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지평이 겹쳐 있
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최승자 시는 1970년대 유신 체제 아래서의 참혹한
추억과 80년대 초반의 폭력적인 사회통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시인의
표현대로 \"70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 최승자의 시는 이러
한 공포와 치욕의 시적 흔적이며, 또한 거절이다. 시인의 산문은 그의 시가
\"가위눌림에 대한 시적 저항\"이었으며, 시인의 시적 저항의 대상이 된 그
가위 눌림의 억압 구조는 80년대의 것이기보다는 처라리 70년대적인 것이었
다고 말해준다. 그렇다 최승자의 시는 정치 권력 못지않게 자본의 권능에
의해 관리되고 조절되는-권력의 탈중심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80년대적인
현실보다는, 근원적으로 \'겁주는\' 방식을 통해 통제되었던 유신 체제의 산
물이다.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바람에 젖는다.
늘 그대로의 길목에서 집으로
우리는 익숙하게 빠져들어
세상 밖의 잠속으로 내려가고
꿈의 깊은 늪 안에서 너희는 부르지만
애인아 사천년 하늘빛이 무거워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우리는 발이 묶인 구름이다.
밤마다 복면한 바람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우리는 풀지 못한다 (1: 75)
위의 시는 그 숨막힐 듯한 시대에 젊음의 한복판을 보낸 사람들의 가위
눌림의 심리적 상태를 뛰어난 응집력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현실의 억압구
조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그 \"복면한\"억압에 대한 공포를
배가시킨다. 또한 그것은 그 무엇보다 그 소통의 단절이므로 세계는 풀 수
없는 비밀과 암호로 가득차 있다. 70년대에도 어떤 시인들은 여전히 서정시
를 썼고, 어떤 시인들은 \'겨울\'과 \'새벽\'의 알레고리로 정치적 현실에 대해
저항했다. 허지만, \'그 현실\'의 억압구조가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왜곡시켰
는가? \'그 억압구조가 심리적 지층 안에 스며들어와 어떻게 자신을 검열하
고 통제하는가\'에 대한 탐구는 최승자와 이성복에 의해 비로소 그 시적 표
현을 얻는다. 최승자의 시는 현실의 가위눌림에 대한 지연발생적인 단말마
였지만, 그 시적 울림은 단말마의 의미를 넘어 억압의 기원에 대한 근원적
인 반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최승자는 그 반성을 현실에 대한 가부장적
언어의 지배력을 해체하는 위반의 시학을 통해 밀고 나간다.
마르쿠제 Herbert Marcuse의 [에로스와 문명]의 논리를 좇아가면, 문명
은 \'현실 원칙의 쾌락 원칙에 대한 우위\'에 근거해 있다. 어떤 문명이건 기
본적인 억압은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문명의 \'과잉억압\'이다. 과잉 억압의
상태애서는 진정한 본능이 왜곡되어 파괴 본능이 강화된다. 마르쿠제에게는
억압 없는 문명은 쾌락 원칙이 우선하는 문명이며, 놀이 충동은 이 쾌락 원
칙을 지키기 위한 숨죽인 본능의 표현이다. 70년대의 우리 사회는 과잉 억
압이 온존하는 사회였다. 군사정권에 의해 위로부터 추진된 파행적인 근대
화와 산업화는 개인의 참된 자율성과 집단의 공동체적 연대감의 희생에 기
초하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자\'는 성장 이데올로기는, 70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지배적 언어 체계였다. 그 이데올로기는 80년대 안정
이데올로기로 전이되면서 아직도 그 언어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승자
시는 이와 같은 과잉 억압에 대한 부정의 언어였다. 최승자 시의 과도하게
파괴적인 에너지, 어두운 충동들, 극단적인 자기 혐오, 존재의 바닥을 헤집
는 파격적인 말투, 신체 부위를 기꺼이 세계에 바치는 행위는 분명히 왜곡
된 본능의 표현이지만, 그것은 본능의 쾌락 원칙을 해방하려는 욕망의 담론
이었다. 그 욕망의 담론이 파괴 본능에만 기울지 않고 시가 될 수 있는 것
은, 그가 신체적 사유를 통해 그것의 시적 형태화에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
이다.
