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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논문개요
서론편 1p
1. 메시아 사상 연구에 있어서의 제문제
2. 연구의 방법과 목적
3. 히브리시로서의 시편의 특징
4. 결어
본론편
Ⅰ. 메시아 사상 개관
1. 메시아의 유래
2. 이방 세계의 관습
3. 이스라엘의 기름붓는 관례
4. 메시아 개념의 정의와 변천
5. 메시아 계시
Ⅱ. 시편에 나타난 메시아
1. 시편의 메시아 이해
2. 메시아 시에 대한 논란
3. 신약에 인용된 시편
4. 시편에 나타난 메시야의 명칭
5. 메시야 성구
Ⅲ.시편 각 시에 대한 상세 분석
1. 시편 2편에 나타난 메시아
2. 시편 8편에 나타난 메시아
3. 시편 12편에 나타난 메시아
4. 시편 16편에 나타난 메시아
5. 시편 18편에 나타난 메시아
6. 시편 20편에 나타난 메시아
7. 시편 21편에 나타난 메시아
8. 시편 22편에 나타난 메시아
9. 시편 40편에 나타난 메시아
10. 시편 45편에 나타난 메시아
11. 시편 68편에 나타난 메시아
12. 시편 69편에 나타난 메시아
13. 시편 72편에 나타난 메시아
14. 시편 109편에 나타난 메시아
15. 시편 110편에 나타난 메시아
16. 시편 118편에 나타난 메시아
ⅠV 다윗언약에 나타난 ‘마쉬아흐’ 사상
결론편
참고문헌
Abstrcat(영문초록)
서론편 1p
1. 메시아 사상 연구에 있어서의 제문제
2. 연구의 방법과 목적
3. 히브리시로서의 시편의 특징
4. 결어
본론편
Ⅰ. 메시아 사상 개관
1. 메시아의 유래
2. 이방 세계의 관습
3. 이스라엘의 기름붓는 관례
4. 메시아 개념의 정의와 변천
5. 메시아 계시
Ⅱ. 시편에 나타난 메시아
1. 시편의 메시아 이해
2. 메시아 시에 대한 논란
3. 신약에 인용된 시편
4. 시편에 나타난 메시야의 명칭
5. 메시야 성구
Ⅲ.시편 각 시에 대한 상세 분석
1. 시편 2편에 나타난 메시아
2. 시편 8편에 나타난 메시아
3. 시편 12편에 나타난 메시아
4. 시편 16편에 나타난 메시아
5. 시편 18편에 나타난 메시아
6. 시편 20편에 나타난 메시아
7. 시편 21편에 나타난 메시아
8. 시편 22편에 나타난 메시아
9. 시편 40편에 나타난 메시아
10. 시편 45편에 나타난 메시아
11. 시편 68편에 나타난 메시아
12. 시편 69편에 나타난 메시아
13. 시편 72편에 나타난 메시아
14. 시편 109편에 나타난 메시아
15. 시편 110편에 나타난 메시아
16. 시편 118편에 나타난 메시아
ⅠV 다윗언약에 나타난 ‘마쉬아흐’ 사상
결론편
참고문헌
Abstrcat(영문초록)
본문내용
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들에게 계시하시고, 또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인간에게 왕권을 부여하신 은총을 생각해 왔다. 이제는 다시 아름다운 주님의 이름으로 돌아간다. 이 수미일치법을 통해 시가 통일성 있는 문학 작품임을 알게 된다. 시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간다. 이리하여 이 시의 끝에서, 다시 시작을 알려준다. 이 시편에서 인간에 대한 묵상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서 나왔다.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시편 8편의 최종적인 목적이다.
바. 메시지
(1)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시편 8편의 시인은 온 땅과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한다(1절). 그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있는 자신은 마치 어린 아이와 젖먹이 같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2절). 시인은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지으신 작품인 하늘과 달과 별들을 보며 우주의 광활함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주의 광대함을 보며 이를지으신 하나님의 위대성 앞에서 전율한다(3절). 시인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허약한 존재(에노쉬)이며, 허무한 존재(벤-아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란 허약하고 허무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인 돌봄을 받는 존재이다(4절). 이처럼 시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통하여 자신의 본래적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2)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존귀한 존재이다.
시편 8편의 저자는 인간이 하나님보다 조금 부족하지만 거의 신적인 존재에 가까운 존재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영화와 존귀라는 관으로 씌움 받은 왕적 존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허약하고 허무한 인간(4절)을 신적인 존재와 왕적인 존재로 격상시켜 주었다. 인간은 ls적인 존귀함과 왕같은 존귀함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다(5절). 모든 사람은 하나님보다는 조금 못하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존귀한 존재이다. 또한 사람 위에있는 사람이 없고, 사람 아래 있는 사람도 없다. 사람 위에는 오직 한 분 이신 하나님만이 계시고, 사람 아래에는 사람 이외의 모든 만물이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높고 낮음이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6절).
사람은 그가 처한 형편이 어떠한 지에 상관없이 그가 바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귀중한 존재이다 이 점에 있어서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많이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없는 자, 남자와 여자, 어른가 아이,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 잘 생긴 사람과 못 생긴 사람, 심지어 기독교인이든 다른 종교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그 어떤 차이도 있을 수 없다.
