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종파주의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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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역사 사회적 배경

Ⅲ. 종파적 구성분포

Ⅳ. 종파집단간의 경쟁

Ⅴ. 통치와 정부의역할

Ⅵ. 결론

본문내용

가치와 결합하면서 기원한 것이다. 물론 힌두와 무슬림이 기원 후 10세기이후 동일한 토양 위에서 '공통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의 한 부분으로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큰 원인은 영국의 식민통치와 그 당시의 엘리트계층의 종파적인 대중동원전술에서 찾아야 한다.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을 인도사회현상의 중요한 변수로 만든 원인은 시대적 환경에 의해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즉, 독립이전의 시기에는 분리독립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문제에 종파갈등의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1947년이 후에는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에 대한 불만 또 소수종파집단의 사회상부구조로의 접근욕구 그리고 자신들의 문화적- 사회적 독자성에 대한 요구 등의 경제 사회적 문제로까지 종파갈등의 원인이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독립이전의 종파갈등은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었던 현상이었던 반면, 독립이후의 그것은 보다 대중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민족국가와 세속국가를 표방한 독립인도에서 종파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오히려 동태화 되고 있는 배경은 정부의 정책실패, 정당들의 종파주의화 그리고 힌두와 무슬림사이의 적대심리의 악순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80년대 이후 전국적인 기반을 가진 정당들이 신앙 고백적인 정치행태를 보인다는 것과 그와 같은 행태가 상당수의 힌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흐름은 아요디아사건과 1996년의 11대 총선거 결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힌두들의 반응을 단순히 다수종파의 횡포라는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인도와 같이 물질적 자원이 결핍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적 환경에서 소수종파에 대한 보호정책은 다수종파인 힌두들에게는 특혜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는 증거인 것이다. 반면, 무슬림들은 근대국가의 국민으로서 통합된다기 보다는 현재까지의 보호정책의 강화를 요구함으로써 갈등을 더욱 첨예화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갈등과 대립은 종파정당 또는 단체들의 자의적인 역사해석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특히 힌두 측이 벌이고 있는 '과거의 잘못 바로잡기'운동은 '인도의 힌두화'라는 공격적인 양상뿐만 아니라 힌두의 근본주의화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세속국가로서의 인도의 장래를 우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종파대립으로 나타나는 힌두-무슬림 갈등행태는 세 가지 주요요인에 의해 기원되었다. 첫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양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상호불신과 뿌리깊은 부정적 심리구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힌두와 무슬림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그리고 격렬한 경쟁관계로서 병존해 왔을 뿐 진정한 협조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한 바가 없었다. 또 문화적으로도 양 집단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류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Lamb 1975, 130-132, 157) 양 집단간의 사회적 단절은 갈등행태가 폭력화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부정적 심리구조가 가져다 준 위기의식이 갈등의 요인이 된다. 분리독립 직후에 일어난 유혈사태의 기억 그리고 파키스탄과의 긴장상태, 연속적으로 발생한 종파폭동 등은 양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속적인 위기의식 속에서 생활하게 만들었다. 즉, 명시적인 위협행위가 없음에도 항상 상대 종파의 구성원들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가상적에 대한 공격은 자기방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잘못된 정당화가 사회의 통념이 되고 있다.
둘째, 양 종파 집단의 행동과 전략이다. 힌두와 무슬림 종파집단의 전략을 단순화시킨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먼저 힌두 측의 전략은 전인도인의 힌두화이고 무슬림 측은 새로운 분리독립의 요구 내지는 위협이다. 전자는 자신들의 주장의 표방가치로서 국민통합과 적극적 세속주의(Positive Secularism)를
) 인도인민당(BJP)의 정강에는 국민통합과 적극적인 세속주의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항상 힌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되고는 한다. (Zaidi 1993, 147)
강조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편의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즉, 힌두 상징인 만'의 보급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발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매도하고 무슬림 여인들의 차도르 착용은 적극적 세속주의에 위배된다고 간주하는 것이 그들의 실질가치인 것이다. 반면, 후자는 종교의식과 관습의 차이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과장하여 대중들에게 반복함으로써 그 차별성을 극대화하고 소수종파로서의 심리적 열등의식을 조장하여 인도국민으로서 보다는 무슬림형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지난 1990년 이후 격화된 까쉬미르의 분리주의운동은 현실적 국경선을 무슬림형제'라는 종파적 감상주의로 극복하려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사회분화과정의 지연에 따른 정부의 정책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경제정책이 사회의 기득권층의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므로(Myrdal 1968, 20) 사회는 근대적으로 분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보다는 종파적 정치가들의 선동에 더 이끌리는 것이다. 인도인민당(BJP)와 세계힌두평의회(VHS)의 선동에 이끌려 10만명 이상의 힌두가 바브리사원 파괴에 참여하기 위해 아요디아로 집결한 것도 정부의 한계를 나타내 주는 한 예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여건 속에서 정부의 행동과 전략은 제한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헌법 등에 명시된 세속정신을 정책으로 구현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특히 헌법 자체가 세속정신과 힌두 국수주의적 요소를 함께 포함하고 있는 모순된 존재이므로 종파주의에 대한 정부의 전략은 다양성속의 통일(Unity in Diversity)'과 같은 추상적인 구호에 지난 40년간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도정부의 행동과 전략이 소극적인 원인중의 다른 하나는 자와하랄 네루가 사망한 이래 진정한 세속주의자가 정권을 장악한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인도 공산당의 지도자들 조차도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주저하는 분위기에서 종파적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정치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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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19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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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33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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