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문화의 교류
Ⅱ. 문화 교류의 동서 교역로
Ⅲ. 동서 교역로의 역사적 의의
Ⅳ. 중국 역대 왕조의 서역 교류
Ⅱ. 문화 교류의 동서 교역로
Ⅲ. 동서 교역로의 역사적 의의
Ⅳ. 중국 역대 왕조의 서역 교류
본문내용
보내더니, 세조 때에는 다시 코르비노를 보내왔다. 그는 대도에서 약 30년 동안 포교에 종사하고 신약성서를 몽고어로 번역하였다. 또 오도리크 드 포르데노네(Odoric de Pordenone)가 들어와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포교하고, 코르비노가 죽은 뒤에는 죠반니 마리올리(Jovanni da Malignolli)가 교황의 명령을 받고 포교에 종사하였다. 이리하여 카톨릭교가 차츰 퍼져, 그 교를 십자교라 하고 그 회당을 십자사라 하였다.
카르피니(Carpini, Giovanni de Piano ;1200?-1252) :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교단의 성직자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의 명으로 몽고인에게 크리스트교를 전파하는 한편, 그 정세를 시찰하기 위하여 몽고에 사절로 나섰다. 1245년에 리용을 출발하여 키에프, 드네프르, 돈, 볼가를 거쳐 바투 한의 왕성(王城) 오르도에 도착했다가, 다시 카라코룸에 이르러 구유크에게 교황의 친서를 바치고, 그 답서를 받아 아비뇽으로 돌아갔다(1247). 그의 견문록은 당시의 몽고 사정을 아는 데에 뤼브뤼크의 여행기와 함께 중요한 기록의 하나이다.
이슬람교의 전파 : 아라비아·페르시아의 상인이 많이 왕래함에 따라, 이슬람교가 해·육로에 의하여 중국의 서북변과 강남의 도시들에 전파되었다. 이슬람교는 당대에 이미 전해진 것인데, 당시는 아라비아인이 왕래한 일부 지역에만 행해졌으나 원대에는 청진교라 불리워 널리 퍼졌다. 이슬람교도는 색목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고 문화에도 우수하였기 때문에 특히 천문·역학·전술에 큰 공적을 남겨 놓고 있다. 곧 이란인 자말 웃딘(Jamal ad-Din)은 세조때 원의 회회천문대를 주재하여 이슬람 천문학을 전하였고, 유대인이라 하는 애설(愛薛)은 천문·의학으로써 벼슬을 지냈고, 지도 제작에 바다를 푸르게 칠하는 방법도 그 영향이라 한다. 이슬람 문화는 원대의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이를 흡수한 한인 사이에 훌륭한 과학자가 탄생했다. 곽수경(1231∼1316)은 대도에 천문대를 만들고, 아라비아력을 참고로 수시력을 편찬하였고, 주 은본은 아라비아의 지도 제작법을 배워 새로운 지도를 작성하였고, 수학에는 이치가 나타나 측원해경(測 圓海鏡)을 저술하였다.
곽수경(郭守敬; 1231-1316) : 원대의 과학자로 5경, 산술, 수리법에 정통하고, 세조(쿠빌라이)를 섬기어 여러 지방의 관개 수로의 개척에 노력하였다. 1276년 허형 왕 순 등과 함께 역법의 수정을 명 받아 정밀한 관측을 행하여 1280년 말 중국에서 제일 좋다는 수시력(授時歷)을 제정하고, 뒤에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다. 수시력은 1281년 공포되었으며 이슬람 역법의 영향으로 정밀한 천문 관측을 기초로 하여 작성, 1년을 365.2425일로 산정하였다. 고려 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천문학 발달에 공헌하였다.
