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작가 소개
2. 연작 소개
3. 작품 연구
4. 역사적 배경
5. 줄거리 및 5막 구조
6. 인물 분석
7. 연관 작품
[추가자료] 광주 대단지 사건 분석
2. 연작 소개
3. 작품 연구
4. 역사적 배경
5. 줄거리 및 5막 구조
6. 인물 분석
7. 연관 작품
[추가자료] 광주 대단지 사건 분석
본문내용
계층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자신은 다른 빈민들과는 분명 다르다는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강한 자존심이 구두를 광나게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작품 속에서 권씨는 구두를 아주 열심히 광을 내서 닦는다. 작가는 이런 그의 구두 닦는 모습을 아주 세세하게, 섬세하게 다룬다. 서술에 따르면, 그의 구두 닦기 실력은 보통에서 훨씬 벗어나 있고 사용하는 도구들도 전문 직업인 못지않게 구색을 갖추고 있다-14-
. 그는 구두가 그렇게 광이 날 정도로 문질러도 만족하지 못하고 같은 동작을 습관처럼 끊임없이 반복한다. ‘구두를 구두 이상이 아닌 무엇으로, 구두 이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 다시 말해서 인간이 발에다 꿰차는 물건이 아니라, 얼굴 같은 데를 장식하는 것으로 바꿔 놓으려는 듯이’ 닦는다.
강도사건 이후, 아홉 켤레 구두만이 셋방에 남는다. 열 켤레 중에서 그 한 켤레의 구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남겨놓고 떠나버린다. 슬프게도, 현대 산업 사회는 어떤 이들에게는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권 씨처럼 정신적인 높이를 지향하는 자에게, 물질의 결핍으로 인해 자존심을 버리라는 것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비극이다. 처음에는 권 씨를 운 나쁘게 들어온 전과가 있는 세입자 정도로만 여겼던 \'나\'는 결국 이 비극적 현실에서 아프게 살아가는 권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연관 작품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같이 소시민, 빈민 계층의 아픔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연작 소설이다.
조세희 작가는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힘겹게 사는 도시 빈민층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들의 삶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글을 썼다.
갈래: 단편소설
배경: 시간 현대
공간 - 낙원구 행복동
주제: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좌절
특징: 난쟁이 가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물질 만능주의)를 고발, 비판함.
-15-
1970년대 도시에 있는 판자촌을 배경으로 한다. ‘나’(영수)의 가족은 무허가 판자촌인 낙원구 행복동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집이 재개발 사업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니 집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받는다. 그 당시에는 도시를 재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판잣집들을 철거하는 일이 많았다.
행복동 주민들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업자에게 입주권을 싼 값에 팔고 동네를 떠났다. 아파트에 입주할 능력이 안 되는 영수네 가족도 끝내 입주권을 팔고 행복동을 떠나는데, 가족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고 집이 철거당한 뒤, 결국 거리로 쫓겨날 처지가 된다. 영희는 입주권을 산 남자를 따라갔다가 돈과 입주권을 훔쳐 도망쳐 나온다. 동사무소에서 입주 신청을 한 영희는 예전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은 이미 다른 데로 이사가 버린 뒤다. 영희는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아버지가 그동안 일하던 공장 굴뚝에 올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추가자료] 광주 대단지 사건
사건 개요
1971년 8월 10일 화요일,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성남출장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봉기이자 최초, 최대의 빈민 탄압 사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민중이 공권력에 저항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경제적(생존)의 문제로, 공권력에 대해 소극적인 저항이 아닌 폭력과 약탈을 동반한 적극적인 저항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다른 유사 사례가 드문 중요한 사건이다.
사건 배경
박정희 정권 중반인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 시절, 서울의 무허가 빈민촌 정리 계획이 발단이 되었다. 이때 10만 명이 넘는 빈민층 사람들이 살 집을 준다는 말만 믿고 이사를 갔다. 그러나, 살림집을 지어놓은 것이 아니라 언덕에 금만 그어놓은 땅바닥이 제공되었으며 1가구당 텐트 하나가 지급되었다. 또한, 정부가 약속했던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줄 공장 지역도, 물자 공급을 해줄 상가도 없었고, 업무시설도 없었다. 이 광주 단지 주민 중 철거민은 29.8%, 일반 입주자는 49.3% 가량을 차지했다. 사실 이 빈민촌 정리 계획은 1971년 대통령선거와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겨냥한 정책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서울시는 분양증 전매 금지와 함께 높은 가격의 토지대금 고지서를 발부하였다.-16-
사건 경과
이와 같은 조치에 크게 분노한 주민들은 철거민들의 목소리보다 일반 입주자들의 목소리가 힘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정부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울시, 내무부, 경기도의 대응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8월 10일, 면담하기로 약속한 서울시장이 오지 않자 흥분한 주민들은 성남출장소 등의 관공서를 파괴·방화하며 주민들은 투석전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였다. 또한, 이 날 도로변에 지나가던 참외 트럭을 본 굶주린 주민들은 일제히 달려들었고 참외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고 알려져 있다.
사건 결과
이 사건을 보고받은 정부는 이주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며, 주민 대표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였다. 그리고 서울시장 또한 결국 모든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며 주민들이 자진 해산, 소요는 3일 만에 최종 진정되었다. 이후 사건 진압 과정에서 검거된 총 22명의 주민은 징역 2년 이하를 선고받았다.
광주 대단지 사건은 해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생성된 대규모 빈곤층이 벌인 최초의 도시 빈민투쟁이었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文學과 知性社, 1978.
