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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내 대륙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려 했었다. 때문에 대륙과 밀접한 지정학적 관계를 맺고 있는 신라의 입장에서는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의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진평왕 김춘추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읽어 중국을 오랑캐가 여기고 배척하기보다는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과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을 뚜렷이 구분하여 신라에 받아들임으로써 국가의 군주가 보여주어야 할 치세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치세를 바탕으로 그의 아들인 문무왕이 통일신라를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곧잘 비견되곤 하는 우리 고유의 역사서이다. 삼국사기와는 달리 야사(野史)도 다소나마 포함하여 기술되었기에 그 정통성에 대해 공격을 받곤 하지만 야사라고 해서 허무맹랑한 근거를 두고 기술된 것이 아니기에 삼국유사를 단순히 삼국사기의 아류작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온당치 않은 견해라고 본다. 따라서 사람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서로 다른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보완재로 보는 견해를 가지고 접근하여 두 서적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을 더욱 깊이 통찰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곧잘 비견되곤 하는 우리 고유의 역사서이다. 삼국사기와는 달리 야사(野史)도 다소나마 포함하여 기술되었기에 그 정통성에 대해 공격을 받곤 하지만 야사라고 해서 허무맹랑한 근거를 두고 기술된 것이 아니기에 삼국유사를 단순히 삼국사기의 아류작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온당치 않은 견해라고 본다. 따라서 사람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서로 다른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보완재로 보는 견해를 가지고 접근하여 두 서적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을 더욱 깊이 통찰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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