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글을 시작하며
Ⅱ. 고대의 물질관
1.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자연철학자의 물질관
2. 파르메니데스 이후의 자연 철학자들
3.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관
4. 원자론
5. 고대의 연금술
Ⅲ. 중세의 물질관
1. 연금술
Ⅳ. 글을 마치며
Ⅱ. 고대의 물질관
1.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자연철학자의 물질관
2. 파르메니데스 이후의 자연 철학자들
3.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관
4. 원자론
5. 고대의 연금술
Ⅲ. 중세의 물질관
1. 연금술
Ⅳ. 글을 마치며
본문내용
며 진짜 작자는 확정할 수 없으나, 자비르 저작의 하나에는 질산의 제조법에 관해 최초로 기재되고 있어 화학으로서의 연금술사상 주목된다. 라제스(라지)는 다수의 화학물질에 분류방식을 부여하고, 증류·승화·용해·여과·결정·아말감화(化) 등의 화학조작과 화학장치의 정확한 기재(記載)를 남겨 연금술의 이론적 ·기술적 성격을 한층 명확하게 하였다.
유럽 세계에 이슬람 연금술을 최초로 소개한 것은 로버트 오브 체스터(한때 에스파냐에 체재함)가 1144년에 완성한 라틴어역서 《연금술 구성의 서》라고 한다. 유럽 연금술을 화학의 전신이라는 뜻에서 대표적인 저작은 앞의 자비르의 라틴어 이름 게베르의 이름이 붙은 《비법집대전( 法集大全)》을 비롯한 일련의 저작이다. 이들 저작 연대는 13세기라고 추측되며 저작자는 에스파냐에 있던 무어계의 유럽인으로 아랍문헌으로부터의 번역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그 이론적·기술적 내용이 이슬람 기원인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여러 가지 금속의 물리적·화학적 성질, 무기산의 제조법과 이것에 의한 금·은의 분석, 정제 등 화학적·기술적 내용은 화학의 전신이라고 하기에 합당한 정확성을 갖추고 있다.
의료화학의 대표자 P.A.파라켈수스는 물질의 원질을 ‘수은·황·염’이라고 한 점에서는 연금술의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금속전환을 사실상 가공적인 것이라고 물리쳤고, 연금술은 점차 자연학으로서의 구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형상을 실체화하는 연금술 이론은 ‘수은·황’ 설(說)을 뿌리친 R.보일 이후에도 A.L.라부아지에의 실험적 원소개념이 확립되기까지는 오랫동안 영향을 남겼고, 플로지스톤설(phlogiston theory)도 연금술적 물질관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I.뉴턴도 금속전환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문헌을 섭렵하였다.
(1) 게베르 (Geber) [721∼?]
8∼9세기에 활약한 아라비아의 연금술 학자인 게베르는 아라비아 이름인 자비르(J嚆bir)의 라틴어 명칭이다. 쿠파의 약종상의 아들로 태어나, 칼리프의 하른 알라시드의 궁정에서 활약하였으며, 연금술 학자로서 명성을 떨쳤고, 9세기 초까지 생존했다고 한다. 연금술에 관한 많은 저작 가운데 완전히 자기가 쓴 저작의 범위는 분명하지 않으나, 금속의 수은·황 성분설에 의한 금속 전환의 가능성을 제창하였다.
자비르 문서 중에 《70의 서(書)》는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제까지 게베르는 자비르이븐하이얀
)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 - 776년경에 쿠파에서 활약했던 아라비아의 연금술사이다. 옛날에는 게베르(Geber)와 동일인물로 취급된 적도 있다. 많은 연금술 책을 썼으며, 그리스의 과학철학적 ·신비적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화학적인 조사연구법, 금속의 지질학적 생성론 등은 타당한 견해로 간주할 수 있다. 또한 실험가로서 금속의 정련, 옷감과 피혁의 염색, 옷감의 방수와 철의 부식방지를 위한 니스의 사용, 유리 제조에서 이산화망간의 사용 등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였다. 주요저서로《농축의 서 Kit嚆b at-tajm爻》 와 《동방의 수은 Alz爻bapalsharq爻》등이 있다.
과 동일 인물로 취급되었으나, 게베르의 저작으로 되어 있는 많은 라틴어 연금술 서적에는 아라비아에서 나온 것인지 분명치 않은 것이 많으며, 중세 연금술에 관한 최고의 서적이라는 게베르 저 《순마페르페크티오니스》도 13세기에 유럽 사람이 지었다는 설이 있어 양자는 각각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2) 이라키 [?∼?]
