지헌영, 앞의 글.
이래로, 「풍요」의 관련 문맥을 믿을 수 있는가, 거의 500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변이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풍요」가 가진 민요성 등에서, 「풍요」의 작가는 양지가 아니라, 일연이거나 그 이전의 어느 불승인데, 일연이 자신 또는 그 이전의 불승을 양지로 가탁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유종국, 「풍요론」, 『국어국문학』, 103호, 국어국문학회, 1990. pp. 56~59.
이 논의들은 「풍요」의 작가 문제와 작품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임기중 외, 『새로 읽는 향가문학』, 아세아문화사, 1998. pp. 46~47.
「풍요」의 재창작성의 문제에 관한 것은 양희철의 논문 내용을 싣기로 한다.
① 방아타령류의 재창작
「풍요」가 속한 관련 설화를 보면, 「풍요」가 사녀들이 진흙을 나르는 데서 불리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현전 「풍요」는 그 당시에 사녀들이 부른 바로 그것인가가 문제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사녀들이 부른 ‘풍요’는 현전 「풍요」와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동요의 민요(풍요)는 불교적 색채가 거의 없으며, 회문체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녀들이 불렀을 것으로 추측되는 풍요는 세 측면에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저 현장에서 참여한 사녀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노래되고 있었던 노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현전「풍요」풍요의 시어이며, 마지막의 하나는 일연이 ‘지금토인 용상역작 개용지 개시우차’라고 진술할 정도로 현전「풍요」와 비슷한 노동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 측면들을 종합하여 추측하면, 저 노동 현장에서 「풍요」에 앞서 불려졌던 노동요는 방아타령류의 어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녀(여자들)가 가장 잘 아는 노동요의 하나가 방아타령류이고,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현전 「풍요」의 시어에 방아타령류의 시어와 통하는 ‘功德’ 김준영, 『향가문학』, 형설출판사, 1979. p. 136. ‘방아소리의 의성어 쿵덕’,
이 있으며, 현전 「풍요」는 일연이 그 당시의 방아찧기에 사용된 방아타령류와 비견시킬 정도로 방아타령류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현전 「풍요」는 방아타령류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박전열, 「풍요상저가방아타령의 전승연구」, 『난사 석주선박사 고희기념 민속학논총Ⅱ』, 동간행위원회, 1982. p. 122.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본 변강회가의 방아타령과 비교하여 ‘오다 오다’ ‘동무덜’의 유사점을 들고 있다.
이렇게 현전 「풍요」에 앞서 불리어진 노동요가 방아타령류의 어느 하나라 정리하고 나면, 바로 그 노동요를 「풍요」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장륙존을 조성하기 위해 진흙을 나르는 행위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해야 할 성스런 불사이다. 이에 비해 사녀들이 입으로 부르는 도는 불렀다는 민요 방아타령류의 어느 하나는 성스런 불사와 정반대로 생각되는 성욕 또는 성적 묘사를 직접 표현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다. 방아타령류가 성욕 또는 성적 묘사와 관련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방아공이와 방아확이 또는 절구와 절구통이 남녀의 성기를 상징하고, 방아
양지는 신기하고 괴이하여 남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많았다. 한편으론 여러 가지 기예(技藝)를 통달하고 있어 신묘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또 붓으로 그림을 잘 그려 영묘사(靈廟寺)의 장륙삼존(丈六三尊), 천왕상(天王像)과 전탑(殿塔의) 기와와 천왕사(天王寺탑)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主佛三尊), 좌우금강신(左右金剛神) 등이 모두 그가 만들고 그린 것이다.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懸板)을 썼으며, 또 일직히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부처 3천 개를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셔두고 지극 정성으로 공경했다. 그가 영묘사의 장륙상(丈六像)을 만들 때 선(禪)의 경지에 푹 빠져 잡념이 제거된 상태에서 주무르고 문질러 만듦으로 온 성안의 남자와 여자들이 다투어 진흙을 날랐다. 그때 남녀들이 읊은 풍요는 이렇다. (…)
지금도 시골 사람들이 방아를 찧을 때나 일할 때에 모두 이 노래를 부르니 대개 이때 시작된 것이다. 일연(장백일 역해), 『삼국유사』, 하서출판사, 2002. pp. 366~367.
2. 자신의 감상 관점에 따른 주제
- 인생의 인과적 윤회를 지성스런 공덕을 닦아서 바꾸자.
3. 「풍요(風謠)」의 기존의 연구
1) 재창작성
「풍요」의 작가가 양지라는 점에 거의 이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헌영 지헌영, 앞의 글.
이래로, 「풍요」의 관련 문맥을 믿을 수 있는가, 거의 500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변이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풍요」가 가진 민요성 등에서, 「풍요」의 작가는 양지가 아니라, 일연이거나 그 이전의 어느 불승인데, 일연이 자신 또는 그 이전의 불승을 양지로 가탁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유종국, 「풍요론」, 『국어국문학』, 103호, 국어국문학회, 1990. pp. 56~59.
이 논의들은 「풍요」의 작가 문제와 작품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임기중 외, 『새로 읽는 향가문학』, 아세아문화사, 1998. pp. 46~47.
「풍요」의 재창작성의 문제에 관한 것은 양희철의 논문 내용을 싣기로 한다.
① 방아타령류의 재창작
「풍요」가 속한 관련 설화를 보면, 「풍요」가 사녀들이 진흙을 나르는 데서 불리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현전 「풍요」는 그 당시에 사녀들이 부른 바로 그것인가가 문제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사녀들이 부른 ‘풍요’는 현전 「풍요」와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동요의 민요(풍요)는 불교적 색채가 거의 없으며, 회문체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녀들이 불렀을 것으로 추측되는 풍요는 세 측면에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저 현장에서 참여한 사녀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노래되고 있었던 노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현전「풍요」풍요의 시어이며, 마지막의 하나는 일연이 ‘지금토인 용상역작 개용지 개시우차’라고 진술할 정도로 현전「풍요」와 비슷한 노동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 측면들을 종합하여 추측하면, 저 노동 현장에서 「풍요」에 앞서 불려졌던 노동요는 방아타령류의 어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녀(여자들)가 가장 잘 아는 노동요의 하나가 방아타령류이고,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현전 「풍요」의 시어에 방아타령류의 시어와 통하는 ‘功德’ 김준영, 『향가문학』, 형설출판사, 1979. p. 136. ‘방아소리의 의성어 쿵덕’,
이 있으며, 현전 「풍요」는 일연이 그 당시의 방아찧기에 사용된 방아타령류와 비견시킬 정도로 방아타령류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현전 「풍요」는 방아타령류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박전열, 「풍요상저가방아타령의 전승연구」, 『난사 석주선박사 고희기념 민속학논총Ⅱ』, 동간행위원회, 1982. p. 122.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본 변강회가의 방아타령과 비교하여 ‘오다 오다’ ‘동무덜’의 유사점을 들고 있다.
이렇게 현전 「풍요」에 앞서 불리어진 노동요가 방아타령류의 어느 하나라 정리하고 나면, 바로 그 노동요를 「풍요」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장륙존을 조성하기 위해 진흙을 나르는 행위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해야 할 성스런 불사이다. 이에 비해 사녀들이 입으로 부르는 도는 불렀다는 민요 방아타령류의 어느 하나는 성스런 불사와 정반대로 생각되는 성욕 또는 성적 묘사를 직접 표현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다. 방아타령류가 성욕 또는 성적 묘사와 관련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방아공이와 방아확이 또는 절구와 절구통이 남녀의 성기를 상징하고, 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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