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 차
1. 서 론
2. 무인시대의 탄생과 전개
3. 인물들의 출생과 성품
4. 권력을 잡기 전까지 거친 관직
5.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
6. 정치적 행적
7. 결 론
8. 참고문헌 및 참고
1. 서 론
2. 무인시대의 탄생과 전개
3. 인물들의 출생과 성품
4. 권력을 잡기 전까지 거친 관직
5.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
6. 정치적 행적
7. 결 론
8. 참고문헌 및 참고
본문내용
3. 인물들의 출생과 성품
정중부는 예종 1년에 해주 정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父)에 대한 기사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아마도 정중부의 가문이 소위 잘 나가는 가문은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존심이 매우 강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라 생각된다. 이러한 정중부의 성품은 김돈중과의 한 일화에서 알 수 있다. “내시 김돈중이 나이는 젊고 기운은 세어 촛불을 가지고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주었으므로 정중부가 그를 틀어잡고 곤욕을 보였다” 라고 한다. 김돈중은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김부식의 아들로 보통의 인물들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일반 무신이었다면 기분이 상하더라도 그냥 참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중부는 화를 살 것을 알면서도 그를 틀어잡고 당한대로 혼을 내주었다. 그만큼 그는 자존심이 강하였다.
자존심이 강한 그의 성품은 무인으로서 그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낮은 출생이 그에게 좋은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 양가집에서 받았을 만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참여하거나 그 주체가 되는 데에 필요한 사항들을 배우지 못하였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그의 성품은 문신들의 차별 대우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변혁까지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경대승은 경주 경씨, 중서시랑평장사 경진의 아들로서 고려 의종 때 태어났다. 경대승의 집안은 다른 인물들에 비하여 좋은 편 이었다. 무인들이 집권하던 시대에 아버지가 사령관급이었으니 경대승의 앞날은 순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경진은 그 시대의 권력을 가진 자가 그랬듯이 백성들의 땅을 빼앗는 등 수탈과 악행을 일삼았다. 경대승은 아마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에 어렸을 때부터 반감을 가졌던 듯 하다. 이것이 이후 그의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빼앗은 땅들을 자신이 가지지 않고 백성들에게 돌려주게 된다. 경대승은 권력을 가지게 된 뒤에도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인다. 정중부를 제거하고 조정 관리들이 모여 환영회를 열었는데, 이 때 경대승은 “임금을 죽인 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무슨 축하인가?”
정중부는 예종 1년에 해주 정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父)에 대한 기사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아마도 정중부의 가문이 소위 잘 나가는 가문은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존심이 매우 강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라 생각된다. 이러한 정중부의 성품은 김돈중과의 한 일화에서 알 수 있다. “내시 김돈중이 나이는 젊고 기운은 세어 촛불을 가지고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주었으므로 정중부가 그를 틀어잡고 곤욕을 보였다” 라고 한다. 김돈중은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김부식의 아들로 보통의 인물들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일반 무신이었다면 기분이 상하더라도 그냥 참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중부는 화를 살 것을 알면서도 그를 틀어잡고 당한대로 혼을 내주었다. 그만큼 그는 자존심이 강하였다.
자존심이 강한 그의 성품은 무인으로서 그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낮은 출생이 그에게 좋은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 양가집에서 받았을 만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참여하거나 그 주체가 되는 데에 필요한 사항들을 배우지 못하였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그의 성품은 문신들의 차별 대우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변혁까지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경대승은 경주 경씨, 중서시랑평장사 경진의 아들로서 고려 의종 때 태어났다. 경대승의 집안은 다른 인물들에 비하여 좋은 편 이었다. 무인들이 집권하던 시대에 아버지가 사령관급이었으니 경대승의 앞날은 순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경진은 그 시대의 권력을 가진 자가 그랬듯이 백성들의 땅을 빼앗는 등 수탈과 악행을 일삼았다. 경대승은 아마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에 어렸을 때부터 반감을 가졌던 듯 하다. 이것이 이후 그의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빼앗은 땅들을 자신이 가지지 않고 백성들에게 돌려주게 된다. 경대승은 권력을 가지게 된 뒤에도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인다. 정중부를 제거하고 조정 관리들이 모여 환영회를 열었는데, 이 때 경대승은 “임금을 죽인 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무슨 축하인가?”