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세시풍속 중 제석
2. 제석신앙의 기원
3. 제석신앙의 전개
4. 제석에 대해 서양에서 방문한 관광객에게 설명
1) 불교와 제석
2) 제석굿
3) 부정놀이
4) 제석항아리
5) 삼불제석
6) ‘이루어 주십사’ 기원
7) 제석천
8) 제석춤
9) 예술성
5.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Ⅱ. 본론
1. 세시풍속 중 제석
2. 제석신앙의 기원
3. 제석신앙의 전개
4. 제석에 대해 서양에서 방문한 관광객에게 설명
1) 불교와 제석
2) 제석굿
3) 부정놀이
4) 제석항아리
5) 삼불제석
6) ‘이루어 주십사’ 기원
7) 제석천
8) 제석춤
9) 예술성
5.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틀 속에서 추는 것은 그 자체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춤을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것의 구조적인 면모가 장단에서만 시현되지 않고, 춤사위의 전반에 다양하게 대응하도록 하는 것은 예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
그리고 제석춤이 이러한 예술성은 현시점에서 정말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례를 대물림으로 거듭 이어가면서 여기에 자신들의 예술적인 기량을 드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장단의 속과 이면을 강조하는 전통과 연관된다. 장단의 틀과 장단의 속을 채우면서 이를 일정하게 도구를 이용하여 신을 예찬하고 그들의 권능을 인정하는데서 높은 예술성을 구현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제석춤은 단순하지 않은 그러면서 종교적인 신성성과 거의 겹치는 경계면 속에서 예술성을 발현한 결과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장단을 쪼개 가면서 이를 실현하는 특징은 우리 민족의 전승적 창조성과 무관하지 않다. 장단의 틀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춤사위로 굴려 변화하는 무쌍한 내력이 춤사위로 발현되면서 예술성의 근간을 이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성과 종교성을 서로 결합하면서 현재적인 관점에서의 무대 예술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전형이 사라지고 없어지는데서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 시사점
섣달 그믐날 2품 이상의 조신(朝臣)과 시종신(侍從臣)은 대궐에 들어가 묵은세배로 문안을 올리고, 사대부집에서는 사당에 침례하고, 연소자들은 친척 어른께 묵은세배를 드리는 풍속이 있어서,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묵은 세배객들의 행렬로 인하여 길거리는 등불로 줄을 이었다. 또한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 대포의 임금인 연종포를 쏘고 징과 북을 울리며 대나(大儺: 역질 귀신을 쫓는 행사)의 풍속이 있다. 민가에서는 다락, 마루, 방, 부엌, 외양간, 변소까지 온 집안을 환하게 등잔을 켜 놓고 밤잠을 자지 않는 수세 풍속이 있다. 붉은 싸리가무를 두 쪽으로 쪼개어 내 쪽으로 만든 윷놀이와 흑콩 윷놀이 풍속이 있으며 부녀자들은 여도판회(널뛰기)놀이 풍속과 딱총놀이(폭죽)로 사귀악귀를 쫓는 풍속이 있다.
제석신앙은 일찍이 불교가 수용된 시기부터 있었으며, 제석천이 본래 갖고 있는 무신, 군신의 성격으로 인해 고려시대에 호국적 선신으로서 성행하게 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그 신앙은 이어져왔으며, 이와 같은 결과로 제석천에 관한 도량과 각종 의례들이 생겼다. 이에 제석천을 주불로 한 그림이 법당 안에서 법당을 수호하는 성격의 신으로 봉안되기 시작한다. 남아있는 제석천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은 고려시대의 것이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끊임없이 그 형태가 변화하면서 그려져 왔다. 고려시대에 가장 성행하였던 제석신앙은 그의 호법적 성격 때문에 국가를 외호하는 의미로 각종 도량이 개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비록 그 의미가 축소되긴 하였으나 여전히 사찰을 외호하는 신으로서 나타난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제석천은 사찰을 외호하는 의미 이외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기복적 신앙의 주체로서도 나타난다. 고려 말~조선 초에 왕실과 관련된 제석도량은 장수를 기원하는 기복적인 차원에서 나타났다. 이는 민간에게도 이어졌으며, 이에 제석천은 여러 의식에 봉청되었다. 상용의식집인 제반문류 의식집에서 「제석청」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에서호국안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의식집에서 나타나는 제석천은 의식의 장엄역할로서, 법당을 수호하는 수호신격으로서 사찰안에서 불상, 벽화, 불화 등으로 나타났으며, 법당 바깥에서는 사찰의 사역을 외호하는 역할로서 사찰의 정문 등에 그림으로 그려져 걸리게 된다.
