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칼빈의 생애 "칼빈의 신학사상-신복윤“
2. 칼빈의 성서해석 원리
1) 칼빈의 해석 원리에 있어서 전제들
2) 저자의 의미
3) 성서가 성서를 해석
4) 기독론적 해석
5) 구속사적 해석
6) 영해(알레고리 해석)의 배척
3. 칼빈의 성서해석 방법
1) 간단 명료성(Brevitas et Facilitas)
2) 문학적 접근(Literary Approach)
① 상황적 접근
② 어원적 접근
③ 문맥적 접근
④ 모형론적 해석
⑤ 연장된 해석
3) 비평적 접근
4. 칼빈의 설교론
1)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설교
2)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으로서의 설교
3)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으로서의 설교
2. 칼빈의 성서해석 원리
1) 칼빈의 해석 원리에 있어서 전제들
2) 저자의 의미
3) 성서가 성서를 해석
4) 기독론적 해석
5) 구속사적 해석
6) 영해(알레고리 해석)의 배척
3. 칼빈의 성서해석 방법
1) 간단 명료성(Brevitas et Facilitas)
2) 문학적 접근(Literary Approach)
① 상황적 접근
② 어원적 접근
③ 문맥적 접근
④ 모형론적 해석
⑤ 연장된 해석
3) 비평적 접근
4. 칼빈의 설교론
1)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설교
2)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으로서의 설교
3)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으로서의 설교
본문내용
이며, 그 자체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목소리 가 영생을 얻도록 교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성서가 설교자에 의해 설교되어질 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이 되며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칼빈의 눈에 비친 설교란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현현, 혹은 하나님의 현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목사가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은 실재로 임하시고, 임재 하시되 성례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임재 하신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서 먼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주고 그 후에 그 교훈이 사람의 심령에 생생하게 접촉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성령이 그 설교자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로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칼빈은 인간은 말씀안에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다고 명백히 가르쳤던 것이다.
3)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으로서의 설교
설교는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마음속에 심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이다. 설교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인 것은 그리스도의 통치수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 설교자가 설교할 때는, 비록 그가 우리와 동일하게 보이고, 대단한 존경을 받거나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하더라도, 어쨌든 예수그리스도는 여전히 이곳(=설교)에 계시고 그의 왕적 보좌를 그 곳에 두시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탄이 우리의 주인이니 타락과 비참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변형시킴으로 우리는 복된 왕국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왕국은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 복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반역자에서 시민으로 바꿔 놓으셨다. 말하자면 복음은 그것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설교되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지배의 세력아래에 두기 위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라 불려 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 복음이 설교 되든지 그것은 그 땅위에 그가 주되심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치하셔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의 설교를 통해 통치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왕실은 바로 복음이요.\" \"복음의 교리가 아닌 것은 어떤 것도 그의 통치 수단이 될 수 없다.\" 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통치 수단인 성서에 주어진 내용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단순하게라는 부사를 통해 설교란 \"청중들의 이해력에 부응하여\" 각 신자가 그 설교에서 \"자신의 몫과 분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고, 둘째는 간결하게 \"평 이한 간결성과 결코 애매모호함이 없도록 하여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야 한다\" 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용기 있게, 하나님께 반항하는 악한 인간성에 대해 공격해야 한다. 말씀의 사역자는 \"우물우물\" 말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주님께서 그의 교회가 알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혹은 꾸밈없이\"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교자의 자세는 말씀의 선포를 통해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확실히 전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당시에 설교는 번창할 수 있었다. 교회와 강단 설교자들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내 말을 듣는 것\" 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강단은 교회 내에서와 세속적인 사회 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설교란 그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왕권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치하고 나라들을 심판하기 위해 교회 그 자체에도 비밀이 알려지지 않은 교회의 장중에 있는 검인 것이다. 교회중의 그 검은 적들을 쳐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칠 것이냐, 혹은 회개하지 않는 무리들을 또 다시 영원히 파멸시켜 버릴 것이냐 하는 택일성의 문제를 지닌 채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엡 6:7).\"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에 따르지 아니한다면 하나님께는 패역이요, 우리 또한 어떠한 종류의 은사도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으려한 \"여러 사람의 반역\"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사역을 옹호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이 버릇없는 인간들은 자기네들이 잘못을 범했을 때 그 사실을 자기들에게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곧 \'당신들이 우리에게 명령할 순 없어!\'라고. 그렇다면 하나님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임하신 때문입니다\" \"누구든,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쪽으로 가야한다는 식으로 명령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전념해 가르치기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한 분 주님이 있고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여기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나를 통해 전진시키기 원치 않으며, 내 자신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올 생각도 없으며 오직 내가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반박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복종해야 하며, 모든 거만한 것들이 꺾여야만하고 또 큰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복종해야 할 이에게 대항하여 주둥이를 내밀거나 눈을 치켜뜨는 피조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하여 설교를 통해 다스리시고 명령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항해서는 안 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권위에 어느 누구든지 복종해야 할 것을 말한 성서관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설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곳 어디에나 크고 넓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인 것이다.