라마교(喇摩敎, Lamanism) : 라마교는 대승 불교와 티베트의 다신교적 토속 종교(본보교)가 혼합하여, 독특한 의식과 행사를 가지는 불교로 본디 6·7세기경부터 발전한 것이었는데 원대에 들어와 크게 유행하였다. 대승 불교의 일파인 것에는 틀림없으나 이 종파에서는 극락 세계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승려, 즉 라마의 역할을 중시하기에 붙이게 된 이름이며, 정확히 말하면 티베트의 불교라고 할 것이다. 몽고인들은 원래 사상적인 것에는 흥미가 없었으나 교리보다는 주문, 기도를 존중하는 라마교에 마음이 쏠려 왕실에서 이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세조 쿠빌라이는 이에 깊은 관심을 가져 티벳승 파스파(八思巴)를 궁정에 초빙하여 제사(帝師)로서 존경하고 천하의 불교 및 티벳의 정치를 맡아보게 하였으므로, 라마교는 몽고 귀족 사이에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몽고의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재래의 샤머니즘을 많이 믿었기 때문에 라마교는 원의 몰락과 함께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동방 견문록 : 이탈리아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 폴로는 1270년 말에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예루살렘을 거쳐 소아시아에서 일단 페르시아만에 이른 뒤 이란을 횡단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동 투르키스탄의 사막을 건너 마침내 1274년 여름에 상도에서 원의 세조 쿠빌라이를 만났다. 여기서 쿠빌라이의 신임을 얻은 마르코 폴로는 1290년 말 취안저우를 출발하여 해로로 귀국 길에 오르기까지 실로 17년의 오랜 세월을 중국에서 지냈다. 귀국한 뒤 때마침 일어난 제노바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 마르코 폴로가 옥중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같은 감방의 수인에게 받아 적도록 하여 쓰여진 이야기가 바로 동방견문록이다. 이 책은 원대 중국의 풍물을 전해 주는 귀중한 자료로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였으나, 중국어에 결코 능숙하지 못하였으며, 중국의 지명이나 고유 명사를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지 않고 일부러 외국어로 적고 있다. 한 예를 들면 베이징 교외의 루거우차오-노구교-를 이란어로 돌다리란 뜻의 프리시긴이라 불렀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 보면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생활하였다고는 하나 중국인의 세계에 들어가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제대로 관찰하고 이해하였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몽고인이 중국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그에 협조하여 또 하나의 지배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색목인으로서 중국에서 생활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동방견문록은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호기심을 고조시켜 유럽인들이 동양으로 진출하는데 큰 자극제 구실을 하여 이후 신항로 개척을 낳게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동·서 문명의 교류는 교통로를 기점으로 발달하였다. 초기 초원길을 통해 한(漢)대의 실크로드를 지나 원(元)대의 대제국의 도로망이 정비되기까지 모든 무역이 교통로를 통해 발달하였고 각 시대별 교통로에 따라서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지고 이에 따른 부의 축적으로 인해 도시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번영을 가져 왔던 것이다. 서역에서 전래된 수많은 물질문명, 정신문화가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또한 서역에 많은 물질· 정신적인 것을 제공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 서간의 문명의 교류는 서로에 발전을 가져오는 점진적인 교류였다고 생각한다.
카르피니(Carpini, Giovanni de Piano ;1200?-1252) :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교단의 성직자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의 명으로 몽고인에게 크리스트교를 전파하는 한편, 그 정세를 시찰하기 위하여 몽고에 사절로 나섰다. 1245년에 리용을 출발하여 키에프, 드네프르, 돈, 볼가를 거쳐 바투 한의 왕성(王城) 오르도에 도착했다가, 다시 카라코룸에 이르러 구유크에게 교황의 친서를 바치고, 그 답서를 받아 아비뇽으로 돌아갔다(1247). 그의 견문록은 당시의 몽고 사정을 아는 데에 뤼브뤼크의 여행기와 함께 중요한 기록의 하나이다.
이슬람교의 전파 : 아라비아·페르시아의 상인이 많이 왕래함에 따라, 이슬람교가 해·육로에 의하여 중국의 서북변과 강남의 도시들에 전파되었다. 이슬람교는 당대에 이미 전해진 것인데, 당시는 아라비아인이 왕래한 일부 지역에만 행해졌으나 원대에는 청진교라 불리워 널리 퍼졌다. 이슬람교도는 색목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고 문화에도 우수하였기 때문에 특히 천문·역학·전술에 큰 공적을 남겨 놓고 있다. 곧 이란인 자말 웃딘(Jamal ad-Din)은 세조때 원의 회회천문대를 주재하여 이슬람 천문학을 전하였고, 유대인이라 하는 애설(愛薛)은 천문·의학으로써 벼슬을 지냈고, 지도 제작에 바다를 푸르게 칠하는 방법도 그 영향이라 한다. 이슬람 문화는 원대의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이를 흡수한 한인 사이에 훌륭한 과학자가 탄생했다. 곽수경(1231∼1316)은 대도에 천문대를 만들고, 아라비아력을 참고로 수시력을 편찬하였고, 주 은본은 아라비아의 지도 제작법을 배워 새로운 지도를 작성하였고, 수학에는 이치가 나타나 측원해경(測 圓海鏡)을 저술하였다.
