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루터
1. 루터의 생애
2. 면죄부 논쟁
3. 루터의 신학사상
A. 이신칭의론(以信稱義論)
B. 의인론(義認論)
4. 루터의 정치 사상
A. 농민 전쟁 이전의 정치사상
B. 농민전쟁 이후의 정치사상
C. 루터의 두 왕국론
ll.칼빈
1. 종교개혁에 가담한 인문주의자
2. 칼벵과 프랑스 종교 개혁
3. 칼빈의 신학사상
A.의인론(義認論)과 성화론(聖化論)의 관계 문제
B. 의인론의 본질
4. 칼빈의 정치사상
A. 국가통치
B. 위정자와 피지배자
C. 저항권 사상
참고 문헌
1. 루터의 생애
2. 면죄부 논쟁
3. 루터의 신학사상
A. 이신칭의론(以信稱義論)
B. 의인론(義認論)
4. 루터의 정치 사상
A. 농민 전쟁 이전의 정치사상
B. 농민전쟁 이후의 정치사상
C. 루터의 두 왕국론
ll.칼빈
1. 종교개혁에 가담한 인문주의자
2. 칼벵과 프랑스 종교 개혁
3. 칼빈의 신학사상
A.의인론(義認論)과 성화론(聖化論)의 관계 문제
B. 의인론의 본질
4. 칼빈의 정치사상
A. 국가통치
B. 위정자와 피지배자
C. 저항권 사상
참고 문헌
본문내용
수반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권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수반한다. 확실히 위정자와 그 백성 사이에는 서로를 구속하는 상호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 상호 의무는 상대편의 가정된 자율성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양자에게서 나오는 상호 봉사의 의무 위에 세워진다.
C. 저항권 사상
16세기 프랑스 군주제는 점차 절대주의화 되어가고 있었고 불타오르는 이슈들은 당연히 저항과 불복종에 관한 것들이었다. 칼빈은 상황이 어렵다는 것과 군주정이 그렇게 바람직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정세판단에 있어서는 현실주의적이었으나 그는 결코 지치지 않고 이상에 호소하였다. 칼빈은 목사와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그들의 쓸 것들을 모두 공급하라고 군주제를 향하여 요구하였다. 그는 또한 교회로 하여금 더 많은 학교와 병원을 짓도록 허용해줄 것과 가난한 자들에게 더 많이 베풀 것을 왕에게 호소하였다. 또한 그는 의무교육을 최초로 시행했으며, 여기에는 여자들까지 포함될 정도로 혁신적인 방안 이었다. 국가 재정도 일종의 도시의회를 편성해 이 의회가 국가예산의 집행·감독을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호소를 하면서도 칼빈은 문제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으며, 왕들은 보살펴주는 아버지(nursing fathers)라기보다는 교회의 사형집행인들(the executioners)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당시 인기를 모았던 주장 가운데 하나는 “이교도 통치자”(pagan ruler) 또는 “복음의 적”(enemy of the gospel)이라고 불리는 주장이다. 대다수의 반란 옹호자들은 종교적인 견지에서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하였다. 그들은 왕이 이교도이며 복음의 적이라고 하면서, 복종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은 이러한 주장에 답변하면서 먼저 지금 투쟁 가운데 있는 개혁교회와 적대적인 정부 밑에서 살았던 초대교회를 대조시킨다. 그는 말하기를 “국가통치의 멍에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을 비난한 근거를 이방인에게 주지 않았다. 위정자에 대한 복종은 정직한 행동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복종의 책임은 더욱 어려워져갔는데 이는 위정자들이 그리스도의 적대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자기들의 권세를 너무 남용하여 그들 속에 특별한 경외감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정자들이 보살펴주는 아버지가 되는 대신 사형집행인이 됨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그런 위정자들에게도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의 폭정과 비기독교적 행위들을 찬성하거나 승인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또 그 위정자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인의 복종을 여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복종하는 것이 위정자들에게 권력과 권위를 주신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칼빈이 취급한 두 번째 주장은 오직 성경에 있는 법으로 통치하지 않는 비성경적인 정부는 비합법적이며 반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칼빈은 또 다시 초대교회에 호소함으로써, 그리고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호소함으로써 이 논리를 거부한다. 복종의 문제에 관한 한,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기대들을 살리든지 말든지, 또 그들이 성경적 원리로 통치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심지어는 그들이 백성들의 투표로 선출되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이 문제들은 중요하지 않다. 기독교인들은 통치자들을 그 직무에 두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복종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칼빈이 다루어야만 했던 마지막 주장은 직무태만과 전제적 통치자에 관련된다. 사실 이들은 두 개의 다른 범주에 속하지만 칼빈은 이들을 하나로 취급하였다. 여기서 칼빈의 탁월한 논증을 보게 되는데 십계명의 제5계명에 대한 호소이다. 이미 앞에서 본대로 칼빈은 가정생활을 민족의 정치적 생활과 평행선상에서 보았다. 아버지와 남편이 해야할 만큼 자기 권위를 수행하든 하지 않든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다스리는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
