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내용 요약
1) 세균설 인종주의 강제격리
2) 식민지 조선과 한센병
3) 생존과 치료를 향해
4) 소록도, 절멸의 수용소
5) 해방된 조국,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
6) 개혁과 반동의 시간
7) 죽어도 되는, 죽여야 하는
8) 강제격리 폐지라는 희망
9) 다양해진 강제격리
10) 음성나환자촌
11) 치료를 향한 전 세계의 노력
12) 지금 한센인은 어디에 있는가?
2. 감상
3. 참고문헌
1) 세균설 인종주의 강제격리
2) 식민지 조선과 한센병
3) 생존과 치료를 향해
4) 소록도, 절멸의 수용소
5) 해방된 조국,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
6) 개혁과 반동의 시간
7) 죽어도 되는, 죽여야 하는
8) 강제격리 폐지라는 희망
9) 다양해진 강제격리
10) 음성나환자촌
11) 치료를 향한 전 세계의 노력
12) 지금 한센인은 어디에 있는가?
2. 감상
3. 참고문헌
본문내용
질병에 결렸다는 이유로 소록도에 들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과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노르웨이는 최초로 한센병균을 발견하고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을 고안해낸 한센의 나라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인종주의적 시각에서 한센병은 문명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열등한 유색인종이 걸리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우수한 문명과 신체를 소유한 백인은 한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간이 지나면서 식민지의 백인 중에서도 한센병 환자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인종과 상관없이 전염병은 누구에게나 전염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백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센병에 대해 백인들이 가졌던 인종주의적 시각은 한센이 발견한 과학적 사실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인종주의와 과학은 결합했고, 그 결과 전 세계의 수많은 한센병 환자의 비극이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강제격리국인 일본이었다. 일본은 1909년부터 강제격리가 시작됐고,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종생격리도 가능했다.
2) 식민지 조선과 한센병
한일합방 이전 조선에서 한센병은 주로 경상도, 전라도와 같은 남부지방에서 유행했다. 그러던 것이 1930년대에 이르면 평안도와 함경도, 심지어는 연길까지 환자가 확산되었다. 식민지기 자살한 한센병 환자들이 늘어났다. 한센병 환자들의 자살한 이유는 대부분 가족들의 기피와 냉대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환자의 가족에게까지 확대되는 일이 잦았다. 한센병을 앓는 가족이 있으면 가족 전체가 낙인찍히고 공동체에서 배제당할 수 있었다.
가족 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일반적인 특징은 연장자가 연소자를 살해하는 경향을 보이며,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즉 유교적 질서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가족 내에서 지위가 더 낮은 쪽에 강하게 작용했다.
식민지 조선의 도시민은 한센병환자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을 심각한 위생문제로 여겼고, 경제활동에서 배제된 그들이 구걸을 통해 생존하는 것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한센병환자 집단을 사회문제화시키면서 어떻게든 추방시키려고 하였다. 조선사회는 구미의 사례와 일본에서 시행된 철저한 한센병 관리 정책을 근거로 총독부에 한센병 환자 단속을 철저히 해줄 것을 거듭, 강력하게 외쳤다.
3) 생존과 치료를 향해
1910년대 후반에 대풍자유 혼합제가 들어와서 서양 나병원과 소록도자혜의원 모두 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센병 환자 단체는 1923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1923년 12월경 경국 달성군에 \'대구나병원자상조회\'가 결성됐다. 1930년부터 대구, 부산, 여수에서 만둘어진 한센병 환자단체가 연합해 전국 단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3년 3월 15일 부산에서 각 환자 단체 대표자 20여명이 모여서 \'전조선나병단체연합회\'를 조직했다.
소록도자혜의원 확장이 발표된 1933년부터는 시설에 수용해 달라는 환자들의 활동이 격렬해졌다. 한센병 환자들은 소록도에 격리되기를 희망하며 관련 기관에 가서 항의하는 일은 지속됐다.
4) 소록도, 절멸의 수용소
소록도 자혜의원은 1927년 한차례 확장되면서 100여명이던 수용 환자가 8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1933년 조선나예방협회가 한센인 격리시설을 확장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마친 후, 조선총독부는 소록도 전체를 격리시설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33년 9월 20일 소록도 자혜의원의 확장 공사가 시작됐는데, 이날부터 한센병 환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2년여년의 걸친 공사 끝에 수용 환자가 3,770여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2차 확장 공사, 3차 확장 공사에도 환자들의 노동력은 착취되었다. 그 결과 1939년 말 환자는 6,000여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소록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센인 수용시설이 탄생하게 됐다. 환자들은 노동력이 강요당하면서 점점 쇠약해져갔다. 이제 소록도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 아닌 감옥이자 노동교화소이자 수용소도가 됐다. 환자들은 확장 공사가 종료됨에 따라 강제노동이 끝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바로 전쟁물자 생산에 동원됐다.
