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제 목 :
□ 총 페이지수 : 18
□ 목 차: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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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원후 7세기에 마호멧이 전파한 이슬람교의 신앙 아래 통일국가를 건설한 후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여 불과 수십년 사이에 중동전역과 스페인에까지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팔레스타인지역도 이 시기에 아랍인의 영향권에 들어가 그 이후로는 줄곧 아랍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시온이즘(Zionism)-분쟁의 씨앗
세계각처로 흩어져 살게 된 유태인들은 어디에서건 자기들만의 독특한 공동생활을 유지해 현지인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갈등을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유럽의 기독교국가에 정착한 유태인들은 '예수의 살해범'으로 심한 차별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태인들의 민족의식에 불이 붙은 것은 19세기말 유럽의 지식인들을 분노케 했던 드레퓌스사건을 계기로 시온이즘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프랑스군 장교였던 드레퓌스는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가 명백히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태인이라는 출신성분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여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신문의 기자로서 이 사건을 취재하던 테오도르 헤르즐이라는 유태인은 유럽인의 反유태의식이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절감하고 시온이즘운동을 제창했다.
시온은 고대 이스라엘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의 산성을 지칭하며, 시온이즘이란 단적으로 전세계의 유태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이념이었다. 이 운동은 유태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특히 2차대전을 전후해서는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에 자극된 서구인들의 여론도 이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유태인들은 속속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와 1918년까지 5만여명에 불과했던 팔레스타인의 유태인은 1948년에는 76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일종의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된 시온이즘 운동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게 될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는 황무지가 아니고 아랍인들이 수십대에 걸쳐 살아 온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 이후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초기에 유태인의 이주를 묵인하다가 현지 아랍인들과의 갈등이 점차 커지자 결국 이 문제를 국제연합(UN)에 상정하였다. 국제연합은 이를 받아 1947년 팔레스타인지역을 유태인지역과 아랍인지역으로 반씩 나누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네 차례의 중동전쟁
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의 통치를 포기하고 물러가자 유태인들은 즉각적으로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다. 이에 대해 아랍인들은 일제히 반발함으로써 제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6개국 연합의 아랍군대는 패배하였고 약 80만명의 아랍인난민이 발생하였다. 반면 이스라엘은 유엔의 분할안 보다 더 넓은 지역을 점령하여 오늘날까지 이를 기본영토로 삼고 있다.
이후에도 1956년, 1967년, 1973년에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아랍인들의 노력은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특히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어 6일만에 아랍의 대패로 끝난 1967년의 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요르단강 서안지대(West Bank) 와 가자지구(Gaza Strip),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였다.
아랍인들이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연패를 한 이유는 무기와 전략 등의 군사적 요인 이외에도 각국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협조 부족 등 정치적 요인이 개재되어 있다. 과거 대제국을 건설했던 아랍민족은 현재 22개의 군소국가로 분열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 나름대로의 이해타산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편 네 차례의 전쟁과정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아랍난민들은 주위의 형제국가들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지자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결성하고 자체적인 영토회복 운동에 나섰다.
평화에의 길
2천년에 걸친 유랑생활을 종식하려는 유태인들의 노력은 엉뚱하게 다른 한 민족의 운명을 바꿔 놓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유랑민족집단을 낳았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난민은 현재 400-500 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들은 인근의 아랍국가들과 세계각처에 흩어져 고토회복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PLO는 그동안 이들의 대표기구로 활동하면서 이스라엘과 산발적인 무력충돌을 벌이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와 테러행위 등으로 관심을 모아 왔다. PLO의 본래 목표는 이스라엘이 수립되기 이전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현실적인 힘의 한계 속에서 점차 축소되어 왔다.
1988년에 PLO 는 東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대 및 가자지구를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국가의 건국을 선포한 바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체결된 평화협정은 이것보다 더 후퇴하여 요르단강 서안지대와 가자지구에서 독립이 아닌 자치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상의 항복선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PLO의 이러한 입장 전환은 아랍국가들의 분열로 지원세력이 약해진데다 동서냉전구도의 와해 이후 소련이라는 후원자마저 잃어버린데 따른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아랍권에서는 이미 1979년에 이집트가 단독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반이스라엘 연합전선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1991년의 걸프전쟁 때에는 같은 아랍국가끼리 전쟁을 벌여 분열상이 극도로 노출되었다.
