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학교 언더우드 학당의 교육사와 교육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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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신학교 언더우드 학당의 교육사와 교육 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언더우드의 성장 과정 및 한국 선교
*언더우드학당
1. 학당의 개설준비
2. 최초의 학교명칭
3. 학당의 개설 예배
4. 고아를 모아들인 원두우
5. 최초의 교과목
*예수교학당
1. 학당장의 입성과 한국어 공부
2. 교육목표와 이념
3. 생활교육의 실현
4. 다양한 교과과정
5. 입학연령과 수업연한
*민로아학당
1. 교육목적과 실업교육
*연못골 선교 언덕
*예수교 중학교의 개설
*성경 및 다양한 교과목
*교명을 확정
*교표 ․ 교기 ․ 뱃지를 제정
*경신소학교
*연합교육을 시도<합성중학교>
*한일합방 전후의 교육정책
*조선선교연합회의 교육정책
*경신 수공부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
*교훈을 제정<자유 ․ 평등 ․ 박애>
*교가를 개정
*자유교육 이념의 고취
*여성교육운동
*선교교육의 사회적 기여와 반성

본문내용

본교에서 공과와 야학과를 부설하고 염직공업에 관한 제반 학리(學理)와 기술을 교수하오니 입학을 원하는 학원을 별지규칙에 규정에 의하여 최속히 청원서를 제정(提呈)함을 요함
모집기한: 12월2일까지 정함
입학시험: 12월4일 하오 1시에 본교강당에서 실시함
시험과목: 산술대수기하물리화학
개학일자: 12월 6일
1911년11월23일
경성동부연동 사립 경신학교 백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는 문자 그대로 남매지간이었다. 미국 북 장로교회에서 각기 세운 남녀학교이기 때문에 감리교의 배재이화처럼 오누이였다.
1887년 봄기운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언더우드학당에 고아 몇 명이 또 들어왔다. 여느 때와 같이 목욕을 시킨 다음 새바지 저고리를 맞게 지어 입히고 머리를 곱게 빗어 땋아 주었다. 그런데 목욕과정에서 한 아이가 여자임을 발견하고 원두우 학당장은 기겁을 했다. 곧바로 제중원 여의사 앨리스(A. Ellers)가 거주하는 옆입으로 보내 정동여학당의 첫 걸음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정신백년사>(109쪽)는 “1887년 6월 앨러스는 정동소재의 제중원 사택에서 한 명의 고아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얼마 안가서 그 해 겨울에는 3명으로 늘었다. 이것이 정동여학당의 시초이고……” 또한 113쪽에는 “앨러스 양은 제중병원에서 1887년 6월 다섯 살 난 어린 여자애 정례(후일 이임순 어머니)를 사택 안에 데리고 와서 글을 가르치기 시장했다. 언더우드 박사의 경비로 뒷받침이 튼튼했다. 부모가 없는 애를 데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개화기에 한 쌍의 꽃을 피운 언더우드학당과 정동여학당은 남녀의 구별 때문에 갈라져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년 간, 신교육과 기독교의 뿌리를 정동에 내리더니 두 학교는 앞을 다투어 연지동으로 옮겨와 남학교는 예수교중학교, 여학교는 연동여학교로 개명하고 연지동시대의 황금기를 시작했다.
두 학교 사이의 골목길 위에 실제적 맥을 잇는 구름다리(육교)가 놓여져 오갔다. 한편 남학교 동남쪽에 연동교회가 있어 교회를 중심으로 경신남소학교와 정신여소학교를 운영하는 등 40여 년 간, 동고동락하여 일제말엽까지 종교적 교육적 족보적 연정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교훈을 제정<자유 평등 박애>
1913년에 취임한 군예빈 교장은 취임과 더불어 설립이념과 그의 교육철학에 바탕을 둔 교육목표와 취지를 심사숙고하였다.