참고도서
신복윤. 『칼빈의 신학사상』(서울:성광문화사 1993)
손석태. “칼빈의 성경해석” 칼빈관련자료집 (서울:감리교신학대학교)
T.H.L. 파아커. 『칼빈과 설교』(서울:솔로몬출판사 1993) 김남준 역.
이양호. 『칼빈 생애와 사상』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7)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성서가 설교자에 의해 설교되어질 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이 되며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칼빈의 눈에 비친 설교란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현현, 혹은 하나님의 현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목사가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은 실재로 임하시고, 임재 하시되 성례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임재 하신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서 먼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주고 그 후에 그 교훈이 사람의 심령에 생생하게 접촉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성령이 그 설교자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로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칼빈은 인간은 말씀안에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다고 명백히 가르쳤던 것이다.
3)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으로서의 설교
설교는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마음속에 심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이다. 설교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인 것은 그리스도의 통치수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 설교자가 설교할 때는, 비록 그가 우리와 동일하게 보이고, 대단한 존경을 받거나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하더라도, 어쨌든 예수그리스도는 여전히 이곳(=설교)에 계시고 그의 왕적 보좌를 그 곳에 두시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탄이 우리의 주인이니 타락과 비참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변형시킴으로 우리는 복된 왕국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왕국은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 복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반역자에서 시민으로 바꿔 놓으셨다. 말하자면 복음은 그것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설교되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지배의 세력아래에 두기 위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라 불려 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 복음이 설교 되든지 그것은 그 땅위에 그가 주되심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치하셔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의 설교를 통해 통치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왕실은 바로 복음이요.\" \"복음의 교리가 아닌 것은 어떤 것도 그의 통치 수단이 될 수 없다.\" 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통치 수단인 성서에 주어진 내용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단순하게라는 부사를 통해 설교란 \"청중들의 이해력에 부응하여\" 각 신자가 그 설교에서 \"자신의 몫과 분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고, 둘째는 간결하게 \"평 이한 간결성과 결코 애매모호함이 없도록 하여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야 한다\" 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용기 있게, 하나님께 반항하는 악한 인간성에 대해 공격해야 한다. 말씀의 사역자는 \"우물우물\" 말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주님께서 그의 교회가 알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혹은 꾸밈없이\"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교자의 자세는 말씀의 선포를 통해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확실히 전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당시에 설교는 번창할 수 있었다. 교회와 강단 설교자들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내 말을 듣는 것\" 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강단은 교회 내에서와 세속적인 사회 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설교란 그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왕권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치하고 나라들을 심판하기 위해 교회 그 자체에도 비밀이 알려지지 않은 교회의 장중에 있는 검인 것이다. 교회중의 그 검은 적들을 쳐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칠 것이냐, 혹은 회개하지 않는 무리들을 또 다시 영원히 파멸시켜 버릴 것이냐 하는 택일성의 문제를 지닌 채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엡 6:7).\"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에 따르지 아니한다면 하나님께는 패역이요, 우리 또한 어떠한 종류의 은사도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으려한 \"여러 사람의 반역\"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사역을 옹호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이 버릇없는 인간들은 자기네들이 잘못을 범했을 때 그 사실을 자기들에게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곧 \'당신들이 우리에게 명령할 순 없어!\'라고. 그렇다면 하나님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임하신 때문입니다\" \"누구든,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쪽으로 가야한다는 식으로 명령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전념해 가르치기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한 분 주님이 있고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여기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나를 통해 전진시키기 원치 않으며, 내 자신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올 생각도 없으며 오직 내가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반박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복종해야 하며, 모든 거만한 것들이 꺾여야만하고 또 큰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복종해야 할 이에게 대항하여 주둥이를 내밀거나 눈을 치켜뜨는 피조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하여 설교를 통해 다스리시고 명령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항해서는 안 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권위에 어느 누구든지 복종해야 할 것을 말한 성서관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설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곳 어디에나 크고 넓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인 것이다.
참고도서
신복윤. 『칼빈의 신학사상』(서울:성광문화사 1993)
손석태. “칼빈의 성경해석” 칼빈관련자료집 (서울:감리교신학대학교)
T.H.L. 파아커. 『칼빈과 설교』(서울:솔로몬출판사 1993) 김남준 역.
이양호. 『칼빈 생애와 사상』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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