PLO의 이번 선택은 이러한 배경에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고향을 뺏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이 선택을 어쩔 수 없는 차선책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일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PLO의 이번 선택은 중동지역에 평화의 바람을 몰고 오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피해자가 이스라엘과 평화공존을 선택한 마당에 다른 아랍국가들이 굳이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계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과는 아직도 합의할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도 잘 해결될 것이라는 보도가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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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rabia.co.kr/mideast.htm
시온이즘(Zionism)-분쟁의 씨앗
세계각처로 흩어져 살게 된 유태인들은 어디에서건 자기들만의 독특한 공동생활을 유지해 현지인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갈등을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유럽의 기독교국가에 정착한 유태인들은 '예수의 살해범'으로 심한 차별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태인들의 민족의식에 불이 붙은 것은 19세기말 유럽의 지식인들을 분노케 했던 드레퓌스사건을 계기로 시온이즘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프랑스군 장교였던 드레퓌스는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가 명백히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태인이라는 출신성분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여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신문의 기자로서 이 사건을 취재하던 테오도르 헤르즐이라는 유태인은 유럽인의 反유태의식이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절감하고 시온이즘운동을 제창했다.
시온은 고대 이스라엘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의 산성을 지칭하며, 시온이즘이란 단적으로 전세계의 유태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이념이었다. 이 운동은 유태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특히 2차대전을 전후해서는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에 자극된 서구인들의 여론도 이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유태인들은 속속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와 1918년까지 5만여명에 불과했던 팔레스타인의 유태인은 1948년에는 76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일종의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된 시온이즘 운동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게 될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는 황무지가 아니고 아랍인들이 수십대에 걸쳐 살아 온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 이후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초기에 유태인의 이주를 묵인하다가 현지 아랍인들과의 갈등이 점차 커지자 결국 이 문제를 국제연합(UN)에 상정하였다. 국제연합은 이를 받아 1947년 팔레스타인지역을 유태인지역과 아랍인지역으로 반씩 나누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네 차례의 중동전쟁
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의 통치를 포기하고 물러가자 유태인들은 즉각적으로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다. 이에 대해 아랍인들은 일제히 반발함으로써 제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6개국 연합의 아랍군대는 패배하였고 약 80만명의 아랍인난민이 발생하였다. 반면 이스라엘은 유엔의 분할안 보다 더 넓은 지역을 점령하여 오늘날까지 이를 기본영토로 삼고 있다.
이후에도 1956년, 1967년, 1973년에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아랍인들의 노력은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특히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어 6일만에 아랍의 대패로 끝난 1967년의 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요르단강 서안지대(West Bank) 와 가자지구(Gaza Strip),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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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네 차례의 전쟁과정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아랍난민들은 주위의 형제국가들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지자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결성하고 자체적인 영토회복 운동에 나섰다.
평화에의 길
2천년에 걸친 유랑생활을 종식하려는 유태인들의 노력은 엉뚱하게 다른 한 민족의 운명을 바꿔 놓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유랑민족집단을 낳았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난민은 현재 400-500 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들은 인근의 아랍국가들과 세계각처에 흩어져 고토회복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PLO는 그동안 이들의 대표기구로 활동하면서 이스라엘과 산발적인 무력충돌을 벌이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와 테러행위 등으로 관심을 모아 왔다. PLO의 본래 목표는 이스라엘이 수립되기 이전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현실적인 힘의 한계 속에서 점차 축소되어 왔다.
1988년에 PLO 는 東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대 및 가자지구를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국가의 건국을 선포한 바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체결된 평화협정은 이것보다 더 후퇴하여 요르단강 서안지대와 가자지구에서 독립이 아닌 자치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상의 항복선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PLO의 이러한 입장 전환은 아랍국가들의 분열로 지원세력이 약해진데다 동서냉전구도의 와해 이후 소련이라는 후원자마저 잃어버린데 따른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아랍권에서는 이미 1979년에 이집트가 단독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반이스라엘 연합전선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1991년의 걸프전쟁 때에는 같은 아랍국가끼리 전쟁을 벌여 분열상이 극도로 노출되었다.
PLO의 이번 선택은 이러한 배경에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고향을 뺏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이 선택을 어쩔 수 없는 차선책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일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PLO의 이번 선택은 중동지역에 평화의 바람을 몰고 오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피해자가 이스라엘과 평화공존을 선택한 마당에 다른 아랍국가들이 굳이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계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과는 아직도 합의할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도 잘 해결될 것이라는 보도가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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