이러한 칼빈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요점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로 위정자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한에 있어서만 자기의 권력을 행사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권위를 정하셨고, 심지어 그가 나쁘게 전제적으로 통치한다 하여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다스리는 것이다. 게다가 권위의 사용은 하나님에 의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사람이 폭군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서 그의 은혜를 완전히 거두시지 않는다. 비록 잔인하고 난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형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폭정은 없다.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 칼빈이 무질서를 싫어한 사실은 1563년 3월, 앙브와즈의 화약(peace of Amboise)으로 프랑스 내전에 종식된 후 한 백작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에 잘 나타난다.
)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방금 목도한 무질서로 두 번 다시 되돌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모두가 멸망하는 편이 낫다고 늘 충고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또한 위정자들이 우리에게 부당하게 변할 때에는 우리 자신에게서 허물을 찾아야 하며, 그들의 폭정을 하나님의 선하신 명령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보아야 한다고 보았다.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요점은 칼빈이 신적으로 제정된 직무(office)와 그 직무를 맡은 사람(the office-bearer) 자신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무를 맡은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칼빈에게 있어서 통치자와 백성간의 상호의무는, 그 직무가 적당히 수행되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의무는 직무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타락할 경우에도 유지된다.
참고 문헌
민석홍, 《서양사 개론》, 삼영사, 1990년
차하순, 《서양사 총론》, 탐구당, 1986년
오영석, 《한신대 논문집 15-1집》, 1998년
W.D.J. 카질톰슨, 《마르틴 루터의 정치사상》, 기독교사상사, 1977년
이장식, 《기독교 사상사 제2권》, 대한 기독교 서회, 1977년,
C. 저항권 사상
16세기 프랑스 군주제는 점차 절대주의화 되어가고 있었고 불타오르는 이슈들은 당연히 저항과 불복종에 관한 것들이었다. 칼빈은 상황이 어렵다는 것과 군주정이 그렇게 바람직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정세판단에 있어서는 현실주의적이었으나 그는 결코 지치지 않고 이상에 호소하였다. 칼빈은 목사와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그들의 쓸 것들을 모두 공급하라고 군주제를 향하여 요구하였다. 그는 또한 교회로 하여금 더 많은 학교와 병원을 짓도록 허용해줄 것과 가난한 자들에게 더 많이 베풀 것을 왕에게 호소하였다. 또한 그는 의무교육을 최초로 시행했으며, 여기에는 여자들까지 포함될 정도로 혁신적인 방안 이었다. 국가 재정도 일종의 도시의회를 편성해 이 의회가 국가예산의 집행·감독을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호소를 하면서도 칼빈은 문제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으며, 왕들은 보살펴주는 아버지(nursing fathers)라기보다는 교회의 사형집행인들(the executioners)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당시 인기를 모았던 주장 가운데 하나는 “이교도 통치자”(pagan ruler) 또는 “복음의 적”(enemy of the gospel)이라고 불리는 주장이다. 대다수의 반란 옹호자들은 종교적인 견지에서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하였다. 그들은 왕이 이교도이며 복음의 적이라고 하면서, 복종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은 이러한 주장에 답변하면서 먼저 지금 투쟁 가운데 있는 개혁교회와 적대적인 정부 밑에서 살았던 초대교회를 대조시킨다. 그는 말하기를 “국가통치의 멍에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을 비난한 근거를 이방인에게 주지 않았다. 