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하나님 나라의 적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가정을 떠나야 했고(막 1,16-20 병행구; 10,29; 눅 18,29-30), 부모의 장례를 주관하는 것 보다 더 긴급하게 예수의 뒤를 따라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가족의 붕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집과 형제 자매, 그리고 부모와 자녀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다(막 10,29.30; 마 19,29; 눅 18,29.30). 곧 혈연적 가족이 붕괴되는 자리에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이 탄생됨을 의미한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막 10,31-35에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그를 찾아 온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보시고는 오히려 그를 둘러싸 말씀을 듣고 있는 민중들을 향하여 "내 모친과 형제와 자매를 보라"(막 3,34)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난 이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이 아버지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맏형이 되시며(롬 8,29),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형제와 자매가 되는 공동체이다. 그리하여 이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는 세계를 향한 개방성에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남녀의 차이나, 인종의 구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도 있을 수 없었다. 다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서로의 사랑과 나눔, 그리고 섬김이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가족이란 말하자면 하나님의 첫 창조에 의해 생겨진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말론적으로 완성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요 1,12-13). 따라서 창조신학과 구원신학이 여기서 만나게 된다. 첫 가정을 통해서 시작된 혈연의 가족이 이제는 교회 공동체를 넘어 마침내는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의 모든 사람을 가족으로 만나는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인류는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4. 지상의 가족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양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새 공동체를 부양할 인물이 요청된다. 영적으로 돌보고 사랑으로 이끌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영적인 아버지라고 묘사한다(고전 4,15-17; 살전 2,7.11).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위해서 성서적인 부모됨은 목회자에게만 제한 된 것이 아니다. 영적인 성숙을 위하여 나아가는 자 모두에게 열려져 있다. 다만 영적 부모됨에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그것은 억압하고 명령하는 권위가 아니라, 사랑의 나눔과 겸손한 섬김이다. 여기에는 권리 보다는 책임이, 자기 자신의 명예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시된다. 이러한 모습이 믿음의 가정 공동체를 지속시키며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요 추진력이 될 것이다.
어느 나라의 사회도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정의 도덕성, 지성, 영적인 활력성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사회의 도덕성과 영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기에 속해 있는 가정부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이 신앙으로 바로 서고, 가정에서 올바른 도덕성이 회복되고,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와 존경이 구축될 때 그 사회는 비로소 바르게 세워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거에는 영적 문제가 있듯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 또한 그 근저에는 도덕적이고 신앙적 문제가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단위인 가정이 회복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거듭날 때에 지금 경제적으로 고난당하며, 도덕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우리 자신과 이웃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
교회와 신학, 98년도에 실린 글
4. 지상의 가족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양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새 공동체를 부양할 인물이 요청된다. 영적으로 돌보고 사랑으로 이끌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영적인 아버지라고 묘사한다(고전 4,15-17; 살전 2,7.11).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위해서 성서적인 부모됨은 목회자에게만 제한 된 것이 아니다. 영적인 성숙을 위하여 나아가는 자 모두에게 열려져 있다. 다만 영적 부모됨에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그것은 억압하고 명령하는 권위가 아니라, 사랑의 나눔과 겸손한 섬김이다. 여기에는 권리 보다는 책임이, 자기 자신의 명예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시된다. 이러한 모습이 믿음의 가정 공동체를 지속시키며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요 추진력이 될 것이다.
어느 나라의 사회도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정의 도덕성, 지성, 영적인 활력성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사회의 도덕성과 영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기에 속해 있는 가정부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이 신앙으로 바로 서고, 가정에서 올바른 도덕성이 회복되고,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와 존경이 구축될 때 그 사회는 비로소 바르게 세워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거에는 영적 문제가 있듯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 또한 그 근저에는 도덕적이고 신앙적 문제가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단위인 가정이 회복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거듭날 때에 지금 경제적으로 고난당하며, 도덕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우리 자신과 이웃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
교회와 신학, 98년도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