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승)연에서는 던져놓은 시상을 발전시킨다. (전)연에서는 발전된 시상을 비약시키거나 반전시킨다. 그리하여 (결)연에서 펼쳤던 시상을 종합하여 마무리 짓는다.
비록 삼장으로 되어있지만 우리의 시조에서도 이러한 기승전결의 작시법을 찾아볼 수 있다.
(기) 옥이 옥이라커늘 燔玉만 여겼더니(번옥 : 人造玉)
(승) 이제야 보아하니 眞玉일시 분명하다
(전) 내게 살송곳 있으니
(결) 뚫어볼까 하노라 (松江 鄭澈)
(기)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섭철 : 불순물이 섞인 철)
(승) 이제야 보아하니 正鐵일시 분명하다
(전) 내게 골풀무 있으니
(결) 녹여볼까 하노라 (妓女 眞玉)
(기) 그랜져 노는 곳에 티코야 가지 마라
(승) 성난 그랜져 날램을 샘낼세라
(전) 다방에 찌든 몸을
(결) 다 망칠까 하노라 (筆者 改作)
(기)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고인이 죽어 볼 수 없는 氣의 가변성)
(승) 고인을 못 뵈도 녀던 길 앞에 있네(기는 변해도 고인이 다니던 道인 理는 불변함)
(전) 녀던 길 앞에 있거던(마음의 바른 도리가 있으니)
(결) 아니 녀고 어떨꼬(당연히 따라 실천하겠다는 의지)(退溪, 陶山十二曲 中)
이상 절구의 起, 承, 轉, 結聯을 율시에서는 首(起), 含, 頸, 結聯이라고 한다.
다음은 조선 개국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정도전이 김거사
) 거사(居士) : ①속인으로서 불교 법명을 가진 사람 ②노는 계집을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부려 돈을 버는 사람 ③사당패 한 종목의 우두머리(뜬쇠) ④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처사와 같은 호칭.
가 사는 시골집을 찾아갔다가 그 곳의 경치를 노래한 시다.
訪金居士野居
鄭道傳
) 정도전(鄭道傳, ?∼1398) : 조선 전기 학자 . 문신. 자는 宗之, 호는 三峰,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개국 1등공신이 되었으나,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피살되었다. 유학과 시문에 능했다. <納氏歌> <靖東方曲> 등의 악장을 남기기도 했다. <납씨가>는 태조가 공민왕 때 원나라 納哈出을 격퇴시킨 무용담을 노래했고, <정동방곡>은 태조의 위화도 회군을 찬양한 내용이다. 동방을 편안하게 하다.
秋雲漠漠西山空(평평측측측평평) 가을 구름 아득히 서산은 비었고
落葉無聲滿地紅(측측평평측측평) 소리 없이 지는 잎에 온 땅이 빠알갛다
立馬溪橋問歸路(측측평평평측측) 다릿가에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물으니
不知身在畵圖中(평평측측측평평) 어느 듯 내 몸이 그림 속에 들어있다
이 시 역시 기승전결 작시 규칙을 잘 지킨 작품이다. 특히 이 시에서는 唐詩의 회화적인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작으로 일컫는다. 이런 특성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中唐 때의 시인 柳宗元
) 유종원(柳宗元, 773∼819) : 자는 子厚, 하동인. 30세에 감찰어사가 되고, 順宗 때 정치 개혁에 가담하여 실패하고 永州 司馬로 귀양갔다가 815년 柳州 刺史가 되었다. 韓愈와 함께 고문 부흥운동에 참여했고, 불교와 노장을 수용했다. 146수의 시가 전하며, 회화적인 山水詩에 뛰어났다.
의 자연시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자연시를 山水詩라고도 하는데 孟浩然이나 王維의 그것에 비견될 만한 작품들이 있다.
江 雪
) 이 시는 영주에 귀양가서 원화 2년(807) 겨울 嶺南에 큰 눈이 내렸을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자연에 은거한 노인의 고기잡이 생활을 빌어서 자신의 淸高한 마음을 드러냈으나, 고독과 정적에 둘러싸여 회화적인 시상을 펼쳐 놓고 있다. 이 어부를 <桃花源記>에 나오는 가공의 노인일 수도 있다. 기 . 승에서는 배경을 묘사했는데, 千山, 萬徑이라하여 아래의 孤舟, 獨釣와 대비시켜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 . 결에서는 物外의 고고한 경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결연의 '寒江雪'에서 화룡점정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눈이 주는 하얀 이미지가 노인의 고결한 성품과 고요함 속의 禪定的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마치 謝靈運의 시풍을 보는 듯하다.
