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장>-서론
1. 전통문화의 개념
2. 한국 전통문화의 권역
◉<제2장>-신화
1. 신화와 원형
2. 단군신화와 그 원형
3. 한국의 건국신화
◉<제3장>-한국의 사상
1. 무속의 이해
2. 불교의 이해
3. 유교의 이해
4. 도교의 이해
◉<제4장>-아름다운 호남의 국문시가
◉<제5장>-호남의 시가 연구
1. 무등산권 시가문학의 형성에 대한 연구
2. 이서의 낙지가 연구
3. 면앙 송순의 자연시 연구
4. 송강의 자연관
◉<참고문헌>
ㅍ
1. 전통문화의 개념
2. 한국 전통문화의 권역
◉<제2장>-신화
1. 신화와 원형
2. 단군신화와 그 원형
3. 한국의 건국신화
◉<제3장>-한국의 사상
1. 무속의 이해
2. 불교의 이해
3. 유교의 이해
4. 도교의 이해
◉<제4장>-아름다운 호남의 국문시가
◉<제5장>-호남의 시가 연구
1. 무등산권 시가문학의 형성에 대한 연구
2. 이서의 낙지가 연구
3. 면앙 송순의 자연시 연구
4. 송강의 자연관
◉<참고문헌>
ㅍ
본문내용
은 그 바탕이 어디까지나 깨달음을 지향하는 부처다. 불자는 보살이 걷는 육파라밀의 수행로를 좇아서 이타에 바탕을 둔 보살도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야 한다. 또한 불자가 수행하며 걸어야하는 정도가 팔정도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구원을 바라고 소망을 비는 기복종교가 아니고, 노력하고 자기를 갈고닦으며 팔정도의 길을 걸어서 깨달음에 이르는 자기 성찰의 심오한 지혜를 터득하는 삶의 철학이다.
3. 유교의 이해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기원전 5세기경에 인간의 이성을 믿는 인도를 제창하였다. 공자는 신에 의뢰하여 행복을 얻거나, 불행을 해소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자는 신보다 인간을 믿고 섬기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인식에 있어서 철저히 현실을 중시하고, 가치에 있어서 철저히 인본주의를 주장했다. 이로써 유교의 사상은 인간에 어떤 불행 또는 역경이 있을지라도 신에 의뢰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는 인간의 인간다운 점은 지식보다도 도덕이나 예의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명명덕으로부터 출발하여 지어지선에서 끝나는 것이 유교의 명제이다. 그러므로 유교에서는 도덕에 근본을 두지 않는 어떤 정치나 법률도 유해무익한 것으로 배격한다.
공자의 철학은 독립 창안의 철학이 아니라 명백히 전통계승의 철학이다. 다시말하면, 그의 철학은 그가 ‘술이불작 신이호고’ 라 말한 것처럼 선인 선배의 설을 물리치고 자기의 설을 주장하려는 데서가 아니라, 오히려 선인 선배의 설을 존중 경애하려는 데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철학은 서양의 철학과 같이 지식을 위한 지식의 철학, 학(學)을 위한 학이 아니라 끝까지 선인의 교시에 따라서 인생을 완수하기 위한 학, 인륜도덕의 학, 즉 실행의 철학, 생활의 철학이다.
공자의 사상은 인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인도의 중심은 인(仁)이다. 인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관계의 인륜 도덕인 효(孝)나 제(悌)에서 발생한다. 공자의 인이 인륜도덕을 못 벗어난 차별애일지라도 중국의 사상 최초로 주장된 인도정신의 애(愛)인 것은 틀림없다.
4.도교의 이해
도가사상은 중국의 주나라 때 노자와 그 뒤 그를 사숙했던 장자가 완성한 철학이다. 노자의 사상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무위자연이라는 행복을 제시했다. 자연의 순리에 좇아 인위적인 작위를 배격하였다. 인위의 삶을 배격하고 무위 곧 자연의 삶을 지향했던 장자는 노자를 스승으로 삼아 사숙하고 열자의 뒤를 이어 도가사상을 발전시켜 더욱 이를 명백히 하였다. 따라서 그의 형이상학적 방면에서는 노자와 같이 \'도(道)\' 즉 \'무(無)\'로써 본체를 삼고, 자연의 조화를 우주의 실상으로 하여 절대의 숙명관에서 초절대적 인생관에 도달하여 소요자적하고 사생일여 한다는 달관사상을 설파하였다.
한국에 도가 또는 도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곧 삼국시대부터 이 도교는 한국인의 삶과 정신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우리의 생활을 이끌어 왔다. 따라서 도교는 한국인의 정신생활에 큰 지주가 될 만큼 위상이 크다.