최승자는 현실에 대한 합리화와 순응주의, 거짓 믿음에 기초한 문법들과
싸웠다. 그 싸움은 외부적인 억압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세움으로써가
아니라, 그러한 억압이 얼마나 속속들이 자신의 존재를 왜곡시켰는가를 정
직하게 바라봄으로써 가능했다. 최승자 시의 문체적 빔징인 고백체와 아포
리즘은 이러한 시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집단적 삶의 모범을 상
정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외로운 싸움이었고, 도래할 새로운 새계의 모형
을 갖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우울한 싸움이었다. 허지만 최승자는 우리가 돌
아가야 할 모태와 건강한 생산에 대한 지향성을 신체적 사유를 통해 보여줌
으로써 허무주의를 모면한다. 언어적 금기에 대한 위반과 신체적 사유는,
재래적인 서정시와 그것이 합리화하는 병든 세계에 대한 부정을 동시에 밀
고 나가는 시적 전략이었다.
세 권의 시집을 낸 최승자는 8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시세계를 탐색하
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자신의 시 안에서 빈번하게 \"시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은, 그가 시의 변경에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허지
만, 최승자는 그의 동시대인 이성복과 황지우와 김정환처럼 자신의 시적 전
략을 전면 수정하지는 않고 있다. 이제 최승자가 그와 동시대의 시인들과
함께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 가부장적 언어의 성채는 함락되었다. 그 페허
위에 시인은 무엇을 지을 것인가?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고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3: 27)
이 아름다운 \"아버지의 나라\"는 그러나 도래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아
직도 \"벽이 꾸는 꿈\"이다. 현실과 일치되지 않는 꿈의 언어가 진정한 유토
피아적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결핍된 현실에 대한 부정의 파괴력으
로 작용해야 한다. 그것은 시인이 꾸는 꿈과 현실과의 살아 잇는 관계에 의
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현실의 움직임에 몸 담고 있지 않은 꿈은 퇴행적인
시적 자아의 탄식일 뿐이다. \'지독한 리얼리즘\'은 80년대에만 필요했던 것
은 아니다. 하지만, \'새상은 흐르지만 나는 흐르지 않고 깊이로 남아 이 세
상을
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최승자 시는 1970년대 유신 체제 아래서의 참혹한
추억과 80년대 초반의 폭력적인 사회통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시인의
표현대로 \"70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 최승자의 시는 이러
한 공포와 치욕의 시적 흔적이며, 또한 거절이다. 시인의 산문은 그의 시가
\"가위눌림에 대한 시적 저항\"이었으며, 시인의 시적 저항의 대상이 된 그
가위 눌림의 억압 구조는 80년대의 것이기보다는 처라리 70년대적인 것이었
다고 말해준다. 그렇다 최승자의 시는 정치 권력 못지않게 자본의 권능에
의해 관리되고 조절되는-권력의 탈중심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80년대적인
현실보다는, 근원적으로 \'겁주는\' 방식을 통해 통제되었던 유신 체제의 산
물이다.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바람에 젖는다.
늘 그대로의 길목에서 집으로
우리는 익숙하게 빠져들어
세상 밖의 잠속으로 내려가고
꿈의 깊은 늪 안에서 너희는 부르지만
애인아 사천년 하늘빛이 무거워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우리는 발이 묶인 구름이다.
밤마다 복면한 바람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우리는 풀지 못한다 (1: 75)
위의 시는 그 숨막힐 듯한 시대에 젊음의 한복판을 보낸 사람들의 가위
눌림의 심리적 상태를 뛰어난 응집력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현실의 억압구
조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그 \"복면한\"억압에 대한 공포를
배가시킨다. 또한 그것은 그 무엇보다 그 소통의 단절이므로 세계는 풀 수
없는 비밀과 암호로 가득차 있다. 70년대에도 어떤 시인들은 여전히 서정시
를 썼고, 어떤 시인들은 \'겨울\'과 \'새벽\'의 알레고리로 정치적 현실에 대해
저항했다. 허지만, \'그 현실\'의 억압구조가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왜곡시켰
는가? \'그 억압구조가 심리적 지층 안에 스며들어와 어떻게 자신을 검열하
고 통제하는가\'에 대한 탐구는 최승자와 이성복에 의해 비로소 그 시적 표
현을 얻는다. 최승자의 시는 현실의 가위눌림에 대한 지연발생적인 단말마
였지만, 그 시적 울림은 단말마의 의미를 넘어 억압의 기원에 대한 근원적
인 반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최승자는 그 반성을 현실에 대한 가부장적
언어의 지배력을 해체하는 위반의 시학을 통해 밀고 나간다.