千山鳥飛絶 온 산엔 새도 날지 않고
萬徑人踪滅 모든 길엔 인적도 끊어졌는데
孤舟 笠翁 한 척 쪽 배엔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낚시 앞에 두고 강에는 눈만 내리네
고려 한시문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종 때 시인 鄭知常의 작품에서도 그런 점을 찾을 수 있다.
送人
鄭知常
) 정지상(鄭知常, ?∼1135) : 고려 인종 때 문신 . 시인. 호는 男湖, 평양인. 正言과 司諫 등을 역임했고,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김부식에게 피살되었다. 遺集으로 『鄭司諫集』이 있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어오고
送君南浦動悲歌 님 보낸 남포
) 남포(南浦) : 대동강 하구에 있는 포구.
에 슬픈 노래 들리네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언제쯤 다 마를까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물결에 더하는데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시적 양상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중국풍의 시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생각, 언어를 중시하는 태도는 숙종 때 김만중이나 후대 실학파 문인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났다. 이런 변모는 연암 박지원에게서도 확인된다.
伯兄弔喪詩
我兄顔髮曾誰似 우리 형님 얼굴 모습 누구를 닮았던가
每憶先君看我兄 아버님 생각날 땐 형님 얼굴 보았는데
今日思兄何處見 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디 가서 뵈올까
自將巾袂映溪行 스스로 두건 쓰고 시냇물에 비춰보네
氏弔喪詩
去者丁寧留後期 가는 사람이야 정녕 기약을 남겼다지만
猶令送者淚沾衣 보내는 사람은 눈물로 옷을 적셨네
扁舟一去何時返 저 작은 배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오나
送者徒然岸上歸 보낸 이만 아득히 강 언덕길 돌아오네
이 시는 자연 세계에 두었던 시각을 인간 세계로 바꾸었고, 풍월을 노래하던 태도를 생활과 삶을 노래하는 태도로 바꾸었으며, 인간의 세세한 감정을 노래하는 사실적인 표현을 통하여 진실되고 간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런 점은 한국 한시의 주목할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한시 이론으로 한시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윤곽은 잡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詩題는 자유로이 하고, '東'자와 '窮'자를 운으로 사용하여 가장 간단한 한시 형식인 오언절구를 지어보자.
비록 삼장으로 되어있지만 우리의 시조에서도 이러한 기승전결의 작시법을 찾아볼 수 있다.
(기) 옥이 옥이라커늘 燔玉만 여겼더니(번옥 : 人造玉)
(승) 이제야 보아하니 眞玉일시 분명하다
(전) 내게 살송곳 있으니
(결) 뚫어볼까 하노라 (松江 鄭澈)
(기)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섭철 : 불순물이 섞인 철)
(승) 이제야 보아하니 正鐵일시 분명하다
(전) 내게 골풀무 있으니
(결) 녹여볼까 하노라 (妓女 眞玉)
(기) 그랜져 노는 곳에 티코야 가지 마라
(승) 성난 그랜져 날램을 샘낼세라
(전) 다방에 찌든 몸을
(결) 다 망칠까 하노라 (筆者 改作)
(기)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고인이 죽어 볼 수 없는 氣의 가변성)
(승) 고인을 못 뵈도 녀던 길 앞에 있네(기는 변해도 고인이 다니던 道인 理는 불변함)
(전) 녀던 길 앞에 있거던(마음의 바른 도리가 있으니)
(결) 아니 녀고 어떨꼬(당연히 따라 실천하겠다는 의지)(退溪, 陶山十二曲 中)
이상 절구의 起, 承, 轉, 結聯을 율시에서는 首(起), 含, 頸, 結聯이라고 한다.
다음은 조선 개국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정도전이 김거사
) 거사(居士) : ①속인으로서 불교 법명을 가진 사람 ②노는 계집을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부려 돈을 버는 사람 ③사당패 한 종목의 우두머리(뜬쇠) ④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처사와 같은 호칭.
가 사는 시골집을 찾아갔다가 그 곳의 경치를 노래한 시다.
訪金居士野居
鄭道傳
) 정도전(鄭道傳, ?∼1398) : 조선 전기 학자 . 문신. 자는 宗之, 호는 三峰,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개국 1등공신이 되었으나,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피살되었다. 유학과 시문에 능했다. <納氏歌> <靖東方曲> 등의 악장을 남기기도 했다. <납씨가>는 태조가 공민왕 때 원나라 納哈出을 격퇴시킨 무용담을 노래했고, <정동방곡>은 태조의 위화도 회군을 찬양한 내용이다. 동방을 편안하게 하다.
