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문 따뜻한 기술을 위하여(이인식)
Ⅰ.문학, 과학기술을 즐기다
1장 학문의 통합과 자연의 융합(박이문)
2장 허름한 지도 제작자의 삶(복거일)
3장 과학과 문학(존 버로스)
Ⅱ.어문학자, 경계를 넘다
1장 상상력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위한 테크네 인문학(임정택)
2장 문학과 뇌(석영중)
3장 중문과 나온 기자, 건축을 전공 삼다(구본준)
Ⅲ.철학, 과학기술에 빠진다
1장 공간의 다차원성(조광제)
2장 사이보그와 매트릭스(신상규)
3장 로봇 윤리(이상헌)
Ⅳ.종교학자에게 과학기술은 무엇인가
1장 신학 연구에 있어서의 과학(조군호)
2장 새로운 정신의 탄생(신승환)
3장 불교와 과학(윤성식)
Ⅴ.사회학자, 과학기술을 생각하다
1장 다른 것과의 만남(김진현)
2장 법과 환경(이상돈)
3장 보이지 않는 도시를 찾아서(전상인)
4장 사이버공간의 의미와 변화(홍성태)
Ⅵ.경제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
1장 ‘예술 수준의 기술’을 통한 융합 혁신(김용근)
2장 경제학은 욕망의 단순한 계산기에 불과한가?(송경모)
3장 환경 경제와 기술의 만남(임성진)
4장 인문과 시술 융합을 위한 정책 방향(송종국)
5장 산업 융합의 나아갈 방향(안현실)
Ⅶ.행정학자, 과학시술과 융합하다
1장 리더십 교육에 과학과 예술을 입히다(김광웅)
2장 과학기술과 지역 발전(강계두)
3장 과학시술 정책(염재호)
Ⅰ.문학, 과학기술을 즐기다
1장 학문의 통합과 자연의 융합(박이문)
2장 허름한 지도 제작자의 삶(복거일)
3장 과학과 문학(존 버로스)
Ⅱ.어문학자, 경계를 넘다
1장 상상력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위한 테크네 인문학(임정택)
2장 문학과 뇌(석영중)
3장 중문과 나온 기자, 건축을 전공 삼다(구본준)
Ⅲ.철학, 과학기술에 빠진다
1장 공간의 다차원성(조광제)
2장 사이보그와 매트릭스(신상규)
3장 로봇 윤리(이상헌)
Ⅳ.종교학자에게 과학기술은 무엇인가
1장 신학 연구에 있어서의 과학(조군호)
2장 새로운 정신의 탄생(신승환)
3장 불교와 과학(윤성식)
Ⅴ.사회학자, 과학기술을 생각하다
1장 다른 것과의 만남(김진현)
2장 법과 환경(이상돈)
3장 보이지 않는 도시를 찾아서(전상인)
4장 사이버공간의 의미와 변화(홍성태)
Ⅵ.경제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
1장 ‘예술 수준의 기술’을 통한 융합 혁신(김용근)
2장 경제학은 욕망의 단순한 계산기에 불과한가?(송경모)
3장 환경 경제와 기술의 만남(임성진)
4장 인문과 시술 융합을 위한 정책 방향(송종국)
5장 산업 융합의 나아갈 방향(안현실)
Ⅶ.행정학자, 과학시술과 융합하다
1장 리더십 교육에 과학과 예술을 입히다(김광웅)
2장 과학기술과 지역 발전(강계두)
3장 과학시술 정책(염재호)
본문내용
과학적 세계관의 예로 우주 전체를 물 혹은 원자로 환원시킨 탈레스나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 뉴턴의 만유인력 등을 들 수 있다.
종교적, 철학적 그리고 과학적 세계관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으며 그 가치판단의 근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론의 명증이며, 또 하나는 그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의 폭이다. 전자의 기준으로 볼 때 과학적 명제는 종교적이나 철학적, 즉 인문학적 명제보다 훨씬 명증하다. 과학기술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오래전부터 모든 학문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며 과학을 닮고자 해 왔고, 오늘날에는 과학이 문학, 종교, 철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을 자신의 체제에 흡수 통합하거나 대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과학적 인식 대상은 인문학적 명제보다 그 인식 대상의 폭이 좁다. 첫째. 과학적 세계관의 대상은 물리적 현상에 제한된 데 반해 인문학 일반, 특히 메타적(반성적) 사유로서의 철학은 물리적 현상을 그리는 과학적 담론까지 포함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둘째.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문학과 과학은 논리적으로 같은 범주적 지평에서 대립되는 인식 양식이 아니라 후자는 전자의 하위 개념으로서 일종의 인문학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문학과 과학의 대립적 구별은 전자의 인식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그의 정신적 산물이며, 후자의 경우 인식 주체가 보편적이고 냉정한 이성에 의한 발견과 그 재현으로써 인식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데 반해, 전자의 인식 주체는 가변적이고 주관성을 넘을 수 없는 감성적 표현이라는 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것 간의 구별은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개념적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실용적 필요에 의해 관념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즉 역사적인 것이다.