곽수경(郭守敬; 1231-1316) : 원대의 과학자로 5경, 산술, 수리법에 정통하고, 세조(쿠빌라이)를 섬기어 여러 지방의 관개 수로의 개척에 노력하였다. 1276년 허형 왕 순 등과 함께 역법의 수정을 명 받아 정밀한 관측을 행하여 1280년 말 중국에서 제일 좋다는 수시력(授時歷)을 제정하고, 뒤에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다. 수시력은 1281년 공포되었으며 이슬람 역법의 영향으로 정밀한 천문 관측을 기초로 하여 작성, 1년을 365.2425일로 산정하였다. 고려 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천문학 발달에 공헌하였다.
라마교(喇摩敎, Lamanism) : 라마교는 대승 불교와 티베트의 다신교적 토속 종교(본보교)가 혼합하여, 독특한 의식과 행사를 가지는 불교로 본디 6·7세기경부터 발전한 것이었는데 원대에 들어와 크게 유행하였다. 대승 불교의 일파인 것에는 틀림없으나 이 종파에서는 극락 세계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승려, 즉 라마의 역할을 중시하기에 붙이게 된 이름이며, 정확히 말하면 티베트의 불교라고 할 것이다. 몽고인들은 원래 사상적인 것에는 흥미가 없었으나 교리보다는 주문, 기도를 존중하는 라마교에 마음이 쏠려 왕실에서 이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세조 쿠빌라이는 이에 깊은 관심을 가져 티벳승 파스파(八思巴)를 궁정에 초빙하여 제사(帝師)로서 존경하고 천하의 불교 및 티벳의 정치를 맡아보게 하였으므로, 라마교는 몽고 귀족 사이에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몽고의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재래의 샤머니즘을 많이 믿었기 때문에 라마교는 원의 몰락과 함께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동방 견문록 : 이탈리아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 폴로는 1270년 말에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예루살렘을 거쳐 소아시아에서 일단 페르시아만에 이른 뒤 이란을 횡단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동 투르키스탄의 사막을 건너 마침내 1274년 여름에 상도에서 원의 세조 쿠빌라이를 만났다. 여기서 쿠빌라이의 신임을 얻은 마르코 폴로는 1290년 말 취안저우를 출발하여 해로로 귀국 길에 오르기까지 실로 17년의 오랜 세월을 중국에서 지냈다. 귀국한 뒤 때마침 일어난 제노바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 마르코 폴로가 옥중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같은 감방의 수인에게 받아 적도록 하여 쓰여진 이야기가 바로 동방견문록이다. 이 책은 원대 중국의 풍물을 전해 주는 귀중한 자료로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였으나, 중국어에 결코 능숙하지 못하였으며, 중국의 지명이나 고유 명사를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하지 않고 일부러 외국어로 적고 있다. 한 예를 들면 베이징 교외의 루거우차오-노구교-를 이란어로 돌다리란 뜻의 프리시긴이라 불렀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 보면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생활하였다고는 하나 중국인의 세계에 들어가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제대로 관찰하고 이해하였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몽고인이 중국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그에 협조하여 또 하나의 지배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색목인으로서 중국에서 생활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동방견문록은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호기심을 고조시켜 유럽인들이 동양으로 진출하는데 큰 자극제 구실을 하여 이후 신항로 개척을 낳게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동·서 문명의 교류는 교통로를 기점으로 발달하였다. 초기 초원길을 통해 한(漢)대의 실크로드를 지나 원(元)대의 대제국의 도로망이 정비되기까지 모든 무역이 교통로를 통해 발달하였고 각 시대별 교통로에 따라서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지고 이에 따른 부의 축적으로 인해 도시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번영을 가져 왔던 것이다. 서역에서 전래된 수많은 물질문명, 정신문화가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또한 서역에 많은 물질· 정신적인 것을 제공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 서간의 문명의 교류는 서로에 발전을 가져오는 점진적인 교류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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