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무엇인가를
옮겨야 한다는 느낌으로
이 같은 행동이 무대화되었을 때 움직임 자체에 시선을 집중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움직임만으로 무었인가를/옮겨야 한다”는 움직임을 통한 의사소통의 시도이다. 이것은 대사 중심의 기존 희곡과 달리 시각적인 연극으로의 이동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지문에서 비단 이 장면 뿐 아니라 모든 움직임이 움직임더듬으로 이루어 질 것을 지시한다.
마치
우주선에서 우주 비행사의 그 단순한
어린애보다 못한 움직임을
우리가 볼 때의
그 신기하고 깊게 울려오는
그런 느낌이 들도록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가
그 움직임의 보통 뜻에 상관없이
움직임 그것이 재미있게 보이게 그렇게 움직인다
이 극의 모든 움직임은 그렇게 움직일 것
말더듬이처럼, 움직임 더듬이로
앞에서 무언극이란 표현에서 최인훈 희곡에서의 움직임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움직임은 존재적 차원으로 승격된다. (*현존의 성격을 가진다) 최인훈 작품에서 움직임은 말에 대한 보조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부풀려진 육체나 일상적인 육체가 아니다. 이는 엄격한 훈련과 정확한 계산에 의해 행해지는 내용으로 가득찬 ‘표현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흐름에 놓여진 주의 집중, 그것은 목적과 역할의 내용을 분석한 후 에너지의 내적인 느낌, 즉 ‘움직임의 느낌’을 가지고 육체적인 행동에 유연성과 조형성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거이에는 필요없는 제스처가 없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제어’를 내포하고 있다.(스타니스랍스키<역할 구성> 67-93) 스타니스랍스키는 일련의 ‘외적 행위’가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적 행위’가 존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욕구는 내적 행위를 일으키고 내적 행위는 외적 행위를 일으킨다. 이런 의미에서 내적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외적행위의 목표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있어 ‘전체, 무한’과 연결되었다는 의식이 없다면 인간은 천박한 수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예술은 상상력을가지고 이러한 ‘전체, 무한’과 연결된 인간의 존재를상기 시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최인훈은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이라 부르고 있다.
문학예술을 전체, 무한에 대한 체험과 연결시키는 이러한 인식은 최인훈 희곡 창작 이후 문학론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공연자들에게 “극이 보다 더 느리게 진행될 것을 거듭거듭 요구하고 자신있게 걸음을 늦출 것”을 주문한다.(<화두1> 135, 141-142, 215) 그는 말과 움직임을 이같이 아낌으로써 역설적으로 말과 움직임이 속해 있는 무대 전체의 존재가 더 진하게 드러나길 바라고 있다. (* 강력한 현존) 이때 무대의 빈자리는 빈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부분일 수 있다.
“말과 움직임을 아낌으로써 말과 움직임이 속해 있는 무대 전체의 존재가 더 진하게 드러내게 하고 싶다는 목표, 무대의 빈자리는 그저 빈자리가 아니라 그곳 역시 살아있는 부분이라는 것이 강조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러나 진행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줄거리를 펼쳐가는데 급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있게 걸음을 늦출 것.”
“나에게 나타난 영원의 형식은 비어있음, 이라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전체, 무한’을 ‘느림’과 ‘빔’으로 표현하는 인식은 존재적 차원으로 승격된 느리고 꿈뜬 움직임이 동양적 혹은 한국적 미(美)와 연결된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양한 연극적 기호를 통한 유기체적 무대 구현
<옛날 옛적>의 첫 부분에서 바람 소리, 부엉이 소리 등 서로 다른 소리는 소리 사이 사이에 다른 움직임이 개입됨은 물론 인위적으로 ‘사이’가 지시됨으로써 템포가 조절된다.
<옛날 옛적>의 셋째 마당을 둘 수 있다. 이 장면은 경제적 궁핍과 부당한 핍박 속에서 이러한 현살을 타파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주인공 부부가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아기장수임을 발견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채 이 사실을 숨기려하는 장면이다. 이때 무대는 침묵 속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다람쥐 기척, 구름이 지나가면서 만드는 그늘, 그리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아가는 새의 깃소리, 부엉이 소리와 늑대우는 소리 들이 차례로 들린다.
부엉이 소리
귀를 귀울이는 두 사람의 얼굴(조명된)
기척
얼굴에 들어왔던 조명 나감
무대, 어둠
사이
조명이 다시 남편 얼굴 만 비추면서
남편 새, 새, 새, 새가, 지, 지, 지나가는 거야.
