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들어가며
II. 요약 및 서평
III. 나가면서
II. 요약 및 서평
III. 나가면서
본문내용
5. 생명의 주기 (사순절과 부활절)
사순절은 40일의 신앙의 여정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는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세레 후 성령에 의해 광야로 이끌림 받아 40일의 시험을 받으시는 고난을 연상하게 한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시고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때 40일은 구속사적의미를 지닌다. 즉 하나님의 때를 위한 기다림의 준비의 시간이다. 이때 많은 교회가 소이 ‘특별새벽기도회’를 열고 그 고난을 기억하며 기도한다. 금식을 하기도 하면서 예수께서 광야에서 전적으로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마음으로 금식을 한다. 이때 회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위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는 사순절을 순전하게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다. 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립하게 하기 때문이다.
부활절까지의 40일간의 사순절 기간은 철저히 금식과 회개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해서 부활의 극적인 사건을 제일 가깝게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를 준비하기엔 고난의 한 주간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그 기간을 점점 늘려갔다. 이러므로 최적의 영적 순례기간을 만들어냈다.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와는 너무 비교가 된다. 교회 사정과 행사마다 사순절 기간을 며칠 또는 심하게는 하루만 지키기도 하고 특별새벽기도인데 그 주제는 전혀 사순절과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사순절은 귀찮고 형식적인 기간이 되어버렸다. 초대교회는 이 기간을 통해 다시금 세상 속에서 말씀으로 버텨 나가야할 정체성을 확립했다. 즉 영적 힘을 얻는 기간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영적 자양분을 듬뿍 받을 것을 기대하며 부활의 그날을 소망하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 “닐 알렉산더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예배공동체에서 괴리감이 나타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예배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이해와 신앙공동체의 본질 사이에 괴리감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현대 교회의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로 경고하고 있다.” 박해정, 「빛을 따라 생명으로」, 173
6. 성령강림절과 그 이후 및 주일예배
제일 먼저 생겨난 절기인 주일은 작은 부활절로서 지켜졌다. 그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큰 틀에서 교회력의 기준은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그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회는 하루에 부활절을 행사로서 지기 때문에 이 부분을 놓치고 만다. 50일의 기쁨의 부활절 후엔 성령강림절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후의 비절기 기간의 주일들은 작은 부활절로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역 그리고 그 성품을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가진다. 부활절을 기점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에 초점을 두고, 부활절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집중하며 더욱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숙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렇게 모든 예배가운데 그리스도의 중심성이 결여된다면, 예배의 본질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성찬과 세례, 더나아가서는 교회력과 성서정과 등의 도구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교회는 지극히 목회자 중심의 설교로 나아가면서, 예배의 각 순서와 성례를 축소화 하여 예배의 참됨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예배의 형식이 자유화를 통해 ‘소비중심 주의’가 그리고 ‘인간중심 주의’가 예배 안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님께 영광되는 예배가 변질되었다. 전혀 예전적이지 않으며 교회력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대예배 속에서 예전적 요소를 살리며 복음적 예배를 구현하려는 노력 또한 있었다. 로버트 웨버의 ‘고대-미래 예배’모델은 예전과 현대 예배를 조화롭게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방법론은 첫째 예전의 중요성을 강조이다. 곧 성찬과 세례를 두고 교회력에 따른 주제, 즉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의 가르침을 예배를 드렸다. 둘째, 문화와 상관성이 있는 예배를 드린다. 현대의 문화를 예배 안으로 수용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서 셋째, 회중들은 예배에 더욱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였다. 설교자 중심이 아닌 함께 예배를 만들어가며 다양한 감각, 오감을 자극하는 역동적 예배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을 따라 예배를 드린 교회를 ‘이머징 교회’라 불린다. 수세기동안 “교회가 복음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예배를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브라이언 채플,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24.
를 그 예배 예전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머징 교회는 복음중심으로 간다. 즉 고대교회 (초대교회)가 행해온 말씀과 예전, 찬양을 가르치고 교회력의 절기에 따라 현대의 다양한 문화적 수단들들 수용하였다. 그들은 각 때의 따라 특별한 예배를 기획하고 동참하였다. 이런 양상은 충분히 현대교회의 틀 속에서도 예전적 전통을 통해 예배의 본질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III. 나가면서
본서는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를 지향하며, 이를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서 교회력과 성서정과를 제안하고 있다. 참으로 현대교회는 세속의 소비문화를 뒤따라가고 있는 양상이 짙은데 반해서 건강한 예배와 그 정체성을 위해서 교회력과 성서일과는 큰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본서를 읽고 직접적인 적용을 본인 나름의 적용과 경험을 나누는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나 스스로도 실재로 이를 통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사용해보니 큰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력과 성서일과가 당면한 현실은 그렇게 쉽게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이유의 제일 주 요소는 지도자 층의 무지 또는 몰이해일 것이다.
현재 부교역자 생활을 하는 상황에서는 담임목회자로부터 직접적인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오히려 목회자로 말미암아 적용점들이 유실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너무나 아쉽다. 이는 종교개혁자들 이후의 세대의 몰이해의 답습으로 보여진다. 교회력과 성서정과의 큰 유익이 있음에도 이들이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지금 현대교회가 너무나 지속적으로 성찬을 행사용으로만 사용해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글을 맺는다.