13세기 후반에 활약하였던 이슬람교도의 연금술사로 실험을 하였고 다수의 논문을 써냈다. 주요저서 《황금의 배양에 관하여 얻어진 지식의 서(書)》에서는 금속의 본질적 단일성과 금속 변성의 가능성이 무조건 옹호되어 있으며, '철학자의 돌'에 의한 연금법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연금술이라고 부르는 학문의 7가지 풍토의 서(書)》에서는 연금술의 사회적인 면, 즉 비밀의 의무가 서술되어 있다. 연금술사로서는 급진적이었다.
(3) 브란트 (Brand (Brandt), Henning) [?∼1692?]
브란트는 함부르크에서 살던 상인으로, 젊은 시절에는 군인·의사 등을 지냈다고 하지만, 자세한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하여 그의 협조로 연금술 연구를 계속하였으며, 1669년 오줌에서 인(燐)을 발견한 사실은 유명하다. 이 인의 발견은 원소 발견사상 발견자와 발견 연대가 판명된 최초의 것이라고 한다.
(4) 뵈트거 [1682.2.4~1719.3.13]
독일 슈라이츠 출생으로, 베를린에서 연금술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1701년 프로이센으로 피신하여 작센 선거후 아우구스트 2세를 섬겼다. 이곳에서 중국으로부터 차와 함께 수입된 차 끓이는 석기를 보고, 1708년에 독특하고 아름다운 백색 자기인 ‘뵈트거 도기’를 만들었다. 그 후 1710년에 마이센 자기공장이 설립되었으며, 1719년 사망할 때까지 이를 관리하였다. 이 공장에서 카올린(Kaolin:高嶺土)을 원료로 하는 경질자기를 제조하였는데, 그 제법은 극비에 붙여졌다
Ⅳ. 글을 마치며
이상으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물질관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물질관-특히 고대의 물질관은 철학적 전통이 깊고, 중세는 주술적 성격이 짙었던 것 같다. 고대는 만물의 근원물질의 추구, 그리고 중세에 이르러서는 연금술로서의 물질전환, 새로운 물질 생성을 추구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은 사후 2000년 동안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도 있지만,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이런 물질관 덕택으로, 근대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만물의 근원을 추구한 최초의 철학자를 탈레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탈레스 이후에도 많은 학자들의 만물의 근원을 추구했다. 또 4원소설을 토대로 물질의 전환을 추구하기 연금술이 중세에 발달했고, 과학혁명이후에 근대 과학이 발달함을 알 수 있었다. 물질관이라는 주제가 내게는 너무 어려웠던 것 같다. 리포트를 쓰면서 몰랐던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주제를 약간 벗어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만큼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유럽 세계에 이슬람 연금술을 최초로 소개한 것은 로버트 오브 체스터(한때 에스파냐에 체재함)가 1144년에 완성한 라틴어역서 《연금술 구성의 서》라고 한다. 유럽 연금술을 화학의 전신이라는 뜻에서 대표적인 저작은 앞의 자비르의 라틴어 이름 게베르의 이름이 붙은 《비법집대전( 法集大全)》을 비롯한 일련의 저작이다. 이들 저작 연대는 13세기라고 추측되며 저작자는 에스파냐에 있던 무어계의 유럽인으로 아랍문헌으로부터의 번역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그 이론적·기술적 내용이 이슬람 기원인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여러 가지 금속의 물리적·화학적 성질, 무기산의 제조법과 이것에 의한 금·은의 분석, 정제 등 화학적·기술적 내용은 화학의 전신이라고 하기에 합당한 정확성을 갖추고 있다.
의료화학의 대표자 P.A.파라켈수스는 물질의 원질을 ‘수은·황·염’이라고 한 점에서는 연금술의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금속전환을 사실상 가공적인 것이라고 물리쳤고, 연금술은 점차 자연학으로서의 구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형상을 실체화하는 연금술 이론은 ‘수은·황’ 설(說)을 뿌리친 R.보일 이후에도 A.L.라부아지에의 실험적 원소개념이 확립되기까지는 오랫동안 영향을 남겼고, 플로지스톤설(phlogiston theory)도 연금술적 물질관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I.뉴턴도 금속전환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문헌을 섭렵하였다.
(1) 게베르 (Geber) [721∼?]