마르쿠제 Herbert Marcuse의 [에로스와 문명]의 논리를 좇아가면, 문명
은 \'현실 원칙의 쾌락 원칙에 대한 우위\'에 근거해 있다. 어떤 문명이건 기
본적인 억압은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문명의 \'과잉억압\'이다. 과잉 억압의
상태애서는 진정한 본능이 왜곡되어 파괴 본능이 강화된다. 마르쿠제에게는
억압 없는 문명은 쾌락 원칙이 우선하는 문명이며, 놀이 충동은 이 쾌락 원
칙을 지키기 위한 숨죽인 본능의 표현이다. 70년대의 우리 사회는 과잉 억
압이 온존하는 사회였다. 군사정권에 의해 위로부터 추진된 파행적인 근대
화와 산업화는 개인의 참된 자율성과 집단의 공동체적 연대감의 희생에 기
초하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자\'는 성장 이데올로기는, 70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지배적 언어 체계였다. 그 이데올로기는 80년대 안정
이데올로기로 전이되면서 아직도 그 언어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승자
시는 이와 같은 과잉 억압에 대한 부정의 언어였다. 최승자 시의 과도하게
파괴적인 에너지, 어두운 충동들, 극단적인 자기 혐오, 존재의 바닥을 헤집
는 파격적인 말투, 신체 부위를 기꺼이 세계에 바치는 행위는 분명히 왜곡
된 본능의 표현이지만, 그것은 본능의 쾌락 원칙을 해방하려는 욕망의 담론
이었다. 그 욕망의 담론이 파괴 본능에만 기울지 않고 시가 될 수 있는 것
은, 그가 신체적 사유를 통해 그것의 시적 형태화에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
이다.
최승자는 현실에 대한 합리화와 순응주의, 거짓 믿음에 기초한 문법들과
싸웠다. 그 싸움은 외부적인 억압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세움으로써가
아니라, 그러한 억압이 얼마나 속속들이 자신의 존재를 왜곡시켰는가를 정
직하게 바라봄으로써 가능했다. 최승자 시의 문체적 빔징인 고백체와 아포
리즘은 이러한 시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집단적 삶의 모범을 상
정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외로운 싸움이었고, 도래할 새로운 새계의 모형
을 갖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우울한 싸움이었다. 허지만 최승자는 우리가 돌
아가야 할 모태와 건강한 생산에 대한 지향성을 신체적 사유를 통해 보여줌
으로써 허무주의를 모면한다. 언어적 금기에 대한 위반과 신체적 사유는,
재래적인 서정시와 그것이 합리화하는 병든 세계에 대한 부정을 동시에 밀
고 나가는 시적 전략이었다.
세 권의 시집을 낸 최승자는 8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시세계를 탐색하
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자신의 시 안에서 빈번하게 \"시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은, 그가 시의 변경에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허지
만, 최승자는 그의 동시대인 이성복과 황지우와 김정환처럼 자신의 시적 전
략을 전면 수정하지는 않고 있다. 이제 최승자가 그와 동시대의 시인들과
함께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 가부장적 언어의 성채는 함락되었다. 그 페허
위에 시인은 무엇을 지을 것인가?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고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3: 27)
이 아름다운 \"아버지의 나라\"는 그러나 도래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아
직도 \"벽이 꾸는 꿈\"이다. 현실과 일치되지 않는 꿈의 언어가 진정한 유토
피아적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결핍된 현실에 대한 부정의 파괴력으
로 작용해야 한다. 그것은 시인이 꾸는 꿈과 현실과의 살아 잇는 관계에 의
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현실의 움직임에 몸 담고 있지 않은 꿈은 퇴행적인
시적 자아의 탄식일 뿐이다. \'지독한 리얼리즘\'은 80년대에만 필요했던 것
은 아니다. 하지만, \'새상은 흐르지만 나는 흐르지 않고 깊이로 남아 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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