사순절은 40일의 신앙의 여정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는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세레 후 성령에 의해 광야로 이끌림 받아 40일의 시험을 받으시는 고난을 연상하게 한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시고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때 40일은 구속사적의미를 지닌다. 즉 하나님의 때를 위한 기다림의 준비의 시간이다. 이때 많은 교회가 소이 ‘특별새벽기도회’를 열고 그 고난을 기억하며 기도한다. 금식을 하기도 하면서 예수께서 광야에서 전적으로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마음으로 금식을 한다. 이때 회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위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는 사순절을 순전하게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다. 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립하게 하기 때문이다.
부활절까지의 40일간의 사순절 기간은 철저히 금식과 회개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해서 부활의 극적인 사건을 제일 가깝게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를 준비하기엔 고난의 한 주간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그 기간을 점점 늘려갔다. 이러므로 최적의 영적 순례기간을 만들어냈다.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와는 너무 비교가 된다. 교회 사정과 행사마다 사순절 기간을 며칠 또는 심하게는 하루만 지키기도 하고 특별새벽기도인데 그 주제는 전혀 사순절과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사순절은 귀찮고 형식적인 기간이 되어버렸다. 초대교회는 이 기간을 통해 다시금 세상 속에서 말씀으로 버텨 나가야할 정체성을 확립했다. 즉 영적 힘을 얻는 기간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영적 자양분을 듬뿍 받을 것을 기대하며 부활의 그날을 소망하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 “닐 알렉산더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예배공동체에서 괴리감이 나타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예배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이해와 신앙공동체의 본질 사이에 괴리감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현대 교회의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로 경고하고 있다.” 박해정, 「빛을 따라 생명으로」, 173
6. 성령강림절과 그 이후 및 주일예배
제일 먼저 생겨난 절기인 주일은 작은 부활절로서 지켜졌다. 그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큰 틀에서 교회력의 기준은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그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회는 하루에 부활절을 행사로서 지기 때문에 이 부분을 놓치고 만다. 50일의 기쁨의 부활절 후엔 성령강림절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후의 비절기 기간의 주일들은 작은 부활절로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역 그리고 그 성품을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가진다. 부활절을 기점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에 초점을 두고, 부활절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집중하며 더욱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숙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렇게 모든 예배가운데 그리스도의 중심성이 결여된다면, 예배의 본질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성찬과 세례, 더나아가서는 교회력과 성서정과 등의 도구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교회는 지극히 목회자 중심의 설교로 나아가면서, 예배의 각 순서와 성례를 축소화 하여 예배의 참됨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예배의 형식이 자유화를 통해 ‘소비중심 주의’가 그리고 ‘인간중심 주의’가 예배 안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님께 영광되는 예배가 변질되었다. 전혀 예전적이지 않으며 교회력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대예배 속에서 예전적 요소를 살리며 복음적 예배를 구현하려는 노력 또한 있었다. 로버트 웨버의 ‘고대-미래 예배’모델은 예전과 현대 예배를 조화롭게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방법론은 첫째 예전의 중요성을 강조이다. 곧 성찬과 세례를 두고 교회력에 따른 주제, 즉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의 가르침을 예배를 드렸다. 둘째, 문화와 상관성이 있는 예배를 드린다. 현대의 문화를 예배 안으로 수용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서 셋째, 회중들은 예배에 더욱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였다. 설교자 중심이 아닌 함께 예배를 만들어가며 다양한 감각, 오감을 자극하는 역동적 예배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을 따라 예배를 드린 교회를 ‘이머징 교회’라 불린다. 수세기동안 “교회가 복음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예배를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브라이언 채플,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24.
를 그 예배 예전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머징 교회는 복음중심으로 간다. 즉 고대교회 (초대교회)가 행해온 말씀과 예전, 찬양을 가르치고 교회력의 절기에 따라 현대의 다양한 문화적 수단들들 수용하였다. 그들은 각 때의 따라 특별한 예배를 기획하고 동참하였다. 이런 양상은 충분히 현대교회의 틀 속에서도 예전적 전통을 통해 예배의 본질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III. 나가면서
본서는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를 지향하며, 이를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서 교회력과 성서정과를 제안하고 있다. 참으로 현대교회는 세속의 소비문화를 뒤따라가고 있는 양상이 짙은데 반해서 건강한 예배와 그 정체성을 위해서 교회력과 성서일과는 큰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본서를 읽고 직접적인 적용을 본인 나름의 적용과 경험을 나누는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나 스스로도 실재로 이를 통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사용해보니 큰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력과 성서일과가 당면한 현실은 그렇게 쉽게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이유의 제일 주 요소는 지도자 층의 무지 또는 몰이해일 것이다.
현재 부교역자 생활을 하는 상황에서는 담임목회자로부터 직접적인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오히려 목회자로 말미암아 적용점들이 유실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너무나 아쉽다. 이는 종교개혁자들 이후의 세대의 몰이해의 답습으로 보여진다. 교회력과 성서정과의 큰 유익이 있음에도 이들이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지금 현대교회가 너무나 지속적으로 성찬을 행사용으로만 사용해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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