秋雲漠漠西山空(평평측측측평평) 가을 구름 아득히 서산은 비었고
落葉無聲滿地紅(측측평평측측평) 소리 없이 지는 잎에 온 땅이 빠알갛다
立馬溪橋問歸路(측측평평평측측) 다릿가에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물으니
不知身在畵圖中(평평측측측평평) 어느 듯 내 몸이 그림 속에 들어있다
이 시 역시 기승전결 작시 규칙을 잘 지킨 작품이다. 특히 이 시에서는 唐詩의 회화적인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작으로 일컫는다. 이런 특성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中唐 때의 시인 柳宗元
) 유종원(柳宗元, 773∼819) : 자는 子厚, 하동인. 30세에 감찰어사가 되고, 順宗 때 정치 개혁에 가담하여 실패하고 永州 司馬로 귀양갔다가 815년 柳州 刺史가 되었다. 韓愈와 함께 고문 부흥운동에 참여했고, 불교와 노장을 수용했다. 146수의 시가 전하며, 회화적인 山水詩에 뛰어났다.
의 자연시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자연시를 山水詩라고도 하는데 孟浩然이나 王維의 그것에 비견될 만한 작품들이 있다.
江 雪
) 이 시는 영주에 귀양가서 원화 2년(807) 겨울 嶺南에 큰 눈이 내렸을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자연에 은거한 노인의 고기잡이 생활을 빌어서 자신의 淸高한 마음을 드러냈으나, 고독과 정적에 둘러싸여 회화적인 시상을 펼쳐 놓고 있다. 이 어부를 <桃花源記>에 나오는 가공의 노인일 수도 있다. 기 . 승에서는 배경을 묘사했는데, 千山, 萬徑이라하여 아래의 孤舟, 獨釣와 대비시켜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 . 결에서는 物外의 고고한 경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결연의 '寒江雪'에서 화룡점정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눈이 주는 하얀 이미지가 노인의 고결한 성품과 고요함 속의 禪定的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마치 謝靈運의 시풍을 보는 듯하다.
千山鳥飛絶 온 산엔 새도 날지 않고
萬徑人踪滅 모든 길엔 인적도 끊어졌는데
孤舟 笠翁 한 척 쪽 배엔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낚시 앞에 두고 강에는 눈만 내리네
고려 한시문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종 때 시인 鄭知常의 작품에서도 그런 점을 찾을 수 있다.
送人
鄭知常
) 정지상(鄭知常, ?∼1135) : 고려 인종 때 문신 . 시인. 호는 男湖, 평양인. 正言과 司諫 등을 역임했고,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김부식에게 피살되었다. 遺集으로 『鄭司諫集』이 있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어오고
送君南浦動悲歌 님 보낸 남포
) 남포(南浦) : 대동강 하구에 있는 포구.
에 슬픈 노래 들리네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언제쯤 다 마를까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물결에 더하는데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시적 양상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중국풍의 시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생각, 언어를 중시하는 태도는 숙종 때 김만중이나 후대 실학파 문인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났다. 이런 변모는 연암 박지원에게서도 확인된다.
伯兄弔喪詩
我兄顔髮曾誰似 우리 형님 얼굴 모습 누구를 닮았던가
每憶先君看我兄 아버님 생각날 땐 형님 얼굴 보았는데
今日思兄何處見 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디 가서 뵈올까
自將巾袂映溪行 스스로 두건 쓰고 시냇물에 비춰보네
氏弔喪詩
去者丁寧留後期 가는 사람이야 정녕 기약을 남겼다지만
猶令送者淚沾衣 보내는 사람은 눈물로 옷을 적셨네
扁舟一去何時返 저 작은 배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오나
送者徒然岸上歸 보낸 이만 아득히 강 언덕길 돌아오네
이 시는 자연 세계에 두었던 시각을 인간 세계로 바꾸었고, 풍월을 노래하던 태도를 생활과 삶을 노래하는 태도로 바꾸었으며, 인간의 세세한 감정을 노래하는 사실적인 표현을 통하여 진실되고 간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런 점은 한국 한시의 주목할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한시 이론으로 한시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윤곽은 잡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詩題는 자유로이 하고, '東'자와 '窮'자를 운으로 사용하여 가장 간단한 한시 형식인 오언절구를 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