(3) 사람은 자연을 잘 관리하고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시편 8편의 기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주인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자연(만물)을 잘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위탁하셨음을 말해준다(6절). 인간에게 위탁된 다스림의 대상으로서의 한 예로 “모든 우양과 들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들”(7-8절)이 언급된다. 자연의 한 구성 요소들인 이러한 생물들을 다스린다는 말은 이러한 생물들을 생포, 학대, 살해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잘 관리하고 보살피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들이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여섯째 날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소개 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심히’(메오드)라는 말은 최고의 긍정적 평가를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판단으로 볼 때, ‘완벽한 상태의 자연’을 청지기인 사람에게 위탁하셨다. 사람은 온전한 자연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아 온전한 상태로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관리인이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가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나가는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실천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유자가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 구성으로서 자연의 관리인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은 자연에 대한 책임을 우리 사람들에게 물으실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일어나는 자연재해나 이상 현상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책임을 추궁하는 방법일 지도 모른다.
사. 결론
자연과 인간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이라는 것에서 동일하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의 담지자로서 인간은 자연과 확연히 구분된다. 사람이 자연에 펼쳐진 하나님의 광대함을 깨달을 때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한다. 출애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보고 두려워 떨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판단되어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감당하지 못한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실체로 드러나고 인간은 보았다. 오늘날도 그 영광의 은혜를 누리며 성령 안에서 살고 있음을 안다. 죄성을 품은 인간이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보고 찬양할 수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은혜’이다. 어느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지극히 초라한 존재인 인간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받고 영광스러운 직임을 위임받았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찬송과 충성이라는 응답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앙망해야 할 것이다.
흔히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무엇을 가졌기에 만족감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존재와의 교통 속에서 만족감을 누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존재가 인간의 존재를 충만히 채우시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을 통하여 우리는 이 땅에서 행복할 수 있다. 그 행복에 젖어 우리는 날마다 찬송할 수 있게 된다. 찬송의 이유는 그 분의 응답하심보다 그 분의 임재하심 안에 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바. 메시지
(1)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시편 8편의 시인은 온 땅과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한다(1절). 그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있는 자신은 마치 어린 아이와 젖먹이 같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2절). 시인은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지으신 작품인 하늘과 달과 별들을 보며 우주의 광활함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주의 광대함을 보며 이를지으신 하나님의 위대성 앞에서 전율한다(3절). 시인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허약한 존재(에노쉬)이며, 허무한 존재(벤-아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란 허약하고 허무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인 돌봄을 받는 존재이다(4절). 이처럼 시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통하여 자신의 본래적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2)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존귀한 존재이다.
시편 8편의 저자는 인간이 하나님보다 조금 부족하지만 거의 신적인 존재에 가까운 존재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영화와 존귀라는 관으로 씌움 받은 왕적 존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허약하고 허무한 인간(4절)을 신적인 존재와 왕적인 존재로 격상시켜 주었다. 인간은 ls적인 존귀함과 왕같은 존귀함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다(5절). 모든 사람은 하나님보다는 조금 못하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존귀한 존재이다. 또한 사람 위에있는 사람이 없고, 사람 아래 있는 사람도 없다. 사람 위에는 오직 한 분 이신 하나님만이 계시고, 사람 아래에는 사람 이외의 모든 만물이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높고 낮음이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6절).
사람은 그가 처한 형편이 어떠한 지에 상관없이 그가 바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귀중한 존재이다 이 점에 있어서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많이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없는 자, 남자와 여자, 어른가 아이,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 잘 생긴 사람과 못 생긴 사람, 심지어 기독교인이든 다른 종교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그 어떤 차이도 있을 수 없다.
(3) 사람은 자연을 잘 관리하고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시편 8편의 기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주인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자연(만물)을 잘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위탁하셨음을 말해준다(6절). 인간에게 위탁된 다스림의 대상으로서의 한 예로 “모든 우양과 들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들”(7-8절)이 언급된다. 자연의 한 구성 요소들인 이러한 생물들을 다스린다는 말은 이러한 생물들을 생포, 학대, 살해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잘 관리하고 보살피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들이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여섯째 날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소개 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심히’(메오드)라는 말은 최고의 긍정적 평가를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판단으로 볼 때, ‘완벽한 상태의 자연’을 청지기인 사람에게 위탁하셨다. 사람은 온전한 자연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아 온전한 상태로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관리인이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가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나가는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실천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유자가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 구성으로서 자연의 관리인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은 자연에 대한 책임을 우리 사람들에게 물으실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일어나는 자연재해나 이상 현상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책임을 추궁하는 방법일 지도 모른다.
사. 결론
자연과 인간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이라는 것에서 동일하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의 담지자로서 인간은 자연과 확연히 구분된다. 사람이 자연에 펼쳐진 하나님의 광대함을 깨달을 때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한다. 출애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보고 두려워 떨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판단되어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감당하지 못한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실체로 드러나고 인간은 보았다. 오늘날도 그 영광의 은혜를 누리며 성령 안에서 살고 있음을 안다. 죄성을 품은 인간이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보고 찬양할 수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은혜’이다. 어느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지극히 초라한 존재인 인간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받고 영광스러운 직임을 위임받았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찬송과 충성이라는 응답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앙망해야 할 것이다.
흔히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무엇을 가졌기에 만족감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존재와의 교통 속에서 만족감을 누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존재가 인간의 존재를 충만히 채우시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을 통하여 우리는 이 땅에서 행복할 수 있다. 그 행복에 젖어 우리는 날마다 찬송할 수 있게 된다. 찬송의 이유는 그 분의 응답하심보다 그 분의 임재하심 안에 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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