이을신, 「윤흥길 소설연구 : 산업화 시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가천대학교 대학원, 2011
추진호, 「윤흥길 소설 연구 : 197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 2001
정희정, 「윤흥길 소설 연구 : 197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2004-1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11099 이채원A_지광현T_국어수행평가_아홉-켤레의-구두로-남은-사나이_210901
작품 속에서 권씨는 구두를 아주 열심히 광을 내서 닦는다. 작가는 이런 그의 구두 닦는 모습을 아주 세세하게, 섬세하게 다룬다. 서술에 따르면, 그의 구두 닦기 실력은 보통에서 훨씬 벗어나 있고 사용하는 도구들도 전문 직업인 못지않게 구색을 갖추고 있다-14-
. 그는 구두가 그렇게 광이 날 정도로 문질러도 만족하지 못하고 같은 동작을 습관처럼 끊임없이 반복한다. ‘구두를 구두 이상이 아닌 무엇으로, 구두 이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 다시 말해서 인간이 발에다 꿰차는 물건이 아니라, 얼굴 같은 데를 장식하는 것으로 바꿔 놓으려는 듯이’ 닦는다.
강도사건 이후, 아홉 켤레 구두만이 셋방에 남는다. 열 켤레 중에서 그 한 켤레의 구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남겨놓고 떠나버린다. 슬프게도, 현대 산업 사회는 어떤 이들에게는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권 씨처럼 정신적인 높이를 지향하는 자에게, 물질의 결핍으로 인해 자존심을 버리라는 것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비극이다. 처음에는 권 씨를 운 나쁘게 들어온 전과가 있는 세입자 정도로만 여겼던 \'나\'는 결국 이 비극적 현실에서 아프게 살아가는 권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연관 작품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같이 소시민, 빈민 계층의 아픔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연작 소설이다.
조세희 작가는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힘겹게 사는 도시 빈민층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들의 삶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글을 썼다.
갈래: 단편소설
배경: 시간 현대
공간 - 낙원구 행복동
주제: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좌절
특징: 난쟁이 가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물질 만능주의)를 고발, 비판함.
-15-
1970년대 도시에 있는 판자촌을 배경으로 한다. ‘나’(영수)의 가족은 무허가 판자촌인 낙원구 행복동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집이 재개발 사업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니 집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받는다. 그 당시에는 도시를 재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판잣집들을 철거하는 일이 많았다.
행복동 주민들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업자에게 입주권을 싼 값에 팔고 동네를 떠났다. 아파트에 입주할 능력이 안 되는 영수네 가족도 끝내 입주권을 팔고 행복동을 떠나는데, 가족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고 집이 철거당한 뒤, 결국 거리로 쫓겨날 처지가 된다. 영희는 입주권을 산 남자를 따라갔다가 돈과 입주권을 훔쳐 도망쳐 나온다. 동사무소에서 입주 신청을 한 영희는 예전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은 이미 다른 데로 이사가 버린 뒤다. 영희는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아버지가 그동안 일하던 공장 굴뚝에 올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추가자료] 광주 대단지 사건
사건 개요
1971년 8월 10일 화요일,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성남출장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봉기이자 최초, 최대의 빈민 탄압 사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민중이 공권력에 저항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경제적(생존)의 문제로, 공권력에 대해 소극적인 저항이 아닌 폭력과 약탈을 동반한 적극적인 저항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다른 유사 사례가 드문 중요한 사건이다.
사건 배경
박정희 정권 중반인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 시절, 서울의 무허가 빈민촌 정리 계획이 발단이 되었다. 이때 10만 명이 넘는 빈민층 사람들이 살 집을 준다는 말만 믿고 이사를 갔다. 그러나, 살림집을 지어놓은 것이 아니라 언덕에 금만 그어놓은 땅바닥이 제공되었으며 1가구당 텐트 하나가 지급되었다. 또한, 정부가 약속했던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줄 공장 지역도, 물자 공급을 해줄 상가도 없었고, 업무시설도 없었다. 이 광주 단지 주민 중 철거민은 29.8%, 일반 입주자는 49.3% 가량을 차지했다. 사실 이 빈민촌 정리 계획은 1971년 대통령선거와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겨냥한 정책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서울시는 분양증 전매 금지와 함께 높은 가격의 토지대금 고지서를 발부하였다.-16-
사건 경과
이와 같은 조치에 크게 분노한 주민들은 철거민들의 목소리보다 일반 입주자들의 목소리가 힘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정부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울시, 내무부, 경기도의 대응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8월 10일, 면담하기로 약속한 서울시장이 오지 않자 흥분한 주민들은 성남출장소 등의 관공서를 파괴·방화하며 주민들은 투석전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였다. 또한, 이 날 도로변에 지나가던 참외 트럭을 본 굶주린 주민들은 일제히 달려들었고 참외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고 알려져 있다.
사건 결과
이 사건을 보고받은 정부는 이주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며, 주민 대표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였다. 그리고 서울시장 또한 결국 모든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며 주민들이 자진 해산, 소요는 3일 만에 최종 진정되었다. 이후 사건 진압 과정에서 검거된 총 22명의 주민은 징역 2년 이하를 선고받았다.
광주 대단지 사건은 해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생성된 대규모 빈곤층이 벌인 최초의 도시 빈민투쟁이었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文學과 知性社, 1978.
이을신, 「윤흥길 소설연구 : 산업화 시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가천대학교 대학원, 2011
추진호, 「윤흥길 소설 연구 : 197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 2001
정희정, 「윤흥길 소설 연구 : 197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2004-1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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