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식민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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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인에게 더욱 결핍된, 용감한 무사적 정신의 대표자인 우리 일본 민족은 봉건적 교육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단위의 발전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는 그 부패 쇠망의 극에 달한 민족적 특성을 근저에서부터 소멸시킴으로써 이를 동화시켜야 할 자연적 운명과 의무를 가지는 유력 우세한 문화의 사명의 무거움을 자인해야 하지 않을까"[미주 15]라고 하여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합리화하였다.
후쿠다의 정체성이론은 1923년 『경제사논고』를 펴낸 코쿠쇼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구체적인 역사사실의 인식에서 후쿠다와는 큰 차이가 있었고, 또 표현에서도 후쿠다와 같은 노골적인 편견에 찬 발언은 억제하였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정체적인 측면에서 관찰하여 후진성·낙후성을 강조했다는 점, 그렇게 된 기본요인이 봉건제도의 결여에 있다고 생각한 근본적인 인식에서는 후쿠다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코쿠쇼는 한국사회에서의 봉건사회·중세 부재론을 강조한 뒤 "조선에는 마침내 봉건제의 발생을 보지 못하고 갑오의 대변혁을 지나 금일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였다.
정체성이론은 사회경제사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사 연구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만선사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나바는 또한 한국사 연구자 가운데 가장 명백하게 정체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조선문화사연구』(1925년)에서 한국에 봉건제도가 없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한국사회는 일본보다 약 600년 낙후되어 있다고 하였다.
정체성이론은 한국사에서 사회적·경제적 낙후성을 지적하는 학문적인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중점이 있었다. 후쿠다가 일본은 후진 한국을 동화시켜야 할 자연적 운명과 의무를 가진 유력 우세한 문화의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나, 코쿠쇼가 한국은 역시 자력으로 근대화할 수 없는 낙오자이며 일본은 한국을 근대화시켜주는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그러한 성격은 명확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식민사관은 근대역사학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정책에 부응하려는 현실적 목적을 지닌 한국사 인식체계였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허구성과 침략적 의도는 바로 그 당대부터 비판받았다. 대한제국 이래 충군애국주의를 극복하고 근대적 방법론과 서술체제를 갖추었던 우리의 역사학은, 식민사관에 맞서 민족의 독립과 국민국가의 수립이라는 요구에 부응하는 역사학을 수립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키워드

식민지,   식민,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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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2.06.21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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