위정자에 대한 복종은 정직한 행동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복종의 책임은 더욱 어려워져갔는데 이는 위정자들이 그리스도의 적대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자기들의 권세를 너무 남용하여 그들 속에 특별한 경외감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정자들이 보살펴주는 아버지가 되는 대신 사형집행인이 됨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그런 위정자들에게도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의 폭정과 비기독교적 행위들을 찬성하거나 승인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또 그 위정자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인의 복종을 여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복종하는 것이 위정자들에게 권력과 권위를 주신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칼빈이 취급한 두 번째 주장은 오직 성경에 있는 법으로 통치하지 않는 비성경적인 정부는 비합법적이며 반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칼빈은 또 다시 초대교회에 호소함으로써, 그리고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호소함으로써 이 논리를 거부한다. 복종의 문제에 관한 한,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기대들을 살리든지 말든지, 또 그들이 성경적 원리로 통치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심지어는 그들이 백성들의 투표로 선출되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이 문제들은 중요하지 않다. 기독교인들은 통치자들을 그 직무에 두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복종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칼빈이 다루어야만 했던 마지막 주장은 직무태만과 전제적 통치자에 관련된다. 사실 이들은 두 개의 다른 범주에 속하지만 칼빈은 이들을 하나로 취급하였다. 여기서 칼빈의 탁월한 논증을 보게 되는데 십계명의 제5계명에 대한 호소이다. 이미 앞에서 본대로 칼빈은 가정생활을 민족의 정치적 생활과 평행선상에서 보았다. 아버지와 남편이 해야할 만큼 자기 권위를 수행하든 하지 않든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다스리는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
이러한 칼빈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요점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로 위정자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한에 있어서만 자기의 권력을 행사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권위를 정하셨고, 심지어 그가 나쁘게 전제적으로 통치한다 하여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다스리는 것이다. 게다가 권위의 사용은 하나님에 의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사람이 폭군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서 그의 은혜를 완전히 거두시지 않는다. 비록 잔인하고 난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형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폭정은 없다.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 칼빈이 무질서를 싫어한 사실은 1563년 3월, 앙브와즈의 화약(peace of Amboise)으로 프랑스 내전에 종식된 후 한 백작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에 잘 나타난다.
)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방금 목도한 무질서로 두 번 다시 되돌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모두가 멸망하는 편이 낫다고 늘 충고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또한 위정자들이 우리에게 부당하게 변할 때에는 우리 자신에게서 허물을 찾아야 하며, 그들의 폭정을 하나님의 선하신 명령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보아야 한다고 보았다.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요점은 칼빈이 신적으로 제정된 직무(office)와 그 직무를 맡은 사람(the office-bearer) 자신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무를 맡은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칼빈에게 있어서 통치자와 백성간의 상호의무는, 그 직무가 적당히 수행되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의무는 직무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타락할 경우에도 유지된다.
참고 문헌
민석홍, 《서양사 개론》, 삼영사, 1990년
차하순, 《서양사 총론》, 탐구당, 1986년
오영석, 《한신대 논문집 15-1집》, 1998년
W.D.J. 카질톰슨, 《마르틴 루터의 정치사상》, 기독교사상사, 1977년
이장식, 《기독교 사상사 제2권》, 대한 기독교 서회,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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