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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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장승의 독백

2. ‘장승’이란 이름의 유래

3. 장승의 기원

4. 장승의 기원지

5. 장승의 신앙 모티프와 바탕 종교

6. 장승의 기능
1. 일반적인 면에서 본 기능
2. 종교적인 면에서 본 기능
3. 지리.군사적인 면에서 본 기능

7. 장승목과 그 운반과정

8. 장승의 모습
1. 체구 2. 모자
3. 머리․이마 4. 눈매
5. 귀 6. 코
7. 입 8. 이
9. 표정 10. 턱
11. 수염 12. 어깨
13. 옷

9. 장승제

10. 서양인과 기독교 선교사의 눈에 비친 장승

11. 맺음 글

인용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기 시작했다. 선교사 게일(J. S. Gale)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당시 조선의 큰길이나 샛길에서 마주치는 장승들의 드러난 이빨과 이글거리는 눈은 무 의식 중에 이스라엘인들이 숭배하는 다곤, 몰록, 그모스, 발과 같은 신이나 우상들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박물관이나 성경책을 통해 그런 것을 보았다. 그러나 우 상을 실제로 자기 눈으로 볼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
이렇게 장승은 한국의 문화적 낙후성과 미신숭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징으로 서, 이에 대한 기본적 시각은 한국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또 한 장승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종교적 태도에서 그들이 얼마나 신성을 모독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곧 그들은 장승이 신앙대상물치고는 매우 초라한 모습을 지니고 있음에 유의하 고, 그것을 투박한 나무에 사람 얼굴모습을 대충 조각한 원시적인 우상신(偶像神) 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가련한 장승의 모습에서 '우습다기 보다 마음 아픔을 느 꼈다'고 하여 동정심을 나타냈다. 또한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길가에 무시무 시한 얼굴에 이빨을 드러내고 사나운 눈과 귀가 거칠게 조작되어 있는 장승은 한 국 사람들이 지나간 세대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세상의 무수한 세력들'을 막아내 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장승의 초라한 모습은 오랜 세월 가난에 찌든 조선 사람의 모습을 연상 하게 한다고도 했다. 더구나 땅바닥에 나뒹구는 낡은 장승은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다 겪은 조선 사람의 한평생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보았다. 어떻든 이런 장승은 마을의 악신을 몰아 내기 위하여 기분 나쁘게도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것 이 사원이나 기도소를 대신하고 있는 우상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이 우상은 어 떤 보호 장치도 없이 길가 땅바닥에 그냥 박아 놓았을 뿐이지, 아무 의식도 갖추 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썩어서 낡아빠진 장승을 소리치고 웃으며 발길로 이리 차고 저리 차서 굴리기까지 하는 등 우상에 경건치 못한 대우를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종교를 등한시하는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장승이 갖는 두 기능 곧 액막이와 이정표로서의 기능을 혼돈하거나 한가 지 기능만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특히 사람의 형상을 한 나무기둥으로 이정표를 삼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과 함께, 원래 액막이 역 할을 하던 것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이정표의 기능까지 갖게 된 것이라고 추측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간단하나마 한 해의 일정한 시간에 마을 사람들이 장승에 게 떡과 과일 등을 바쳐 제사를 지내는 것과, 장승을 매년 새로 깎아서 그 이전의 낡은 장승 옆에 모신다는 것, 그리고 사찰 장승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또한 장승 과 관련된 여러 기원설도 소개하였다.
서양인과 그들 선교사들이 실제로 장승을 주제로 하여 구체적인 연구를 한 것은 없다. 다만 그들 저작물에서 간단하나마 장승의 외형적 특징과 그것을 보고 느낀 감정 정도를 표현했는데, 앞서 지적한대로 그들은 장승을 낙후된 문화와 미신적 우상숭배의 표징으로 전제하고 한결같이 불쌍하고 가련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서양식 기독교 문화에서 결코 접해 보지 못한 장승을 한국의 가장 이 국적인 풍물로 발굴 소개한 것이다.
11. 맺음 글
벅수골·장승골·장승백이·입석골·짐대터 등 장승이 있었던 곳으로 확인되는 장소는 전국에 이천여 개소나 된다. 장승이 남아 있는 유적지는 1982년 2백여 개 소였던 것이 1988년 2월 현재는 169개소로 줄어들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훼손되 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현재 남아 있는 장승의 수는 석장승이 79개소, 목장승이 90개소라 보고되고 있으나, 이 내용은 좀더 세밀한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목장승은 썩어 없어져 멸실되기도 하고 새로 세워지기도 하는데, 요즈음은 서구 종교의 영향으로 신앙기능이 상실되어 더욱 큰 인멸 위기에 있다. 장승의 선대격 (先代格)인 돌장승의 경우도 신앙기능이 약해져 훼손되고 있으며, 부잣집 정원과 식당의 문전에 장식용으로 이용되고, 심지어는 돈벌이가 된다고 해서 장승을 해외 로 유출하는 사례도 있다.
제주도와 전라도, 경상남도, 충청남도 일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돌장승 은 이곳이 돌장승의 시원지(始原地) 또는 문화 잔존지역이었을 가능성을 크게 해 준다. 한편 충남, 충북, 경기, 강원의 목장승과 짐대의 집중분포, 수살 등의 명칭과 풍부히 남아 있는 장승제와 산신제의 유습은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강원도 의 경우 장승보다 짐대가 남아 있는 곳이 많은데, 이러한 분포가 고대 정치문화권 의 문화잔존인지, 아니면 재질에 따른 내구성의 결과인지 장승과 짐대의 양자택일 문화의 선호인지는 앞으로 밝혀져야 할 관심과제이다.
오늘날 산업사회와 도시사회로 나온 장승은 화려했던 옛 신화를 잃어버리고 말 았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어린이 공원에 세워진 장승들은 키와 덩치만 크게 콘크 리트로 만들어져 울긋불긋한 치장은 하였으나 멋과 생명력을 상실하고 한낱 관광 장식품으로 서 있다. 사찰의 나무장승은 천연색 페인트로 장승 흉내를 내고 있으 나, 호법신의 기능이나 불교적, 도교적 명문을 잊어버리고 천하대장군으로 뽐내고 있다.
현대인들은 시골의 '벅수'를 별장의 정원으로 옮겨 놓았다. 신상을 모시는 정성 이 없이 그저 정원의 장식품으로 모셔진 장승은 신통력과 악귀퇴치의 힘을 잃고 있다. 장승의 신앙성을 무시한 사람들 역시 가치기준과 윤리의식을 증발시켜 버린 채 비인간화하고 있다. 신(神)이 죽었듯이 인간도 죽어가고 있다. 신화의 창조가 기다려지는 지금 인간들은 터 잃은 장승에게 고향을 되찾아 주고 신성(神性)을 불 러일으켜 주어야 하겠다.
인용 및 참고문헌
1. 장승
열화당(1988년) 이종철 외 3인
2. 마을 신앙의 사회사
웅진출판주식회사(1994년) 이필영 저
3. 학원세계대백과사전
학원출판공사(1994년)
4. 인터넷 HTML문서
① http://myhome.netsgo.com/s9236432/%c0%e5%bd%c2%b0%fa%20%
bd%c5%be%d3.htm#장승 모시기와 마을의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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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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