아내의 얼굴에도 조명이 들어 옴
깃 소리,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옮아가는 새의
부엉이 우는 소리
조명 나간다
사이
어둠 속에 무대
늑대 우는소리
이윽고 숨을 내쉬듯이
조명 들어 옴
꼬부리고 앉아 있는 두 사람
여전히 조명은 얼굴에만
두 사람의 얼굴이 방 쪽으로 돌아간다
벌떡 일어나서 문고리를흔드는 애기의 그림자
문고리 흔들리는 소리
밤의 고요함 속에서
우레처럼 우렁차게
(...)
사이, 문고리 흔드는 소리 멈춤
또 한번 말이 우는 소리
더 세차게 흔들리는 문고리
밤의 고요함 속에서
그 소리는
우뢰처럼 우렁차게
메아리처럼
“내 말!”
확성기를 거친 애기의 목소리 (옛날 옛적)
이러한 자연의 소리는 극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실제로 “배고파”, “내 말”을 외치는 아기장수의 소리는 실제 위협으로 극의 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봄이 오면>의 셋째마당은 소리의 의도적인 사용을 보여준다.
1) 겨울밤/휘파람처럼/날카로운/먼/ 바람소리(132)
2) 늑대나 그런 것이 우는 소리(133)
3) 바람소리/먼데서/겨울밤의/한참을 듣고 있으면/이쪽 넋이 옮아가는지/마음에 바람이 옮아 앉는지/가릴 수 없게 돼가면서/흐느기듯/울부짖듯/어느 바위 모소리에 부딪혀/피흘리며 한숨쉬듯/울부짖는/그/겨울밤의/바람소리(134)
4) 먼데서/늑대우는 소린지/바람 소린지/잘 모를/그런가 하면/사람이 우는 소리 같은/그런 바람 소리(135-136)
5)바람소리/멀리서/여러 사람이/피 묻은 칼을 뽑아들고/벼랑을 달려 내려오는/그런/바람소리(137)
1)의 바람소리는 ‘휘파람처럼 날카로운 먼 바람소리
2) 짐승, 생명이 있는 존재의 소리
3) 흐느끼듯, 울부짖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생명체의 울음소리
4) 마침내 사람이 우는 소리
5) 무언가
옮겨야 한다는 느낌으로
이 같은 행동이 무대화되었을 때 움직임 자체에 시선을 집중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움직임만으로 무었인가를/옮겨야 한다”는 움직임을 통한 의사소통의 시도이다. 이것은 대사 중심의 기존 희곡과 달리 시각적인 연극으로의 이동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지문에서 비단 이 장면 뿐 아니라 모든 움직임이 움직임더듬으로 이루어 질 것을 지시한다.
마치
우주선에서 우주 비행사의 그 단순한
어린애보다 못한 움직임을
우리가 볼 때의
그 신기하고 깊게 울려오는
그런 느낌이 들도록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가
그 움직임의 보통 뜻에 상관없이
움직임 그것이 재미있게 보이게 그렇게 움직인다
이 극의 모든 움직임은 그렇게 움직일 것
말더듬이처럼, 움직임 더듬이로
앞에서 무언극이란 표현에서 최인훈 희곡에서의 움직임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움직임은 존재적 차원으로 승격된다. (*현존의 성격을 가진다) 최인훈 작품에서 움직임은 말에 대한 보조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부풀려진 육체나 일상적인 육체가 아니다. 이는 엄격한 훈련과 정확한 계산에 의해 행해지는 내용으로 가득찬 ‘표현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흐름에 놓여진 주의 집중, 그것은 목적과 역할의 내용을 분석한 후 에너지의 내적인 느낌, 즉 ‘움직임의 느낌’을 가지고 육체적인 행동에 유연성과 조형성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거이에는 필요없는 제스처가 없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제어’를 내포하고 있다.(스타니스랍스키<역할 구성> 67-93) 스타니스랍스키는 일련의 ‘외적 행위’가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적 행위’가 존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욕구는 내적 행위를 일으키고 내적 행위는 외적 행위를 일으킨다. 이런 의미에서 내적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외적행위의 목표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있어 ‘전체, 무한’과 연결되었다는 의식이 없다면 인간은 천박한 수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예술은 상상력을가지고 이러한 ‘전체, 무한’과 연결된 인간의 존재를상기 시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최인훈은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이라 부르고 있다.
