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야수파 (Fauvisme)
2.입체파 (Cubisme)
3.추상주의(Abstraction)
4.초현실주의(Sur-Realism)
2.입체파 (Cubisme)
3.추상주의(Abstraction)
4.초현실주의(Sur-Realism)
본문내용
속성을 가지고 악마적인 이야기들을 어둡고 왜곡된 애정 행각을 통해 표현하였다. 특히 여성을 가학의 대상으로 그리고 있으며 죽음, 폭력등을 애정의 표현 방식으로 묘사했다.
자동기술법,객관적 우연, 이런 점들을 다다가 이미 사용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를 뒤받침해서 설명해 줄 이론이 없었다. 이에반해 초현실주의는 햇수를 거듭함에 따라 새로이 발견되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무의식의 세계로 체계적인 답사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마송의 자동기술 데생이나 모래투사그림, 막스 에른스트의 프로타쥬, 오스카 도밍게즈의 데칼코마니, 볼프강 파이렌의 연기 씌우기, 살바도르 달리의 '편집광적 비판', 쟝 아르프의 찢어지고 구겨진 종이 등이 이 기법에 속하는 것들이다.
초현실주의작가들이 에른스트처럼 전통적 미술의 통념을 거부하든지 혹은 마그리트나 달리처럼 전통적 미술 원칙을 재채택하여 왜곡시티든지간에 초현실주의는 결국에는 대다수의 일반대중에게 친근해지게 일상생활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고부문이 그 중 대표적인 예이다.
☞키리코
형이상적 회화'로 불리우는 양식을 세웠다. 노년에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하지않아 선구자이자 배신자로 불리웠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신비스럽고 기이하게 느껴지도록 그렸다.
주요 작품 : 거리의 우수와 신비, 시간의 수수께끼, 수학자. 등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1925년 이후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한 작가들을 총칭한다. 조국을 잃고 가난했던 이들의 작품에는 불안과 애수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작가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특정한 유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에콜 드 파리파는 파리에 모였던 외국인 예술가들의 집단을 말하는데 제 1차 세계대전 후부터 제 2차 세계대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모였던 외국인 작가들을 가리킨다. 제1차 대전 전후, 파리에는 많은 외국인 작가들이 모여들었는데,그 중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네덜란드의 반 동겐, 독일의 에른스트, 스페인의 피카소, 미로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들 대부분은 외국인이고 동시에 유태인이어서 애수적인 면과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있었다. 이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감상적이며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으며, 이론의 구성면에서는 약했다. 파리파는 공통적인 주의나 양식이 없었기 때문에 각기 독자적인 양식을 추구하며 활동했다. 그래서 20세기의 이즘이나 유파와는 성격이 다르다. 모딜리아니, 샤갈, 수틴, 파스킨, 키슬링, 등이 모두 유태계 화가였기 때문에 애수를 띤 우울한 정서를 보여주었으며, 그 중 샤갈은 러시아의 민담이라든가, 유태인의 속담과 신비적인 전설 등를 주로 그렸다. 감상적이며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표현주의자들과 같이 그들의 영감을 찾기 위해서 공상과 주관적이 것, 직관을 믿었다. 작가 각각의 내면성을 구축하여 외계와 다른 독창성을 고수하고 있었다. 에콜 드 파리파는 개성적인 유파로 프랑스 수도에 정착한 외국인으로서 가지는 동화와 현대의 국제적인 예술의 근본적인 변화, 그리고 두드러진 독창적인 풍취를 서로 나누고 익히며 프랑스 화법도 외국의 화법도 아닌 개성적인 화법을 창출시켰다.
작가들의 출신 배경이나 민족적 기질이 가미되어 기존 화단에 전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작품과는 차별화 되었다. 이들의 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불안에 존재되어 있는 '개성의 집단' 으로서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에꼴 드 파리파의 작가들은 무국적자로서의 고독감, 고국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불안의 내면의 표정을 작품전체에 표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파리파는 해체되었다.
☞샤갈(Marc Chagall)(1887~1985)
중력을 벗어난 영원한 사랑을 그림의 주제로 택하여 고향 러시아의 풍경이 화면에 무중력 상태로 나타난다. 천정화와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하였다.