제석천은 사찰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특히 제석천도에서주불이 되어 나타나는 유일한 도상으로 다른 불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가부좌를 틀거나 서있는 다른 여래나 보살도와 달리 당당하게 다리를 벌리고 정면향으로 의자에 앉아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불화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미륵하생경변상도 외에 잘 나타나지 않는 도상 형식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불화들은 시왕도, 현왕도, 조왕도 등에서 볼 수 있으나, 제석천도와 같은 형식의 의자에 앉아있는 불화는 흔치 않다. 또한 제석천도는 거의 대부분의 그림에서 변함없이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제석천 고유의 자세로 볼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강의 1강에서 학습한 세시풍속 중 제석에 대해서 서양에서 방문한 관광객에게 설명 한다는 가정 하에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 보았다. 조선 후반기의 제석천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반기까지 이어져왔던 제석천도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천부신중과 결합하여 조선 후기 신중도로 이어지기까지의 과도기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로 인해 앞에서 살펴본 변화들이 생겨났으며, 그 시대적 성격까지 덧붙여져 표현되었다. 비록 이 시기부터 유행한 신중도로 인해 제석천이 단독으로 갖고 있는 그 호법적 성격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제작되었던 이유는 제석신앙이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크게 성행하였고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그 명맥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서대석. 『무가문학의 세계』. 집문당. 2011.
곽철환. 『불교의 모든 것』. 행성B. 2014.
인권환(2003). 「한국전통문화의 현대적 모색」. 태학사.
방창환·조흥윤, 『제석님과 제석굿-전통제석신앙의 성격규명과 자료』, 문덕사, 1997.
서찬석(2004). 「우리 민속놀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채우리.
신복선. 「제석거리 무복(巫服)의 유형과 특성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신연우, 「제석본풀이, 서사구조의 역사성과 문학성」, 『古典文學硏究』Vol.36, 2009.
윤성찬,「단군신화의 제석과 불교의 제석천의 연관성 연구」, 『고조선단군학』제34호, 2006.
하카마타 미츠야스, 성기혁 번역,「『삼국유사』에 있어서의 환인과 제석」, 『연민학지』 제14권, 2010.
박상준,「신라·백제의 왕권강화와 제석신앙」,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7.
그리고 제석춤이 이러한 예술성은 현시점에서 정말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례를 대물림으로 거듭 이어가면서 여기에 자신들의 예술적인 기량을 드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장단의 속과 이면을 강조하는 전통과 연관된다. 장단의 틀과 장단의 속을 채우면서 이를 일정하게 도구를 이용하여 신을 예찬하고 그들의 권능을 인정하는데서 높은 예술성을 구현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제석춤은 단순하지 않은 그러면서 종교적인 신성성과 거의 겹치는 경계면 속에서 예술성을 발현한 결과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장단을 쪼개 가면서 이를 실현하는 특징은 우리 민족의 전승적 창조성과 무관하지 않다. 장단의 틀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춤사위로 굴려 변화하는 무쌍한 내력이 춤사위로 발현되면서 예술성의 근간을 이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성과 종교성을 서로 결합하면서 현재적인 관점에서의 무대 예술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전형이 사라지고 없어지는데서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 시사점
섣달 그믐날 2품 이상의 조신(朝臣)과 시종신(侍從臣)은 대궐에 들어가 묵은세배로 문안을 올리고, 사대부집에서는 사당에 침례하고, 연소자들은 친척 어른께 묵은세배를 드리는 풍속이 있어서,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묵은 세배객들의 행렬로 인하여 길거리는 등불로 줄을 이었다. 또한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 대포의 임금인 연종포를 쏘고 징과 북을 울리며 대나(大儺: 역질 귀신을 쫓는 행사)의 풍속이 있다. 민가에서는 다락, 마루, 방, 부엌, 외양간, 변소까지 온 집안을 환하게 등잔을 켜 놓고 밤잠을 자지 않는 수세 풍속이 있다. 붉은 싸리가무를 두 쪽으로 쪼개어 내 쪽으로 만든 윷놀이와 흑콩 윷놀이 풍속이 있으며 부녀자들은 여도판회(널뛰기)놀이 풍속과 딱총놀이(폭죽)로 사귀악귀를 쫓는 풍속이 있다.
