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트 지역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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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벽화 등 많은 문물이 남아 있다. 철방사는 흰색 지붕과 금박을 입힌 불상이 특히 인상적이다.
(5)감단사(甘丹寺)
라싸에서 동쪽으로 약 45㎞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사원으로, 총카파가 철방사와 색랍사를 세우기 이전인 1409년에 창건되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어 아직까지 복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옛 영광을 찾을 길은 없다. 이곳을 오르는 길은 여행자들이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는데 푸른 하늘과 대지가 어울려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6)용왕담공원(龍王潭公園)
포달라궁 바로 뒤에 위치해 있는 공원으로 포달라궁을 창건할 당시 파서 만든 연못인 용왕담(龍王潭)이 있고, 그 안에 용신전(龍神殿)이 있다. 달라이 라마 5세가 포달라궁을 지었을 때 지 의 용신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이다.
(7) 강자
강자는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마을로 1904년 영국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해 티베트 인민이 싸운 영웅 마을이다. 시내에는 옛날의 궁전과 영국군과 싸웠을 때의 성채, 1414년부터 10년 걸려 만든 백거사가 있다. 백거사에는 강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탑이 있는데, 이 탑은 9층으로 문이 108개나 되며 77개의 불전이 있다.
(8)일객측
일객측은 티베트 자치구에서 라싸 다음가는 제2의 도시이다. 라싸에서는 약 330km 떨어져 있고 해발 3,800m에 위치해 있다. 산을 등진 대사원으로 안에는 높이 26.7m인 중국 최대의 청동불이 안치되어 있고, 지금도 수백 명의 승려가 수행하고 있다. 또한, 1989년에 서거한 판촌 라마 7세의 미라도 있다
9. 영화속 티벳
(1) 쿤둔
14대 달라이 라마의 탄생부터 인도 망명까지를 그린 영화「쿤둔(Kundun)」
중국의 정치적 압력으로 전세계 20개국에서만 상영되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두 번 째로 상영. 달라이 라마의 방한도 정부에서 취소했다. `쿤둔`은 티벳어로 `고귀한 존재`라는 말을 의미한다.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서거한 뒤, 레팅 린포체('린포체'는 영적 스승을 의미하는 칭호임)는 고인이 된 라마와 역대 모든 달라이 라마의 대를 이어 관세음보살의 현신이 될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을 때까지 섭정직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레팅은 환영을 보고 그 환영의 배경이 된 국경의 변방지대에 소년을 찾으러 승려들을 보냈다. 오랜 탐색 끝에 후보자로 여겨지는 2살의 라모 된둡이 발견된다. 태어날 때 불교의 성조(聖鳥)인 까마귀가 소년을 지켰으며 또한 티벳의 수도이자, 달라이 라마의 사원이 있는 라싸에 가려고 한다는 소년. 승려들은 소년의 집으로 가서 똑같이 생긴 여러 개의 물건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테스트를 했다. 각각의 물건에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사용하던 것이 들어 있으며 소년은 그의 물건을 집으면 되는 것이었다. 라모 된둡은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바로 그가 14대 달라이 라마 '쿤둔'(The Presence, 고귀한 존재)이었다. 불과 5세에 세상을 구원하는 쿤둔의 자리에 즉위한 이 소년은 그러나 가장 치열한 역사의 격동에 놓여진다. 2차 대전 후, 중국이 일본에서 벗어나 혼돈을 겪고 있을 때 소년은 불과 열 두 살이었다. 공산화된 중국이 1957년 마침내 침공해오고 자신의 동포가 아무런 무기 없이 그들 앞에 무자비하게 죽어갈 때도 소년은 사춘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1959년 18세의 나이에 소년은 중국의 암살위협을 피해 긴 망명길을 떠난다. 1959년 독립시위에 대한 잔혹한 진압으로 티벳 전체인구의 20%인 120만 명이 학살되었다. 문화 대혁명 기간동안 홍위병들에 의해 4500여 개 사원이 폐쇄됐으며 수많은 티벳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행방불명됐다. 최근 티벳에서 망명, 다람살라에 머물고 있는 텀딩이라는 사람은 "60년 이후로도 약 20만 명이 더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UN을 비롯 세계 열강들은 티벳을 외면했고 쿤둔은 홀로 외롭고도 기이한 저항을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의 저항이었다. 일체의 폭력도 개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세계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1989년 노벨상 위원회는 평화상을 그에게 수여한다.
(2)티벳에서의
7년
프랑스 거장 장 자끄 아노 감독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산악인으로 티벳에서 달라이 라마와 7년간의 교분을 나눈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어린 아들과 임신한 아내를 두고서도 마음 편히 산을 향해 오를 수 있는 건 프로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프로 산악가 하인리히 하러. 그는 여태 수많은 산을 정복한 산악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면 때문에 친구도 없고, 자신도 친구를 만들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그를 바꾸어 놓는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내다가 동료와 함께 탈출을 하게 되고, 이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서 7년 동안 티벳에서 지내게 된다. 어린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서 그와 보낸 7년 동안 하인리히는 자신의 삶이 부질없고 덧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불교에 빠지게 된다. 그는 티벳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데, 중국은 티벳을 합병하려 하고 곧이어 무력도발을 감행한다.
"중국의 점령 이후 백만의 티벳인이 죽었고 6천 여곳의 사원(Monasterles)이 파괴됐다. 1959년 인도로 피신한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중국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지금도 하러와는 절친한 친구다."
장 자끄 아노 감독이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군복무했던 경험을 살려 만든 걸작. 그의 사상적인 기반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참고
http://www.kailash96.com http://chinatour.co.kr
http://trekchina.co.kr http://www.dalailama.or.kr
http://amoretour.com.ne.kr http://movie.naver.com

키워드

중국,   티베트,   티벳,   라싸,   서장자치구,   시장,   지역,   여행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4.06.25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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