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존중, 형통한 삶의 비밀.
1장, 존중, 형통한 인생의 비밀
-경건한 습관 기르기.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2장. 온전한 보상을 약속하신 하나님
존중의 의미.
존중의 원리.
3장, 권위에 순종하는 삶
지도자를 대하는 자세.
권위의 네 영역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기.
다윗의 존중
4장. 불의한 권위에 대처하는 법
그분의 손에 맡기라.
순종과 복종의 차이
2부, 존중하는 공동체가 형통하다.
1장. 정부 리더십을 향한 존중
사랑으로 말하라.
존중하고 기도하라.
2장. 사회리더십을 향한 존중
3장. 가정 리더십을 향한 존중
믿음으로 약속 얻기.
4장, 교회 리더십을 향한 존중
3부, 존중하는 인생이 형통하다.
1장, 사역자 존중하기.
2장. 동료 존중하기.
3장. 맡겨진 이들 존중하기.
4장. 자녀 존중하기.
5장. 아내 존중하기.
4부. 존중하면, 예수님을 닮는다.
1장. 영혼을 세워주는 삶.
2장, 하나님만 높이는 인생.
Ⅲ.마치며
Ⅱ. 존중, 형통한 삶의 비밀.
1장, 존중, 형통한 인생의 비밀
-경건한 습관 기르기.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2장. 온전한 보상을 약속하신 하나님
존중의 의미.
존중의 원리.
3장, 권위에 순종하는 삶
지도자를 대하는 자세.
권위의 네 영역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기.
다윗의 존중
4장. 불의한 권위에 대처하는 법
그분의 손에 맡기라.
순종과 복종의 차이
2부, 존중하는 공동체가 형통하다.
1장. 정부 리더십을 향한 존중
사랑으로 말하라.
존중하고 기도하라.
2장. 사회리더십을 향한 존중
3장. 가정 리더십을 향한 존중
믿음으로 약속 얻기.
4장, 교회 리더십을 향한 존중
3부, 존중하는 인생이 형통하다.
1장, 사역자 존중하기.
2장. 동료 존중하기.
3장. 맡겨진 이들 존중하기.
4장. 자녀 존중하기.
5장. 아내 존중하기.
4부. 존중하면, 예수님을 닮는다.
1장. 영혼을 세워주는 삶.
2장, 하나님만 높이는 인생.
Ⅲ.마치며
본문내용
신지 알았고, 끝까지 그분께 존중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온전한 보상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이들 놀라운 믿음의 모범은 둘 다 아브라함의 언약 밖에 있던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의 절박함 속에 존중심이 흘렀고, 그래서 둘 다 온전한 보상을 받았다.
존중의 원리.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들은 존중을 받는다(삼상2:30). 그게 순리다. 하인 한 사람과 딸 하나가 고침받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백부장과 여인의 선택과 믿음을 칭송하고 있지 않은가?!
1년치 노임에 해당하는 향유 병을 깨뜨려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여인은 아낌없이 기름을 부어 그분을 존중했으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가 그 일을 기뻐하지 않았다(막14:4-5). 그녀의 갈망은 주님을 존중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아낌없이 기름을 붓다가 자신이 주님의 존중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온 마음을 다해 아버지를 존중했다. 한 인간으로써 그분은 자기가 받는 존중을 아버지께 돌려드렸다(빌2:6-7). 영접하다와 주다는 단어를 모두 ‘존중하다’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마10:40-42).
하나님 나라의 권위 질서에서 다음은 ‘선지자’다. 예수님은 지금 신약성경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첫째, 하나님 나라에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께로 흘러 내려온 권위 체계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권위질서에서 다음은 ‘선지자’다. 우리는 위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해도 보상을 받는다. 내 수준의 사람들(동료들)을 존중해도 보상을 받는다. 끝으로 내 보호나 권위아래 있는 사람들을 존중해도 보상을 받는다.
3장, 권위에 순종하는 삶
존중과 예배는 다르다. 우리는 영원토록 우리 주요 왕이신 하나님 한 분만 예배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마땅히 존중할 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권능을 보고 있는 남녀 사역자들의 사연을 수 없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요지는 바로 그 사역자들이 미국이나 다른 서구 국가들에게도 온다는 것이다. 사람도 똑같고, 메시지도 똑같고, 기름부음도 똑같고, 사역 방법도 똑같다. 그러나 서구 집회에서는 몇 명의 두통, 허리 아픈 것, 소수의 관절염만 고침 받을 뿐이다. 왜 그럴까? 핵심은 존중이다. 나는 지금까지 20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그때 마다 보는 현상이지만, 가장 큰 영향력과 기적들이 나타나고, 설교하기 가장 쉽고, 하나님이 가장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곳들은 여러 개발도상국, 감옥, 군부대다. 그들은 존중을 보이고, 권위를 공경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역자인 나와는 정말 아무런 소용없고, 오히려 사람들의 영접과 관계된다.