제석신앙은 일찍이 불교가 수용된 시기부터 있었으며, 제석천이 본래 갖고 있는 무신, 군신의 성격으로 인해 고려시대에 호국적 선신으로서 성행하게 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그 신앙은 이어져왔으며, 이와 같은 결과로 제석천에 관한 도량과 각종 의례들이 생겼다. 이에 제석천을 주불로 한 그림이 법당 안에서 법당을 수호하는 성격의 신으로 봉안되기 시작한다. 남아있는 제석천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은 고려시대의 것이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끊임없이 그 형태가 변화하면서 그려져 왔다. 고려시대에 가장 성행하였던 제석신앙은 그의 호법적 성격 때문에 국가를 외호하는 의미로 각종 도량이 개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비록 그 의미가 축소되긴 하였으나 여전히 사찰을 외호하는 신으로서 나타난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제석천은 사찰을 외호하는 의미 이외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기복적 신앙의 주체로서도 나타난다. 고려 말~조선 초에 왕실과 관련된 제석도량은 장수를 기원하는 기복적인 차원에서 나타났다. 이는 민간에게도 이어졌으며, 이에 제석천은 여러 의식에 봉청되었다. 상용의식집인 제반문류 의식집에서 「제석청」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에서호국안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의식집에서 나타나는 제석천은 의식의 장엄역할로서, 법당을 수호하는 수호신격으로서 사찰안에서 불상, 벽화, 불화 등으로 나타났으며, 법당 바깥에서는 사찰의 사역을 외호하는 역할로서 사찰의 정문 등에 그림으로 그려져 걸리게 된다.
제석천은 사찰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특히 제석천도에서주불이 되어 나타나는 유일한 도상으로 다른 불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가부좌를 틀거나 서있는 다른 여래나 보살도와 달리 당당하게 다리를 벌리고 정면향으로 의자에 앉아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불화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미륵하생경변상도 외에 잘 나타나지 않는 도상 형식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불화들은 시왕도, 현왕도, 조왕도 등에서 볼 수 있으나, 제석천도와 같은 형식의 의자에 앉아있는 불화는 흔치 않다. 또한 제석천도는 거의 대부분의 그림에서 변함없이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제석천 고유의 자세로 볼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강의 1강에서 학습한 세시풍속 중 제석에 대해서 서양에서 방문한 관광객에게 설명 한다는 가정 하에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 보았다. 조선 후반기의 제석천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반기까지 이어져왔던 제석천도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천부신중과 결합하여 조선 후기 신중도로 이어지기까지의 과도기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로 인해 앞에서 살펴본 변화들이 생겨났으며, 그 시대적 성격까지 덧붙여져 표현되었다. 비록 이 시기부터 유행한 신중도로 인해 제석천이 단독으로 갖고 있는 그 호법적 성격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제작되었던 이유는 제석신앙이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크게 성행하였고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그 명맥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서대석. 『무가문학의 세계』. 집문당. 2011.
곽철환. 『불교의 모든 것』. 행성B. 2014.
인권환(2003). 「한국전통문화의 현대적 모색」. 태학사.
방창환·조흥윤, 『제석님과 제석굿-전통제석신앙의 성격규명과 자료』, 문덕사, 1997.
서찬석(2004). 「우리 민속놀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채우리.
신복선. 「제석거리 무복(巫服)의 유형과 특성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신연우, 「제석본풀이, 서사구조의 역사성과 문학성」, 『古典文學硏究』Vol.36, 2009.
윤성찬,「단군신화의 제석과 불교의 제석천의 연관성 연구」, 『고조선단군학』제34호, 2006.
하카마타 미츠야스, 성기혁 번역,「『삼국유사』에 있어서의 환인과 제석」, 『연민학지』 제14권, 2010.
박상준,「신라·백제의 왕권강화와 제석신앙」,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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