<제4장>- 아름다운 호남의 국문시가
호남은 한국의 시항이라고 일컫는다. 다만 시가의 형성기에 작품들이 거의 소멸되어 전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삼국이 신라 중심으로 통일 되다보니 백제에 해당된 호남권 시가문학이 대부분 전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무등산가>, <방등산가> 등이 창작되어 불리었던 기록으로 보아 호남이 시가문학이 융성했던 곳임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1. 서동요
<서동요>는 우리 시가에서 대표적인 사랑의 시가이다. 서동과 선화가 국경을 뛰어 넘어서 이루어낸 시가이다. 작가가 백제의 무왕이니 호남권의 작품이다.
2. 정읍사
남편에 대한 아내의 찰찰한 사랑이 곱게 담겨진 시가로 오늘날의 부부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백제가 배경으로 되어 있으나 고려속요와 같은 형태이고 이 노래가 실제 불리었던 시대로 보아서 일반적으로 고려속요로 보고 있다.
3. 대초볼 불근 골에
황희의 관향은 전라도 장수이다. 태어난 곳이 호남은 아니나 그 뿌리가 호남인이고 남원의 유배 때 지금의 광한루도 공이 창건하였다고도 전한다. 이 작품에서 영의정이라는 권신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가을의 농촌생활과 전원의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면모가 아름답게 표출되었다. 전원을 소재로 하여 한가로운 농촌 가을의 풍경과 소박한 흥취가 마음껏 발휘된 작품이다.
4. 자상특사황국옥당가
<자상특사황국옥당가>는 임금 명종이 옥당에 내려준 황국화를 하사 받고 답으로 창작한 송순의 시조이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교감이 원숙하고도 낙낙하게 드러난 명시이다. 이 작품은 황국화를 하사받고 즉석에서 지었다고 하니 송순의 문재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송강가사』에 지금 전하고 있고, 작자가 정철로 되어 있으나 잘못된 것이고, 송순의 작품이 분명하다.
5. 자연가
이 작품에는 ‘절로’ 라는 어휘가 무려 13회나 등장하고 있다. 진정 인생의 삶을 억지가 아니고 물이 흐르듯, 또한 사계가 철을 따라 바뀌듯 순리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활의 모습에 대한 심상이 잘 드러나 있는 시조이다.
6. 헌근가
지난날 모시던 임금에게 봄날 캔 미나리를 올리고 싶은 연군의 정이 잘 숨겨진 격조가 높은 작품이다. 유희춘은 임금에 대한 큰 사랑을 짧은 시조라는 그릇을 빌리어 격조가 높게 담아 놓고 있다. 봄날 농촌의 여기저기 논두렁에 흔하게 자라는 봄나물이 미나리이다. 들녘에 지천인 미나리나물만 보아도 생각나는 임이라면 귀하고 소중한 것을 볼 때, 임에 대한 생각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임금을 임에 비기어 지은 선비의 변함없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7. 호화코 부귀키야
기대승은 선비 중에도 특히 단정하고 곧은 성품으로 정평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선비는 감정과 정서를 표출하는데 능하지 못하여 냉감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성품의 기대승이 시조에 관심을 두고 작품을 창작한 것만으로도 당시 호남권에 시조의 붐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시조에서 부귀영화를 탐하고 살지 말라는 교훈과 뜻을 우리들에게 전한다. 기대승 같은 선비가 국문시조의 형식을 좇아서 작품을 창작하여 남긴 점만으로도 그 의의가 크다.
8. 보거든 슬
3. 유교의 이해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기원전 5세기경에 인간의 이성을 믿는 인도를 제창하였다. 공자는 신에 의뢰하여 행복을 얻거나, 불행을 해소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자는 신보다 인간을 믿고 섬기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인식에 있어서 철저히 현실을 중시하고, 가치에 있어서 철저히 인본주의를 주장했다. 이로써 유교의 사상은 인간에 어떤 불행 또는 역경이 있을지라도 신에 의뢰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는 인간의 인간다운 점은 지식보다도 도덕이나 예의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명명덕으로부터 출발하여 지어지선에서 끝나는 것이 유교의 명제이다. 그러므로 유교에서는 도덕에 근본을 두지 않는 어떤 정치나 법률도 유해무익한 것으로 배격한다.
공자의 철학은 독립 창안의 철학이 아니라 명백히 전통계승의 철학이다. 다시말하면, 그의 철학은 그가 ‘술이불작 신이호고’ 라 말한 것처럼 선인 선배의 설을 물리치고 자기의 설을 주장하려는 데서가 아니라, 오히려 선인 선배의 설을 존중 경애하려는 데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철학은 서양의 철학과 같이 지식을 위한 지식의 철학, 학(學)을 위한 학이 아니라 끝까지 선인의 교시에 따라서 인생을 완수하기 위한 학, 인륜도덕의 학, 즉 실행의 철학, 생활의 철학이다.