“다들어본 얘기다. 외부 강사 설교도 많이 들어봤다. 당신이라고 뭐 다른 내용이 있겠냐?”
어떤 결과를 낳느냐는 단 한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존중이다.
지도자를 대하는 자세.
구약 성경의 한나는 자기를 모욕한 지도자를 크게 존중했다(삼상1:15-16). 한나는 석달만에 잉태하여 아기 사무엘을 낳았다. 엘리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제사장이었다(삼상3:13) 한나는 이 사람을 존중해서 하나님께 큰 보상을 받았다. 이는 엘리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오직 자기 위의 권위 있는 사람을 영접하면, 그 직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보상을 받는다.
권위의 네 영역
오늘 우리 사회에서 특히 그렇다. 권위와 존중의 진리가 우리 마음에 정립되어야 한다(롬13:1-2). 이 말은 권유도, 충고도 아닌, 명령이다. ‘각 사람’이라는 말에서 알수있듯이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이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누구인가? 정부, 권세들이다. 그러나 권고의 말씀은 정부 지도자들에게만 아니라 다른 영역들의 위임된 권위에도 적용된다.
신약성경에 네 가지 영역의 위임된 권위가 나온다. 정부, 교회, 가정, 사회다. 사회에는 고용주, 상사, 교사 코치등이 들어간다. 신약성경에 각 영역마다 구체적 지침이 나오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권고는 경계선을 넘어 모든 영역의 위임된 권위에 미친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함에 대하여 그것을 의인, 그리고, 작은 자와 병치시키셨다. 이처럼,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정부 권위자들은 하나님께 임명받아 그분을 위해 일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임명하신 그분을 존중하는 것이다(롬13:6-7).
가정의 권위도 지켜져야 한다(엡6:2-3). 부모를 존중할 때, 보상이 따른다.
하나님은 우리 각 영역에 위임된 권위를 존중하라고 명하신다(살전5:12-13).
하나님 나라는 말 그대로 왕국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나라에는 서열과 질서와 위임된 권세가 있다.
하나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을 대하면, 그분과 소통할 수 없다. 오늘 우리 문화는 이전 어느 때 보다 권위를 우습게 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일반 사회만 그런게 아니라, 신자들 사이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예수님이지 인간이 아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신자들은 단체로 모였고 집집마다 모였다. 가정에서 모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몸 된 지역 교회가 지도와 감시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하며, 그 지역교회의 책임자는 바로 장로들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기.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롬13:1).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 자녀가 아니다. 모든 권세는 사람들이 선출하거나 뽑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 대항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다(롬13:2). 평안한 삶은 권위를 공경할 때, 가능하다(딤전2:1-2). 우리는 불경한 권위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하고 존중해야 하는가?
다윗의 존중
성경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테서 왔다고 했찌, 권세가 경건하다고 하지 않았다. 바빌론 왕느부갓네살을 보라. 그는 유다를 멸하고, 성전과 하나님 백성의 거의 모든 집을 약탈했다. 그의 제국은 마침내 온 세상을 제패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방식에 불순종해 재위 중에 미치광이가 되어 인간 세상에서
존중의 원리.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들은 존중을 받는다(삼상2:30). 그게 순리다. 하인 한 사람과 딸 하나가 고침받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백부장과 여인의 선택과 믿음을 칭송하고 있지 않은가?!
1년치 노임에 해당하는 향유 병을 깨뜨려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여인은 아낌없이 기름을 부어 그분을 존중했으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가 그 일을 기뻐하지 않았다(막14:4-5). 그녀의 갈망은 주님을 존중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아낌없이 기름을 붓다가 자신이 주님의 존중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온 마음을 다해 아버지를 존중했다. 한 인간으로써 그분은 자기가 받는 존중을 아버지께 돌려드렸다(빌2:6-7). 영접하다와 주다는 단어를 모두 ‘존중하다’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마10:40-42).