2장 허름한 지도 제작자의 삶
어릴 적이나 좀 커서나 나는 과학소설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 실은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든 적이 없다. 직업적 문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문단에 나온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나는 지식을 얻고 싶었고, 잡다한 지식들을 솜처럼 빨아들였다. 나는 그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지식에 대한 갈망은 늘 내 삶을 규정했다.
지식인으로 입신하겠다는 의식적 결정을 내린 것은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빠르게 하나로 통합되는 세상에서 서양 문명이 지배적 전통이 되었으므로, 나는 우선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로 했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수준의 영어를 배우는 것, 즉 영어 원서로 경제학 교과서를 읽고 시험이나 직업 활동에 필요한 영어를 배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에 영어를 배우는 데는 영어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영어를 배우는 것과 서양 문명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동시적 과정이었다. 나는 많은 책을 읽게되었고 그런 책을 통해 지식인 및 작가로서의 경력에 필요한 지적 바탕을 마련했다. 돌아보면 서양 문명의 지식을 받아들이며 영어를 공부한 일은 내게 몇 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전공과목이라는 좁은 조망에서 벗어나도록 했으며 여러 지적 분야들이 어쩌면 모든 지적 분야들이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재발명의 위험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친 민족주의에 대한 면역이 일찍부터 생겼다. 어느 나라에서나 거친 민족주의는 그들의 민족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월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핵심적 신조로 삼는다. 영어를 배우면서 갖추게 된 지식, 특히 언어 습득에 관한 지식은 어리석은 신조의 해로움에 일찍 눈뜨도록 도와주었다.
누구나 자신의 전공 분야는 삶과 생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내가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내가 ‘알기를 열망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학은 사회과학 가운데 가장 먼저 모형을 만드는 데 성공한 학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모형은 좋은 모형의 본보기다. 그것은 간명하고 직관에 맞고 많은 사회적 현상을 잘 설명한다. 게다가 경제학은 일찍부터 계량화에 성공했다. 덕분에 경제학은 형식적 수학 모형으로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아주 구체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놓을 수 있었다. 자연과학에 비하면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경제학이 그런 모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사회과학으로서는 대단한 성취다.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세상의 모습을 모형을 통해서 파악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나는 자주 생각했다. ‘지식의 통합이라는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관정은 순수한 즐거움이었으리라.’ 그 뒤로 나는 내가 추구하는 지식의 통합에 대해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쓸모가 큰 모형은 지도다. 지도는 모형의 특질과 한계를 잘 드러낸다. 아울러 모형을 만드는 일에서 만나게 마련인 방법론적 문제들도 일깨워 준다. 둥근 물체인 지구의 표면을 평평한 지도로 나타내는 일의 어려움에서 우리는 모형이 실물과 다를수록 오히려 쓸모가 크다는 역설을 실감한다. 나의 심상은 근대 초기의 지도 제작자다. 리스본이나 암스테르담 항구 변두리 좁고 어둠침침한 골방으로 서둘러 달려가 지도를 꺼내어 새로운 정보에 맞추어 조금씩 수정하는 허름한 지도 제작자의 모습이다.
현대 사회는 극도로 세분화된 사회다. 그런 세상에서는 여러 주제에 대해 많이 아는 지식인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지식은 빠르게 쌓이므로 너른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필요해지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나오기 어렵고 나온다 하더라도 설 땅이 좁다. 모두 전문가만 찾을 뿐 일반가가 필요함을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게 전문화에 몰두하다 보니, 좁은 분야의 지식만 있고 다른 분야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이 우리 시대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여러 시대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있었으며 이런 시대에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놀라움과 동료들로부터 시기와 경멸을 받게
종교적, 철학적 그리고 과학적 세계관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으며 그 가치판단의 근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론의 명증이며, 또 하나는 그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의 폭이다. 전자의 기준으로 볼 때 과학적 명제는 종교적이나 철학적, 즉 인문학적 명제보다 훨씬 명증하다. 과학기술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오래전부터 모든 학문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며 과학을 닮고자 해 왔고, 오늘날에는 과학이 문학, 종교, 철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을 자신의 체제에 흡수 통합하거나 대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과학적 인식 대상은 인문학적 명제보다 그 인식 대상의 폭이 좁다. 첫째. 과학적 세계관의 대상은 물리적 현상에 제한된 데 반해 인문학 일반, 특히 메타적(반성적) 사유로서의 철학은 물리적 현상을 그리는 과학적 담론까지 포함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둘째.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문학과 과학은 논리적으로 같은 범주적 지평에서 대립되는 인식 양식이 아니라 후자는 전자의 하위 개념으로서 일종의 인문학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문학과 과학의 대립적 구별은 전자의 인식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그의 정신적 산물이며, 후자의 경우 인식 주체가 보편적이고 냉정한 이성에 의한 발견과 그 재현으로써 인식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데 반해, 전자의 인식 주체는 가변적이고 주관성을 넘을 수 없는 감성적 표현이라는 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것 간의 구별은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개념적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실용적 필요에 의해 관념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즉 역사적인 것이다.
