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서론
▷ 사서(四書)에 대해서…
◈ 본론
Ⅰ. ≪논어(論語)≫
1. 저자 공자(孔子)의 생애
2.≪논어(論語)≫의 개관
3. ≪논어(論語)≫의 종류와 전래
4. ≪논어(論語)≫속 주요 사상
1) 교육사상(敎育思想)
⑴ 교육목적
⑵ 교육대상
⑶ 교육내용
⑸ 교육자와 학습자
2) 인(仁) 사상
⑴ 인(仁)의 의미
⑵ 인(仁)의 성격
⑶ 인의 실천
3) 예(禮) 사상
⑴ 극기복례(克己復禮)
⑵ 공자가 제시한 이상적인 인간상
4) 중용(中庸) 사상
5) 천명(天命) 사상
6) 정치사상(政治思想)
⑴ 정명사상(正名思想)
⑵ 대동사상(大同思想)
6. ≪논어(論語)≫의 가치
Ⅱ. ≪맹자(孟子)≫
1. 저자 맹자(孟子)의 생애
2. ≪맹자(孟子)≫의 개관
3. ≪맹자(孟子)≫속 주요 사상
1) 인의론(仁義論)
2) 성선설(性善說)
3) 호연지기(浩然之氣)
4) 대장부(大丈夫)와 대인(大人)
5) 교육사상(敎育思想)
⑴ 교육목표
⑵ 교육적 중시
⑶ 교육자의 자세
⑷ 교육방법
⑸ 교육환경
6)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
◈ 결론
참고문헌
▷ 사서(四書)에 대해서…
◈ 본론
Ⅰ. ≪논어(論語)≫
1. 저자 공자(孔子)의 생애
2.≪논어(論語)≫의 개관
3. ≪논어(論語)≫의 종류와 전래
4. ≪논어(論語)≫속 주요 사상
1) 교육사상(敎育思想)
⑴ 교육목적
⑵ 교육대상
⑶ 교육내용
⑸ 교육자와 학습자
2) 인(仁) 사상
⑴ 인(仁)의 의미
⑵ 인(仁)의 성격
⑶ 인의 실천
3) 예(禮) 사상
⑴ 극기복례(克己復禮)
⑵ 공자가 제시한 이상적인 인간상
4) 중용(中庸) 사상
5) 천명(天命) 사상
6) 정치사상(政治思想)
⑴ 정명사상(正名思想)
⑵ 대동사상(大同思想)
6. ≪논어(論語)≫의 가치
Ⅱ. ≪맹자(孟子)≫
1. 저자 맹자(孟子)의 생애
2. ≪맹자(孟子)≫의 개관
3. ≪맹자(孟子)≫속 주요 사상
1) 인의론(仁義論)
2) 성선설(性善說)
3) 호연지기(浩然之氣)
4) 대장부(大丈夫)와 대인(大人)
5) 교육사상(敎育思想)
⑴ 교육목표
⑵ 교육적 중시
⑶ 교육자의 자세
⑷ 교육방법
⑸ 교육환경
6)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
◈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유학(儒學)은 2500년전 중국의 노나라에서 출생한 공자(孔丘, 자는 仲尼)에 의하여 그 이전에 있었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역사 등을 종합 정리한 것으로서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상이다.
우리가 유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연원으로서 중국 고대사의 시대적인 배경을 알아야 하고 사상의 내용으로서 주로 하는 경전을 알아야 하며, 주요 사상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당시 사회에 어떠한 이념을 제시하였는가 하는 사상의 변천사를 알아봄으로서 오늘날 요구되어지는 유학의 모습을 이해할 수가 있다.
중국사상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강한 인간 중심적인 사상이다. 즉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초월적인 것에 대하여 관심을 그다지 가지지 않으며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알 수 있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러한 경향의 조건으로서 인간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을 뿌리깊게 간직하고 있다. 또한 오랜 기간동안 가혹한 자연조건 하에서의 농경생활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이외에 의지할만한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새기게 하였으며 인간만이 자연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게 하였다. 이러한 인간에의 강한 신뢰감은 그들로 하여금 신을 버리고 고유의 철학체계 특히 사회사상(윤리사상)만을 고도로 발달시키는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 사서(四書)에 대해서
사서(四書)는 유교의 네 가지 기본 경전인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 (中庸)》을 총칭하는 말이다. 사자서(四子書)라고도 하며 단순히 학용논맹(學庸論孟) 이라고도 한다.