하나님 나라의 권위 질서에서 다음은 ‘선지자’다. 예수님은 지금 신약성경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첫째, 하나님 나라에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께로 흘러 내려온 권위 체계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권위질서에서 다음은 ‘선지자’다. 우리는 위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해도 보상을 받는다. 내 수준의 사람들(동료들)을 존중해도 보상을 받는다. 끝으로 내 보호나 권위아래 있는 사람들을 존중해도 보상을 받는다.
3장, 권위에 순종하는 삶
존중과 예배는 다르다. 우리는 영원토록 우리 주요 왕이신 하나님 한 분만 예배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마땅히 존중할 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권능을 보고 있는 남녀 사역자들의 사연을 수 없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요지는 바로 그 사역자들이 미국이나 다른 서구 국가들에게도 온다는 것이다. 사람도 똑같고, 메시지도 똑같고, 기름부음도 똑같고, 사역 방법도 똑같다. 그러나 서구 집회에서는 몇 명의 두통, 허리 아픈 것, 소수의 관절염만 고침 받을 뿐이다. 왜 그럴까? 핵심은 존중이다. 나는 지금까지 20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그때 마다 보는 현상이지만, 가장 큰 영향력과 기적들이 나타나고, 설교하기 가장 쉽고, 하나님이 가장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곳들은 여러 개발도상국, 감옥, 군부대다. 그들은 존중을 보이고, 권위를 공경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역자인 나와는 정말 아무런 소용없고, 오히려 사람들의 영접과 관계된다.
“다들어본 얘기다. 외부 강사 설교도 많이 들어봤다. 당신이라고 뭐 다른 내용이 있겠냐?”
어떤 결과를 낳느냐는 단 한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존중이다.
지도자를 대하는 자세.
구약 성경의 한나는 자기를 모욕한 지도자를 크게 존중했다(삼상1:15-16). 한나는 석달만에 잉태하여 아기 사무엘을 낳았다. 엘리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제사장이었다(삼상3:13) 한나는 이 사람을 존중해서 하나님께 큰 보상을 받았다. 이는 엘리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오직 자기 위의 권위 있는 사람을 영접하면, 그 직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보상을 받는다.
권위의 네 영역
오늘 우리 사회에서 특히 그렇다. 권위와 존중의 진리가 우리 마음에 정립되어야 한다(롬13:1-2). 이 말은 권유도, 충고도 아닌, 명령이다. ‘각 사람’이라는 말에서 알수있듯이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이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누구인가? 정부, 권세들이다. 그러나 권고의 말씀은 정부 지도자들에게만 아니라 다른 영역들의 위임된 권위에도 적용된다.
신약성경에 네 가지 영역의 위임된 권위가 나온다. 정부, 교회, 가정, 사회다. 사회에는 고용주, 상사, 교사 코치등이 들어간다. 신약성경에 각 영역마다 구체적 지침이 나오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권고는 경계선을 넘어 모든 영역의 위임된 권위에 미친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함에 대하여 그것을 의인, 그리고, 작은 자와 병치시키셨다. 이처럼,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정부 권위자들은 하나님께 임명받아 그분을 위해 일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임명하신 그분을 존중하는 것이다(롬13:6-7).
가정의 권위도 지켜져야 한다(엡6:2-3). 부모를 존중할 때, 보상이 따른다.
하나님은 우리 각 영역에 위임된 권위를 존중하라고 명하신다(살전5:12-13).
하나님 나라는 말 그대로 왕국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나라에는 서열과 질서와 위임된 권세가 있다.
하나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을 대하면, 그분과 소통할 수 없다. 오늘 우리 문화는 이전 어느 때 보다 권위를 우습게 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일반 사회만 그런게 아니라, 신자들 사이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예수님이지 인간이 아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신자들은 단체로 모였고 집집마다 모였다. 가정에서 모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몸 된 지역 교회가 지도와 감시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하며, 그 지역교회의 책임자는 바로 장로들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기.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롬13:1).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 자녀가 아니다. 모든 권세는 사람들이 선출하거나 뽑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 대항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다(롬13:2). 평안한 삶은 권위를 공경할 때, 가능하다(딤전2:1-2). 우리는 불경한 권위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하고 존중해야 하는가?
다윗의 존중
성경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테서 왔다고 했찌, 권세가 경건하다고 하지 않았다. 바빌론 왕느부갓네살을 보라. 그는 유다를 멸하고, 성전과 하나님 백성의 거의 모든 집을 약탈했다. 그의 제국은 마침내 온 세상을 제패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방식에 불순종해 재위 중에 미치광이가 되어 인간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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