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까닭으로 해서 그들이 맨처음 듣는 얘기는 덕의 가장 훌륭한 교훈이 되도록 지어져야 한다는 것에 우리는 전력을 기울여야"한다. 그 맨 처음 듣는 얘기는 "나와 자네는 지금 시인이 아니고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일세. 그러나 창건자에게 맞는 것은, 시인들이 얘기를 지을 경우에 지켜야 할 본을 아는 일일세. 그리고 그들이 그 본을 어겨서 짓는 다면 허락되어서는 안되네."(378e-379a) 이상 국가에서는 제작자에 불과한 시인을 감독하고 훈련해야 하는 시인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따르는 것이다.
"시인들을 감독해서, 그들의 시 안에다 선량한 성향을 닮은 것을 지어 넣도록 강요하되, 듣지 않으면 우리들 사이에서 시를 짓지 못하도록 ~ 그 사람은 우리들 사이에서 제작하는 걸 허락해선 안되겠지" 소크라테스는 「국가」2, 3권에서 시인들이 신들을 결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면서 시인들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며 시가나 설화 등의 내용을 제한 해야함을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 명성을 더고자 한다면 영혼의 훌륭한 부분으로 향하지 않고 허둥지둥하는 착잡한 성격이 모방하기가 쉽다고 한다. 이런 영혼의 훌륭한 부분이 아니라가 진리와 견주어 하잘 것 없는 부분과 관계하고있기 때문에 나라를 잘 다스릴려면 그나라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 "왜냐면 영혼의 하잘 것 없는 부분을 일으켜세워 키우고 이것을 강하게 해서 이지적 부분을 파멸 시키기 때문이다"(604d-605b) 이것은 모방을 일삼는 시인이 영혼 안에 나라에 해악이 되는 것을 자꾸 모방해서 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을 이상국가에서 추방할 것을 정당화한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이상적인 국가에 부합하지 않는 인간상이자 국민들을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교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인간관은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단일한 삶을 살도록 하며 동질화 시키려한다. 소크라테스의 모든 논의의 초점이 올바름이 구현되는 '이상국가' 건설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인간 개개인의 개성과 감정은 이상국가의 구현이라는 목적 아래에서는 하찮은 것이 된다. 시인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모방)은 국가의 유기적 조화라는 명목으로 무시되고 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훌륭한 지도자와 절제된 국민일 뿐이다. 따라서 시인은 바람직한 인간상에 부합되지 않으며 그러한 인간상을 교육하는데도 유용하지 않은 부류로 판단되어 추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물론 소크라테스가 모든 시인들을 비판하거나 추방한 것은 아니다. "시의 작품 중에서 나라 안에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신들께 대한 송시(頌詩)와 훌륭한 사람에게 대한 찬시(讚詩)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시인은 받아드려야 한다는 에매모호한 부분이 있고, 예부터 철학과 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단정 짓기도 한다.(607a-b) -
그런데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지나친 논리를 비판해 볼 필요성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시 또는 시작(詩作)을 정치적 논리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시인이 그져 상상했을 뿐인 작품에 빠지는 것이, 모방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추방의 대상으로 삼는데 이는 시인의 작품인 시를 부당하게 결부 시키는 듯 하다. 소크라테스는 현실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이데아를 말하고 사실인 것만이 진실이며 유용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시에 적용시켜 시가 진실을 재현해야 하고 올바름만을 가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시의 고유영역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땐 이미 시는 시(詩)가 아닐 것이다. 즉 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시와 철학의 차이를 무시한 채 철학의 기준에서 혹은 정치적 측면에서 시와 시인들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정치적 맥락에서 그것을 비판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Ⅶ
플라톤이 국가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상국가의 건설을 위한 "영혼의 건강함", 즉 교육을 통해서 낮은 단계에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성적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어떻게 하면 영속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데아로 가기위한 중간자로서의 Eros를 길들여(교육=통제) 모든 광기, 욕망, 육체, 물질, 파괴 (노예적인 것, 본능적인 것-poesis에 머물러 있는 것 )등으로부터 인간을 순치시켜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이성적인 인간으로 개조시켜 인간의 활동, 관계, 행위가 최고의 덕(virtues)으로 승화되어 이상국가로 가기 위함이라 할 수 있겠다. 「국가」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상국가의 건설을 위한 모든 것의 '모방' 하는 시인의 위상보다는, 이상 국가를 위한 교육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들의 선행만을 말하는 시인이 필요했다. 즉 다분히 정치적인 결과로의 시인추방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추방과 규제를 계속적으로 언급하면서도 신들께 대한 송시와 훌륭한 사람에게 대한 찬시를 하는 시인은 추방의 대상이 아니다.(607a)라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 냄새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모방품인 사물을 모방하는 것이 예술(시)이라 하여 천시하여 시인을 추방하고자 한 것이다. 플라톤은 끊임없이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시는 단순한 자연의 모방에 그쳐 부정하다. 영혼 내부의 온갖 욕심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에 관해서도 시는 본래 그러한 충동을 억제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충동을 키워 일반 대중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이상국가에 있어서의 시인은 추방의 대상이 되며 규제와 검열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그리는 이상국가에 있어 에로스가 추구하는 본질과 그 기능은 이상국가의 인간상을 교육함에 유용하지 않고 오히려 해악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바, 시인(예술가)은 추방의 대상이 되며, 지배(통제)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연결될 수 있다.