러시아의 화가이며 유태인의 핏줄을 받았다. 1908년부터 산크트 페테르스 부르크의 미술학교를 다녔다. 1911년에 입체주의의 기법을 이용하여 러시아에 대한 추억과 자신의 상상력을 유합한 '나와 마을' 을 발표한다. '나의 마을' 은 원형과 삼각형의 교차하는 흐름으로 입체파의 동화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러시아의 민담, 슬라브민족의 환상, 유태인의 속담, 신비적인 전설, 러시아의 전원풍경, 어린 시절의 꿈과 같은 갖가지의 추억등이 환상적으로 짜여져 있다. 1914년 발덴의 도움으로 최초의 개인전을 베를린에서 개최하여 성공하였다. 유태인이라는 민족적인 감정과 슬라브적인 공상이 얽혀 형성된 특이한 환상예술에 의해 점차 유럽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샤갈은 이때에 아폴리네르와와 접촉함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도 큐비즘의 영향적인 면을 볼 수 있다. 1917년에 제작한 '술잔을 든 두사람의 초상' 은 큐비즘 기법으로 꿈과 추억과 현실을 미묘하게 융합한 세계를 그린 것이다.
1920년대에는 판화로서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글리의 소설 '죽은혼' 이나 라퐁테느의 시집' 우화' 의 삽화도 그렸다. 1922년에 파리로 이주하였고 제2차 대전 중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체류하였다. 1923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다. 특히 구약을 그림으로 옮긴 그의 종교화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집트 여행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48년까지 뉴욕에서 작업을 하다가 파리로 돌아와 세라믹,조각,스테인드 글라스등 새로운 매체를 통한 작업을 시작한다. 1948년 샤갈만이 소유하고 있는 신비로운 비합리성으로 인해 그는 다른 어떤 미술경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색깔로써 전체구성을 만들어 내고 상상과 현실이 섞여 어린 시절 고향의 전설에 대한 기억을 재창조해낸다.
1949년 남프랑스의 지방에서 제도술에 열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의 자유로운 공상때문에 시적풍취가 풍부한 독자적인 화경을 개척하였다. 1950년부터 남불에 정착하여 활동했으며 여러곳에서 작품제작을 요청받게 된다. 대부분이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세라믹 작품을 제작한다. 1985년에 사망한다.
주요 작품 : 수닭. 성서의 메시지, 자화상 등
자동기술법,객관적 우연, 이런 점들을 다다가 이미 사용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를 뒤받침해서 설명해 줄 이론이 없었다. 이에반해 초현실주의는 햇수를 거듭함에 따라 새로이 발견되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무의식의 세계로 체계적인 답사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마송의 자동기술 데생이나 모래투사그림, 막스 에른스트의 프로타쥬, 오스카 도밍게즈의 데칼코마니, 볼프강 파이렌의 연기 씌우기, 살바도르 달리의 '편집광적 비판', 쟝 아르프의 찢어지고 구겨진 종이 등이 이 기법에 속하는 것들이다.
초현실주의작가들이 에른스트처럼 전통적 미술의 통념을 거부하든지 혹은 마그리트나 달리처럼 전통적 미술 원칙을 재채택하여 왜곡시티든지간에 초현실주의는 결국에는 대다수의 일반대중에게 친근해지게 일상생활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고부문이 그 중 대표적인 예이다.
☞키리코
형이상적 회화'로 불리우는 양식을 세웠다. 노년에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하지않아 선구자이자 배신자로 불리웠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신비스럽고 기이하게 느껴지도록 그렸다.
