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전체 줄거리 및 감상, 분석
2. 실존주의 그리고 휴머니즘
3. 카뮈, 소크라테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의 부조리 사상과 그 인물적 특성의 유사성.
2. 실존주의 그리고 휴머니즘
3. 카뮈, 소크라테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의 부조리 사상과 그 인물적 특성의 유사성.
본문내용
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추방되는 캐릭터로 '그레고르 잠자(변신-F.카프카)'가, 옥 중 죽음에 대한 인식과 죽음의 순간 사소한 것에 관심을 표명하던 장면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와 그 등장인물 '므이슈킨' 공작(duke)을 각각 연상시킴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1년 뒤 출간되는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에서 심화되는 부조리의 철학은 제 1부에서 그 이미지즘의 묘사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작품 전반을 통해 낮게 그리고 2부 말미에서 얼핏, 허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며 등장하던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심화되어 있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그 속에서 지향해야 할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상징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 칼 야스퍼스, 세스토프, 하이데거' 등 신적 영역에서 인간의 실존 가치를 추구했던 시대적 대 철학자들의 그 사상적 태도를 "철학적 자살"이라고 '시지프의 신화'에서 규정한 A.카뮈는, 후에 오게 될 '페스트, 전락, 적지와 왕국'에서 적극 묘사될 '신이 없는 버려진 세계'와 그 속에서 지향해야 할 '인간의 인식과 행복'의 단초를 소설 '이방인'에서 예언하고 있다.
육신은 존재하나 그 정신은 신의 세계에 볼모잡힌 그 일련의 철학자들이 정신과 사상을 스스로 죽여버린 철학적 자살자로 둔갑했을 때 카뮈는 독배를 마시며 죽어갔던 소크라테스처럼, 단두되던 뫼르쏘를 통해 육체적 생의 마감이 그 인식적 생을 불멸로 화해 놓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이전의 대 작가들이 완성해 놓은 사상에서 한 걸음 전진된 경향을 보여준다.F.카프카의 '그레고르 잠자'(변신)는, 끝없이 순환하는 기계의 소모품을 상징하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뾰족한 사후 대책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휴식을 꿈꿨던 그 잠깐의 상상이 그를 인간 사회에선 영원히 쓸모 없는 한낱 벌레로 만들어 버린다.
벌레가 되어 고독하게 병들어 죽는 내내 그레고르는 자신의 변신에 대한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예술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최후의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이반 카라마조프'는 그 냉철한 지성과 논리로 모든 부조리한 대상을 굴복시킨다. 거대한 신과의 마지막 결투에서 무신론적 세계를 상기시키는 그 냉철한 휴머니스트는 신의 대변인이자 그 고매한 영혼을 지닌 '알료샤 카라마조프'를 통해 발휘되는 부조리한 신성의 힘에 대항하다 결국 정신 착란증으로 패퇴해 버린다.
카뮈의 뫼르쏘는 자신의 선택이 죽음을 불러올 것을 명징하게 깨닫고 있었다.
자신을 사회적 규범과 통념에 합치시켰을 때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내면으로부터의 소외됨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의 그레고르'는 소외된 내면이 벌레라는 형태를 가지고 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뫼르쏘는 어리석어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마지막 저녁이 될 수도 있을 그 시간, 조용히 방문한 신부에게 뫼르쏘가 쏟아냈던 것은, '신 없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인정하고 부조리에 대한 직시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나약한 인간의 유일한 인식에의 고집이었다.
그는 '이반 카라마조프'나 신의 죽음을 선고한 독일의 철학자 'F.니체'처럼 정신 분열증으로 생을 끝맺지 않았다.
뫼르쏘는 그 최후의 깨달음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카뮈는 이처럼 이전의 사상가들이 머물렀던 영역에서 한 걸음 전진하는 성과를 보인다.
그리고 러시아의 톨스토이,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발견되는 휴머니즘을 그대로 계승한다.
끝으로, 음악사에서의 베토벤처럼, 현대 실존주의 흐름 한가운데를 관류하는 고독한 인간의 그 실존적 휴머니즘을 보여준 카뮈에게 작은 경의를 표한다.
1년 뒤 출간되는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에서 심화되는 부조리의 철학은 제 1부에서 그 이미지즘의 묘사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작품 전반을 통해 낮게 그리고 2부 말미에서 얼핏, 허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며 등장하던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심화되어 있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그 속에서 지향해야 할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상징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 칼 야스퍼스, 세스토프, 하이데거' 등 신적 영역에서 인간의 실존 가치를 추구했던 시대적 대 철학자들의 그 사상적 태도를 "철학적 자살"이라고 '시지프의 신화'에서 규정한 A.카뮈는, 후에 오게 될 '페스트, 전락, 적지와 왕국'에서 적극 묘사될 '신이 없는 버려진 세계'와 그 속에서 지향해야 할 '인간의 인식과 행복'의 단초를 소설 '이방인'에서 예언하고 있다.
육신은 존재하나 그 정신은 신의 세계에 볼모잡힌 그 일련의 철학자들이 정신과 사상을 스스로 죽여버린 철학적 자살자로 둔갑했을 때 카뮈는 독배를 마시며 죽어갔던 소크라테스처럼, 단두되던 뫼르쏘를 통해 육체적 생의 마감이 그 인식적 생을 불멸로 화해 놓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이전의 대 작가들이 완성해 놓은 사상에서 한 걸음 전진된 경향을 보여준다.F.카프카의 '그레고르 잠자'(변신)는, 끝없이 순환하는 기계의 소모품을 상징하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뾰족한 사후 대책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휴식을 꿈꿨던 그 잠깐의 상상이 그를 인간 사회에선 영원히 쓸모 없는 한낱 벌레로 만들어 버린다.
벌레가 되어 고독하게 병들어 죽는 내내 그레고르는 자신의 변신에 대한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예술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최후의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이반 카라마조프'는 그 냉철한 지성과 논리로 모든 부조리한 대상을 굴복시킨다. 거대한 신과의 마지막 결투에서 무신론적 세계를 상기시키는 그 냉철한 휴머니스트는 신의 대변인이자 그 고매한 영혼을 지닌 '알료샤 카라마조프'를 통해 발휘되는 부조리한 신성의 힘에 대항하다 결국 정신 착란증으로 패퇴해 버린다.
카뮈의 뫼르쏘는 자신의 선택이 죽음을 불러올 것을 명징하게 깨닫고 있었다.
자신을 사회적 규범과 통념에 합치시켰을 때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내면으로부터의 소외됨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의 그레고르'는 소외된 내면이 벌레라는 형태를 가지고 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뫼르쏘는 어리석어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마지막 저녁이 될 수도 있을 그 시간, 조용히 방문한 신부에게 뫼르쏘가 쏟아냈던 것은, '신 없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인정하고 부조리에 대한 직시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나약한 인간의 유일한 인식에의 고집이었다.
그는 '이반 카라마조프'나 신의 죽음을 선고한 독일의 철학자 'F.니체'처럼 정신 분열증으로 생을 끝맺지 않았다.
뫼르쏘는 그 최후의 깨달음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카뮈는 이처럼 이전의 사상가들이 머물렀던 영역에서 한 걸음 전진하는 성과를 보인다.
그리고 러시아의 톨스토이,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발견되는 휴머니즘을 그대로 계승한다.
끝으로, 음악사에서의 베토벤처럼, 현대 실존주의 흐름 한가운데를 관류하는 고독한 인간의 그 실존적 휴머니즘을 보여준 카뮈에게 작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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