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출산
2) 첫사랑
2) 첫사랑
본문내용
러 도시를 여행했다. 우리는 LA,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를 여행하며 수많은 대화를 했다. 영어 실력이 점차 향상되며 나는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인생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홋카이도의 나름 금수저 집안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는 것을 거부,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너무 과도한 회사업무에 지쳐 다시 홋카이도로 돌아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것 인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영어향상프로그램에 발탁된 것이었다. 머리를 비울 겸 도망쳐 왔던 미국행. 그래서 그는 영어 공부에 더 열을 올렸었던 것이다. 그러던 도중 나를 만났고 나를 통해 모든 것을 잊고 여행도 하며 인생 처음으로 여유를 즐겨본다며 해맑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웃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시간은 행복한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4개월이란 시간은 결코 오랜 시간이 아니었고 우리는 헤어짐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카메라로 서로의 사진을 찍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지극하게 현실적인 사람이라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만 해도 PC메신저, 전화, 메일이 연락수단의 전부였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의 약속 대신 서로의 스카이프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장거리 연락에 대비했다. 그리고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던 날, 나는 공항에서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린 것 같다. 내 삶의 전부가 떠나버린 것 같았고 그가 없이는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일주일 정도는 수업도 나가지 않은 채 집에서 울기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던 시간도 지나가니 별게 아니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나는 또 그와의 장거리 연애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퇴근한 그와 스카이프 화상통화를 매일같이 했고 전화통화를 하고 메일을 주고받았다. 세이야는 다시 하드워커가 되었고 미국에서의 일들이 꿈만 같다고 했다. 그렇게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우리는 6개월 정도 장거리 연애를 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그와의 연애가 때때론 불안했지만, 외로운 미국 땅에서 난 그와의 장거리 연애로 정신을 항상 다잡았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장기 계획이었던 유학생활이 집안 사정으로 13개월 만에 끝나게 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나를 보러 한국에 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10개월 여 만에 본 그는 미국에서 본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피는 그의 모습과 다소 상해 있는 얼굴을 보며 그의 일본생활이 얼마나 황폐한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가 너무나 다른 사람 같아서 감히 그를 안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한국에 머문 2박 3일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사랑했고 보고 싶었던 그가 왜 갑자기 이방인처럼 느껴지는가. 그가 내가 미국에서 사랑했던 일들은 그저 다시 되돌리지 못할 우리의 순수한 노스텔지어였던 것인가... 인천의 공항에서 다음엔 일본에 오라며 언제 올 수 있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기가 우리의 엔딩지점이라고 말이다. 그는 미국에서 너와의 생활은 인생에서 처음 꿔 본 달콤한 꿈이었다고. 평생 너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슬픈 마지막 메일을 보내왔다. 다시 돌이켜보니 나도 그가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가 떠오른다. 사랑의 정점에서 한 이별은 이렇게 아직도 따끔거리는 상처 같나보다.
시간은 행복한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4개월이란 시간은 결코 오랜 시간이 아니었고 우리는 헤어짐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카메라로 서로의 사진을 찍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지극하게 현실적인 사람이라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만 해도 PC메신저, 전화, 메일이 연락수단의 전부였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의 약속 대신 서로의 스카이프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장거리 연락에 대비했다. 그리고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던 날, 나는 공항에서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린 것 같다. 내 삶의 전부가 떠나버린 것 같았고 그가 없이는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일주일 정도는 수업도 나가지 않은 채 집에서 울기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던 시간도 지나가니 별게 아니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나는 또 그와의 장거리 연애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퇴근한 그와 스카이프 화상통화를 매일같이 했고 전화통화를 하고 메일을 주고받았다. 세이야는 다시 하드워커가 되었고 미국에서의 일들이 꿈만 같다고 했다. 그렇게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우리는 6개월 정도 장거리 연애를 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그와의 연애가 때때론 불안했지만, 외로운 미국 땅에서 난 그와의 장거리 연애로 정신을 항상 다잡았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장기 계획이었던 유학생활이 집안 사정으로 13개월 만에 끝나게 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나를 보러 한국에 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10개월 여 만에 본 그는 미국에서 본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피는 그의 모습과 다소 상해 있는 얼굴을 보며 그의 일본생활이 얼마나 황폐한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가 너무나 다른 사람 같아서 감히 그를 안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한국에 머문 2박 3일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사랑했고 보고 싶었던 그가 왜 갑자기 이방인처럼 느껴지는가. 그가 내가 미국에서 사랑했던 일들은 그저 다시 되돌리지 못할 우리의 순수한 노스텔지어였던 것인가... 인천의 공항에서 다음엔 일본에 오라며 언제 올 수 있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기가 우리의 엔딩지점이라고 말이다. 그는 미국에서 너와의 생활은 인생에서 처음 꿔 본 달콤한 꿈이었다고. 평생 너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슬픈 마지막 메일을 보내왔다. 다시 돌이켜보니 나도 그가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가 떠오른다. 사랑의 정점에서 한 이별은 이렇게 아직도 따끔거리는 상처 같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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