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공리주의의 태동 배경.
Ⅱ.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Ⅲ.밀의 질적 공리주의
Ⅳ.의의와 한계
Ⅴ.교대와 공리주의.
Ⅵ.공리주의의 교육.
Ⅱ.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Ⅲ.밀의 질적 공리주의
Ⅳ.의의와 한계
Ⅴ.교대와 공리주의.
Ⅵ.공리주의의 교육.
본문내용
이 아버지의 입장을 조금 자세하게 제시하겠다. 그것은 영식이 아버지의 집의 위치로봐서는 자기 논의 둑을 쌓아 올리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더 이득이 될 거라는 것이다. 반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개울둑을 높이 쌓는다면 영식이 아버지의 입장에선 손해일지 모르나 마을 전체적으로 봤을 땐 이득이 될거라는 상황을 인지 시켜주고,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주도록 하겠다.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다수가 이득이 되는 행동이 더 바람직한 행동임을 알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소수의 행복을 다수의 행복이란 명목으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것은 잘 못 된 행위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교과서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공리주의적 입장,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바람직한것임을 교육하지만, 사실 소수의 의견도 무시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알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게 하고, 대다수가 공리주의적 입장을 택한다면, 교사가 소수의 의견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토론을 통해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면서, 다수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이 존재 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불가피한 손해를 소수의 마을 주민이 봐야한다면, 다수가 소수를 위한 지원을 하는 방법을 통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참다운 공리주의의 모습임을 알게 해주고 싶다.
Ⅶ.마치며
우리가 마주치는 매순간은 어쩌면 항상 윤리적인 고민의 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경우들에서도 학교에서, 사회에 나가서도 우리가 원하는 개인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도 항상 고려해야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 항상 사회의 이익을 위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개인적인 행복은 언제나 포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공리주의의 입장에선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과 느낌, 그 모든 것이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확히 수량화된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개인마다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행복만큼 타인의 행복도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때 공리주의가 바라는 참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실현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Ⅶ.마치며
우리가 마주치는 매순간은 어쩌면 항상 윤리적인 고민의 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경우들에서도 학교에서, 사회에 나가서도 우리가 원하는 개인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도 항상 고려해야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 항상 사회의 이익을 위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개인적인 행복은 언제나 포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공리주의의 입장에선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과 느낌, 그 모든 것이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확히 수량화된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개인마다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행복만큼 타인의 행복도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때 공리주의가 바라는 참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실현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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