공자의 사상은 인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인도의 중심은 인(仁)이다. 인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관계의 인륜 도덕인 효(孝)나 제(悌)에서 발생한다. 공자의 인이 인륜도덕을 못 벗어난 차별애일지라도 중국의 사상 최초로 주장된 인도정신의 애(愛)인 것은 틀림없다.
4.도교의 이해
도가사상은 중국의 주나라 때 노자와 그 뒤 그를 사숙했던 장자가 완성한 철학이다. 노자의 사상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무위자연이라는 행복을 제시했다. 자연의 순리에 좇아 인위적인 작위를 배격하였다. 인위의 삶을 배격하고 무위 곧 자연의 삶을 지향했던 장자는 노자를 스승으로 삼아 사숙하고 열자의 뒤를 이어 도가사상을 발전시켜 더욱 이를 명백히 하였다. 따라서 그의 형이상학적 방면에서는 노자와 같이 \'도(道)\' 즉 \'무(無)\'로써 본체를 삼고, 자연의 조화를 우주의 실상으로 하여 절대의 숙명관에서 초절대적 인생관에 도달하여 소요자적하고 사생일여 한다는 달관사상을 설파하였다.
한국에 도가 또는 도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곧 삼국시대부터 이 도교는 한국인의 삶과 정신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우리의 생활을 이끌어 왔다. 따라서 도교는 한국인의 정신생활에 큰 지주가 될 만큼 위상이 크다.
<제4장>- 아름다운 호남의 국문시가
호남은 한국의 시항이라고 일컫는다. 다만 시가의 형성기에 작품들이 거의 소멸되어 전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삼국이 신라 중심으로 통일 되다보니 백제에 해당된 호남권 시가문학이 대부분 전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무등산가>, <방등산가> 등이 창작되어 불리었던 기록으로 보아 호남이 시가문학이 융성했던 곳임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1. 서동요
<서동요>는 우리 시가에서 대표적인 사랑의 시가이다. 서동과 선화가 국경을 뛰어 넘어서 이루어낸 시가이다. 작가가 백제의 무왕이니 호남권의 작품이다.
2. 정읍사
남편에 대한 아내의 찰찰한 사랑이 곱게 담겨진 시가로 오늘날의 부부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백제가 배경으로 되어 있으나 고려속요와 같은 형태이고 이 노래가 실제 불리었던 시대로 보아서 일반적으로 고려속요로 보고 있다.
3. 대초볼 불근 골에
황희의 관향은 전라도 장수이다. 태어난 곳이 호남은 아니나 그 뿌리가 호남인이고 남원의 유배 때 지금의 광한루도 공이 창건하였다고도 전한다. 이 작품에서 영의정이라는 권신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가을의 농촌생활과 전원의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면모가 아름답게 표출되었다. 전원을 소재로 하여 한가로운 농촌 가을의 풍경과 소박한 흥취가 마음껏 발휘된 작품이다.
4. 자상특사황국옥당가
<자상특사황국옥당가>는 임금 명종이 옥당에 내려준 황국화를 하사 받고 답으로 창작한 송순의 시조이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교감이 원숙하고도 낙낙하게 드러난 명시이다. 이 작품은 황국화를 하사받고 즉석에서 지었다고 하니 송순의 문재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송강가사』에 지금 전하고 있고, 작자가 정철로 되어 있으나 잘못된 것이고, 송순의 작품이 분명하다.
5. 자연가
이 작품에는 ‘절로’ 라는 어휘가 무려 13회나 등장하고 있다. 진정 인생의 삶을 억지가 아니고 물이 흐르듯, 또한 사계가 철을 따라 바뀌듯 순리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활의 모습에 대한 심상이 잘 드러나 있는 시조이다.
6. 헌근가
지난날 모시던 임금에게 봄날 캔 미나리를 올리고 싶은 연군의 정이 잘 숨겨진 격조가 높은 작품이다. 유희춘은 임금에 대한 큰 사랑을 짧은 시조라는 그릇을 빌리어 격조가 높게 담아 놓고 있다. 봄날 농촌의 여기저기 논두렁에 흔하게 자라는 봄나물이 미나리이다. 들녘에 지천인 미나리나물만 보아도 생각나는 임이라면 귀하고 소중한 것을 볼 때, 임에 대한 생각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임금을 임에 비기어 지은 선비의 변함없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7. 호화코 부귀키야
기대승은 선비 중에도 특히 단정하고 곧은 성품으로 정평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선비는 감정과 정서를 표출하는데 능하지 못하여 냉감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성품의 기대승이 시조에 관심을 두고 작품을 창작한 것만으로도 당시 호남권에 시조의 붐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시조에서 부귀영화를 탐하고 살지 말라는 교훈과 뜻을 우리들에게 전한다. 기대승 같은 선비가 국문시조의 형식을 좇아서 작품을 창작하여 남긴 점만으로도 그 의의가 크다.
8. 보거든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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