문학예술을 전체, 무한에 대한 체험과 연결시키는 이러한 인식은 최인훈 희곡 창작 이후 문학론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공연자들에게 “극이 보다 더 느리게 진행될 것을 거듭거듭 요구하고 자신있게 걸음을 늦출 것”을 주문한다.(<화두1> 135, 141-142, 215) 그는 말과 움직임을 이같이 아낌으로써 역설적으로 말과 움직임이 속해 있는 무대 전체의 존재가 더 진하게 드러나길 바라고 있다. (* 강력한 현존) 이때 무대의 빈자리는 빈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부분일 수 있다.
“말과 움직임을 아낌으로써 말과 움직임이 속해 있는 무대 전체의 존재가 더 진하게 드러내게 하고 싶다는 목표, 무대의 빈자리는 그저 빈자리가 아니라 그곳 역시 살아있는 부분이라는 것이 강조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러나 진행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줄거리를 펼쳐가는데 급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있게 걸음을 늦출 것.”
“나에게 나타난 영원의 형식은 비어있음, 이라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전체, 무한’을 ‘느림’과 ‘빔’으로 표현하는 인식은 존재적 차원으로 승격된 느리고 꿈뜬 움직임이 동양적 혹은 한국적 미(美)와 연결된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양한 연극적 기호를 통한 유기체적 무대 구현
<옛날 옛적>의 첫 부분에서 바람 소리, 부엉이 소리 등 서로 다른 소리는 소리 사이 사이에 다른 움직임이 개입됨은 물론 인위적으로 ‘사이’가 지시됨으로써 템포가 조절된다.
<옛날 옛적>의 셋째 마당을 둘 수 있다. 이 장면은 경제적 궁핍과 부당한 핍박 속에서 이러한 현살을 타파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주인공 부부가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아기장수임을 발견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채 이 사실을 숨기려하는 장면이다. 이때 무대는 침묵 속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다람쥐 기척, 구름이 지나가면서 만드는 그늘, 그리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아가는 새의 깃소리, 부엉이 소리와 늑대우는 소리 들이 차례로 들린다.
부엉이 소리
귀를 귀울이는 두 사람의 얼굴(조명된)
기척
얼굴에 들어왔던 조명 나감
무대, 어둠
사이
조명이 다시 남편 얼굴 만 비추면서
남편 새, 새, 새, 새가, 지, 지, 지나가는 거야.
아내의 얼굴에도 조명이 들어 옴
깃 소리,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옮아가는 새의
부엉이 우는 소리
조명 나간다
사이
어둠 속에 무대
늑대 우는소리
이윽고 숨을 내쉬듯이
조명 들어 옴
꼬부리고 앉아 있는 두 사람
여전히 조명은 얼굴에만
두 사람의 얼굴이 방 쪽으로 돌아간다
벌떡 일어나서 문고리를흔드는 애기의 그림자
문고리 흔들리는 소리
밤의 고요함 속에서
우레처럼 우렁차게
(...)
사이, 문고리 흔드는 소리 멈춤
또 한번 말이 우는 소리
더 세차게 흔들리는 문고리
밤의 고요함 속에서
그 소리는
우뢰처럼 우렁차게
메아리처럼
“내 말!”
확성기를 거친 애기의 목소리 (옛날 옛적)
이러한 자연의 소리는 극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실제로 “배고파”, “내 말”을 외치는 아기장수의 소리는 실제 위협으로 극의 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봄이 오면>의 셋째마당은 소리의 의도적인 사용을 보여준다.
1) 겨울밤/휘파람처럼/날카로운/먼/ 바람소리(132)
2) 늑대나 그런 것이 우는 소리(133)
3) 바람소리/먼데서/겨울밤의/한참을 듣고 있으면/이쪽 넋이 옮아가는지/마음에 바람이 옮아 앉는지/가릴 수 없게 돼가면서/흐느기듯/울부짖듯/어느 바위 모소리에 부딪혀/피흘리며 한숨쉬듯/울부짖는/그/겨울밤의/바람소리(134)
4) 먼데서/늑대우는 소린지/바람 소린지/잘 모를/그런가 하면/사람이 우는 소리 같은/그런 바람 소리(135-136)
5)바람소리/멀리서/여러 사람이/피 묻은 칼을 뽑아들고/벼랑을 달려 내려오는/그런/바람소리(137)
1)의 바람소리는 ‘휘파람처럼 날카로운 먼 바람소리
2) 짐승, 생명이 있는 존재의 소리
3) 흐느끼듯, 울부짖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생명체의 울음소리
4) 마침내 사람이 우는 소리
5)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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