주요 작품 : 거리의 우수와 신비, 시간의 수수께끼, 수학자. 등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1925년 이후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한 작가들을 총칭한다. 조국을 잃고 가난했던 이들의 작품에는 불안과 애수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작가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특정한 유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에콜 드 파리파는 파리에 모였던 외국인 예술가들의 집단을 말하는데 제 1차 세계대전 후부터 제 2차 세계대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모였던 외국인 작가들을 가리킨다. 제1차 대전 전후, 파리에는 많은 외국인 작가들이 모여들었는데,그 중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네덜란드의 반 동겐, 독일의 에른스트, 스페인의 피카소, 미로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들 대부분은 외국인이고 동시에 유태인이어서 애수적인 면과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있었다. 이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감상적이며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으며, 이론의 구성면에서는 약했다. 파리파는 공통적인 주의나 양식이 없었기 때문에 각기 독자적인 양식을 추구하며 활동했다. 그래서 20세기의 이즘이나 유파와는 성격이 다르다. 모딜리아니, 샤갈, 수틴, 파스킨, 키슬링, 등이 모두 유태계 화가였기 때문에 애수를 띤 우울한 정서를 보여주었으며, 그 중 샤갈은 러시아의 민담이라든가, 유태인의 속담과 신비적인 전설 등를 주로 그렸다. 감상적이며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표현주의자들과 같이 그들의 영감을 찾기 위해서 공상과 주관적이 것, 직관을 믿었다. 작가 각각의 내면성을 구축하여 외계와 다른 독창성을 고수하고 있었다. 에콜 드 파리파는 개성적인 유파로 프랑스 수도에 정착한 외국인으로서 가지는 동화와 현대의 국제적인 예술의 근본적인 변화, 그리고 두드러진 독창적인 풍취를 서로 나누고 익히며 프랑스 화법도 외국의 화법도 아닌 개성적인 화법을 창출시켰다.
작가들의 출신 배경이나 민족적 기질이 가미되어 기존 화단에 전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작품과는 차별화 되었다. 이들의 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불안에 존재되어 있는 '개성의 집단' 으로서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에꼴 드 파리파의 작가들은 무국적자로서의 고독감, 고국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불안의 내면의 표정을 작품전체에 표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파리파는 해체되었다.
☞샤갈(Marc Chagall)(1887~1985)
중력을 벗어난 영원한 사랑을 그림의 주제로 택하여 고향 러시아의 풍경이 화면에 무중력 상태로 나타난다. 천정화와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하였다.
러시아의 화가이며 유태인의 핏줄을 받았다. 1908년부터 산크트 페테르스 부르크의 미술학교를 다녔다. 1911년에 입체주의의 기법을 이용하여 러시아에 대한 추억과 자신의 상상력을 유합한 '나와 마을' 을 발표한다. '나의 마을' 은 원형과 삼각형의 교차하는 흐름으로 입체파의 동화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러시아의 민담, 슬라브민족의 환상, 유태인의 속담, 신비적인 전설, 러시아의 전원풍경, 어린 시절의 꿈과 같은 갖가지의 추억등이 환상적으로 짜여져 있다. 1914년 발덴의 도움으로 최초의 개인전을 베를린에서 개최하여 성공하였다. 유태인이라는 민족적인 감정과 슬라브적인 공상이 얽혀 형성된 특이한 환상예술에 의해 점차 유럽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샤갈은 이때에 아폴리네르와와 접촉함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도 큐비즘의 영향적인 면을 볼 수 있다. 1917년에 제작한 '술잔을 든 두사람의 초상' 은 큐비즘 기법으로 꿈과 추억과 현실을 미묘하게 융합한 세계를 그린 것이다.
1920년대에는 판화로서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글리의 소설 '죽은혼' 이나 라퐁테느의 시집' 우화' 의 삽화도 그렸다. 1922년에 파리로 이주하였고 제2차 대전 중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체류하였다. 1923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다. 특히 구약을 그림으로 옮긴 그의 종교화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집트 여행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48년까지 뉴욕에서 작업을 하다가 파리로 돌아와 세라믹,조각,스테인드 글라스등 새로운 매체를 통한 작업을 시작한다. 1948년 샤갈만이 소유하고 있는 신비로운 비합리성으로 인해 그는 다른 어떤 미술경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색깔로써 전체구성을 만들어 내고 상상과 현실이 섞여 어린 시절 고향의 전설에 대한 기억을 재창조해낸다.
1949년 남프랑스의 지방에서 제도술에 열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의 자유로운 공상때문에 시적풍취가 풍부한 독자적인 화경을 개척하였다. 1950년부터 남불에 정착하여 활동했으며 여러곳에서 작품제작을 요청받게 된다. 대부분이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세라믹 작품을 제작한다. 1985년에 사망한다.
주요 작품 : 수닭. 성서의 메시지, 자화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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