8∼9세기에 활약한 아라비아의 연금술 학자인 게베르는 아라비아 이름인 자비르(J嚆bir)의 라틴어 명칭이다. 쿠파의 약종상의 아들로 태어나, 칼리프의 하른 알라시드의 궁정에서 활약하였으며, 연금술 학자로서 명성을 떨쳤고, 9세기 초까지 생존했다고 한다. 연금술에 관한 많은 저작 가운데 완전히 자기가 쓴 저작의 범위는 분명하지 않으나, 금속의 수은·황 성분설에 의한 금속 전환의 가능성을 제창하였다.
자비르 문서 중에 《70의 서(書)》는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제까지 게베르는 자비르이븐하이얀
)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 - 776년경에 쿠파에서 활약했던 아라비아의 연금술사이다. 옛날에는 게베르(Geber)와 동일인물로 취급된 적도 있다. 많은 연금술 책을 썼으며, 그리스의 과학철학적 ·신비적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화학적인 조사연구법, 금속의 지질학적 생성론 등은 타당한 견해로 간주할 수 있다. 또한 실험가로서 금속의 정련, 옷감과 피혁의 염색, 옷감의 방수와 철의 부식방지를 위한 니스의 사용, 유리 제조에서 이산화망간의 사용 등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였다. 주요저서로《농축의 서 Kit嚆b at-tajm爻》 와 《동방의 수은 Alz爻bapalsharq爻》등이 있다.
과 동일 인물로 취급되었으나, 게베르의 저작으로 되어 있는 많은 라틴어 연금술 서적에는 아라비아에서 나온 것인지 분명치 않은 것이 많으며, 중세 연금술에 관한 최고의 서적이라는 게베르 저 《순마페르페크티오니스》도 13세기에 유럽 사람이 지었다는 설이 있어 양자는 각각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2) 이라키 [?∼?]
13세기 후반에 활약하였던 이슬람교도의 연금술사로 실험을 하였고 다수의 논문을 써냈다. 주요저서 《황금의 배양에 관하여 얻어진 지식의 서(書)》에서는 금속의 본질적 단일성과 금속 변성의 가능성이 무조건 옹호되어 있으며, '철학자의 돌'에 의한 연금법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연금술이라고 부르는 학문의 7가지 풍토의 서(書)》에서는 연금술의 사회적인 면, 즉 비밀의 의무가 서술되어 있다. 연금술사로서는 급진적이었다.
(3) 브란트 (Brand (Brandt), Henning) [?∼1692?]
브란트는 함부르크에서 살던 상인으로, 젊은 시절에는 군인·의사 등을 지냈다고 하지만, 자세한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하여 그의 협조로 연금술 연구를 계속하였으며, 1669년 오줌에서 인(燐)을 발견한 사실은 유명하다. 이 인의 발견은 원소 발견사상 발견자와 발견 연대가 판명된 최초의 것이라고 한다.
(4) 뵈트거 [1682.2.4~1719.3.13]
독일 슈라이츠 출생으로, 베를린에서 연금술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1701년 프로이센으로 피신하여 작센 선거후 아우구스트 2세를 섬겼다. 이곳에서 중국으로부터 차와 함께 수입된 차 끓이는 석기를 보고, 1708년에 독특하고 아름다운 백색 자기인 ‘뵈트거 도기’를 만들었다. 그 후 1710년에 마이센 자기공장이 설립되었으며, 1719년 사망할 때까지 이를 관리하였다. 이 공장에서 카올린(Kaolin:高嶺土)을 원료로 하는 경질자기를 제조하였는데, 그 제법은 극비에 붙여졌다
Ⅳ. 글을 마치며
이상으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물질관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물질관-특히 고대의 물질관은 철학적 전통이 깊고, 중세는 주술적 성격이 짙었던 것 같다. 고대는 만물의 근원물질의 추구, 그리고 중세에 이르러서는 연금술로서의 물질전환, 새로운 물질 생성을 추구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은 사후 2000년 동안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도 있지만,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이런 물질관 덕택으로, 근대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만물의 근원을 추구한 최초의 철학자를 탈레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탈레스 이후에도 많은 학자들의 만물의 근원을 추구했다. 또 4원소설을 토대로 물질의 전환을 추구하기 연금술이 중세에 발달했고, 과학혁명이후에 근대 과학이 발달함을 알 수 있었다. 물질관이라는 주제가 내게는 너무 어려웠던 것 같다. 리포트를 쓰면서 몰랐던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주제를 약간 벗어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만큼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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