《논어》•《맹자》는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전해 내려왔지만, 《대학》•《중용》은 원래 각각 《예기(禮記)》의 한 편(篇)이었다. 《대학》•《중용》이 단행본으로 된 것은 송대(宋代)에 들어와서 인데, 《대학》이 단행본으로 된 것은 사마광(司馬光)의 《대학광의(大學廣義)》가 처음이고, 《중용》의 경우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중용설(中庸說)》이라는 책명이 보이며, 《수서 (隋書)》<경적지(經籍志)>에 의하면 육조시대(六朝時代)에 이미 단행본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송사(宋史)》 <도학전(道學傳)>에 의하면,《대학》•《중용》은 정호(程顥) •정이에 의해 《논 어》•《맹자》와 더불어 육경(六經)에 앞서 읽어야 할 유교의 기본 경전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정호•정이는《대학》이나《중용》에 대해 별도의 주석(註釋)을 하지 않았다. 사서가 크게 행해지게 되는 것은 주희(朱熹)가 《대학》•《논어》•《맹자》•《중용》을 사서로서 표장(表章)하고 여기에 주석을 가하여 《사서집주(四書集註)》, 즉《대학장구 (大學章句)》1권, 《중용장구(中庸章 句)》1권, 《논어집주(論語集註)》10권, 《맹자집주 (孟子 集註)》 7권을 저술한 이후이다.
특히 주희의 《사서집주》는 원대(元代) 인종 2년에 과거의 기본 교재로 인정됨으로써 학자들에 의해 크게 존중되었다. 송대 이후로는 반주자학파에서도 사서를 중시하였으며, 청대(淸代)의 고염무(顧炎武) 등은 비록 이것을 경학(經學)쇠퇴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였으나, 사서를 중시하는 학풍은 변함이 없었다. 사서를 읽는 순서는 송대의 정주(程朱) 이래로《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이었으나, 명대(明代)부터 지면의 다소 제본의 편의를 위해 《대학》《중용》《논어》《맹자》의 순으로 편집 간행하기도 하였다.
유학(儒學)은 2500년전 중국의 노나라에서 출생한 공자(孔丘, 자는 仲尼)에 의하여 그 이전에 있었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역사 등을 종합 정리한 것으로서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상이다.
우리가 유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연원으로서 중국 고대사의 시대적인 배경을 알아야 하고 사상의 내용으로서 주로 하는 경전을 알아야 하며, 주요 사상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당시 사회에 어떠한 이념을 제시하였는가 하는 사상의 변천사를 알아봄으로서 오늘날 요구되어지는 유학의 모습을 이해할 수가 있다.
중국사상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강한 인간 중심적인 사상이다. 즉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초월적인 것에 대하여 관심을 그다지 가지지 않으며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알 수 있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러한 경향의 조건으로서 인간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을 뿌리깊게 간직하고 있다. 또한 오랜 기간동안 가혹한 자연조건 하에서의 농경생활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이외에 의지할만한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새기게 하였으며 인간만이 자연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게 하였다. 이러한 인간에의 강한 신뢰감은 그들로 하여금 신을 버리고 고유의 철학체계 특히 사회사상(윤리사상)만을 고도로 발달시키는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 사서(四書)에 대해서
사서(四書)는 유교의 네 가지 기본 경전인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 (中庸)》을 총칭하는 말이다. 사자서(四子書)라고도 하며 단순히 학용논맹(學庸論孟) 이라고도 한다.
《논어》•《맹자》는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전해 내려왔지만, 《대학》•《중용》은 원래 각각 《예기(禮記)》의 한 편(篇)이었다. 《대학》•《중용》이 단행본으로 된 것은 송대(宋代)에 들어와서 인데, 《대학》이 단행본으로 된 것은 사마광(司馬光)의 《대학광의(大學廣義)》가 처음이고, 《중용》의 경우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중용설(中庸說)》이라는 책명이 보이며, 《수서 (隋書)》<경적지(經籍志)>에 의하면 육조시대(六朝時代)에 이미 단행본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송사(宋史)》 <도학전(道學傳)>에 의하면,《대학》•《중용》은 정호(程顥) •정이에 의해 《논 어》•《맹자》와 더불어 육경(六經)에 앞서 읽어야 할 유교의 기본 경전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정호•정이는《대학》이나《중용》에 대해 별도의 주석(註釋)을 하지 않았다. 사서가 크게 행해지게 되는 것은 주희(朱熹)가 《대학》•《논어》•《맹자》•《중용》을 사서로서 표장(表章)하고 여기에 주석을 가하여 《사서집주(四書集註)》, 즉《대학장구 (大學章句)》1권, 《중용장구(中庸章 句)》1권, 《논어집주(論語集註)》10권, 《맹자집주 (孟子 集註)》 7권을 저술한 이후이다.
특히 주희의 《사서집주》는 원대(元代) 인종 2년에 과거의 기본 교재로 인정됨으로써 학자들에 의해 크게 존중되었다. 송대 이후로는 반주자학파에서도 사서를 중시하였으며, 청대(淸代)의 고염무(顧炎武) 등은 비록 이것을 경학(經學)쇠퇴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였으나, 사서를 중시하는 학풍은 변함이 없었다. 사서를 읽는 순서는 송대의 정주(程朱) 이래로《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이었으나, 명대(明代)부터 지면의 다소 제본의 편의를 위해 《대학》《중용》《논어》《맹자》의 순으로 편집 간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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