경신학교는 창설당시 기독교 포교(捕校)에 교육목표를 두었고 차츰 학교로서의 체제를 갖춘 뒤에도 「자기 동족들에게 진리를 간증하게 할 전도사와 교사를 양성」하는데 교육목표를 두었다. 그 후 선교사들에 의해 제 7대 교장에 이르기 까지 미국 북 장로교의 선교이념에 따라 교육사업에 이 정신을 고수되어 왔었는데 마침내 제 8대 군예빈 교장에 이르러 명실공히 교육적인 교훈이 제정되었다.
교육이념은 국체(國體)를 다스리는 헌법정신과 유사하게 교육현장에 직결되는 것으로 한일합방 이후 한국의 국세가 날로 위태로워짐에 따라 도도히 식민지화하려는 일제의 침략적 정책에 맞서「자유 평등 박애」를 교훈으로 삼아 교육방향을 제시하였다. 당시는 교훈을 교지(矯旨)라 하였는데 이는 교육이념을 간단하게 표현한 표어라 하겠으니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自由)
자유의 개념은 첫째로, 구속으로부터 해방이라고 하는 객관적 내지 사회적인 자유, 둘째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자기자각의 주관적 내지 개인적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전자는 정치적 경제적 생활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일제의 통치와 봉건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이며 후자는 형이상학적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교육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학생으로 하여금 심신의 발달을 조장하여 완성된 인간을 구현하는 자유이다.
이와 같은 두 자유를 보다 높은 곳에 두어 종합실천하는 참 뜻의 자유를 교지의 첫 항목으로 잡는 것이다. 또한 이 자유는 경신학교의 창립취지가 기독인의 양성이 있으니 만큼 자연 기독교 사상에서 연유된 교지의 하나라 하겠다. 즉 자유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위주로 한 온갖 법칙을 실현하는 원동력이 되므로 거듭날 수 있는 자유, 개혁할 수 있는 자유,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유, 합리적 사고의 자유, 죄악에 복종치 않는 자유, 행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평등(平等)
「주인과 노예의 차별은 민족적사회적 차별보다도 그 사람이 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가 어떤가에 의한다」고 한 스토아(Stoa) 학설에 의하여도 윤리상의 근본개념인 이 평등은 자유의 연장을 뜻한다. 또한 평등은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당 하나는 천지만유의 차별 없는 등급, 곧 진여(眞如)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특권의 철폐와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국가적정치적종교적사회생활의 수평화이며 인간의 상위없는 인권을 수립인 것이다. 이는 근대에 이르러 민주 내지 입헌정치의 기원을 형성한 근본원칙으로서 민주주의와 같은 의미로도 쓰여지고 있어, 범세계적인 균등을 목적으로 하는 가운데 역시 당면한 봉건적 불평등의 배제(排除)와 국권인권 내지 종교교육의 평등화를 교지의 항목으로 택한 것이다.
박애(博愛)
공리적인 겸애가 아니고 보상 없는 무조건의 사랑을 의미하는 이 박애는 그리스도의 대표적 교훈인 사랑에 비롯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무차별적 박애로써 인종과 민족, 혹은 국가를 초월하였거니와 그의 산상수훈(山上垂訓: 마태복음 5~7장)에서도 역설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인종적 편견이나 국가적 이기심을 버리고 인류전체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전 인류가 평등하게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하는 박애정신을 교지로 삼는 것이다.
이상 심오한 사상에 근간을 둔 상호 유대성있는 자유 평등 박애의 교육이념은 일제 통치하에 경신학교만이 표방한 교훈인 동시에 나아가 국가 내지 민족의 주지(主旨)로서 봉건타파 독립운동 복음전파 인재양성 등에 걸쳐 혁혁한 교육목적을 달성하였다.
교가를 개정
* 두 번째 교가(1913~1922)
작사 최남선
작곡 김인식
1. 귀하고 귀하다 네 일홈 귀하다 일어나 노래하셰
경신학교의 높흔 일홈이 반도 안에 뛰어나니
억천만년 무궁토록 네 일홈을 기리 노래하겠네
2. 밋브고 밋브다 네 일홈 밋브다 일어나 노래하셰
밋음터 우에 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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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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