< 참 고 문 헌 >
조우현 역. 『국가』.삼성출판. 1997
황문수 역. 『소크라테스의 변명』. 문예출판사 . 1999
이구표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다수'의 덕과 행복』.
「인천대 교육대학원 논문집」, 제 4호. 2000
"시인들을 감독해서, 그들의 시 안에다 선량한 성향을 닮은 것을 지어 넣도록 강요하되, 듣지 않으면 우리들 사이에서 시를 짓지 못하도록 ~ 그 사람은 우리들 사이에서 제작하는 걸 허락해선 안되겠지" 소크라테스는 「국가」2, 3권에서 시인들이 신들을 결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면서 시인들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며 시가나 설화 등의 내용을 제한 해야함을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 명성을 더고자 한다면 영혼의 훌륭한 부분으로 향하지 않고 허둥지둥하는 착잡한 성격이 모방하기가 쉽다고 한다. 이런 영혼의 훌륭한 부분이 아니라가 진리와 견주어 하잘 것 없는 부분과 관계하고있기 때문에 나라를 잘 다스릴려면 그나라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 "왜냐면 영혼의 하잘 것 없는 부분을 일으켜세워 키우고 이것을 강하게 해서 이지적 부분을 파멸 시키기 때문이다"(604d-605b) 이것은 모방을 일삼는 시인이 영혼 안에 나라에 해악이 되는 것을 자꾸 모방해서 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을 이상국가에서 추방할 것을 정당화한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이상적인 국가에 부합하지 않는 인간상이자 국민들을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교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인간관은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단일한 삶을 살도록 하며 동질화 시키려한다. 소크라테스의 모든 논의의 초점이 올바름이 구현되는 '이상국가' 건설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인간 개개인의 개성과 감정은 이상국가의 구현이라는 목적 아래에서는 하찮은 것이 된다. 시인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모방)은 국가의 유기적 조화라는 명목으로 무시되고 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훌륭한 지도자와 절제된 국민일 뿐이다. 따라서 시인은 바람직한 인간상에 부합되지 않으며 그러한 인간상을 교육하는데도 유용하지 않은 부류로 판단되어 추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물론 소크라테스가 모든 시인들을 비판하거나 추방한 것은 아니다. "시의 작품 중에서 나라 안에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신들께 대한 송시(頌詩)와 훌륭한 사람에게 대한 찬시(讚詩)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시인은 받아드려야 한다는 에매모호한 부분이 있고, 예부터 철학과 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단정 짓기도 한다.(607a-b) -
그런데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지나친 논리를 비판해 볼 필요성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시 또는 시작(詩作)을 정치적 논리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시인이 그져 상상했을 뿐인 작품에 빠지는 것이, 모방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추방의 대상으로 삼는데 이는 시인의 작품인 시를 부당하게 결부 시키는 듯 하다. 소크라테스는 현실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이데아를 말하고 사실인 것만이 진실이며 유용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시에 적용시켜 시가 진실을 재현해야 하고 올바름만을 가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시의 고유영역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땐 이미 시는 시(詩)가 아닐 것이다. 즉 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시와 철학의 차이를 무시한 채 철학의 기준에서 혹은 정치적 측면에서 시와 시인들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정치적 맥락에서 그것을 비판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Ⅶ
플라톤이 국가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상국가의 건설을 위한 "영혼의 건강함", 즉 교육을 통해서 낮은 단계에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성적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어떻게 하면 영속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데아로 가기위한 중간자로서의 Eros를 길들여(교육=통제) 모든 광기, 욕망, 육체, 물질, 파괴 (노예적인 것, 본능적인 것-poesis에 머물러 있는 것 )등으로부터 인간을 순치시켜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이성적인 인간으로 개조시켜 인간의 활동, 관계, 행위가 최고의 덕(virtues)으로 승화되어 이상국가로 가기 위함이라 할 수 있겠다. 「국가」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상국가의 건설을 위한 모든 것의 '모방' 하는 시인의 위상보다는, 이상 국가를 위한 교육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들의 선행만을 말하는 시인이 필요했다. 즉 다분히 정치적인 결과로의 시인추방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추방과 규제를 계속적으로 언급하면서도 신들께 대한 송시와 훌륭한 사람에게 대한 찬시를 하는 시인은 추방의 대상이 아니다.(607a)라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 냄새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모방품인 사물을 모방하는 것이 예술(시)이라 하여 천시하여 시인을 추방하고자 한 것이다. 플라톤은 끊임없이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시는 단순한 자연의 모방에 그쳐 부정하다. 영혼 내부의 온갖 욕심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에 관해서도 시는 본래 그러한 충동을 억제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충동을 키워 일반 대중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이상국가에 있어서의 시인은 추방의 대상이 되며 규제와 검열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그리는 이상국가에 있어 에로스가 추구하는 본질과 그 기능은 이상국가의 인간상을 교육함에 유용하지 않고 오히려 해악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바, 시인(예술가)은 추방의 대상이 되며, 지배(통제)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연결될 수 있다.
< 참 고 문 헌 >
조우현 역. 『국가』.삼성출판. 1997
황문수 역. 『소크라테스의 변명』. 문예출판사 . 1999
이구표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다수'의 덕과 행복』.
「인천대 교육대학원 논문집」, 제 4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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