2장 허름한 지도 제작자의 삶
어릴 적이나 좀 커서나 나는 과학소설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 실은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든 적이 없다. 직업적 문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문단에 나온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나는 지식을 얻고 싶었고, 잡다한 지식들을 솜처럼 빨아들였다. 나는 그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지식에 대한 갈망은 늘 내 삶을 규정했다.
지식인으로 입신하겠다는 의식적 결정을 내린 것은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빠르게 하나로 통합되는 세상에서 서양 문명이 지배적 전통이 되었으므로, 나는 우선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로 했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수준의 영어를 배우는 것, 즉 영어 원서로 경제학 교과서를 읽고 시험이나 직업 활동에 필요한 영어를 배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에 영어를 배우는 데는 영어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영어를 배우는 것과 서양 문명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동시적 과정이었다. 나는 많은 책을 읽게되었고 그런 책을 통해 지식인 및 작가로서의 경력에 필요한 지적 바탕을 마련했다. 돌아보면 서양 문명의 지식을 받아들이며 영어를 공부한 일은 내게 몇 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전공과목이라는 좁은 조망에서 벗어나도록 했으며 여러 지적 분야들이 어쩌면 모든 지적 분야들이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재발명의 위험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친 민족주의에 대한 면역이 일찍부터 생겼다. 어느 나라에서나 거친 민족주의는 그들의 민족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월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핵심적 신조로 삼는다. 영어를 배우면서 갖추게 된 지식, 특히 언어 습득에 관한 지식은 어리석은 신조의 해로움에 일찍 눈뜨도록 도와주었다.
누구나 자신의 전공 분야는 삶과 생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내가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내가 ‘알기를 열망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학은 사회과학 가운데 가장 먼저 모형을 만드는 데 성공한 학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모형은 좋은 모형의 본보기다. 그것은 간명하고 직관에 맞고 많은 사회적 현상을 잘 설명한다. 게다가 경제학은 일찍부터 계량화에 성공했다. 덕분에 경제학은 형식적 수학 모형으로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아주 구체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놓을 수 있었다. 자연과학에 비하면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경제학이 그런 모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사회과학으로서는 대단한 성취다.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세상의 모습을 모형을 통해서 파악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나는 자주 생각했다. ‘지식의 통합이라는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관정은 순수한 즐거움이었으리라.’ 그 뒤로 나는 내가 추구하는 지식의 통합에 대해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쓸모가 큰 모형은 지도다. 지도는 모형의 특질과 한계를 잘 드러낸다. 아울러 모형을 만드는 일에서 만나게 마련인 방법론적 문제들도 일깨워 준다. 둥근 물체인 지구의 표면을 평평한 지도로 나타내는 일의 어려움에서 우리는 모형이 실물과 다를수록 오히려 쓸모가 크다는 역설을 실감한다. 나의 심상은 근대 초기의 지도 제작자다. 리스본이나 암스테르담 항구 변두리 좁고 어둠침침한 골방으로 서둘러 달려가 지도를 꺼내어 새로운 정보에 맞추어 조금씩 수정하는 허름한 지도 제작자의 모습이다.
현대 사회는 극도로 세분화된 사회다. 그런 세상에서는 여러 주제에 대해 많이 아는 지식인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지식은 빠르게 쌓이므로 너른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필요해지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나오기 어렵고 나온다 하더라도 설 땅이 좁다. 모두 전문가만 찾을 뿐 일반가가 필요함을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게 전문화에 몰두하다 보니, 좁은 분야의 지식만 있고 다른 분야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이 우리 시대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여러 시대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있었으며 이런 시대에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놀라움과 동료들로부터 시기와 경멸을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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