확장공사가 끝난 후에는 소록도에서 환자들에게 단종수술과 낙태수술을 가했다. 미츠다는 한센병에 걸린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병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 한센병 환자의 혈통은 한센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주장했다. 미츠다의 이러한 주장안 의학적 근거가 아니라 일본 민족의 정화라는 인종주의적이고 우생학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했다. 미츠다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단종수술이 자행
노르웨이는 최초로 한센병균을 발견하고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을 고안해낸 한센의 나라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인종주의적 시각에서 한센병은 문명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열등한 유색인종이 걸리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우수한 문명과 신체를 소유한 백인은 한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간이 지나면서 식민지의 백인 중에서도 한센병 환자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인종과 상관없이 전염병은 누구에게나 전염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백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센병에 대해 백인들이 가졌던 인종주의적 시각은 한센이 발견한 과학적 사실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인종주의와 과학은 결합했고, 그 결과 전 세계의 수많은 한센병 환자의 비극이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강제격리국인 일본이었다. 일본은 1909년부터 강제격리가 시작됐고,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종생격리도 가능했다.
2) 식민지 조선과 한센병
한일합방 이전 조선에서 한센병은 주로 경상도, 전라도와 같은 남부지방에서 유행했다. 그러던 것이 1930년대에 이르면 평안도와 함경도, 심지어는 연길까지 환자가 확산되었다. 식민지기 자살한 한센병 환자들이 늘어났다. 한센병 환자들의 자살한 이유는 대부분 가족들의 기피와 냉대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환자의 가족에게까지 확대되는 일이 잦았다. 한센병을 앓는 가족이 있으면 가족 전체가 낙인찍히고 공동체에서 배제당할 수 있었다.
가족 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일반적인 특징은 연장자가 연소자를 살해하는 경향을 보이며,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즉 유교적 질서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가족 내에서 지위가 더 낮은 쪽에 강하게 작용했다.
식민지 조선의 도시민은 한센병환자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을 심각한 위생문제로 여겼고, 경제활동에서 배제된 그들이 구걸을 통해 생존하는 것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한센병환자 집단을 사회문제화시키면서 어떻게든 추방시키려고 하였다. 조선사회는 구미의 사례와 일본에서 시행된 철저한 한센병 관리 정책을 근거로 총독부에 한센병 환자 단속을 철저히 해줄 것을 거듭, 강력하게 외쳤다.
3) 생존과 치료를 향해
1910년대 후반에 대풍자유 혼합제가 들어와서 서양 나병원과 소록도자혜의원 모두 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센병 환자 단체는 1923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1923년 12월경 경국 달성군에 \'대구나병원자상조회\'가 결성됐다. 1930년부터 대구, 부산, 여수에서 만둘어진 한센병 환자단체가 연합해 전국 단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3년 3월 15일 부산에서 각 환자 단체 대표자 20여명이 모여서 \'전조선나병단체연합회\'를 조직했다.
소록도자혜의원 확장이 발표된 1933년부터는 시설에 수용해 달라는 환자들의 활동이 격렬해졌다. 한센병 환자들은 소록도에 격리되기를 희망하며 관련 기관에 가서 항의하는 일은 지속됐다.
4) 소록도, 절멸의 수용소
소록도 자혜의원은 1927년 한차례 확장되면서 100여명이던 수용 환자가 8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1933년 조선나예방협회가 한센인 격리시설을 확장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마친 후, 조선총독부는 소록도 전체를 격리시설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33년 9월 20일 소록도 자혜의원의 확장 공사가 시작됐는데, 이날부터 한센병 환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2년여년의 걸친 공사 끝에 수용 환자가 3,770여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2차 확장 공사, 3차 확장 공사에도 환자들의 노동력은 착취되었다. 그 결과 1939년 말 환자는 6,000여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소록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센인 수용시설이 탄생하게 됐다. 환자들은 노동력이 강요당하면서 점점 쇠약해져갔다. 이제 소록도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 아닌 감옥이자 노동교화소이자 수용소도가 됐다. 환자들은 확장 공사가 종료됨에 따라 강제노동이 끝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바로 전쟁물자 생산에 동원됐다.
확장공사가 끝난 후에는 소록도에서 환자들에게 단종수술과 낙태수술을 가했다. 미츠다는 한센병에 걸린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병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 한센병 환자의 혈통은 한센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주장했다. 미츠다의 이러한 주장안 의학적 근거가 아니라 일본 민족의 정화라는 인종주의적이고 우생학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했다. 미츠다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단종수술이 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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